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올해로 35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전쟁보다 더 무서운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요...어떤 사람들을 얘기하는 건지 아시겠죠?
네. 3백만 명으로 추산되는 베트남 고엽제 환자들입니다. 대다수가, 전투가 벌어진 지역에 살다 미군이 살포한 고엽제에 노출된 사람들인데요..어린이 환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들의 비극적 상황을 베트남 현지에서 한재호 특파원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베트남 중부 꽝치성의 한 작은 농촌 마을. 숲속에 함부로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 표지판이 시선을 붙듭니다. 베트남 전쟁은 35년전에 끝났지만 전쟁이 남긴 상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쩐 씨네 4자녀들도 전쟁의 후유증을 고스란히 떠안은 채 고통의 세월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 명은 혼자 일어서질 못해 땅에 손을 짚고 다녀야 하고 다른 한 명도 가까스로 걷습니다. 지능도 낮고 말도 못합니다.
그저 온종일 집안에 앉아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는 게 이들의 일상입니다. 어머니는 이런 자녀들을 20년 넘게 밤낮없이 돌봐왔지만 지금도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집니다.
<인터뷰>응엔 티 쩐(4자녀 어머니): "지금은 내가 살아 있지만, 늙어서 죽게 되면 누가 저 아이들을 돌볼 지 그게 가장 큰 걱정이예요."
조상 대대로 이 마을에서 땅을 일구며 살아온 쩐 씨는 자녀들의 고통이 고엽제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전쟁 당시 미군 비행기가 매일같이 한 번에 서, 너대씩 날아와 고엽제를 뿌렸는 데 그때마다 호기심에 하늘을 쳐다봤다고 합니다.
<인터뷰>쩐 반 쩜(4자녀 아버지): "비행기가 매일 고엽제를 뿌렸는 데 하얀 연기 같았어요. 그때는 그게 독성물질이라는 걸 전혀 몰랐어요."
이 마을에 있는 78가정 가운데 11가정의 자녀 18명도 비슷한 증세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당시 이 지역엔 다량의 고엽제와 폭탄이 투하돼 숲과 초목이 초토화됐습니다. 세월이 지난 지금 산은 제 모습을 되찾았지만 전쟁의 상처와 후유증은 아직도 다 치유되지 않고있습니다.
꽝치성의 또 다른 마을에 사는 란씨의 18살 된 아들은 늘 이렇게 의자에 손이 뒤로 묶여 있습니다. 목에는 굵은 천을 밧줄처럼 감아놨습니다. 스스로 몸을 통제하지 못해 손이나 목을 풀어 놓게 되면 몸을 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켜보기가 고통스러워 잠깐이라도 몸을 자유롭게 해 주면 금새 자해를 하기 시작합니다.
<인터뷰>응엔 찌 판(어머니): "아들을 묶어 놓지 않으면 자꾸만 몸을 물어 뜯어서 피가 나와요. 자신도 고통을 알지만 멈출 수가 없는 거죠."
한 해 먼저 태어난 딸도 아들과 똑같은 증세로 고통받다 얼마전 벽에 머리를 부딪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란씨 부부는 늘 자식에게 천형을 물려줬다는 죄책감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란씨는 고엽제가 넓게 살포된 캄보디아 국경지대에서 10년 동안 군대 생활을 했고, 아내는 이 마을에 살며 내내 전쟁을 겪었습니다.
<인터뷰>응엔 찌 남(아버지): "이 약 저 약 많이 써봤는 데 좋아지질 않아요. 우리가 낳았으니 부모로서 끝까지 자식을 책임져야죠."
꽝치성은 베트남을 남북으로 갈랐던 북위 17도 선상의 비무장지대를 끼고 있습니다. 지금은 유적지로 변했지만 당시 북부 월맹군은 이 곳에 엄청난 화력을 집중 시켜놨습고 미국의 주요 공격 목표가 됐습니다.
전쟁이 본격화되던 1962년부터 약 10년 동안 미군은 베트남에 약 4천 100만 리터의 고엽제를 살포했습니다. 특히 비무장지대가 있던 이 곳에 고엽제가 광범위하고도 집중적으로 살포됐습니다.
산은 잿더미로 변해 모든 초목이 사라져 민둥산이 됐고, 강에서는 오랫동안 고기 잡이를 할 수 없었습니다. 강물을 식수로 사용한 사람들과 물고기를 먹은 사람들은 그만큼 쉽게 고엽제에 노출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터뷰>응엔 반 봉: "오염된 강물을 많이 마셔서 우리 가족과 두 아들이 지금 이렇게 됐다고 생각해요."
현재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 협회가 집계한 고엽제 환자는 약 300백 만 명. 이 가운데 10%인 30만 명 가량이 청소년들로 몇 가지 공통된 증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몸이 꼬여 일어서질 못하며 심각한 뇌손상에 시달려 말을 못하고 듣지도 못합니다.
이런 증세가 여러 암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일찍 사망하는 청소년들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18살의 꿈많은 여고생인 따이도 자신의 몸 전체에 붙어있는 검은 점이 두렵습니다. 참전당시 고엽제에 노출된 아버지 등 가족 8명 가운데 6명이 사지 마비 등의 증세를 겪고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인터뷰>타이 찌 응: "내가 결혼했을 때 태어날 아이들이 나의 장애를 물려 받을까봐 그게 가장 불안해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의 한 고엽제 환자 재활센터. 이 곳에 베트남 각지에서 온 어린이 150여 명이 모여 삽니다. 모두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심각한 장애를 갖고 있어 재활 치료가 필수적입니다. 이 곳에서 어린이들은 의사와 간호사의 도움으로 몸의 힘과 정서를 기릅니다. 이런 시설이 전국에 몇 곳 안됩니다.
<인터뷰>딘(고엽제피해자 재활센터 의사): “베트남의 고엽제 피해 어린이들을 다 돌볼수 없는 형편입니다. 하노이에도 사설 재활센터 3곳이 전부예요.”
고엽제 피해자들을 대표하는 베트남 고엽제 희생자 협회는 미국이 고엽제 환자들의 실상을
너무 가볍게 여긴다고 비판합니다. 엄청난 양의 고엽제를 살포해 끝없는 고통의 씨앗을 뿌려놓고도 충분히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는 겁니다.
<인터뷰>하 찌 막(베트남 고엽제피해자협회 부대표): “피해자들과 여러 나라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보상을 요구하고 나서야 미국은 그 책임의 일부를 인정했습니다.”
협회는 환자들의 고통을 치유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한데 지금까지 미국에서 받은 건
9백만 달러 정도라고 합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미군 고엽체 피해자들에겐 엄청난 지원과 혜택을 주면서도 베트남 피해자 지원엔 인색하다는 겁니다.
<인터뷰>응엔 푸민 항(꽝치성 고엽제피해자협회 대표): "미국 고엽제 피해자들은 베트남에 비해 그 수가 훨씬 적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11억 달러에서 15억 달러를 받았습니다."
이같은 비판과 요구에 대해 미국의 입장에는 이전과 큰 변화가 없습니다. 고엽제와 건강과의 상관 관계가 구체적으로 규명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베트남에는 수많은 장애인들이 있는데 정확한 원인은 여전히 논란이있고 고엽제로 인한 장애라는 일반적인 동의도 없다고 말합니다.
<인터뷰>마이클 머린(전 베트남 주재 미국 대사): "베트남인들은 장애가 보이면 모두 고엽제와 연관시키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이게 과장됐다고 믿습니다."
고엽제 피해자측은, 전쟁이 끝난 뒤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집단적으로
발병했고 이는 고엽제 말고는 다른 요인이 있을 수 없다고 반박합니다. 고엽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5백만 명이 넘지만 엄격한 기준과 과학적인 근거를 적용해 3백만 명 만을 환자로 분류했다는 겁니다.
<인터뷰>응엔 푸민 항(꽝치성 고엽제피해자협회 대표): "베트남의 통계 자료와 미국,러시아,독일, 프랑스 학자들의 연구 결과 등 많은 자료들에 근거한 결괍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벌써 35년. 처절했던 과거도 세월속에 잊혀져 갑니다. 전쟁 당사국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도 몰라보게 우호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렇지만 전쟁보다 더 무서운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않았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올해로 35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전쟁보다 더 무서운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요...어떤 사람들을 얘기하는 건지 아시겠죠?
네. 3백만 명으로 추산되는 베트남 고엽제 환자들입니다. 대다수가, 전투가 벌어진 지역에 살다 미군이 살포한 고엽제에 노출된 사람들인데요..어린이 환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들의 비극적 상황을 베트남 현지에서 한재호 특파원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베트남 중부 꽝치성의 한 작은 농촌 마을. 숲속에 함부로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 표지판이 시선을 붙듭니다. 베트남 전쟁은 35년전에 끝났지만 전쟁이 남긴 상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쩐 씨네 4자녀들도 전쟁의 후유증을 고스란히 떠안은 채 고통의 세월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 명은 혼자 일어서질 못해 땅에 손을 짚고 다녀야 하고 다른 한 명도 가까스로 걷습니다. 지능도 낮고 말도 못합니다.
그저 온종일 집안에 앉아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는 게 이들의 일상입니다. 어머니는 이런 자녀들을 20년 넘게 밤낮없이 돌봐왔지만 지금도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집니다.
<인터뷰>응엔 티 쩐(4자녀 어머니): "지금은 내가 살아 있지만, 늙어서 죽게 되면 누가 저 아이들을 돌볼 지 그게 가장 큰 걱정이예요."
조상 대대로 이 마을에서 땅을 일구며 살아온 쩐 씨는 자녀들의 고통이 고엽제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전쟁 당시 미군 비행기가 매일같이 한 번에 서, 너대씩 날아와 고엽제를 뿌렸는 데 그때마다 호기심에 하늘을 쳐다봤다고 합니다.
<인터뷰>쩐 반 쩜(4자녀 아버지): "비행기가 매일 고엽제를 뿌렸는 데 하얀 연기 같았어요. 그때는 그게 독성물질이라는 걸 전혀 몰랐어요."
이 마을에 있는 78가정 가운데 11가정의 자녀 18명도 비슷한 증세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당시 이 지역엔 다량의 고엽제와 폭탄이 투하돼 숲과 초목이 초토화됐습니다. 세월이 지난 지금 산은 제 모습을 되찾았지만 전쟁의 상처와 후유증은 아직도 다 치유되지 않고있습니다.
꽝치성의 또 다른 마을에 사는 란씨의 18살 된 아들은 늘 이렇게 의자에 손이 뒤로 묶여 있습니다. 목에는 굵은 천을 밧줄처럼 감아놨습니다. 스스로 몸을 통제하지 못해 손이나 목을 풀어 놓게 되면 몸을 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켜보기가 고통스러워 잠깐이라도 몸을 자유롭게 해 주면 금새 자해를 하기 시작합니다.
<인터뷰>응엔 찌 판(어머니): "아들을 묶어 놓지 않으면 자꾸만 몸을 물어 뜯어서 피가 나와요. 자신도 고통을 알지만 멈출 수가 없는 거죠."
한 해 먼저 태어난 딸도 아들과 똑같은 증세로 고통받다 얼마전 벽에 머리를 부딪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란씨 부부는 늘 자식에게 천형을 물려줬다는 죄책감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란씨는 고엽제가 넓게 살포된 캄보디아 국경지대에서 10년 동안 군대 생활을 했고, 아내는 이 마을에 살며 내내 전쟁을 겪었습니다.
<인터뷰>응엔 찌 남(아버지): "이 약 저 약 많이 써봤는 데 좋아지질 않아요. 우리가 낳았으니 부모로서 끝까지 자식을 책임져야죠."
꽝치성은 베트남을 남북으로 갈랐던 북위 17도 선상의 비무장지대를 끼고 있습니다. 지금은 유적지로 변했지만 당시 북부 월맹군은 이 곳에 엄청난 화력을 집중 시켜놨습고 미국의 주요 공격 목표가 됐습니다.
전쟁이 본격화되던 1962년부터 약 10년 동안 미군은 베트남에 약 4천 100만 리터의 고엽제를 살포했습니다. 특히 비무장지대가 있던 이 곳에 고엽제가 광범위하고도 집중적으로 살포됐습니다.
산은 잿더미로 변해 모든 초목이 사라져 민둥산이 됐고, 강에서는 오랫동안 고기 잡이를 할 수 없었습니다. 강물을 식수로 사용한 사람들과 물고기를 먹은 사람들은 그만큼 쉽게 고엽제에 노출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터뷰>응엔 반 봉: "오염된 강물을 많이 마셔서 우리 가족과 두 아들이 지금 이렇게 됐다고 생각해요."
현재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 협회가 집계한 고엽제 환자는 약 300백 만 명. 이 가운데 10%인 30만 명 가량이 청소년들로 몇 가지 공통된 증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몸이 꼬여 일어서질 못하며 심각한 뇌손상에 시달려 말을 못하고 듣지도 못합니다.
이런 증세가 여러 암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일찍 사망하는 청소년들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18살의 꿈많은 여고생인 따이도 자신의 몸 전체에 붙어있는 검은 점이 두렵습니다. 참전당시 고엽제에 노출된 아버지 등 가족 8명 가운데 6명이 사지 마비 등의 증세를 겪고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인터뷰>타이 찌 응: "내가 결혼했을 때 태어날 아이들이 나의 장애를 물려 받을까봐 그게 가장 불안해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의 한 고엽제 환자 재활센터. 이 곳에 베트남 각지에서 온 어린이 150여 명이 모여 삽니다. 모두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심각한 장애를 갖고 있어 재활 치료가 필수적입니다. 이 곳에서 어린이들은 의사와 간호사의 도움으로 몸의 힘과 정서를 기릅니다. 이런 시설이 전국에 몇 곳 안됩니다.
<인터뷰>딘(고엽제피해자 재활센터 의사): “베트남의 고엽제 피해 어린이들을 다 돌볼수 없는 형편입니다. 하노이에도 사설 재활센터 3곳이 전부예요.”
고엽제 피해자들을 대표하는 베트남 고엽제 희생자 협회는 미국이 고엽제 환자들의 실상을
너무 가볍게 여긴다고 비판합니다. 엄청난 양의 고엽제를 살포해 끝없는 고통의 씨앗을 뿌려놓고도 충분히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는 겁니다.
<인터뷰>하 찌 막(베트남 고엽제피해자협회 부대표): “피해자들과 여러 나라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보상을 요구하고 나서야 미국은 그 책임의 일부를 인정했습니다.”
협회는 환자들의 고통을 치유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한데 지금까지 미국에서 받은 건
9백만 달러 정도라고 합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미군 고엽체 피해자들에겐 엄청난 지원과 혜택을 주면서도 베트남 피해자 지원엔 인색하다는 겁니다.
<인터뷰>응엔 푸민 항(꽝치성 고엽제피해자협회 대표): "미국 고엽제 피해자들은 베트남에 비해 그 수가 훨씬 적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11억 달러에서 15억 달러를 받았습니다."
이같은 비판과 요구에 대해 미국의 입장에는 이전과 큰 변화가 없습니다. 고엽제와 건강과의 상관 관계가 구체적으로 규명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베트남에는 수많은 장애인들이 있는데 정확한 원인은 여전히 논란이있고 고엽제로 인한 장애라는 일반적인 동의도 없다고 말합니다.
<인터뷰>마이클 머린(전 베트남 주재 미국 대사): "베트남인들은 장애가 보이면 모두 고엽제와 연관시키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이게 과장됐다고 믿습니다."
고엽제 피해자측은, 전쟁이 끝난 뒤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집단적으로
발병했고 이는 고엽제 말고는 다른 요인이 있을 수 없다고 반박합니다. 고엽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5백만 명이 넘지만 엄격한 기준과 과학적인 근거를 적용해 3백만 명 만을 환자로 분류했다는 겁니다.
<인터뷰>응엔 푸민 항(꽝치성 고엽제피해자협회 대표): "베트남의 통계 자료와 미국,러시아,독일, 프랑스 학자들의 연구 결과 등 많은 자료들에 근거한 결괍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벌써 35년. 처절했던 과거도 세월속에 잊혀져 갑니다. 전쟁 당사국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도 몰라보게 우호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렇지만 전쟁보다 더 무서운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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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종전 35년, 끝나지 않은 비극
-
- 입력 2010-10-03 09:59:53

<앵커 멘트>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올해로 35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전쟁보다 더 무서운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요...어떤 사람들을 얘기하는 건지 아시겠죠?
네. 3백만 명으로 추산되는 베트남 고엽제 환자들입니다. 대다수가, 전투가 벌어진 지역에 살다 미군이 살포한 고엽제에 노출된 사람들인데요..어린이 환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들의 비극적 상황을 베트남 현지에서 한재호 특파원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베트남 중부 꽝치성의 한 작은 농촌 마을. 숲속에 함부로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 표지판이 시선을 붙듭니다. 베트남 전쟁은 35년전에 끝났지만 전쟁이 남긴 상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쩐 씨네 4자녀들도 전쟁의 후유증을 고스란히 떠안은 채 고통의 세월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 명은 혼자 일어서질 못해 땅에 손을 짚고 다녀야 하고 다른 한 명도 가까스로 걷습니다. 지능도 낮고 말도 못합니다.
그저 온종일 집안에 앉아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는 게 이들의 일상입니다. 어머니는 이런 자녀들을 20년 넘게 밤낮없이 돌봐왔지만 지금도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집니다.
<인터뷰>응엔 티 쩐(4자녀 어머니): "지금은 내가 살아 있지만, 늙어서 죽게 되면 누가 저 아이들을 돌볼 지 그게 가장 큰 걱정이예요."
조상 대대로 이 마을에서 땅을 일구며 살아온 쩐 씨는 자녀들의 고통이 고엽제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전쟁 당시 미군 비행기가 매일같이 한 번에 서, 너대씩 날아와 고엽제를 뿌렸는 데 그때마다 호기심에 하늘을 쳐다봤다고 합니다.
<인터뷰>쩐 반 쩜(4자녀 아버지): "비행기가 매일 고엽제를 뿌렸는 데 하얀 연기 같았어요. 그때는 그게 독성물질이라는 걸 전혀 몰랐어요."
이 마을에 있는 78가정 가운데 11가정의 자녀 18명도 비슷한 증세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당시 이 지역엔 다량의 고엽제와 폭탄이 투하돼 숲과 초목이 초토화됐습니다. 세월이 지난 지금 산은 제 모습을 되찾았지만 전쟁의 상처와 후유증은 아직도 다 치유되지 않고있습니다.
꽝치성의 또 다른 마을에 사는 란씨의 18살 된 아들은 늘 이렇게 의자에 손이 뒤로 묶여 있습니다. 목에는 굵은 천을 밧줄처럼 감아놨습니다. 스스로 몸을 통제하지 못해 손이나 목을 풀어 놓게 되면 몸을 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켜보기가 고통스러워 잠깐이라도 몸을 자유롭게 해 주면 금새 자해를 하기 시작합니다.
<인터뷰>응엔 찌 판(어머니): "아들을 묶어 놓지 않으면 자꾸만 몸을 물어 뜯어서 피가 나와요. 자신도 고통을 알지만 멈출 수가 없는 거죠."
한 해 먼저 태어난 딸도 아들과 똑같은 증세로 고통받다 얼마전 벽에 머리를 부딪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란씨 부부는 늘 자식에게 천형을 물려줬다는 죄책감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란씨는 고엽제가 넓게 살포된 캄보디아 국경지대에서 10년 동안 군대 생활을 했고, 아내는 이 마을에 살며 내내 전쟁을 겪었습니다.
<인터뷰>응엔 찌 남(아버지): "이 약 저 약 많이 써봤는 데 좋아지질 않아요. 우리가 낳았으니 부모로서 끝까지 자식을 책임져야죠."
꽝치성은 베트남을 남북으로 갈랐던 북위 17도 선상의 비무장지대를 끼고 있습니다. 지금은 유적지로 변했지만 당시 북부 월맹군은 이 곳에 엄청난 화력을 집중 시켜놨습고 미국의 주요 공격 목표가 됐습니다.
전쟁이 본격화되던 1962년부터 약 10년 동안 미군은 베트남에 약 4천 100만 리터의 고엽제를 살포했습니다. 특히 비무장지대가 있던 이 곳에 고엽제가 광범위하고도 집중적으로 살포됐습니다.
산은 잿더미로 변해 모든 초목이 사라져 민둥산이 됐고, 강에서는 오랫동안 고기 잡이를 할 수 없었습니다. 강물을 식수로 사용한 사람들과 물고기를 먹은 사람들은 그만큼 쉽게 고엽제에 노출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터뷰>응엔 반 봉: "오염된 강물을 많이 마셔서 우리 가족과 두 아들이 지금 이렇게 됐다고 생각해요."
현재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 협회가 집계한 고엽제 환자는 약 300백 만 명. 이 가운데 10%인 30만 명 가량이 청소년들로 몇 가지 공통된 증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몸이 꼬여 일어서질 못하며 심각한 뇌손상에 시달려 말을 못하고 듣지도 못합니다.
이런 증세가 여러 암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일찍 사망하는 청소년들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18살의 꿈많은 여고생인 따이도 자신의 몸 전체에 붙어있는 검은 점이 두렵습니다. 참전당시 고엽제에 노출된 아버지 등 가족 8명 가운데 6명이 사지 마비 등의 증세를 겪고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인터뷰>타이 찌 응: "내가 결혼했을 때 태어날 아이들이 나의 장애를 물려 받을까봐 그게 가장 불안해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의 한 고엽제 환자 재활센터. 이 곳에 베트남 각지에서 온 어린이 150여 명이 모여 삽니다. 모두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심각한 장애를 갖고 있어 재활 치료가 필수적입니다. 이 곳에서 어린이들은 의사와 간호사의 도움으로 몸의 힘과 정서를 기릅니다. 이런 시설이 전국에 몇 곳 안됩니다.
<인터뷰>딘(고엽제피해자 재활센터 의사): “베트남의 고엽제 피해 어린이들을 다 돌볼수 없는 형편입니다. 하노이에도 사설 재활센터 3곳이 전부예요.”
고엽제 피해자들을 대표하는 베트남 고엽제 희생자 협회는 미국이 고엽제 환자들의 실상을
너무 가볍게 여긴다고 비판합니다. 엄청난 양의 고엽제를 살포해 끝없는 고통의 씨앗을 뿌려놓고도 충분히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는 겁니다.
<인터뷰>하 찌 막(베트남 고엽제피해자협회 부대표): “피해자들과 여러 나라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보상을 요구하고 나서야 미국은 그 책임의 일부를 인정했습니다.”
협회는 환자들의 고통을 치유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한데 지금까지 미국에서 받은 건
9백만 달러 정도라고 합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미군 고엽체 피해자들에겐 엄청난 지원과 혜택을 주면서도 베트남 피해자 지원엔 인색하다는 겁니다.
<인터뷰>응엔 푸민 항(꽝치성 고엽제피해자협회 대표): "미국 고엽제 피해자들은 베트남에 비해 그 수가 훨씬 적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11억 달러에서 15억 달러를 받았습니다."
이같은 비판과 요구에 대해 미국의 입장에는 이전과 큰 변화가 없습니다. 고엽제와 건강과의 상관 관계가 구체적으로 규명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베트남에는 수많은 장애인들이 있는데 정확한 원인은 여전히 논란이있고 고엽제로 인한 장애라는 일반적인 동의도 없다고 말합니다.
<인터뷰>마이클 머린(전 베트남 주재 미국 대사): "베트남인들은 장애가 보이면 모두 고엽제와 연관시키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이게 과장됐다고 믿습니다."
고엽제 피해자측은, 전쟁이 끝난 뒤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집단적으로
발병했고 이는 고엽제 말고는 다른 요인이 있을 수 없다고 반박합니다. 고엽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5백만 명이 넘지만 엄격한 기준과 과학적인 근거를 적용해 3백만 명 만을 환자로 분류했다는 겁니다.
<인터뷰>응엔 푸민 항(꽝치성 고엽제피해자협회 대표): "베트남의 통계 자료와 미국,러시아,독일, 프랑스 학자들의 연구 결과 등 많은 자료들에 근거한 결괍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벌써 35년. 처절했던 과거도 세월속에 잊혀져 갑니다. 전쟁 당사국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도 몰라보게 우호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렇지만 전쟁보다 더 무서운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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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호 기자 khan007@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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