<앵커 멘트>
경제회생 비용으로 3천조 원이나 들어갔지만 이제부터는 열매를 수확할 수 있으니 다행이죠?
네. 수 십년 동안 분단된 민족이 통합하려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무엇보다 인내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평화 협상이 2년만에 다시 시작됐는데.. 다시 좌초될 위기에 놓여 있다구요?
네. 팔레스타인 지역에 건설되고 있는 유대인 정착촌이 이번에도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종교적으로 양측이 서로 자신의 땅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서 접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네. 시시때때로 유혈 사태를 유발하며 양측간 반목과 갈등의 핵심으로 남아 있는 정착촌 문제를 이영석 특파원이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26일, 이스라엘 한 시민 단체의 정착촌 반대 집회. 이날 자정에 끝나는 정착촌 건설 동결 시한을 앞두고, 계속적인 동결을 촉구하는 행사입니다.
<인터뷰>야리프 오펜하임('피스 나우'대표): "오늘이 정착촌 동결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총리에게 정착촌 건설을 재개하지 말라고 항의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순조롭던 집회는 갑자기 한 시민이 거세게 항의하면서 중단됩니다. 정착촌 건설을 찬성하는
유대 신앙인입니다.
<녹취>유대 신앙인: "만약 당신 아들이 (팔레스타인 인에게)죽었으면 침묵하지 않을 거야.당신 아들이 무덤에 있다면 그런 말 못할 거라고!"
'정착촌' 문제는 이렇게 이스라엘 내부에서조차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예루살렘의 남쪽, 요르단 강 서안의 한 작은 마을. 최초의 이스라엘 정착촌 '크파르 에치온'입니다. 이곳엔 정착촌 건설을 기념하는 작은 박물관이 세워져 있습니다. 1920년대부터 땅을 놓고 팔레스타인과 벌였던 투쟁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곳입니다.
<인터뷰>이츠카키(관람객): "당신의 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슬프지 않겠어요? 많은 군인들이 전사하고 아이들이 죽었어요"
조상의 땅을 되찾으려던 유대인들에겐 한이 맺힌 곳이기도 합니다.
<인터뷰>엘리야다(관람객): "이제 우리는 강한 군대를 갖고 있어서 절대 우리 땅을 빼앗기기 않을 것입니다. 평화 협상이 이뤄져도 이곳은 철수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정착촌이 건설된 건 지난 1967년입니다.벌써 40년 넘게 흐른 셈입니다.본격적인 정착촌 건설은 6일 전쟁이라 불리는 제3차 중동전쟁이 끝난 직후 시작됐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시나이 반도와 골란 고원 등을 점령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들 점령 지역에 정착촌을 건설해 유대인을 이주시켰습니다. 점령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조처였습니다.
서안 지구의 정착촌 '네베 다니엘'. 골드스타인 씨 가족이 안식일을 앞두고 미리 먹을 음식을 장만하고 있습니다. 골드스타인 씨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결혼 후 이곳에 정착했습니다. 조상의 뿌리가 있는 이 땅을 되찾겠다는 사명감에섭니다.
<인터뷰>골드스타인(정착촌 시장): "우리 입장에서는 고향에 돌아온 것입니다.우리는 여기 사는 게 합법이라고 생각합니다.'정착촌'이 아니라 그냥 마을이고 도시일 뿐입니다."
최근 진행중인 중동 평화 회담에도 큰 기대를 걸지 않습니다.
<인터뷰>골드스타인(정착촌 시장):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 지구에서 실험을 했습니다.스무 개 정착촌,만 명을 철수시켰는데 우리가 무엇을 얻었습니까? 평화는 없었습니다."
서안 지구의 정착촌은 모두 120여 개. 이곳에 살고 있는 유대인이 모두 30만 명에 이릅니다. 동예루살렘의 20만 명까지 합치면 어느새 팔레스타인 전체 인구의 5분의 1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 곳곳으로 유대 정착촌이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착촌 건설은 유엔이 정한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하고 이를 지속하기 위해 사람을 살게 한다는 점에서 국제법상 명백한 불법입니다.
유엔 등 국제 사회가 정착촌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것도 이런 근거에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지난해 11월, 정착촌 건설을 동결한 정책도 국제 사회의 압력에 대한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지난 24일, 서안 지구의 또 다른 정착촌. 굴삭기까지 동원돼 터닦기 공사가 한창입니다. 정착촌 건설 동결 기간이지만 공사는 곳곳에서 진행중입니다.
이곳은 정착촌 건설 현장입니다. 이곳은 정착촌 건설 현장입니다. 정착촌 건설 동결 시한이 이틀이나 남았지만 공사는 진행중입니다.공사를 못하게 하겠다는 이스라엘 정부의 입장과 다른 것입니다.
명목상 정착촌 건설을 금지시켰지만 실제로는 이를 묵인하는 이스라엘 정부의 태도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임시 행정 수도인 라말라.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의 묘소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정착촌은 이곳 라말라 코앞까지 들이닥쳤습니다.
라말라에서 도로 하나만 건너면 바로 이스라엘의 '베텔 정착촌'입니다.
<인터뷰>아흐마드(라말라 주민):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구타 당해서 이가 부러지고 허리를 다쳤습니다.운전 기사였는데 허리를 다쳐 수술을 받은 뒤 걷거나 일도 못하고 있습니다."
서안 지구 남부 도시 헤브론. 유대인과 무슬림 모두에게 성지인 이곳에도 어김없이 이스라엘 정착촌이 들어서 있습니다. 양측의 해묵은 감정이 자주 충돌로 이어지면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인 샤디 씨의 집은 창문 하나를 사이로 유대인 집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정착촌 건설로 서로가 원치 않는 기막힌 동거가 시작된 것입니다.
<인터뷰>샤디(헤브론 주민): "(유대인들이)여기 창문을 모두 닫게 했습니다. (지금 밖에 사람 소리가 나는데요?) 유대인들이 창문 밖에 있어요."
취재진을 옥상으로 안내한 샤디 씨에게 이스라엘 병사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녹취> “찍지 마! 바로 내려가! (잠깐만요. 곧 내려갈게요.) 지금 당장 내려가라고! (알았어요.걱정 말아요.) 알았다 하지 말고 지금 당장 내려가! (내 집인데 왜 상관하는 거예요.)”
정착촌 건설 이후 주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상점들은 상당수가 폐쇄됐습니다. 정착촌 주민들의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판단에섭니다. 상점을 둘러싼 물리적 충돌이 자주 벌어졌고, 샤디 씨도 얼마 전 충돌에 휩쓸렸습니다.
<인터뷰>샤디(헤브론 주민): "군인들이 이렇게 저를 쳤어요. 여기 가슴을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주먹으로 쳤습니다."
아잠 씨 역시 그동안 담아뒀던 불만을 취재진에 쏟아냅니다.
<인터뷰>아잠(헤브론 주민): "이건 점령입니다.그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여기 없기를 바랍니다.이 지역이 비워지는 걸 원합니다.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떠났습니다."
정착촌 건설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이동권도 제한받고 있습니다. 정착촌 주변의 일정 거리 안에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출입할 수 없습니다. 정착촌 지역으로 가기 위해선 검문소와 철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녹취>이스라엘 군인: "(아랍 주민들도 여기 올 수 있나요?) 아뇨.유대인들만 올 수 있습니다. (여기는 유대 정착촌이잖아요.)"
서로에 대해 쌓인 감정은 유혈 사태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요르단 강 서안의 베트 하가이 정착촌. 이곳에 사는 이 4남매는 한 달 전 부모를 잃었습니다. 정착촌 주민들을 겨냥한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의 테러에 살해된 것입니다.
<인터뷰>루스(큰딸/19세):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요.하루 종일 모든 물건들이 부모님을 기억나게 만들어요.전혀 실감 나지 않아요.내일이라도 부모님이 돌아오실 것 같아요."
이웃에 사는 에벤하임 씨도 같은 날 아내를 잃었습니다. 하마스의 총격을 받고 운전을 하던 아내가 그 자리에서 숨진 겁니다.
<인터뷰>모미 에벤하임(정착촌 주민): "내가 서울에 가서 집을 짓는다면 '당신은 유대인이라 안된다'고 하지 않습니다. 왜 내 나라,내 땅, 내 약속의 땅에서는 안 됩니까?"
이렇게 지난 10년 동안 정착촌 때문에 빚어진 폭력의 희생자는 양측에서 모두 3백 명에 육박합니다.
어느 대도시의 거리 같은 이곳도 정착촌의 일부입니다. 다른 소규모 정착촌과는 달리 상점과 학교 등 편의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습니다.
이 정착촌은 유대 종교인들이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삼고 있는 곳입니다.작은 마을로 시작한 정착촌이 확장을 거듭하면서 이제는 인구 2만명이 넘는 하나의 도시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정착촌 인구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확장 필요성도 커지고 습니다.
<인터뷰>미샤일(아리엘 정착촌 주민): "정착촌 건물을 못 짓게 하는 건 상당히 어려울 겁니다.아기가 태어나고 가족이 커지는 게 자연스런 현상이니까요."
문제는 정착촌이 확대될수록 평화의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데 있습니다. 정착촌이 건설된 곳이 팔레스타인이 간절히 나라를 세우고 싶어하는 바로 그 땅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가산 카팁(팔레스타인 정부 대변인): "만약 평화 회담이 중단된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다시 폭력 사태가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질 겁니다."
지난 26일 이스라엘 정부는 다시 정착촌 건설을 허용했습니다. 정착촌 동결을 촉구해 온 국제 사회의 요구는 다시 한번 거부됐습니다. 당장 2천 채가 넘는 건물이 새로 정착촌에 들어설 예정입니다.
협상 당사자인 팔레스타인의 반발이 커지고 있습니다. 폭력의 악순환도 예상되고 있습니다. 겨우 불씨를 살려 놓은 중동 평화 협상도 다시 위기에 놓였습니다.
경제회생 비용으로 3천조 원이나 들어갔지만 이제부터는 열매를 수확할 수 있으니 다행이죠?
네. 수 십년 동안 분단된 민족이 통합하려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무엇보다 인내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평화 협상이 2년만에 다시 시작됐는데.. 다시 좌초될 위기에 놓여 있다구요?
네. 팔레스타인 지역에 건설되고 있는 유대인 정착촌이 이번에도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종교적으로 양측이 서로 자신의 땅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서 접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네. 시시때때로 유혈 사태를 유발하며 양측간 반목과 갈등의 핵심으로 남아 있는 정착촌 문제를 이영석 특파원이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26일, 이스라엘 한 시민 단체의 정착촌 반대 집회. 이날 자정에 끝나는 정착촌 건설 동결 시한을 앞두고, 계속적인 동결을 촉구하는 행사입니다.
<인터뷰>야리프 오펜하임('피스 나우'대표): "오늘이 정착촌 동결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총리에게 정착촌 건설을 재개하지 말라고 항의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순조롭던 집회는 갑자기 한 시민이 거세게 항의하면서 중단됩니다. 정착촌 건설을 찬성하는
유대 신앙인입니다.
<녹취>유대 신앙인: "만약 당신 아들이 (팔레스타인 인에게)죽었으면 침묵하지 않을 거야.당신 아들이 무덤에 있다면 그런 말 못할 거라고!"
'정착촌' 문제는 이렇게 이스라엘 내부에서조차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예루살렘의 남쪽, 요르단 강 서안의 한 작은 마을. 최초의 이스라엘 정착촌 '크파르 에치온'입니다. 이곳엔 정착촌 건설을 기념하는 작은 박물관이 세워져 있습니다. 1920년대부터 땅을 놓고 팔레스타인과 벌였던 투쟁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곳입니다.
<인터뷰>이츠카키(관람객): "당신의 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슬프지 않겠어요? 많은 군인들이 전사하고 아이들이 죽었어요"
조상의 땅을 되찾으려던 유대인들에겐 한이 맺힌 곳이기도 합니다.
<인터뷰>엘리야다(관람객): "이제 우리는 강한 군대를 갖고 있어서 절대 우리 땅을 빼앗기기 않을 것입니다. 평화 협상이 이뤄져도 이곳은 철수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정착촌이 건설된 건 지난 1967년입니다.벌써 40년 넘게 흐른 셈입니다.본격적인 정착촌 건설은 6일 전쟁이라 불리는 제3차 중동전쟁이 끝난 직후 시작됐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시나이 반도와 골란 고원 등을 점령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들 점령 지역에 정착촌을 건설해 유대인을 이주시켰습니다. 점령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조처였습니다.
서안 지구의 정착촌 '네베 다니엘'. 골드스타인 씨 가족이 안식일을 앞두고 미리 먹을 음식을 장만하고 있습니다. 골드스타인 씨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결혼 후 이곳에 정착했습니다. 조상의 뿌리가 있는 이 땅을 되찾겠다는 사명감에섭니다.
<인터뷰>골드스타인(정착촌 시장): "우리 입장에서는 고향에 돌아온 것입니다.우리는 여기 사는 게 합법이라고 생각합니다.'정착촌'이 아니라 그냥 마을이고 도시일 뿐입니다."
최근 진행중인 중동 평화 회담에도 큰 기대를 걸지 않습니다.
<인터뷰>골드스타인(정착촌 시장):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 지구에서 실험을 했습니다.스무 개 정착촌,만 명을 철수시켰는데 우리가 무엇을 얻었습니까? 평화는 없었습니다."
서안 지구의 정착촌은 모두 120여 개. 이곳에 살고 있는 유대인이 모두 30만 명에 이릅니다. 동예루살렘의 20만 명까지 합치면 어느새 팔레스타인 전체 인구의 5분의 1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 곳곳으로 유대 정착촌이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착촌 건설은 유엔이 정한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하고 이를 지속하기 위해 사람을 살게 한다는 점에서 국제법상 명백한 불법입니다.
유엔 등 국제 사회가 정착촌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것도 이런 근거에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지난해 11월, 정착촌 건설을 동결한 정책도 국제 사회의 압력에 대한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지난 24일, 서안 지구의 또 다른 정착촌. 굴삭기까지 동원돼 터닦기 공사가 한창입니다. 정착촌 건설 동결 기간이지만 공사는 곳곳에서 진행중입니다.
이곳은 정착촌 건설 현장입니다. 이곳은 정착촌 건설 현장입니다. 정착촌 건설 동결 시한이 이틀이나 남았지만 공사는 진행중입니다.공사를 못하게 하겠다는 이스라엘 정부의 입장과 다른 것입니다.
명목상 정착촌 건설을 금지시켰지만 실제로는 이를 묵인하는 이스라엘 정부의 태도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임시 행정 수도인 라말라.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의 묘소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정착촌은 이곳 라말라 코앞까지 들이닥쳤습니다.
라말라에서 도로 하나만 건너면 바로 이스라엘의 '베텔 정착촌'입니다.
<인터뷰>아흐마드(라말라 주민):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구타 당해서 이가 부러지고 허리를 다쳤습니다.운전 기사였는데 허리를 다쳐 수술을 받은 뒤 걷거나 일도 못하고 있습니다."
서안 지구 남부 도시 헤브론. 유대인과 무슬림 모두에게 성지인 이곳에도 어김없이 이스라엘 정착촌이 들어서 있습니다. 양측의 해묵은 감정이 자주 충돌로 이어지면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인 샤디 씨의 집은 창문 하나를 사이로 유대인 집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정착촌 건설로 서로가 원치 않는 기막힌 동거가 시작된 것입니다.
<인터뷰>샤디(헤브론 주민): "(유대인들이)여기 창문을 모두 닫게 했습니다. (지금 밖에 사람 소리가 나는데요?) 유대인들이 창문 밖에 있어요."
취재진을 옥상으로 안내한 샤디 씨에게 이스라엘 병사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녹취> “찍지 마! 바로 내려가! (잠깐만요. 곧 내려갈게요.) 지금 당장 내려가라고! (알았어요.걱정 말아요.) 알았다 하지 말고 지금 당장 내려가! (내 집인데 왜 상관하는 거예요.)”
정착촌 건설 이후 주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상점들은 상당수가 폐쇄됐습니다. 정착촌 주민들의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판단에섭니다. 상점을 둘러싼 물리적 충돌이 자주 벌어졌고, 샤디 씨도 얼마 전 충돌에 휩쓸렸습니다.
<인터뷰>샤디(헤브론 주민): "군인들이 이렇게 저를 쳤어요. 여기 가슴을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주먹으로 쳤습니다."
아잠 씨 역시 그동안 담아뒀던 불만을 취재진에 쏟아냅니다.
<인터뷰>아잠(헤브론 주민): "이건 점령입니다.그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여기 없기를 바랍니다.이 지역이 비워지는 걸 원합니다.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떠났습니다."
정착촌 건설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이동권도 제한받고 있습니다. 정착촌 주변의 일정 거리 안에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출입할 수 없습니다. 정착촌 지역으로 가기 위해선 검문소와 철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녹취>이스라엘 군인: "(아랍 주민들도 여기 올 수 있나요?) 아뇨.유대인들만 올 수 있습니다. (여기는 유대 정착촌이잖아요.)"
서로에 대해 쌓인 감정은 유혈 사태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요르단 강 서안의 베트 하가이 정착촌. 이곳에 사는 이 4남매는 한 달 전 부모를 잃었습니다. 정착촌 주민들을 겨냥한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의 테러에 살해된 것입니다.
<인터뷰>루스(큰딸/19세):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요.하루 종일 모든 물건들이 부모님을 기억나게 만들어요.전혀 실감 나지 않아요.내일이라도 부모님이 돌아오실 것 같아요."
이웃에 사는 에벤하임 씨도 같은 날 아내를 잃었습니다. 하마스의 총격을 받고 운전을 하던 아내가 그 자리에서 숨진 겁니다.
<인터뷰>모미 에벤하임(정착촌 주민): "내가 서울에 가서 집을 짓는다면 '당신은 유대인이라 안된다'고 하지 않습니다. 왜 내 나라,내 땅, 내 약속의 땅에서는 안 됩니까?"
이렇게 지난 10년 동안 정착촌 때문에 빚어진 폭력의 희생자는 양측에서 모두 3백 명에 육박합니다.
어느 대도시의 거리 같은 이곳도 정착촌의 일부입니다. 다른 소규모 정착촌과는 달리 상점과 학교 등 편의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습니다.
이 정착촌은 유대 종교인들이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삼고 있는 곳입니다.작은 마을로 시작한 정착촌이 확장을 거듭하면서 이제는 인구 2만명이 넘는 하나의 도시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정착촌 인구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확장 필요성도 커지고 습니다.
<인터뷰>미샤일(아리엘 정착촌 주민): "정착촌 건물을 못 짓게 하는 건 상당히 어려울 겁니다.아기가 태어나고 가족이 커지는 게 자연스런 현상이니까요."
문제는 정착촌이 확대될수록 평화의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데 있습니다. 정착촌이 건설된 곳이 팔레스타인이 간절히 나라를 세우고 싶어하는 바로 그 땅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가산 카팁(팔레스타인 정부 대변인): "만약 평화 회담이 중단된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다시 폭력 사태가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질 겁니다."
지난 26일 이스라엘 정부는 다시 정착촌 건설을 허용했습니다. 정착촌 동결을 촉구해 온 국제 사회의 요구는 다시 한번 거부됐습니다. 당장 2천 채가 넘는 건물이 새로 정착촌에 들어설 예정입니다.
협상 당사자인 팔레스타인의 반발이 커지고 있습니다. 폭력의 악순환도 예상되고 있습니다. 겨우 불씨를 살려 놓은 중동 평화 협상도 다시 위기에 놓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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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착촌 갈등, 중동평화 먹구름
-
- 입력 2010-10-03 09:59:52

<앵커 멘트>
경제회생 비용으로 3천조 원이나 들어갔지만 이제부터는 열매를 수확할 수 있으니 다행이죠?
네. 수 십년 동안 분단된 민족이 통합하려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무엇보다 인내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평화 협상이 2년만에 다시 시작됐는데.. 다시 좌초될 위기에 놓여 있다구요?
네. 팔레스타인 지역에 건설되고 있는 유대인 정착촌이 이번에도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종교적으로 양측이 서로 자신의 땅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서 접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네. 시시때때로 유혈 사태를 유발하며 양측간 반목과 갈등의 핵심으로 남아 있는 정착촌 문제를 이영석 특파원이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26일, 이스라엘 한 시민 단체의 정착촌 반대 집회. 이날 자정에 끝나는 정착촌 건설 동결 시한을 앞두고, 계속적인 동결을 촉구하는 행사입니다.
<인터뷰>야리프 오펜하임('피스 나우'대표): "오늘이 정착촌 동결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총리에게 정착촌 건설을 재개하지 말라고 항의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순조롭던 집회는 갑자기 한 시민이 거세게 항의하면서 중단됩니다. 정착촌 건설을 찬성하는
유대 신앙인입니다.
<녹취>유대 신앙인: "만약 당신 아들이 (팔레스타인 인에게)죽었으면 침묵하지 않을 거야.당신 아들이 무덤에 있다면 그런 말 못할 거라고!"
'정착촌' 문제는 이렇게 이스라엘 내부에서조차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예루살렘의 남쪽, 요르단 강 서안의 한 작은 마을. 최초의 이스라엘 정착촌 '크파르 에치온'입니다. 이곳엔 정착촌 건설을 기념하는 작은 박물관이 세워져 있습니다. 1920년대부터 땅을 놓고 팔레스타인과 벌였던 투쟁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곳입니다.
<인터뷰>이츠카키(관람객): "당신의 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슬프지 않겠어요? 많은 군인들이 전사하고 아이들이 죽었어요"
조상의 땅을 되찾으려던 유대인들에겐 한이 맺힌 곳이기도 합니다.
<인터뷰>엘리야다(관람객): "이제 우리는 강한 군대를 갖고 있어서 절대 우리 땅을 빼앗기기 않을 것입니다. 평화 협상이 이뤄져도 이곳은 철수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정착촌이 건설된 건 지난 1967년입니다.벌써 40년 넘게 흐른 셈입니다.본격적인 정착촌 건설은 6일 전쟁이라 불리는 제3차 중동전쟁이 끝난 직후 시작됐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시나이 반도와 골란 고원 등을 점령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들 점령 지역에 정착촌을 건설해 유대인을 이주시켰습니다. 점령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조처였습니다.
서안 지구의 정착촌 '네베 다니엘'. 골드스타인 씨 가족이 안식일을 앞두고 미리 먹을 음식을 장만하고 있습니다. 골드스타인 씨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결혼 후 이곳에 정착했습니다. 조상의 뿌리가 있는 이 땅을 되찾겠다는 사명감에섭니다.
<인터뷰>골드스타인(정착촌 시장): "우리 입장에서는 고향에 돌아온 것입니다.우리는 여기 사는 게 합법이라고 생각합니다.'정착촌'이 아니라 그냥 마을이고 도시일 뿐입니다."
최근 진행중인 중동 평화 회담에도 큰 기대를 걸지 않습니다.
<인터뷰>골드스타인(정착촌 시장):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 지구에서 실험을 했습니다.스무 개 정착촌,만 명을 철수시켰는데 우리가 무엇을 얻었습니까? 평화는 없었습니다."
서안 지구의 정착촌은 모두 120여 개. 이곳에 살고 있는 유대인이 모두 30만 명에 이릅니다. 동예루살렘의 20만 명까지 합치면 어느새 팔레스타인 전체 인구의 5분의 1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 곳곳으로 유대 정착촌이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착촌 건설은 유엔이 정한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하고 이를 지속하기 위해 사람을 살게 한다는 점에서 국제법상 명백한 불법입니다.
유엔 등 국제 사회가 정착촌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것도 이런 근거에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지난해 11월, 정착촌 건설을 동결한 정책도 국제 사회의 압력에 대한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지난 24일, 서안 지구의 또 다른 정착촌. 굴삭기까지 동원돼 터닦기 공사가 한창입니다. 정착촌 건설 동결 기간이지만 공사는 곳곳에서 진행중입니다.
이곳은 정착촌 건설 현장입니다. 이곳은 정착촌 건설 현장입니다. 정착촌 건설 동결 시한이 이틀이나 남았지만 공사는 진행중입니다.공사를 못하게 하겠다는 이스라엘 정부의 입장과 다른 것입니다.
명목상 정착촌 건설을 금지시켰지만 실제로는 이를 묵인하는 이스라엘 정부의 태도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임시 행정 수도인 라말라.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의 묘소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정착촌은 이곳 라말라 코앞까지 들이닥쳤습니다.
라말라에서 도로 하나만 건너면 바로 이스라엘의 '베텔 정착촌'입니다.
<인터뷰>아흐마드(라말라 주민):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구타 당해서 이가 부러지고 허리를 다쳤습니다.운전 기사였는데 허리를 다쳐 수술을 받은 뒤 걷거나 일도 못하고 있습니다."
서안 지구 남부 도시 헤브론. 유대인과 무슬림 모두에게 성지인 이곳에도 어김없이 이스라엘 정착촌이 들어서 있습니다. 양측의 해묵은 감정이 자주 충돌로 이어지면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인 샤디 씨의 집은 창문 하나를 사이로 유대인 집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정착촌 건설로 서로가 원치 않는 기막힌 동거가 시작된 것입니다.
<인터뷰>샤디(헤브론 주민): "(유대인들이)여기 창문을 모두 닫게 했습니다. (지금 밖에 사람 소리가 나는데요?) 유대인들이 창문 밖에 있어요."
취재진을 옥상으로 안내한 샤디 씨에게 이스라엘 병사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녹취> “찍지 마! 바로 내려가! (잠깐만요. 곧 내려갈게요.) 지금 당장 내려가라고! (알았어요.걱정 말아요.) 알았다 하지 말고 지금 당장 내려가! (내 집인데 왜 상관하는 거예요.)”
정착촌 건설 이후 주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상점들은 상당수가 폐쇄됐습니다. 정착촌 주민들의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판단에섭니다. 상점을 둘러싼 물리적 충돌이 자주 벌어졌고, 샤디 씨도 얼마 전 충돌에 휩쓸렸습니다.
<인터뷰>샤디(헤브론 주민): "군인들이 이렇게 저를 쳤어요. 여기 가슴을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주먹으로 쳤습니다."
아잠 씨 역시 그동안 담아뒀던 불만을 취재진에 쏟아냅니다.
<인터뷰>아잠(헤브론 주민): "이건 점령입니다.그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여기 없기를 바랍니다.이 지역이 비워지는 걸 원합니다.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떠났습니다."
정착촌 건설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이동권도 제한받고 있습니다. 정착촌 주변의 일정 거리 안에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출입할 수 없습니다. 정착촌 지역으로 가기 위해선 검문소와 철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녹취>이스라엘 군인: "(아랍 주민들도 여기 올 수 있나요?) 아뇨.유대인들만 올 수 있습니다. (여기는 유대 정착촌이잖아요.)"
서로에 대해 쌓인 감정은 유혈 사태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요르단 강 서안의 베트 하가이 정착촌. 이곳에 사는 이 4남매는 한 달 전 부모를 잃었습니다. 정착촌 주민들을 겨냥한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의 테러에 살해된 것입니다.
<인터뷰>루스(큰딸/19세):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요.하루 종일 모든 물건들이 부모님을 기억나게 만들어요.전혀 실감 나지 않아요.내일이라도 부모님이 돌아오실 것 같아요."
이웃에 사는 에벤하임 씨도 같은 날 아내를 잃었습니다. 하마스의 총격을 받고 운전을 하던 아내가 그 자리에서 숨진 겁니다.
<인터뷰>모미 에벤하임(정착촌 주민): "내가 서울에 가서 집을 짓는다면 '당신은 유대인이라 안된다'고 하지 않습니다. 왜 내 나라,내 땅, 내 약속의 땅에서는 안 됩니까?"
이렇게 지난 10년 동안 정착촌 때문에 빚어진 폭력의 희생자는 양측에서 모두 3백 명에 육박합니다.
어느 대도시의 거리 같은 이곳도 정착촌의 일부입니다. 다른 소규모 정착촌과는 달리 상점과 학교 등 편의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습니다.
이 정착촌은 유대 종교인들이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삼고 있는 곳입니다.작은 마을로 시작한 정착촌이 확장을 거듭하면서 이제는 인구 2만명이 넘는 하나의 도시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정착촌 인구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확장 필요성도 커지고 습니다.
<인터뷰>미샤일(아리엘 정착촌 주민): "정착촌 건물을 못 짓게 하는 건 상당히 어려울 겁니다.아기가 태어나고 가족이 커지는 게 자연스런 현상이니까요."
문제는 정착촌이 확대될수록 평화의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데 있습니다. 정착촌이 건설된 곳이 팔레스타인이 간절히 나라를 세우고 싶어하는 바로 그 땅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가산 카팁(팔레스타인 정부 대변인): "만약 평화 회담이 중단된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다시 폭력 사태가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질 겁니다."
지난 26일 이스라엘 정부는 다시 정착촌 건설을 허용했습니다. 정착촌 동결을 촉구해 온 국제 사회의 요구는 다시 한번 거부됐습니다. 당장 2천 채가 넘는 건물이 새로 정착촌에 들어설 예정입니다.
협상 당사자인 팔레스타인의 반발이 커지고 있습니다. 폭력의 악순환도 예상되고 있습니다. 겨우 불씨를 살려 놓은 중동 평화 협상도 다시 위기에 놓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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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석 기자 zeroston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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