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의 그늘, 전쟁 난민

입력 2011.04.0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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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리비아 내전이 장기화하면서 국경을 넘은 피란민이 3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사태 초기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대거 빠져나왔는데요...지금은 리비아 사람들도 탈출 행렬에 가세했다구요?

네. 그만큼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는 건데요...유엔이 난민 캠프를 세워 탈출해 나온 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그런데 캠프마다 딱한 사연이 넘쳐나고 특히 흑인들이 리비아에서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리비아-튀니지 국경에서 김명섭 특파원이 난민들을 만났습니다.

<리포트>

거대한 피란민들의 행렬이 물처럼 난민 캠프로 밀려옵니다.

튀니지 쪽 국경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유엔 난민 캠프는 당장 갈 곳 없는 난민들의 유일한 생활 터전입니다. 전쟁을 피해 국경을 넘었지만 이곳에선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집니다. 바로 식사 전쟁입니다. 지난달 중순 난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포화 상태를 넘어섰습니다. 음식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긴 줄이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한없이 이어집니다.

지금은 점심시간입니다. 이곳에선 식사때면 이렇게 수만 명이 길게 줄을 서 식사 배급을 기다립니다.

한번 밥을 먹으려면 서너 시간씩 기다리기 일쑵니다.

<인터뷰> 사이플(방글라데시인) : "점심 먹으러 줄 서서 두 시간 기다렸지만 곧 밥 먹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한나절을 기다린 끝에 배급을 받고 모래언덕 위에서 쫓기듯 식사를 마칩니다. 밥을 얻지 못하고 돌아가는 난민들도 부지기수... 때문에 직접 요기를 준비하는 이들도 눈에 띕니다. 몇 끼를 굶은 끝에 마카로니 한 봉지를 구해, 사막에서 뜯은 풀을 땔감 삼아 요리를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란 전(방글라데시인) : "많은 사람이 줄 서지만 못 먹고 끝납니다. 그래서 직접 요리하고 있어요."

그나마 돈이 조금이라도 있는 난민들은 캠프 밖에 들어선 좌판을 이용합니다. 각종 빵과 음료수를 파는 가게가 즐비합니다. 난민이 몰려온 지 한 달 사이 이곳은 완전히 장터가 됐습니다. 각종 야채 등 식료품, 옷가지, 신발 등 웬만한 생필품이 다 준비돼 있습니다.

리비아 돈을 튀니지 돈이나 유로, 달러로 바꾸는 환전상도 등장했습니다. 취재진이 촬영을 시작하자 노점상들이 노골적으로 취재를 방해합니다. 외신에 나갈 경우 장사에 지장이 있다는 이윱니다.

유엔 난민 캠프 별로 각 나라의 국기가 휘날리고 있습니다. 소말리아 캠프 한쪽에서는 축구판이 벌어졌습니다. 방글라데시 캠프에서는 목욕이 한창입니다.

<인터뷰> 두센(방글라데시인) : "너무 춥지만 열흘간 씻지 못해서 샤워합니다."

현재 이곳 캠프에 머물고 있는 난민은 5천여 명입니다. 변변한 여권 없이 리비아에서 불법 체류했거나 본국의 사정 때문에 캠프를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떤 피란민들은 이제 갈 곳이 아예 없습니다. 기약 없이 이곳 난민촌에서 서럽게 하루하루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이 소말리아 난민은 내전에 다시 휘말리고 싶지 않아 고국 행을 포기했습니다.

<인터뷰> 모하메드(소말리아인) : "소말리아에 되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가면 무조건 전쟁에 참여해야 해요."

도로 옆 간이천막에 거주하는 이 차드인들은 본국의 귀환 대책이 없어 무작정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터뷰> 슐레이만(차드인) : "살아 있어서 좋고요. 언제 갈지 몰라도 별문제 없습니다. 신께 감사합니다."

난민촌에서도 기도의 시간은 잊지 않습니다. 대부분 이슬람 신자인 난민들은 허름한 막사 안에서 메카를 향해 기도합니다. 자신과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을 위해...

이제 막 국경을 넘어온 에티오피아 가족들, 앞으로 어떻게 생활할지 막막할 따름입니다.

<인터뷰> 마지드(에티오피아인) : "책임져 주는 사람도 없고, 여권도 없고, 우리 대사관도 이곳(튀니지)엔 없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신나게 뛰놉니다. 조금 뒤 이들 가족은 국경 앞에 바로 위치한 가족 난민 캠프로 들어갑니다. 여권을 맡기고 등록을 한 뒤 텐트를 배정받습니다. 하루, 길게는 3,4일 이곳에 머문 뒤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정착 캠프로 옮깁니다.

<인터뷰> 라사드(튀니지 자선단체 대표/가족캠프 운영 책임자) : "피란민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물어보지 않습니다. 그들을 받아들이고 가장 기본적인 휴식처와 음식을 제공합니다."

저녁 식사 시간, 각 가족 텐트별로 배식을 받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좀 더 많이 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가족들이 먹을 양식을 직접 챙겨가는 아이들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가족에게 리비아에서 떠나온 얘기를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야기 도중 눈시울을 적십니다. 흑인들을 공격하는 리비아 폭도에게 쫓기듯 리비아를 떠나 왔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아지즈(에티오피아인) : "리비아 사람들이 집에 와서 문을 두드리고, 내일 떠나지 않으면 가족 모두 죽여 버리겠다고 했어요."

정든 삶의 터전을 버리고 튀니지로 향했지만 오는 길에 리비아인들에게 다시 폭행당하고 가진 걸 빼앗겼습니다.

<인터뷰> 아지즈(에티오피아인) : "저 아줌마는 20년 동안 번 돈을 다 빼앗겼어요."

카다피군 용병으로 흑인이 고용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먼저, 시민군 쪽에서 외국 흑인 근로자를 공격했고 지금은 어느 편을 가릴 것 없이 무차별 폭행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주요 교전지역이나 다국적군 공습 지역에서 불안한 심리의 리비아 폭도들이 흑인들을 분풀이 감으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트리폴리에서 운전 일을 하던 이 수단인은 돈은 다 털리고 간신히 목숨만 부지해 국경에 도착했습니다.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흑인들이 겪는 고난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압둘라(수단인) : "예를 들면 주와라 같은 데서는 집에 사람을 가둬놓고 불을 질러 사람들을 해쳤어요."

<인터뷰> 압둘라(수단인) :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타주라에서는 도살장에 흑인 21명을 모아 놓고 참수했다고 하더군요."

리비아에서 태어나 리비아를 고향처럼 생각했던 이 에티오피아 혈통 소년은 참상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인터뷰> 자말(에티오피아 소년/9세) : "전쟁 전에는 괜찮았는데, 지금은 문제가 많아요. 리비아로 가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우릴 죽이기 때문이지요."

가족 캠프를 또다시 떠나는 난민들,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전쟁의 고통은 고스란히 그 여정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천진한 미소에도 전쟁의 그늘이 드리워지고 난민들의 시름은 깊어만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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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전의 그늘, 전쟁 난민
    • 입력 2011-04-03 10:24:56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리비아 내전이 장기화하면서 국경을 넘은 피란민이 3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사태 초기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대거 빠져나왔는데요...지금은 리비아 사람들도 탈출 행렬에 가세했다구요? 네. 그만큼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는 건데요...유엔이 난민 캠프를 세워 탈출해 나온 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그런데 캠프마다 딱한 사연이 넘쳐나고 특히 흑인들이 리비아에서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리비아-튀니지 국경에서 김명섭 특파원이 난민들을 만났습니다. <리포트> 거대한 피란민들의 행렬이 물처럼 난민 캠프로 밀려옵니다. 튀니지 쪽 국경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유엔 난민 캠프는 당장 갈 곳 없는 난민들의 유일한 생활 터전입니다. 전쟁을 피해 국경을 넘었지만 이곳에선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집니다. 바로 식사 전쟁입니다. 지난달 중순 난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포화 상태를 넘어섰습니다. 음식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긴 줄이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한없이 이어집니다. 지금은 점심시간입니다. 이곳에선 식사때면 이렇게 수만 명이 길게 줄을 서 식사 배급을 기다립니다. 한번 밥을 먹으려면 서너 시간씩 기다리기 일쑵니다. <인터뷰> 사이플(방글라데시인) : "점심 먹으러 줄 서서 두 시간 기다렸지만 곧 밥 먹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한나절을 기다린 끝에 배급을 받고 모래언덕 위에서 쫓기듯 식사를 마칩니다. 밥을 얻지 못하고 돌아가는 난민들도 부지기수... 때문에 직접 요기를 준비하는 이들도 눈에 띕니다. 몇 끼를 굶은 끝에 마카로니 한 봉지를 구해, 사막에서 뜯은 풀을 땔감 삼아 요리를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란 전(방글라데시인) : "많은 사람이 줄 서지만 못 먹고 끝납니다. 그래서 직접 요리하고 있어요." 그나마 돈이 조금이라도 있는 난민들은 캠프 밖에 들어선 좌판을 이용합니다. 각종 빵과 음료수를 파는 가게가 즐비합니다. 난민이 몰려온 지 한 달 사이 이곳은 완전히 장터가 됐습니다. 각종 야채 등 식료품, 옷가지, 신발 등 웬만한 생필품이 다 준비돼 있습니다. 리비아 돈을 튀니지 돈이나 유로, 달러로 바꾸는 환전상도 등장했습니다. 취재진이 촬영을 시작하자 노점상들이 노골적으로 취재를 방해합니다. 외신에 나갈 경우 장사에 지장이 있다는 이윱니다. 유엔 난민 캠프 별로 각 나라의 국기가 휘날리고 있습니다. 소말리아 캠프 한쪽에서는 축구판이 벌어졌습니다. 방글라데시 캠프에서는 목욕이 한창입니다. <인터뷰> 두센(방글라데시인) : "너무 춥지만 열흘간 씻지 못해서 샤워합니다." 현재 이곳 캠프에 머물고 있는 난민은 5천여 명입니다. 변변한 여권 없이 리비아에서 불법 체류했거나 본국의 사정 때문에 캠프를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떤 피란민들은 이제 갈 곳이 아예 없습니다. 기약 없이 이곳 난민촌에서 서럽게 하루하루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이 소말리아 난민은 내전에 다시 휘말리고 싶지 않아 고국 행을 포기했습니다. <인터뷰> 모하메드(소말리아인) : "소말리아에 되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가면 무조건 전쟁에 참여해야 해요." 도로 옆 간이천막에 거주하는 이 차드인들은 본국의 귀환 대책이 없어 무작정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터뷰> 슐레이만(차드인) : "살아 있어서 좋고요. 언제 갈지 몰라도 별문제 없습니다. 신께 감사합니다." 난민촌에서도 기도의 시간은 잊지 않습니다. 대부분 이슬람 신자인 난민들은 허름한 막사 안에서 메카를 향해 기도합니다. 자신과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을 위해... 이제 막 국경을 넘어온 에티오피아 가족들, 앞으로 어떻게 생활할지 막막할 따름입니다. <인터뷰> 마지드(에티오피아인) : "책임져 주는 사람도 없고, 여권도 없고, 우리 대사관도 이곳(튀니지)엔 없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신나게 뛰놉니다. 조금 뒤 이들 가족은 국경 앞에 바로 위치한 가족 난민 캠프로 들어갑니다. 여권을 맡기고 등록을 한 뒤 텐트를 배정받습니다. 하루, 길게는 3,4일 이곳에 머문 뒤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정착 캠프로 옮깁니다. <인터뷰> 라사드(튀니지 자선단체 대표/가족캠프 운영 책임자) : "피란민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물어보지 않습니다. 그들을 받아들이고 가장 기본적인 휴식처와 음식을 제공합니다." 저녁 식사 시간, 각 가족 텐트별로 배식을 받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좀 더 많이 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가족들이 먹을 양식을 직접 챙겨가는 아이들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가족에게 리비아에서 떠나온 얘기를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야기 도중 눈시울을 적십니다. 흑인들을 공격하는 리비아 폭도에게 쫓기듯 리비아를 떠나 왔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아지즈(에티오피아인) : "리비아 사람들이 집에 와서 문을 두드리고, 내일 떠나지 않으면 가족 모두 죽여 버리겠다고 했어요." 정든 삶의 터전을 버리고 튀니지로 향했지만 오는 길에 리비아인들에게 다시 폭행당하고 가진 걸 빼앗겼습니다. <인터뷰> 아지즈(에티오피아인) : "저 아줌마는 20년 동안 번 돈을 다 빼앗겼어요." 카다피군 용병으로 흑인이 고용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먼저, 시민군 쪽에서 외국 흑인 근로자를 공격했고 지금은 어느 편을 가릴 것 없이 무차별 폭행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주요 교전지역이나 다국적군 공습 지역에서 불안한 심리의 리비아 폭도들이 흑인들을 분풀이 감으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트리폴리에서 운전 일을 하던 이 수단인은 돈은 다 털리고 간신히 목숨만 부지해 국경에 도착했습니다.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흑인들이 겪는 고난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압둘라(수단인) : "예를 들면 주와라 같은 데서는 집에 사람을 가둬놓고 불을 질러 사람들을 해쳤어요." <인터뷰> 압둘라(수단인) :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타주라에서는 도살장에 흑인 21명을 모아 놓고 참수했다고 하더군요." 리비아에서 태어나 리비아를 고향처럼 생각했던 이 에티오피아 혈통 소년은 참상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인터뷰> 자말(에티오피아 소년/9세) : "전쟁 전에는 괜찮았는데, 지금은 문제가 많아요. 리비아로 가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우릴 죽이기 때문이지요." 가족 캠프를 또다시 떠나는 난민들,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전쟁의 고통은 고스란히 그 여정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천진한 미소에도 전쟁의 그늘이 드리워지고 난민들의 시름은 깊어만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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