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콩강은 건넜지만…

입력 2011.12.1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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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태국 북부의 한 강변 마을. 짐을 메거나 손에 든 십여 명이 어디론가 걸어갑니다.



<녹취> 탈북 난민 : "(몇명이 오셨어요?) 남자 3명에 여자 여덟명. 조그만한 애기 있고. 여덟살짜리 애도 있고. 8살 어린이와 엄마 품에 안긴 두살 아기까지."



북한을 탈출해 제3국까지 온, 이른바 탈북 난민들입니다.



사선을 넘고 또 세번의 국경을 넘기까지 만여 킬로미터의 거리. 어떤 날엔 밤새 걷고 또 걸었습니다.



<녹취> 탈북 난민 : "밤새껏 밥도 제대로 못먹고 걸어서 오니깐 한국 가자고. 너무 힘들어서 언제까지 걸어가겠는지. (라오스에서 계속 걸어서 넘어오신 거예요?) 네 계속 걸어왔습니다."



이렇게 밀입국한 탈북자들을 기다리는 건 태국 이민자 수용소의 수감 생활입니다.



잇단 강제 북송과 총살 소식에도 수용소에 들어오는 탈북자는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녹취>수용소 내 탈북 난민 : "여기 지금 탈북자들이 여자들은 한 200명 되고 남자들은 한 5,60명 남아있습니다."



대개는 난민으로 인정받아 자신이 원하는 대한민국으로 가지만, 제3국까지 와서 다시 중국으로 추방될 위기에 놓인 탈북자도 있습니다.



<녹취> 김철수(가명/탈북자) : "강제 출국당하면 제가 북한에 가게 되면 죽는 목숨이 아닙니까"



그들은 왜 그토록 원하는 대한민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일까?



<녹취> 김철수(가명/탈북자) : "저는 살아도 대한민국 죽어도 대한민국 밖에 없으니까 저는 어떻게든 빨리 대한민국으로 갈 생각 그 생각뿐이고..."



동남아 최대 관광국인 태국은 탈북 난민들이 꿈에도 그리던 대한민국에 가기 위해 가장 많이 거쳐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국이 아닌 제3국까지 와서도 다시 중국으로, 또 북한으로 강제 송환돼야 하는 탈북자들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라오스, 또 태국까지 목숨을 건 탈북행렬과 그들의 비참하고 눈물겨운 사연을 취재했습니다.



새벽 어스름이 막 걷힌 태국 북부 국경지역 메콩강 둔치. 수풀 속에 숨어 강변을 따라 걷는 한 무리의 탈북자들을 만났습니다.



<녹취> 탈북 난민 : "(새벽에 여기 바로 (강)앞에서 내리신 거예요?) 네. 오기 전에 경찰서 여기 (있나) 물어봤단 말입니다."



강 너머 라오스에서 배를 타고 태국 국경을 몰래 넘은 것입니다. 중국에선 기차나 차량을 타고 이동했지만, 국경을 넘을 때는 검문소를 피해 산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중국 뿐 아니라 라오스에서도 경찰에 붙잡힐 경우 꼼짝없이 강제 송환되기 때문입니다.



<녹취> 탈북 난민 : "밤새껏 밥도 제대로 못먹고 걸어서 오니깐 한국 가자고 너무 힘들어서 언제까지 걸어가겠는지. (라오스에서 계속 걸어서 넘어오신 거예요?) 네 계속 걸어왔습니다."



탈북자를 난민으로 받아주는 나라, 태국에 오기까지는 대략 일주일. 북한에서 출발해 만여 킬로미터의 대장정을 거치는 동안 세번이나 국경을 넘었습니다.



<녹취> 탈북 난민 : "한 일주일 (걸렸습니다). (일주일 동안 매일 걸어오셨어요?) 중국 벗어나는데 차타고 국경 넘을때 5시간 6시간 동안 산길 걸어서."



이 여덟살 어린이는 먼저 남한에 간 엄마를 찾아가려고 중국인 아빠한테서 몰래 도망쳐 나왔다고 합니다.



<녹취> "8살짜리 큰애는 따라오던데...잘 못가요 힘들어서 ((2살짜리) 애는 엄마가 안고 왔어요?) 네, 애기는 엄마가 (안고 왔어요). 8살짜리는 (엄마가) 없단 말입니다, 엄마가 한국에 가있단 말입니다. 부탁을 해서 데리고 왔는데..."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에 발길을 재촉하는 탈북자들, 그들은 이제 자유의 땅으로 갈 수 있을까?



인도차이나 반도를 관통하는 메콩강. 태국에서 바라보면 강 너머 라오스 땅이 손에 잡힐 듯 한 눈에 들어옵니다.



중국에서 발원해 미얀마와 라오스, 태국, 베트남까지 6개 나라를 지나가는 세계에서 12번째로 긴 강입니다.



양쪽의 강 둑에선 기다란 쪽배들이 쉴새 없이 손님을 실어나릅니다.



저는 지금 메콩강을 따라 라오스에서 태국으로 국경을 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젖줄이라는 이름의 메콩강은 최근 북한을 이탈한 주민들의 가장 중요한 탈북 경로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강을 건너는데 불과 15분, 최근 라오스 국경에 대규모 카지노가 들어서면서 관광객들은 비자 없이도 강을 오갑니다.



하지만 탈북자들은 그럴 수 없는 처지. 경비대의 눈을 피해 밤이나 새벽에 강을 건넙니다. 태국 땅에 와서는 간혹 경찰에 적발되는 경우도 있지만, 탈북자들이 직접 경찰서로 가 밀입국 사실을 자진 신고합니다.



이후 방콕 이민자수용소로 옮겨지는데, 수송 비용은 탈북자들이 부담해야 합니다.



<녹취> 탈북 난민 : "(경찰서) 위치는 모르겠는데 여기 와서 물어봤단 말입니다. 태국 말로. 종이에 적어준 걸로."



최근 북한의 김정은 3대 세습체제가 가속화되면서 탈북자는 강제북송 후 공개처형하거나 국경에서 총살까지 하고 있는데도 이곳을 찾아오는 탈북 난민은 갈수록 늘고 있다고 태국 주민들은 말합니다.



<녹취>태국 국경마을 주민 : "자주 봐요. 그런 사람들(탈북자) 계속 있어요. 2달 전에도 제가 집앞에 서 있는데 키가 큰 여자들이 경찰들이 신분증 보여달라고 하자 없다고 하더라고요 경찰이 몇명이서 넘어왔냐고 묻자 6명이라고 하더라고요"



태국 방콕의 이민자 수용소. 국경에서 붙잡힌 탈북 난민들이 옮겨져 수감되는 곳입니다.



취재팀은 탈북자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보기 위해 몇명의 면회를 신청했습니다. 수감자의 가족이나 친척이 아닌 경우 면회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고 말합니다.



이 때문에 수용소 안에서 몸이 아프거나 먹을 게 부족해도 의약품이나 영치금을 받기란 어려운 상황. 더 큰 문제는 장기간 수용소에 감금된 탈북 난민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3국인 태국까지 와서 한국이 아닌 중국으로 추방 명령을 받고 길게는 1년 가까이 수용소 안에 감금돼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은 왜 한국이 아닌 중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녹취>정부 관계자(음성변조) : "실제 북한 분들인데, 중국 호구가 그렇게 돼 가지고 (중국인으로) 분류된 건 알고 있어요. 근데 그걸 저희가 마음대로 한국으로 보낼 수 없는 겁니다."



취재팀은 수용소에서 중국 송환을 거부하고 있는 한 탈북 남성과 전화 인터뷰를 시도했습니다. 지난 5월 수용소에 들어와 일곱달째 이곳에 갇혀있는 김철수씨. 중국 추방은 곧 강제 북송을 뜻한다며 제발 목숨을 살려달라고 호소합니다.



<녹취> 김철수(가명/장기 수용 탈북자) : "제 마음은 항상 눈물로 젖어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빨리 대한민국에 들어가서 재생의 길을 다시 선택해가지고 아들과 같이 행복함을 느끼게 할 수 없겠느냐 하는 생각에 지금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습니다."



그가 중국으로 가야 하는 이유는 중국인으로 돼 있는 국적 때문입니다. 지난 2천2년 탈북했던 그는 국내에 들어와 주민등록번호를 취득하고 정착 지원금을 지원받으면서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았습니다.



<녹취> 김철수(가명/장기 수용 탈북자) : "(대한민국 주민등록번호가 어떻게 되십니까?) 600320-105****"



하지만 지난해 10월 북한에 남아있는 아들이 굶주려 죽어간다는 얘기를 듣고 중국에 간 것이 화근이 됐습니다.



<녹취> 김철수(가명/장기 수용 탈북자) : "제 아들이 북한에 있기 때문에 그래서 제 아들을 구원하려고 호출하려고. 근데 그 브로커가 제가 중국에 나와야만 아들을 중국으로 넘기겠다해서 제가 중국으로 나갔었거든요"



그런데 중국 공항에서 우연히 김씨의 주민등록증을 살펴본 변방대 즉 무장경찰에 끌려가 2박3일동안 조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녹취> 김철수(가명/장기 수용 탈북자) : "엄청 무섭게 취조하니까 마지막에 얘네들이 제가 북한 말투가 많이 보이니까 "당신은 탈북자가 아니냐"고. "대한민국 가서 등록한 거 아니냐"고 이렇게 따지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중국 호구 올렸던 적이 있어가지고 "저는 중국 사람이다" 이렇게 발칵 뒤집어놨죠 그 때 중국 인민폐로 3천원(우리 돈 54만원) 벌금 물고 제가 풀려났던 것입니다."



그가 북한에서 찍은 사진과 북한 신분증을 보면 북한 주민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탈북 후 중국 공안에 잡혀가지 않으려고 돈을 주고 중국 국적, 이른바 호구를 샀다는 김씨. 그것이 결국 김씨의 발목을 붙잡은 셈입니다.



<녹취> 김철수(가명/장기 수용 탈북자) : " 제가 북한에 가게 되면 죽는 목숨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방법은 그 방법밖엔 없으니까 제가 어차피 그래서 호구 올렸거든요."



김씨 뿐 아니라 중국 국적의 남성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한국에 오지 못하는 탈북 여성들도 있습니다.



북한 사리원 출신의 김옥만 할머니. 올해 15살 딸과 함께 탈북한 이 여성도 각각 중국 국적 화교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한국에 오지 못한 채 현재 태국 수용소에 장기 수감돼 있습니다.



서울의 한 아파트, 우편함에는 체납된 전기료와 임대료 독촉장 등이 수북히 쌓여있습니다. 내부도 주인 없이 텅 비어있습니다.



탈북해서 한국에 왔다가 북한에 두고 온 아들을 만나기 위해 다시 중국으로 들어간 김철수씨가 그동안 친형과 함께 살던 곳입니다.



<녹취> 김00(김철수씨 형) : "이북에서도 같이 못만나고 그랬는데 여기 와서 만난다는 거 그거보다 반가운 일이 있어요. 정부에서 이렇게 혜택주고 이렇게까지 다 보살펴주는 정황 하에서 또 이렇게 됐다는 거(중국에서 붙잡혀 태국에 수감돼 있는 것), 아 가슴에 못박히죠 참."



취재팀이 김씨의 형과 함께 김씨의 주민등록을 조회해봤습니다.



현재 김씨의 신분은 국적 상실자.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의 자격을 박탈한 상태입니다.



김씨의 형은 이대로 중국에 추방돼 북한에 다시 가느니 차라리 다른 선택을 하는 게 낫다고까지 말합니다.



<인터뷰> 김00(김철수씨 형) : "알아서 뭐 목(숨)을 끊던가 (강물에) 뛰어들어가든가 하는게 낫지 거기(북한) 들어가면 온 가족 고생시키지 온 가족이 망가지지 저 하나 살겠다고 그렇게 하면 가족도 죽일 뿐 아니라 쟤가 거기(북한)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그거 모르겠어요"



김철수씨가 늘 간직해온 아들의 편지. 이제 27살이 된 아들은 북한에서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가 행여나 발각될까봐 아버지를 삼촌이라 부르며 눈물로 사연을 썼습니다.



삼촌, 행처도 모르는 아버지를 그리며 편지를 쓰자니 눈물이 납니다. 앞으로 아버지를 만나게 되겠는지 아니면 인제는 아버지라 부를 수 없게 되겠는지.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김씨가 아들을 데리러 중국에 가기 직전 취득했던 지게차 자격증도 집 안에 소중히 보관돼 있습니다.



<녹취> 김철수(가명/장기 수용 탈북자) : "저도 억지로 죽지 못해서 탈북해 왔거든요 다 죽다시피 해가지고 탈북해 왔는데, 제 자식이 굶는 거 그게 제일 가슴 아프거든요"



지금 한겨울 추위 속에도 강을 건너고 산길을 걸어 자유를 찾아오는 탈북 난민들.



그렇게 제3국까지 와서도 살아남기 위해 취득한 중국 국적 때문에 다시 북한으로 끌려가야 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이들의 손을 잡아줄 곳은 과연 없는 것인지. 우리 정부가 문제 해결에 나서줄 것을 이들은 오늘도 수용소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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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콩강은 건넜지만…
    • 입력 2011-12-19 11:25:47
    취재파일K
이른 아침 태국 북부의 한 강변 마을. 짐을 메거나 손에 든 십여 명이 어디론가 걸어갑니다.

<녹취> 탈북 난민 : "(몇명이 오셨어요?) 남자 3명에 여자 여덟명. 조그만한 애기 있고. 여덟살짜리 애도 있고. 8살 어린이와 엄마 품에 안긴 두살 아기까지."

북한을 탈출해 제3국까지 온, 이른바 탈북 난민들입니다.

사선을 넘고 또 세번의 국경을 넘기까지 만여 킬로미터의 거리. 어떤 날엔 밤새 걷고 또 걸었습니다.

<녹취> 탈북 난민 : "밤새껏 밥도 제대로 못먹고 걸어서 오니깐 한국 가자고. 너무 힘들어서 언제까지 걸어가겠는지. (라오스에서 계속 걸어서 넘어오신 거예요?) 네 계속 걸어왔습니다."

이렇게 밀입국한 탈북자들을 기다리는 건 태국 이민자 수용소의 수감 생활입니다.

잇단 강제 북송과 총살 소식에도 수용소에 들어오는 탈북자는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녹취>수용소 내 탈북 난민 : "여기 지금 탈북자들이 여자들은 한 200명 되고 남자들은 한 5,60명 남아있습니다."

대개는 난민으로 인정받아 자신이 원하는 대한민국으로 가지만, 제3국까지 와서 다시 중국으로 추방될 위기에 놓인 탈북자도 있습니다.

<녹취> 김철수(가명/탈북자) : "강제 출국당하면 제가 북한에 가게 되면 죽는 목숨이 아닙니까"

그들은 왜 그토록 원하는 대한민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일까?

<녹취> 김철수(가명/탈북자) : "저는 살아도 대한민국 죽어도 대한민국 밖에 없으니까 저는 어떻게든 빨리 대한민국으로 갈 생각 그 생각뿐이고..."

동남아 최대 관광국인 태국은 탈북 난민들이 꿈에도 그리던 대한민국에 가기 위해 가장 많이 거쳐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국이 아닌 제3국까지 와서도 다시 중국으로, 또 북한으로 강제 송환돼야 하는 탈북자들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라오스, 또 태국까지 목숨을 건 탈북행렬과 그들의 비참하고 눈물겨운 사연을 취재했습니다.

새벽 어스름이 막 걷힌 태국 북부 국경지역 메콩강 둔치. 수풀 속에 숨어 강변을 따라 걷는 한 무리의 탈북자들을 만났습니다.

<녹취> 탈북 난민 : "(새벽에 여기 바로 (강)앞에서 내리신 거예요?) 네. 오기 전에 경찰서 여기 (있나) 물어봤단 말입니다."

강 너머 라오스에서 배를 타고 태국 국경을 몰래 넘은 것입니다. 중국에선 기차나 차량을 타고 이동했지만, 국경을 넘을 때는 검문소를 피해 산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중국 뿐 아니라 라오스에서도 경찰에 붙잡힐 경우 꼼짝없이 강제 송환되기 때문입니다.

<녹취> 탈북 난민 : "밤새껏 밥도 제대로 못먹고 걸어서 오니깐 한국 가자고 너무 힘들어서 언제까지 걸어가겠는지. (라오스에서 계속 걸어서 넘어오신 거예요?) 네 계속 걸어왔습니다."

탈북자를 난민으로 받아주는 나라, 태국에 오기까지는 대략 일주일. 북한에서 출발해 만여 킬로미터의 대장정을 거치는 동안 세번이나 국경을 넘었습니다.

<녹취> 탈북 난민 : "한 일주일 (걸렸습니다). (일주일 동안 매일 걸어오셨어요?) 중국 벗어나는데 차타고 국경 넘을때 5시간 6시간 동안 산길 걸어서."

이 여덟살 어린이는 먼저 남한에 간 엄마를 찾아가려고 중국인 아빠한테서 몰래 도망쳐 나왔다고 합니다.

<녹취> "8살짜리 큰애는 따라오던데...잘 못가요 힘들어서 ((2살짜리) 애는 엄마가 안고 왔어요?) 네, 애기는 엄마가 (안고 왔어요). 8살짜리는 (엄마가) 없단 말입니다, 엄마가 한국에 가있단 말입니다. 부탁을 해서 데리고 왔는데..."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에 발길을 재촉하는 탈북자들, 그들은 이제 자유의 땅으로 갈 수 있을까?

인도차이나 반도를 관통하는 메콩강. 태국에서 바라보면 강 너머 라오스 땅이 손에 잡힐 듯 한 눈에 들어옵니다.

중국에서 발원해 미얀마와 라오스, 태국, 베트남까지 6개 나라를 지나가는 세계에서 12번째로 긴 강입니다.

양쪽의 강 둑에선 기다란 쪽배들이 쉴새 없이 손님을 실어나릅니다.

저는 지금 메콩강을 따라 라오스에서 태국으로 국경을 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젖줄이라는 이름의 메콩강은 최근 북한을 이탈한 주민들의 가장 중요한 탈북 경로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강을 건너는데 불과 15분, 최근 라오스 국경에 대규모 카지노가 들어서면서 관광객들은 비자 없이도 강을 오갑니다.

하지만 탈북자들은 그럴 수 없는 처지. 경비대의 눈을 피해 밤이나 새벽에 강을 건넙니다. 태국 땅에 와서는 간혹 경찰에 적발되는 경우도 있지만, 탈북자들이 직접 경찰서로 가 밀입국 사실을 자진 신고합니다.

이후 방콕 이민자수용소로 옮겨지는데, 수송 비용은 탈북자들이 부담해야 합니다.

<녹취> 탈북 난민 : "(경찰서) 위치는 모르겠는데 여기 와서 물어봤단 말입니다. 태국 말로. 종이에 적어준 걸로."

최근 북한의 김정은 3대 세습체제가 가속화되면서 탈북자는 강제북송 후 공개처형하거나 국경에서 총살까지 하고 있는데도 이곳을 찾아오는 탈북 난민은 갈수록 늘고 있다고 태국 주민들은 말합니다.

<녹취>태국 국경마을 주민 : "자주 봐요. 그런 사람들(탈북자) 계속 있어요. 2달 전에도 제가 집앞에 서 있는데 키가 큰 여자들이 경찰들이 신분증 보여달라고 하자 없다고 하더라고요 경찰이 몇명이서 넘어왔냐고 묻자 6명이라고 하더라고요"

태국 방콕의 이민자 수용소. 국경에서 붙잡힌 탈북 난민들이 옮겨져 수감되는 곳입니다.

취재팀은 탈북자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보기 위해 몇명의 면회를 신청했습니다. 수감자의 가족이나 친척이 아닌 경우 면회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고 말합니다.

이 때문에 수용소 안에서 몸이 아프거나 먹을 게 부족해도 의약품이나 영치금을 받기란 어려운 상황. 더 큰 문제는 장기간 수용소에 감금된 탈북 난민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3국인 태국까지 와서 한국이 아닌 중국으로 추방 명령을 받고 길게는 1년 가까이 수용소 안에 감금돼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은 왜 한국이 아닌 중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녹취>정부 관계자(음성변조) : "실제 북한 분들인데, 중국 호구가 그렇게 돼 가지고 (중국인으로) 분류된 건 알고 있어요. 근데 그걸 저희가 마음대로 한국으로 보낼 수 없는 겁니다."

취재팀은 수용소에서 중국 송환을 거부하고 있는 한 탈북 남성과 전화 인터뷰를 시도했습니다. 지난 5월 수용소에 들어와 일곱달째 이곳에 갇혀있는 김철수씨. 중국 추방은 곧 강제 북송을 뜻한다며 제발 목숨을 살려달라고 호소합니다.

<녹취> 김철수(가명/장기 수용 탈북자) : "제 마음은 항상 눈물로 젖어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빨리 대한민국에 들어가서 재생의 길을 다시 선택해가지고 아들과 같이 행복함을 느끼게 할 수 없겠느냐 하는 생각에 지금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습니다."

그가 중국으로 가야 하는 이유는 중국인으로 돼 있는 국적 때문입니다. 지난 2천2년 탈북했던 그는 국내에 들어와 주민등록번호를 취득하고 정착 지원금을 지원받으면서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았습니다.

<녹취> 김철수(가명/장기 수용 탈북자) : "(대한민국 주민등록번호가 어떻게 되십니까?) 600320-105****"

하지만 지난해 10월 북한에 남아있는 아들이 굶주려 죽어간다는 얘기를 듣고 중국에 간 것이 화근이 됐습니다.

<녹취> 김철수(가명/장기 수용 탈북자) : "제 아들이 북한에 있기 때문에 그래서 제 아들을 구원하려고 호출하려고. 근데 그 브로커가 제가 중국에 나와야만 아들을 중국으로 넘기겠다해서 제가 중국으로 나갔었거든요"

그런데 중국 공항에서 우연히 김씨의 주민등록증을 살펴본 변방대 즉 무장경찰에 끌려가 2박3일동안 조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녹취> 김철수(가명/장기 수용 탈북자) : "엄청 무섭게 취조하니까 마지막에 얘네들이 제가 북한 말투가 많이 보이니까 "당신은 탈북자가 아니냐"고. "대한민국 가서 등록한 거 아니냐"고 이렇게 따지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중국 호구 올렸던 적이 있어가지고 "저는 중국 사람이다" 이렇게 발칵 뒤집어놨죠 그 때 중국 인민폐로 3천원(우리 돈 54만원) 벌금 물고 제가 풀려났던 것입니다."

그가 북한에서 찍은 사진과 북한 신분증을 보면 북한 주민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탈북 후 중국 공안에 잡혀가지 않으려고 돈을 주고 중국 국적, 이른바 호구를 샀다는 김씨. 그것이 결국 김씨의 발목을 붙잡은 셈입니다.

<녹취> 김철수(가명/장기 수용 탈북자) : " 제가 북한에 가게 되면 죽는 목숨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방법은 그 방법밖엔 없으니까 제가 어차피 그래서 호구 올렸거든요."

김씨 뿐 아니라 중국 국적의 남성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한국에 오지 못하는 탈북 여성들도 있습니다.

북한 사리원 출신의 김옥만 할머니. 올해 15살 딸과 함께 탈북한 이 여성도 각각 중국 국적 화교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한국에 오지 못한 채 현재 태국 수용소에 장기 수감돼 있습니다.

서울의 한 아파트, 우편함에는 체납된 전기료와 임대료 독촉장 등이 수북히 쌓여있습니다. 내부도 주인 없이 텅 비어있습니다.

탈북해서 한국에 왔다가 북한에 두고 온 아들을 만나기 위해 다시 중국으로 들어간 김철수씨가 그동안 친형과 함께 살던 곳입니다.

<녹취> 김00(김철수씨 형) : "이북에서도 같이 못만나고 그랬는데 여기 와서 만난다는 거 그거보다 반가운 일이 있어요. 정부에서 이렇게 혜택주고 이렇게까지 다 보살펴주는 정황 하에서 또 이렇게 됐다는 거(중국에서 붙잡혀 태국에 수감돼 있는 것), 아 가슴에 못박히죠 참."

취재팀이 김씨의 형과 함께 김씨의 주민등록을 조회해봤습니다.

현재 김씨의 신분은 국적 상실자.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의 자격을 박탈한 상태입니다.

김씨의 형은 이대로 중국에 추방돼 북한에 다시 가느니 차라리 다른 선택을 하는 게 낫다고까지 말합니다.

<인터뷰> 김00(김철수씨 형) : "알아서 뭐 목(숨)을 끊던가 (강물에) 뛰어들어가든가 하는게 낫지 거기(북한) 들어가면 온 가족 고생시키지 온 가족이 망가지지 저 하나 살겠다고 그렇게 하면 가족도 죽일 뿐 아니라 쟤가 거기(북한)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그거 모르겠어요"

김철수씨가 늘 간직해온 아들의 편지. 이제 27살이 된 아들은 북한에서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가 행여나 발각될까봐 아버지를 삼촌이라 부르며 눈물로 사연을 썼습니다.

삼촌, 행처도 모르는 아버지를 그리며 편지를 쓰자니 눈물이 납니다. 앞으로 아버지를 만나게 되겠는지 아니면 인제는 아버지라 부를 수 없게 되겠는지.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김씨가 아들을 데리러 중국에 가기 직전 취득했던 지게차 자격증도 집 안에 소중히 보관돼 있습니다.

<녹취> 김철수(가명/장기 수용 탈북자) : "저도 억지로 죽지 못해서 탈북해 왔거든요 다 죽다시피 해가지고 탈북해 왔는데, 제 자식이 굶는 거 그게 제일 가슴 아프거든요"

지금 한겨울 추위 속에도 강을 건너고 산길을 걸어 자유를 찾아오는 탈북 난민들.

그렇게 제3국까지 와서도 살아남기 위해 취득한 중국 국적 때문에 다시 북한으로 끌려가야 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이들의 손을 잡아줄 곳은 과연 없는 것인지. 우리 정부가 문제 해결에 나서줄 것을 이들은 오늘도 수용소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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