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대통령과 합성 사진’ 미끼로 사기

입력 2011.05.2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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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대통령과 함께 촬영한 것처럼 사진을 조작해서, 이걸 미끼로 돈을 뜯어낸 혐의로 40대 남자가 검거됐습니다.

요즘같은 세상에 이런 사기가 통하는 것도 참 갑갑한데요.

정수영 기자, 대통령과 찍은 사진이 뭐길래, 피해자들이 그렇게 선뜻 돈을 건냈나요?

<리포트>

대통령과 친분을 이용해 거액의 돈을 벌 수 있을 것처럼 속였기 때문입니다.

사기 피의자는 자신이 청와대 불교 상임고문이다, 모 불교 종단 총무원장이다, 이런 얘기로 현혹한 뒤 사진 한 장을 들이밀었습니다.

놀랍게도 이명박 대통령과 나란히 선 모습이었습니다.

로비자금을 대 주면 막대한 건설 이권을 차지할 수 있다고 속삭였습니다.

대통령과 찍은 가짜 사진 한 장이면 이 모든 거짓말이 통했습니다.

지난해 2월 건설사 대표 46살 강모 씨는 지인 소개로 불교계 고위급 인사라는 48살 최모 씨를 알게 됐습니다.

불교 종파 고위직을 맡고 있고 청와대 공식 직함까지 지닌 거물급이라고 지인은 귀띔했습니다.

<녹취> 강 씨(피해자) : "아는 지인하고 가다가 만났습니다. 일붕종 총무원장이고 청와대 불교 상임고문이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몇 차례 강 씨와 어울리던 최 씨는 어느 날 뜻밖의 제안을 건넸습니다.

강 씨가 운영하는 건설사에 수백억 원대 사찰 신축 공사를 맡기겠다는 얘기였습니다.

<인터뷰> 박정환(계장/전북 지방경찰청) : "압류자금을 획득해서 사찰을 건설할 때 당신들에게 건설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 그런 명목으로 제안을 한 거죠."

물론 조건이 있었습니다. 사

찰 신축공사 대금으로 준비해둔 종단 자금이 국세청 등 정부 기관들 손에 묶여 있다면서 이를 무마할 로비 자금 명목으로 2천만 원을 요구했습니다.

<녹취> 강 씨(피해자) : "'일붕종 자산이 2,350억인데, 국세청에 지금 묶여있는데 이것을 풀어주기로 했다. 그래서 수수료 쪽이나 일부 금융감독원이나 국세청 직원에게 접대를 해서 이 돈을 빨리 빨리 빼내야 하니까' 쭉 그런 (명목으로 요구한) 돈입니다."

강 씨가 선뜻 돈을 내놓지 않고 며칠째 망설이기만 하자 최 씨는 강 씨 눈앞에 놀라운 사진을 들이밀었습니다.

최 씨와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단 둘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담은 휴대전화 사진이었습니다.

<녹취> 강 씨(피해자) : "핸드폰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찍은 사진, 그걸 보여주고 그랬습니다."

자신이 명예 경찰청장 직을 맡고 있어 경찰 정복을 입고 찍게 됐다며 그럴싸한 설명까지 곁들였습니다.

총기 한 정을 꺼내 보이며 청와대가 지급한 물건이라고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강 씨(피해자) : "호신용으로 차에 싣고 다닌다고 하면서 청와대에서 준거라고 하면서 보여줬는데 그때, 제가 (권총을) 열어보고 했는데 그때는 진짜 권총으로 봤어요."

최 씨가 거물급 인사라는 사실을 철석같이 믿게 된 강 씨는 요구대로 순순히 로비 자금을 건네주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저런 구실로 억대가 넘는 돈을 제공한 강 씨는 사찰 공사 계약만 손꼽아 기다렸지만 어찌된 일인지 최 씨는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습니다.

<녹취> 강 씨(피해자) : "반신반의했죠. 늦어지니까. (돈) 안 받아도 되니깐 가서 다른 일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었었죠. 꼭 이 놈이 사기꾼이다, 이런 것 보다는. 근데 (최 씨가) 잡더라고요. (제가) 2억 안 받아도 된다고, 내려가려니까."

기다림에 지친 강 씨가 발을 빼려 들자 최 씨는 백만 원권 수표로 가득찬 가방을 열어 보였습니다.

공사 대금으로 쓸 자금 7백억 원이라며 로비 자금을 조금만 더 대면 이 돈을 공사비로 가져갈 수 있다고 속삭였습니다.

<녹취> 강 씨(피해자) : "(확인해보니 수표가) 실물하고 거의 똑같더라고요. 일련번호도 다 다르고. 국민은행, 신환은행 반반씩 들어있더라고요. 지점까지 새겨서, 거의 똑같아요."

거의 실물하고. 건물 철거업체를 운영하는 50살 박모 씨 역시 지인 소개로 최 씨를 알게 된 뒤 사찰 신축 계획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인터뷰> 최근필(경장/전북 지방경찰청) : "중간에 있는 사람이 ‘저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이런 어느 특정종교의 총무원장이 맞고’라고 했기 때문에 중간에서 소개해 준 사람 말을 그대로 믿고 전부 따르게 된 거죠."

최 씨는 강 씨에게 써먹던 수법 그대로 대통령과 찍었다는 사진이며 수표로 가득 찬 가방을 들이밀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박 씨에게 최 씨는 옛 사찰 철거 이권을 줄 테니 역시 로비 자금을 내놓아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인터뷰> 최근필(경장/전북 지방경찰청) : "(사찰을) 철거하는 비용, 철거하는 이권을 너에게(박 씨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철거를 해서 신축을 해야 되는데 (그러려면) 기부금을 사업자금으로 전환하려고 한다."

최 씨와 대통령 사이 친분을 굳게 믿고 세 차례에 걸쳐 1억 원을 건넸지만 사찰 철거 일정은 감감 무소식이었습니다.

로비자금을 구실로 수억 원을 떼인 강 씨 등은 결국 최 씨를 경찰에 신고하기에 이르렀고 최 씨는 두 달만에 붙잡혔습니다.

<인터뷰> 최근필(경장/전북 지방경찰청) : "피의자 주소는 전혀 살고 있지 않는 엉뚱한 곳에 두고 실제 가족이 사는 곳은 경기도 용인에 두었는데 가족은 정상적인 가족관계가 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최 씨가 벌인 사기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한 때 실제 불교계 종파를 세우고 총무원장 직함으로 활동했지만 이미 8년 전인 지난 2003년부터는 종교 활동을 접은 뒤였습니다.

<인터뷰> 최근필(경장/전북 지방경찰청) : "(최 씨가 만든) 종교단체는 (현재) 없습니다. 절은 있었는데 2003년도에 화재가 나서 타고 소실되었답니다. 없어졌어요."

이후 뚜렷한 직업 없이 지내 온 최 씨는 평소 거물급 인물로 행세하다 재력가로 소문난 건설사 대표 강 씨를 접하고 사기극을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최근필(경장/전북 지방경찰청) : "인상이 귀공자처럼 풍기고 아주 포스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니까 일반 사람들이, 시민들이 볼 때는 저 정도의 사람이라면 정말 믿을 수밖에 없는 인상과 말투를 풍겼습니다."

수백억대 종단 자금은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고 대통령과 함께 찍었다며 들이댄 사진은 초보자 수준인 합성 사진이었습니다.

<인터뷰> 최근필(경장/전북 지방경찰청) : "사진은 글쎄요, 피해자들이 볼 때는 넘어갔지만 우리 수사관들이 볼 때는 합성이라는 것이 확실히 나타납니다. 조잡합니다."

자신이 명예경찰청장이라던 설명도 물론 거짓말이었습니다.

사진 속 경찰 제복도 가짜였습니다.

<인터뷰> 최근필(경장/전북 지방경찰청) : "(사진 속) 흉장이나 모자 같은 걸 보면 약간 조금 틀린 부분은 약간은 있어요. 그러나 민간인들이 볼 때는 속을 수 밖에 없죠."

청와대가 줬다는 권총은 가스총이었고 수백억대 공사 자금이라던 수표들 역시 컬러프린터로 인쇄한 가짜였습니다.

최 씨가 벌인 대담한 사기에 속아 건설사 대표 강 씨 등이 뜯긴 돈은 6억 원이 넘습니다.

경찰은 최 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추가 피해자가 없는지 여죄를 추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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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대통령과 합성 사진’ 미끼로 사기
    • 입력 2011-05-23 08:5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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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대통령과 함께 촬영한 것처럼 사진을 조작해서, 이걸 미끼로 돈을 뜯어낸 혐의로 40대 남자가 검거됐습니다. 요즘같은 세상에 이런 사기가 통하는 것도 참 갑갑한데요. 정수영 기자, 대통령과 찍은 사진이 뭐길래, 피해자들이 그렇게 선뜻 돈을 건냈나요? <리포트> 대통령과 친분을 이용해 거액의 돈을 벌 수 있을 것처럼 속였기 때문입니다. 사기 피의자는 자신이 청와대 불교 상임고문이다, 모 불교 종단 총무원장이다, 이런 얘기로 현혹한 뒤 사진 한 장을 들이밀었습니다. 놀랍게도 이명박 대통령과 나란히 선 모습이었습니다. 로비자금을 대 주면 막대한 건설 이권을 차지할 수 있다고 속삭였습니다. 대통령과 찍은 가짜 사진 한 장이면 이 모든 거짓말이 통했습니다. 지난해 2월 건설사 대표 46살 강모 씨는 지인 소개로 불교계 고위급 인사라는 48살 최모 씨를 알게 됐습니다. 불교 종파 고위직을 맡고 있고 청와대 공식 직함까지 지닌 거물급이라고 지인은 귀띔했습니다. <녹취> 강 씨(피해자) : "아는 지인하고 가다가 만났습니다. 일붕종 총무원장이고 청와대 불교 상임고문이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몇 차례 강 씨와 어울리던 최 씨는 어느 날 뜻밖의 제안을 건넸습니다. 강 씨가 운영하는 건설사에 수백억 원대 사찰 신축 공사를 맡기겠다는 얘기였습니다. <인터뷰> 박정환(계장/전북 지방경찰청) : "압류자금을 획득해서 사찰을 건설할 때 당신들에게 건설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 그런 명목으로 제안을 한 거죠." 물론 조건이 있었습니다. 사 찰 신축공사 대금으로 준비해둔 종단 자금이 국세청 등 정부 기관들 손에 묶여 있다면서 이를 무마할 로비 자금 명목으로 2천만 원을 요구했습니다. <녹취> 강 씨(피해자) : "'일붕종 자산이 2,350억인데, 국세청에 지금 묶여있는데 이것을 풀어주기로 했다. 그래서 수수료 쪽이나 일부 금융감독원이나 국세청 직원에게 접대를 해서 이 돈을 빨리 빨리 빼내야 하니까' 쭉 그런 (명목으로 요구한) 돈입니다." 강 씨가 선뜻 돈을 내놓지 않고 며칠째 망설이기만 하자 최 씨는 강 씨 눈앞에 놀라운 사진을 들이밀었습니다. 최 씨와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단 둘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담은 휴대전화 사진이었습니다. <녹취> 강 씨(피해자) : "핸드폰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찍은 사진, 그걸 보여주고 그랬습니다." 자신이 명예 경찰청장 직을 맡고 있어 경찰 정복을 입고 찍게 됐다며 그럴싸한 설명까지 곁들였습니다. 총기 한 정을 꺼내 보이며 청와대가 지급한 물건이라고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강 씨(피해자) : "호신용으로 차에 싣고 다닌다고 하면서 청와대에서 준거라고 하면서 보여줬는데 그때, 제가 (권총을) 열어보고 했는데 그때는 진짜 권총으로 봤어요." 최 씨가 거물급 인사라는 사실을 철석같이 믿게 된 강 씨는 요구대로 순순히 로비 자금을 건네주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저런 구실로 억대가 넘는 돈을 제공한 강 씨는 사찰 공사 계약만 손꼽아 기다렸지만 어찌된 일인지 최 씨는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습니다. <녹취> 강 씨(피해자) : "반신반의했죠. 늦어지니까. (돈) 안 받아도 되니깐 가서 다른 일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었었죠. 꼭 이 놈이 사기꾼이다, 이런 것 보다는. 근데 (최 씨가) 잡더라고요. (제가) 2억 안 받아도 된다고, 내려가려니까." 기다림에 지친 강 씨가 발을 빼려 들자 최 씨는 백만 원권 수표로 가득찬 가방을 열어 보였습니다. 공사 대금으로 쓸 자금 7백억 원이라며 로비 자금을 조금만 더 대면 이 돈을 공사비로 가져갈 수 있다고 속삭였습니다. <녹취> 강 씨(피해자) : "(확인해보니 수표가) 실물하고 거의 똑같더라고요. 일련번호도 다 다르고. 국민은행, 신환은행 반반씩 들어있더라고요. 지점까지 새겨서, 거의 똑같아요." 거의 실물하고. 건물 철거업체를 운영하는 50살 박모 씨 역시 지인 소개로 최 씨를 알게 된 뒤 사찰 신축 계획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인터뷰> 최근필(경장/전북 지방경찰청) : "중간에 있는 사람이 ‘저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이런 어느 특정종교의 총무원장이 맞고’라고 했기 때문에 중간에서 소개해 준 사람 말을 그대로 믿고 전부 따르게 된 거죠." 최 씨는 강 씨에게 써먹던 수법 그대로 대통령과 찍었다는 사진이며 수표로 가득 찬 가방을 들이밀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박 씨에게 최 씨는 옛 사찰 철거 이권을 줄 테니 역시 로비 자금을 내놓아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인터뷰> 최근필(경장/전북 지방경찰청) : "(사찰을) 철거하는 비용, 철거하는 이권을 너에게(박 씨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철거를 해서 신축을 해야 되는데 (그러려면) 기부금을 사업자금으로 전환하려고 한다." 최 씨와 대통령 사이 친분을 굳게 믿고 세 차례에 걸쳐 1억 원을 건넸지만 사찰 철거 일정은 감감 무소식이었습니다. 로비자금을 구실로 수억 원을 떼인 강 씨 등은 결국 최 씨를 경찰에 신고하기에 이르렀고 최 씨는 두 달만에 붙잡혔습니다. <인터뷰> 최근필(경장/전북 지방경찰청) : "피의자 주소는 전혀 살고 있지 않는 엉뚱한 곳에 두고 실제 가족이 사는 곳은 경기도 용인에 두었는데 가족은 정상적인 가족관계가 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최 씨가 벌인 사기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한 때 실제 불교계 종파를 세우고 총무원장 직함으로 활동했지만 이미 8년 전인 지난 2003년부터는 종교 활동을 접은 뒤였습니다. <인터뷰> 최근필(경장/전북 지방경찰청) : "(최 씨가 만든) 종교단체는 (현재) 없습니다. 절은 있었는데 2003년도에 화재가 나서 타고 소실되었답니다. 없어졌어요." 이후 뚜렷한 직업 없이 지내 온 최 씨는 평소 거물급 인물로 행세하다 재력가로 소문난 건설사 대표 강 씨를 접하고 사기극을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최근필(경장/전북 지방경찰청) : "인상이 귀공자처럼 풍기고 아주 포스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니까 일반 사람들이, 시민들이 볼 때는 저 정도의 사람이라면 정말 믿을 수밖에 없는 인상과 말투를 풍겼습니다." 수백억대 종단 자금은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고 대통령과 함께 찍었다며 들이댄 사진은 초보자 수준인 합성 사진이었습니다. <인터뷰> 최근필(경장/전북 지방경찰청) : "사진은 글쎄요, 피해자들이 볼 때는 넘어갔지만 우리 수사관들이 볼 때는 합성이라는 것이 확실히 나타납니다. 조잡합니다." 자신이 명예경찰청장이라던 설명도 물론 거짓말이었습니다. 사진 속 경찰 제복도 가짜였습니다. <인터뷰> 최근필(경장/전북 지방경찰청) : "(사진 속) 흉장이나 모자 같은 걸 보면 약간 조금 틀린 부분은 약간은 있어요. 그러나 민간인들이 볼 때는 속을 수 밖에 없죠." 청와대가 줬다는 권총은 가스총이었고 수백억대 공사 자금이라던 수표들 역시 컬러프린터로 인쇄한 가짜였습니다. 최 씨가 벌인 대담한 사기에 속아 건설사 대표 강 씨 등이 뜯긴 돈은 6억 원이 넘습니다. 경찰은 최 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추가 피해자가 없는지 여죄를 추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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