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설날은…’ 문서·영상기록 일반에 공개

입력 2012.01.18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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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음력 대신 양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설 명절은 휴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문서와 영상기록을 국가기록원이 공개했습니다.

박석호 기자입니다.

<리포트>

홍동백서와 좌포우혜를 따져가며 정성들여 차린 제사 음식을 먹고 나면, 오랜만의 포식 덕분에 배탈이 나기 일쑤였습니다.

어려웠던 시절에도 설날 하루만큼은 풍요로웠지만, 이런 설 명절은 오랫동안 민간의 명절이었을 뿐입니다.

1954년 정부는 구태의연한 음력사용을 긴급히 시정해, 음력 설 지내기 방지에 대한 대책을 결정하겠다고 나섰습니다.

1981년에 그려진 계몽 포스터도 신정을 쇠면 근대화의 길로 가고, 구정을 쇠면 깊은 산골짜기로 들어간다고 훈계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장재돈(75세) : "양력 설은 일본 사람 설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우리 한국 사람은 구정 쇠야 한다, 우리네들은 다 그랬죠."

결국 정부는 1985년이 돼서야 음력 1월 1일을 민속의 날로 지정했고, 4년 뒤에는 설날이라는 이름을 되살리며 사흘을 쉬도록 했습니다.

<인터뷰> 강성천(국가기록원 기록편찬문화과 과장) : "우리의 명절인 설이 국가 공휴일로 지정되는 과정과, 다양한 설풍경을 기록을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설 명절이 되살아나는 근현대사의 풍경과 기록은 내일부터 나라기록 포털을 통해 일반에 공개됩니다.

KBS 뉴스 박석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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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의 설날은…’ 문서·영상기록 일반에 공개
    • 입력 2012-01-18 22: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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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음력 대신 양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설 명절은 휴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문서와 영상기록을 국가기록원이 공개했습니다. 박석호 기자입니다. <리포트> 홍동백서와 좌포우혜를 따져가며 정성들여 차린 제사 음식을 먹고 나면, 오랜만의 포식 덕분에 배탈이 나기 일쑤였습니다. 어려웠던 시절에도 설날 하루만큼은 풍요로웠지만, 이런 설 명절은 오랫동안 민간의 명절이었을 뿐입니다. 1954년 정부는 구태의연한 음력사용을 긴급히 시정해, 음력 설 지내기 방지에 대한 대책을 결정하겠다고 나섰습니다. 1981년에 그려진 계몽 포스터도 신정을 쇠면 근대화의 길로 가고, 구정을 쇠면 깊은 산골짜기로 들어간다고 훈계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장재돈(75세) : "양력 설은 일본 사람 설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우리 한국 사람은 구정 쇠야 한다, 우리네들은 다 그랬죠." 결국 정부는 1985년이 돼서야 음력 1월 1일을 민속의 날로 지정했고, 4년 뒤에는 설날이라는 이름을 되살리며 사흘을 쉬도록 했습니다. <인터뷰> 강성천(국가기록원 기록편찬문화과 과장) : "우리의 명절인 설이 국가 공휴일로 지정되는 과정과, 다양한 설풍경을 기록을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설 명절이 되살아나는 근현대사의 풍경과 기록은 내일부터 나라기록 포털을 통해 일반에 공개됩니다. KBS 뉴스 박석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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