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포착] 물건 오래 쓰기는 ‘내가 최고 달인’

입력 2010.10.14 (09:03) 수정 2010.10.1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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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이른바 얼리어댑터라고 하죠?

새로운 전자 제품이 나오면 어떻게든 빨리 사서 쓰는 분들이 적지 않으시던데요.

새로운 기능이나 디자인의 제품들이 워낙 많이 쏟아져나오다보니 한 물건 오래 쓰는 것도 이젠 희귀한 일이 됐죠.

정수영 기자, 이런 오래쓰기의 달인들 소개해 주신다구요?

<리포트>

네, 그렇습니다.

물건 웬만큼 오래 쓰는 분들도 지금 보실 분들 앞에선 명함도 내밀기 힘드실 텐데요.

37년 묵은 고장 난 전기밥솥을 요구르트 발효기로 개조해 아직도 거뜬히 쓰고 있는 부부가 있습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속에서 나올 법한 20년 전 승용차 타는 분도 있구요.

하지만 이 분 앞에서는 다들 어림없습니다.

무려 84년 된 물건 새 것처럼 쓰는 분도 있습니다.

충남 계룡에 사는 이찬난 주부. 부엌 싱크대에서 전기밥솥을 찾는데요.

요즘 구경하기 힘든 모습이 예사롭지 않은 이 밥솥!

담요마저 덮어쓰고 있는데요.

<인터뷰> 이찬난(37년 된 밥솥 사용) : "옛날 밥솥이라서 보온 유지를 위해서 따뜻하게 하느라고 덮고 있어요."

담요를 덮어야 보온이 유지된다는 37년 된 고장 난 전기밥솥, 제대로 작동도 안하는 밥솥이 무슨 쓸모가 있을지 궁금한데요.

밥솥 뚜껑을 열고 쌀 대신 우유를 붓는 이찬난 씨.

밥 짓는 데는 쓸모없는 밥솥이 숨은 구실을 드러내는 순간입니다.

<인터뷰> 이찬난(37년 된 밥솥 사용) : "못 쓰는 전기밥솥으로 요구르트 제조기를 만들어가지고요, 지금 요구르트 만들고 있어요."

10시간 뒤, 오랜 기다림 끝에 신선한 수제 요구르트가 완성됩니다.

새콤달콤 과일 얹어 직접 맛보는 남편 이청일 씨.

낡은 밥솥에서 나온 요구르트는 과연 무슨 맛일까요?

<인터뷰> 이청일(37년 된 밥솥 사용) : "맛은 시중에서 사는 것보다 못하지만 건강을 위해서는 이게 훨씬 좋다고 생각하고..."

베트남전쟁에 파병됐을 당시 현지 시장을 찾아다니며 어렵게 구입한 전기밥솥.

이 씨가 밥솥을 유난히 아끼는 이유입니다.

<인터뷰> 이청일(충남 계룡시 엄사면) : "요즘 오래된 물건들이 많이 버려지고 있는데요. 조금만 고치고 개조하면 아주 유용한 물건을 만들어 쓸 수가 있습니다."

부산의 한 아파트 주차장. 닦고 또 닦고, 차에서 반짝반짝 윤이 나는데요.

한승록씨의 재산목록 1호입니다.

<인터뷰> 한승록(20년 된 승용차 사용) : "85년식 소나타인데요.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저의 첫 차입니다. 그래서 버릴 수도 없어서 오래 타고 있습니다."

20년 째 한결같은 애마사랑. 먼지 한 톨이라도 내려앉을 세라 매일같이 지극정성으로 관리하는데요.

<인터뷰> 한승록(20년 된 승용차 사용) : "보시다시피 지금 엔진룸이 상당히 많이 비어 있거든요. 요즘 차들하고 많이 달라서 정비하기는 쉽습니다."

벌써 27만 킬로미터 정도를 뛴 승용차.

시동이나 걸릴까 싶은데요 경쾌한 엔진 소리와 함께 미끄러지듯 시원스럽게 도로를 질주합니다.

<인터뷰> 한승록(20년 된 승용차 사용) : "사람들이 굴러가기는 하느냐고 묻는데 서울, 부산을 거뜬히 다닙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차가 거리에 나타나자, 지나는 사람들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신기하다는 듯 쳐다봅니다.

<인터뷰> 김미정(부산 수영구 광안동) : "'제빵왕 김탁구'에서 구일중 사장님이 타시는 차인 줄 알았는데 지금 이렇게 다니는 거 보니까 정말 신기한데요."

20년 묵은 승용차가 수십 년 세월에도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

정확한 부품교환과 정기검진 덕입니다.

<인터뷰> 송동혁(자동차 정비업체 사장) : "정말 관리를 잘하셔서 아주 저희가 작업하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여기 보이는 수입차보다 (정비하기가) 더 부담스럽습니다."

<인터뷰> 한승록(부산 해운대구 좌동) : "오랜 시간 동안 제 손길로 애정을 쏟은 차라서 더 정이 가고 최고의 차는 아니더라도 저만의 애마로 만들고 싶습니다."

경기도 안양의 한 아파트.

3대가 모여 사는 이 집에는 여든 가까이 된 이 집 할머니보다도 더 큰 어른이 있습니다.

낡은 나무 덮개 안에 숨겨진 그 주인공은 바로! 재봉틀입니다.

정영숙 할머니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84년 된 재봉틀인데요.

<인터뷰> 정영숙(경기도 안양시 박달2동) : "막내 남동생이 어머님 유품이니까 가지고 싶어서 자기 달라고 하죠."

<녹취> "내 바지가 너무 긴데 조금 줄여줘."

오래된 재봉틀 소문 듣고 달려온 옆집 할머니!

과연 84년 묵은 재봉틀이 제 구실 할 수 있을까요?

탁탁탁, 부드럽게 돌아가는 바느질 소리!

뚝딱 수선을 마치는데요.

<인터뷰> 김옥희(경기도 안양시 박달2동) : "꼭 맞아요. 이 바지가 따뜻한 바지거든요. 이번 겨울에 잘 입을 수 있겠네요."

84년 된 재봉틀은 이 집의 숨은 재주꾼입니다.

집안 구석구석 가구마다 놓인 손수 만든 깔개들에는 재봉틀 손길 안 간 것이 없습니다.

<인터뷰> 정영숙(경기도 안양시 박달2동) : "확실히 지금 물건보다 옛날에 만든 물건이 훨씬 좋은 것 같아요."

너도 나도 새 것 찾는 요즘, 손 때 묻은 물건 고집하는 오래쓰기 달인들!

낡고 구식인 물건들을 세상 단 하나 뿐인 보물로 변신시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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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0-10-14 09:5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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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이른바 얼리어댑터라고 하죠? 새로운 전자 제품이 나오면 어떻게든 빨리 사서 쓰는 분들이 적지 않으시던데요. 새로운 기능이나 디자인의 제품들이 워낙 많이 쏟아져나오다보니 한 물건 오래 쓰는 것도 이젠 희귀한 일이 됐죠. 정수영 기자, 이런 오래쓰기의 달인들 소개해 주신다구요? <리포트> 네, 그렇습니다. 물건 웬만큼 오래 쓰는 분들도 지금 보실 분들 앞에선 명함도 내밀기 힘드실 텐데요. 37년 묵은 고장 난 전기밥솥을 요구르트 발효기로 개조해 아직도 거뜬히 쓰고 있는 부부가 있습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속에서 나올 법한 20년 전 승용차 타는 분도 있구요. 하지만 이 분 앞에서는 다들 어림없습니다. 무려 84년 된 물건 새 것처럼 쓰는 분도 있습니다. 충남 계룡에 사는 이찬난 주부. 부엌 싱크대에서 전기밥솥을 찾는데요. 요즘 구경하기 힘든 모습이 예사롭지 않은 이 밥솥! 담요마저 덮어쓰고 있는데요. <인터뷰> 이찬난(37년 된 밥솥 사용) : "옛날 밥솥이라서 보온 유지를 위해서 따뜻하게 하느라고 덮고 있어요." 담요를 덮어야 보온이 유지된다는 37년 된 고장 난 전기밥솥, 제대로 작동도 안하는 밥솥이 무슨 쓸모가 있을지 궁금한데요. 밥솥 뚜껑을 열고 쌀 대신 우유를 붓는 이찬난 씨. 밥 짓는 데는 쓸모없는 밥솥이 숨은 구실을 드러내는 순간입니다. <인터뷰> 이찬난(37년 된 밥솥 사용) : "못 쓰는 전기밥솥으로 요구르트 제조기를 만들어가지고요, 지금 요구르트 만들고 있어요." 10시간 뒤, 오랜 기다림 끝에 신선한 수제 요구르트가 완성됩니다. 새콤달콤 과일 얹어 직접 맛보는 남편 이청일 씨. 낡은 밥솥에서 나온 요구르트는 과연 무슨 맛일까요? <인터뷰> 이청일(37년 된 밥솥 사용) : "맛은 시중에서 사는 것보다 못하지만 건강을 위해서는 이게 훨씬 좋다고 생각하고..." 베트남전쟁에 파병됐을 당시 현지 시장을 찾아다니며 어렵게 구입한 전기밥솥. 이 씨가 밥솥을 유난히 아끼는 이유입니다. <인터뷰> 이청일(충남 계룡시 엄사면) : "요즘 오래된 물건들이 많이 버려지고 있는데요. 조금만 고치고 개조하면 아주 유용한 물건을 만들어 쓸 수가 있습니다." 부산의 한 아파트 주차장. 닦고 또 닦고, 차에서 반짝반짝 윤이 나는데요. 한승록씨의 재산목록 1호입니다. <인터뷰> 한승록(20년 된 승용차 사용) : "85년식 소나타인데요.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저의 첫 차입니다. 그래서 버릴 수도 없어서 오래 타고 있습니다." 20년 째 한결같은 애마사랑. 먼지 한 톨이라도 내려앉을 세라 매일같이 지극정성으로 관리하는데요. <인터뷰> 한승록(20년 된 승용차 사용) : "보시다시피 지금 엔진룸이 상당히 많이 비어 있거든요. 요즘 차들하고 많이 달라서 정비하기는 쉽습니다." 벌써 27만 킬로미터 정도를 뛴 승용차. 시동이나 걸릴까 싶은데요 경쾌한 엔진 소리와 함께 미끄러지듯 시원스럽게 도로를 질주합니다. <인터뷰> 한승록(20년 된 승용차 사용) : "사람들이 굴러가기는 하느냐고 묻는데 서울, 부산을 거뜬히 다닙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차가 거리에 나타나자, 지나는 사람들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신기하다는 듯 쳐다봅니다. <인터뷰> 김미정(부산 수영구 광안동) : "'제빵왕 김탁구'에서 구일중 사장님이 타시는 차인 줄 알았는데 지금 이렇게 다니는 거 보니까 정말 신기한데요." 20년 묵은 승용차가 수십 년 세월에도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 정확한 부품교환과 정기검진 덕입니다. <인터뷰> 송동혁(자동차 정비업체 사장) : "정말 관리를 잘하셔서 아주 저희가 작업하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여기 보이는 수입차보다 (정비하기가) 더 부담스럽습니다." <인터뷰> 한승록(부산 해운대구 좌동) : "오랜 시간 동안 제 손길로 애정을 쏟은 차라서 더 정이 가고 최고의 차는 아니더라도 저만의 애마로 만들고 싶습니다." 경기도 안양의 한 아파트. 3대가 모여 사는 이 집에는 여든 가까이 된 이 집 할머니보다도 더 큰 어른이 있습니다. 낡은 나무 덮개 안에 숨겨진 그 주인공은 바로! 재봉틀입니다. 정영숙 할머니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84년 된 재봉틀인데요. <인터뷰> 정영숙(경기도 안양시 박달2동) : "막내 남동생이 어머님 유품이니까 가지고 싶어서 자기 달라고 하죠." <녹취> "내 바지가 너무 긴데 조금 줄여줘." 오래된 재봉틀 소문 듣고 달려온 옆집 할머니! 과연 84년 묵은 재봉틀이 제 구실 할 수 있을까요? 탁탁탁, 부드럽게 돌아가는 바느질 소리! 뚝딱 수선을 마치는데요. <인터뷰> 김옥희(경기도 안양시 박달2동) : "꼭 맞아요. 이 바지가 따뜻한 바지거든요. 이번 겨울에 잘 입을 수 있겠네요." 84년 된 재봉틀은 이 집의 숨은 재주꾼입니다. 집안 구석구석 가구마다 놓인 손수 만든 깔개들에는 재봉틀 손길 안 간 것이 없습니다. <인터뷰> 정영숙(경기도 안양시 박달2동) : "확실히 지금 물건보다 옛날에 만든 물건이 훨씬 좋은 것 같아요." 너도 나도 새 것 찾는 요즘, 손 때 묻은 물건 고집하는 오래쓰기 달인들! 낡고 구식인 물건들을 세상 단 하나 뿐인 보물로 변신시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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