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eye] 5천년 향기 ‘유향나무’를 지키자
입력 2012.05.13 (08:33)
수정 2012.05.1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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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아기 예수가 탄생할 때 동방박사들이 선물 세 가지를 주었다는데, 바로 황금과 몰약, 그리고 유향입니다.
이 가운데 유향은 중동 등지에서 생활필수품이나 마찬가지고, 향수 재료 등으로 인기인데요, 이 유향을 특산물로 삼고 있는 오만에서 지금 유향나무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보존 운동이 한창입니다.
5천년 향기를 지키자, 이영석 특파원이 오만 현지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아라비아 반도 남동부의 이슬람 왕국 오만,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탓에 일찌감치 해상으로 진출했던 해양 강국입니다.
수도 무스카트의 전통시장,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늘 활기가 넘치는 곳입니다.
상점 여기저기서 피워 놓은 하얀 연기가 시장 안에 가득합니다. 자욱한 연기는 특유의 향기와 함께 아랍 시장만의 이국적인 풍경을 선사합니다. 상인들이 피워 놓은 것은 바로 오만의 특산품인 '유향'입니다.
<인터뷰>사이드(유향 상인):"유향은 오만의 전통을 상징합니다. 아주 요긴하게 쓰이는데 화학 첨가물 없이 100% 자연산입니다."
5천 년을 이어져 내려온 유향은 오만 사람들에겐 생활필수품이나 다름없습니다.
<인터뷰>카니스(손님):"유향은 특별하게 정해 놓은 사용 시기가 없습니다. 특히 겨울에는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한 쇼핑 상가의 고급 향수 매장. 최고 수백 만 원을 호가하는 오만산 최고급 향수 제품들입니다. 이 향수에 빠짐없이 들어가는 게 바로 유향입니다. 오만산 유향은 오래 전부터 세계 최고 품질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오만 제 2의 도시 살랄라. 유향 산지로 유명한 남부 '도파르' 지역의 중심 도시입니다. 이 살랄라 외곽의 한 해안에서 유적 발굴 작업이 한창입니다. 기원전 3세기부터 인근 중동과 멀리 중국에까지 유향을 수출했던 항구 유적지입니다.
선적에 앞서 유향을 임시 보관하던 유향 창고도 발굴돼 일부 복원됐습니다. 이 유적은 '도파르' 지역이 오래 전부터 국제 유향 무역의 중심지였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살랄라에서 북동쪽으로 3시간가량 달리자 계곡이 나타납니다. 온통 자갈뿐인 이 메마른 계곡의 경사면 곳곳에 유향 나무들이 자생하고 있습니다. 지대가 높고 건조한 곳이 유향 나무가 잘 자라는 환경입니다.
이곳은 와디 호가르, 우리 말로는 호가르 계곡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지금은 말라 있지만 여름철 우기가 되면 이곳에도 물이 흐르게 됩니다. 유향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도파르 지역에서도 가장 품질 좋은 유향이 바로 이곳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수령이 3백 년이 넘은 한 유향 나무. 껍질을 살짝 벗겨내자, 우유처럼 하얀 수액이 금세 송글송글 맺힙니다. 시간이 지나 이 수액이 딱딱하게 굳은 게 바로 유향입니다. 보통 2,3주 간격으로 같은 상처 부위에서 3차례 정도 반복해 채취합니다.
<인터뷰>무살람(유향 채취업자):"다시 2주에서 3주 후에 같은 장소에 와서 껍질을 다시 벗깁니다.3번째 채취할 때가 수액의 양도 많고 품질도 더 좋습니다."
연중 채취 기간은 3월에서 9월 사이, 우기인 7,8월산 유향이 최상품으로 꼽힙니다.
그윽한 유향 냄새가 진동하는 살랄라의 전통 시장. 유향 가격을 놓고 손님과 상인 사이에 흥정이 한창입니다. 시장은, 산지에서 직접 유향을 사려는 외지인들로 늘 붐빕니다. 천 킬로미터가 넘는 무스카트나, 외국에서도 손님들이 찾아올 정도입니다.
<인터뷰>사이드(손님):"집에 가져 가려고 유향을 샀습니다. 선물로 친구와 동료들에게도 줄 생각입니다. 무스카트에 있는 집에서 쓰려고 두 달에 한 번씩은 들러서 유향을 구입합니다."
유향은 등급에 따라 1킬로그램에 우리 돈 만 원에서 15만 원까지 할 만큼, 가격 차이가 큽니다. 향료나 향수 재료로 쓰이기도 하고, 관절염과 감기 치료 등 민간요법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터뷰>움므 파라즈/상인
"이게 최고급품인데 물에 타서 마시기도 합니다.'호그리'종류는 태워서 냄새를 맡는 향료로 씁니다."
한 가정집 사랑방에 친척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손님을 맞는 사랑방엔 어김 없이 유향을 피웠습니다. 방 안은 어느 새 유향 연기와 향기로 가득합니다. 주인은 일일이 친척들에게 유향 냄새 맡기를 권합니다. 좋은 향기뿐만 아니라 외부의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는 주술적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인터뷰>마수드 알리(주민):"유향은 대부분의 도파르 주민들에게 주요한 수입원이었습니다. 유향은 향료와 치료 등 다양하게 사용돼 왔습니다."
하지만 이젠 유향나무를 어떻게 보존해야할 지를 고민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살랄라 인근의 한 유향 나무 자생 지역. 유향 나무 곳곳에서 수액 채취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나무는 수액을 채취했던 껍질 부분이 새카맣게 변했습니다. 지나치게 깊고 넓게 껍질을 벗겨 나무가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것입니다.
<인터뷰>칼리드(유향 채취업자):"유향은 전문가들이 채취해야 하고 특별한 도구도 필요합니다. 안 그러면 나무에 큰 피해를 주게 됩니다."
주변에는 고사된 채 쓰러진 유향 나무도 눈에 띕니다.
유향 나무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나무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개체 수가 감소하고 있고, 유향 중심지인 이곳 오만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에 의한 무분별한 유향 채취가 가장 큰 위협 요소입니다.
유향 나무 자생지에서 가까운 한 공장에서 흰 연기가 끝없이 피어오릅니다. 멀리서 보면 연기로 보이지만 사실은 연기가 아니라 눈처럼 하얀 돌가루가 바람에 날리는 것입니다.
내수와 해외 수출을 위해 건설용 석회암을 캐내는 채석장입니다. 이곳에서 바람에 날린 돌가루는 근처 유향 나뭇잎에 쌓입니다. 유향나무의 생육에 큰 지장을 주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유향 나무 보존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험난한 비포장 도로를 달려 무흐신 박사 일행이 도착한 곳은 기후 관측소. 온도와 습도, 풍속 등을 주기적으로 살펴 유향 나무에 맞는 최적의 자생 조건을 관찰하는 곳입니다. 적절한 수액 채취량 계산을 위해 나무의 크기를 재기도 하고, 직접 수액도 채취합니다.
<인터뷰>무흐신('오만 환경 모임' 박사):"(껍질을 파내는)깊이는 몇 밀리미터에 불과해야 합니다. 더 깊으면 안 됩니다. 푸른색 부분만 상처를 내야 합니다."
무흐신 박사가 속한 환경 단체가 유향 나무 연구를 시작한 것은 2년 전, 적절한 유향 채취 방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유향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섭니다.
<인터뷰>무흐신('오만 환경 모임' 박사):"나무를 훼손하지 않고 올바르게 유향 채취하는 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게 필요하다고 느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또 다른 유향 나무 자생지인 와디 다우카 지역. 지난 2000년,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이곳엔 유향 나무 보존을 위해 오만 정부가 이식한 5천 그루가 시험 재배 중입니다. 하지만 야생성이 강한 유향 나무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입니다.
5천 년을 이어온 고대의 향기 유향. 이 은은한 향기를 지켜가기 위해 뒤늦게나마 보호운동이 시작돼 다행입니다.
아기 예수가 탄생할 때 동방박사들이 선물 세 가지를 주었다는데, 바로 황금과 몰약, 그리고 유향입니다.
이 가운데 유향은 중동 등지에서 생활필수품이나 마찬가지고, 향수 재료 등으로 인기인데요, 이 유향을 특산물로 삼고 있는 오만에서 지금 유향나무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보존 운동이 한창입니다.
5천년 향기를 지키자, 이영석 특파원이 오만 현지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아라비아 반도 남동부의 이슬람 왕국 오만,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탓에 일찌감치 해상으로 진출했던 해양 강국입니다.
수도 무스카트의 전통시장,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늘 활기가 넘치는 곳입니다.
상점 여기저기서 피워 놓은 하얀 연기가 시장 안에 가득합니다. 자욱한 연기는 특유의 향기와 함께 아랍 시장만의 이국적인 풍경을 선사합니다. 상인들이 피워 놓은 것은 바로 오만의 특산품인 '유향'입니다.
<인터뷰>사이드(유향 상인):"유향은 오만의 전통을 상징합니다. 아주 요긴하게 쓰이는데 화학 첨가물 없이 100% 자연산입니다."
5천 년을 이어져 내려온 유향은 오만 사람들에겐 생활필수품이나 다름없습니다.
<인터뷰>카니스(손님):"유향은 특별하게 정해 놓은 사용 시기가 없습니다. 특히 겨울에는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한 쇼핑 상가의 고급 향수 매장. 최고 수백 만 원을 호가하는 오만산 최고급 향수 제품들입니다. 이 향수에 빠짐없이 들어가는 게 바로 유향입니다. 오만산 유향은 오래 전부터 세계 최고 품질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오만 제 2의 도시 살랄라. 유향 산지로 유명한 남부 '도파르' 지역의 중심 도시입니다. 이 살랄라 외곽의 한 해안에서 유적 발굴 작업이 한창입니다. 기원전 3세기부터 인근 중동과 멀리 중국에까지 유향을 수출했던 항구 유적지입니다.
선적에 앞서 유향을 임시 보관하던 유향 창고도 발굴돼 일부 복원됐습니다. 이 유적은 '도파르' 지역이 오래 전부터 국제 유향 무역의 중심지였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살랄라에서 북동쪽으로 3시간가량 달리자 계곡이 나타납니다. 온통 자갈뿐인 이 메마른 계곡의 경사면 곳곳에 유향 나무들이 자생하고 있습니다. 지대가 높고 건조한 곳이 유향 나무가 잘 자라는 환경입니다.
이곳은 와디 호가르, 우리 말로는 호가르 계곡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지금은 말라 있지만 여름철 우기가 되면 이곳에도 물이 흐르게 됩니다. 유향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도파르 지역에서도 가장 품질 좋은 유향이 바로 이곳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수령이 3백 년이 넘은 한 유향 나무. 껍질을 살짝 벗겨내자, 우유처럼 하얀 수액이 금세 송글송글 맺힙니다. 시간이 지나 이 수액이 딱딱하게 굳은 게 바로 유향입니다. 보통 2,3주 간격으로 같은 상처 부위에서 3차례 정도 반복해 채취합니다.
<인터뷰>무살람(유향 채취업자):"다시 2주에서 3주 후에 같은 장소에 와서 껍질을 다시 벗깁니다.3번째 채취할 때가 수액의 양도 많고 품질도 더 좋습니다."
연중 채취 기간은 3월에서 9월 사이, 우기인 7,8월산 유향이 최상품으로 꼽힙니다.
그윽한 유향 냄새가 진동하는 살랄라의 전통 시장. 유향 가격을 놓고 손님과 상인 사이에 흥정이 한창입니다. 시장은, 산지에서 직접 유향을 사려는 외지인들로 늘 붐빕니다. 천 킬로미터가 넘는 무스카트나, 외국에서도 손님들이 찾아올 정도입니다.
<인터뷰>사이드(손님):"집에 가져 가려고 유향을 샀습니다. 선물로 친구와 동료들에게도 줄 생각입니다. 무스카트에 있는 집에서 쓰려고 두 달에 한 번씩은 들러서 유향을 구입합니다."
유향은 등급에 따라 1킬로그램에 우리 돈 만 원에서 15만 원까지 할 만큼, 가격 차이가 큽니다. 향료나 향수 재료로 쓰이기도 하고, 관절염과 감기 치료 등 민간요법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터뷰>움므 파라즈/상인
"이게 최고급품인데 물에 타서 마시기도 합니다.'호그리'종류는 태워서 냄새를 맡는 향료로 씁니다."
한 가정집 사랑방에 친척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손님을 맞는 사랑방엔 어김 없이 유향을 피웠습니다. 방 안은 어느 새 유향 연기와 향기로 가득합니다. 주인은 일일이 친척들에게 유향 냄새 맡기를 권합니다. 좋은 향기뿐만 아니라 외부의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는 주술적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인터뷰>마수드 알리(주민):"유향은 대부분의 도파르 주민들에게 주요한 수입원이었습니다. 유향은 향료와 치료 등 다양하게 사용돼 왔습니다."
하지만 이젠 유향나무를 어떻게 보존해야할 지를 고민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살랄라 인근의 한 유향 나무 자생 지역. 유향 나무 곳곳에서 수액 채취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나무는 수액을 채취했던 껍질 부분이 새카맣게 변했습니다. 지나치게 깊고 넓게 껍질을 벗겨 나무가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것입니다.
<인터뷰>칼리드(유향 채취업자):"유향은 전문가들이 채취해야 하고 특별한 도구도 필요합니다. 안 그러면 나무에 큰 피해를 주게 됩니다."
주변에는 고사된 채 쓰러진 유향 나무도 눈에 띕니다.
유향 나무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나무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개체 수가 감소하고 있고, 유향 중심지인 이곳 오만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에 의한 무분별한 유향 채취가 가장 큰 위협 요소입니다.
유향 나무 자생지에서 가까운 한 공장에서 흰 연기가 끝없이 피어오릅니다. 멀리서 보면 연기로 보이지만 사실은 연기가 아니라 눈처럼 하얀 돌가루가 바람에 날리는 것입니다.
내수와 해외 수출을 위해 건설용 석회암을 캐내는 채석장입니다. 이곳에서 바람에 날린 돌가루는 근처 유향 나뭇잎에 쌓입니다. 유향나무의 생육에 큰 지장을 주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유향 나무 보존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험난한 비포장 도로를 달려 무흐신 박사 일행이 도착한 곳은 기후 관측소. 온도와 습도, 풍속 등을 주기적으로 살펴 유향 나무에 맞는 최적의 자생 조건을 관찰하는 곳입니다. 적절한 수액 채취량 계산을 위해 나무의 크기를 재기도 하고, 직접 수액도 채취합니다.
<인터뷰>무흐신('오만 환경 모임' 박사):"(껍질을 파내는)깊이는 몇 밀리미터에 불과해야 합니다. 더 깊으면 안 됩니다. 푸른색 부분만 상처를 내야 합니다."
무흐신 박사가 속한 환경 단체가 유향 나무 연구를 시작한 것은 2년 전, 적절한 유향 채취 방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유향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섭니다.
<인터뷰>무흐신('오만 환경 모임' 박사):"나무를 훼손하지 않고 올바르게 유향 채취하는 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게 필요하다고 느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또 다른 유향 나무 자생지인 와디 다우카 지역. 지난 2000년,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이곳엔 유향 나무 보존을 위해 오만 정부가 이식한 5천 그루가 시험 재배 중입니다. 하지만 야생성이 강한 유향 나무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입니다.
5천 년을 이어온 고대의 향기 유향. 이 은은한 향기를 지켜가기 위해 뒤늦게나마 보호운동이 시작돼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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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파원 eye] 5천년 향기 ‘유향나무’를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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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2-05-13 08:33:25
- 수정2012-05-13 08:57:08

<앵커 멘트>
아기 예수가 탄생할 때 동방박사들이 선물 세 가지를 주었다는데, 바로 황금과 몰약, 그리고 유향입니다.
이 가운데 유향은 중동 등지에서 생활필수품이나 마찬가지고, 향수 재료 등으로 인기인데요, 이 유향을 특산물로 삼고 있는 오만에서 지금 유향나무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보존 운동이 한창입니다.
5천년 향기를 지키자, 이영석 특파원이 오만 현지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아라비아 반도 남동부의 이슬람 왕국 오만,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탓에 일찌감치 해상으로 진출했던 해양 강국입니다.
수도 무스카트의 전통시장,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늘 활기가 넘치는 곳입니다.
상점 여기저기서 피워 놓은 하얀 연기가 시장 안에 가득합니다. 자욱한 연기는 특유의 향기와 함께 아랍 시장만의 이국적인 풍경을 선사합니다. 상인들이 피워 놓은 것은 바로 오만의 특산품인 '유향'입니다.
<인터뷰>사이드(유향 상인):"유향은 오만의 전통을 상징합니다. 아주 요긴하게 쓰이는데 화학 첨가물 없이 100% 자연산입니다."
5천 년을 이어져 내려온 유향은 오만 사람들에겐 생활필수품이나 다름없습니다.
<인터뷰>카니스(손님):"유향은 특별하게 정해 놓은 사용 시기가 없습니다. 특히 겨울에는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한 쇼핑 상가의 고급 향수 매장. 최고 수백 만 원을 호가하는 오만산 최고급 향수 제품들입니다. 이 향수에 빠짐없이 들어가는 게 바로 유향입니다. 오만산 유향은 오래 전부터 세계 최고 품질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오만 제 2의 도시 살랄라. 유향 산지로 유명한 남부 '도파르' 지역의 중심 도시입니다. 이 살랄라 외곽의 한 해안에서 유적 발굴 작업이 한창입니다. 기원전 3세기부터 인근 중동과 멀리 중국에까지 유향을 수출했던 항구 유적지입니다.
선적에 앞서 유향을 임시 보관하던 유향 창고도 발굴돼 일부 복원됐습니다. 이 유적은 '도파르' 지역이 오래 전부터 국제 유향 무역의 중심지였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살랄라에서 북동쪽으로 3시간가량 달리자 계곡이 나타납니다. 온통 자갈뿐인 이 메마른 계곡의 경사면 곳곳에 유향 나무들이 자생하고 있습니다. 지대가 높고 건조한 곳이 유향 나무가 잘 자라는 환경입니다.
이곳은 와디 호가르, 우리 말로는 호가르 계곡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지금은 말라 있지만 여름철 우기가 되면 이곳에도 물이 흐르게 됩니다. 유향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도파르 지역에서도 가장 품질 좋은 유향이 바로 이곳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수령이 3백 년이 넘은 한 유향 나무. 껍질을 살짝 벗겨내자, 우유처럼 하얀 수액이 금세 송글송글 맺힙니다. 시간이 지나 이 수액이 딱딱하게 굳은 게 바로 유향입니다. 보통 2,3주 간격으로 같은 상처 부위에서 3차례 정도 반복해 채취합니다.
<인터뷰>무살람(유향 채취업자):"다시 2주에서 3주 후에 같은 장소에 와서 껍질을 다시 벗깁니다.3번째 채취할 때가 수액의 양도 많고 품질도 더 좋습니다."
연중 채취 기간은 3월에서 9월 사이, 우기인 7,8월산 유향이 최상품으로 꼽힙니다.
그윽한 유향 냄새가 진동하는 살랄라의 전통 시장. 유향 가격을 놓고 손님과 상인 사이에 흥정이 한창입니다. 시장은, 산지에서 직접 유향을 사려는 외지인들로 늘 붐빕니다. 천 킬로미터가 넘는 무스카트나, 외국에서도 손님들이 찾아올 정도입니다.
<인터뷰>사이드(손님):"집에 가져 가려고 유향을 샀습니다. 선물로 친구와 동료들에게도 줄 생각입니다. 무스카트에 있는 집에서 쓰려고 두 달에 한 번씩은 들러서 유향을 구입합니다."
유향은 등급에 따라 1킬로그램에 우리 돈 만 원에서 15만 원까지 할 만큼, 가격 차이가 큽니다. 향료나 향수 재료로 쓰이기도 하고, 관절염과 감기 치료 등 민간요법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터뷰>움므 파라즈/상인
"이게 최고급품인데 물에 타서 마시기도 합니다.'호그리'종류는 태워서 냄새를 맡는 향료로 씁니다."
한 가정집 사랑방에 친척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손님을 맞는 사랑방엔 어김 없이 유향을 피웠습니다. 방 안은 어느 새 유향 연기와 향기로 가득합니다. 주인은 일일이 친척들에게 유향 냄새 맡기를 권합니다. 좋은 향기뿐만 아니라 외부의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는 주술적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인터뷰>마수드 알리(주민):"유향은 대부분의 도파르 주민들에게 주요한 수입원이었습니다. 유향은 향료와 치료 등 다양하게 사용돼 왔습니다."
하지만 이젠 유향나무를 어떻게 보존해야할 지를 고민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살랄라 인근의 한 유향 나무 자생 지역. 유향 나무 곳곳에서 수액 채취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나무는 수액을 채취했던 껍질 부분이 새카맣게 변했습니다. 지나치게 깊고 넓게 껍질을 벗겨 나무가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것입니다.
<인터뷰>칼리드(유향 채취업자):"유향은 전문가들이 채취해야 하고 특별한 도구도 필요합니다. 안 그러면 나무에 큰 피해를 주게 됩니다."
주변에는 고사된 채 쓰러진 유향 나무도 눈에 띕니다.
유향 나무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나무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개체 수가 감소하고 있고, 유향 중심지인 이곳 오만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에 의한 무분별한 유향 채취가 가장 큰 위협 요소입니다.
유향 나무 자생지에서 가까운 한 공장에서 흰 연기가 끝없이 피어오릅니다. 멀리서 보면 연기로 보이지만 사실은 연기가 아니라 눈처럼 하얀 돌가루가 바람에 날리는 것입니다.
내수와 해외 수출을 위해 건설용 석회암을 캐내는 채석장입니다. 이곳에서 바람에 날린 돌가루는 근처 유향 나뭇잎에 쌓입니다. 유향나무의 생육에 큰 지장을 주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유향 나무 보존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험난한 비포장 도로를 달려 무흐신 박사 일행이 도착한 곳은 기후 관측소. 온도와 습도, 풍속 등을 주기적으로 살펴 유향 나무에 맞는 최적의 자생 조건을 관찰하는 곳입니다. 적절한 수액 채취량 계산을 위해 나무의 크기를 재기도 하고, 직접 수액도 채취합니다.
<인터뷰>무흐신('오만 환경 모임' 박사):"(껍질을 파내는)깊이는 몇 밀리미터에 불과해야 합니다. 더 깊으면 안 됩니다. 푸른색 부분만 상처를 내야 합니다."
무흐신 박사가 속한 환경 단체가 유향 나무 연구를 시작한 것은 2년 전, 적절한 유향 채취 방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유향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섭니다.
<인터뷰>무흐신('오만 환경 모임' 박사):"나무를 훼손하지 않고 올바르게 유향 채취하는 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게 필요하다고 느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또 다른 유향 나무 자생지인 와디 다우카 지역. 지난 2000년,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이곳엔 유향 나무 보존을 위해 오만 정부가 이식한 5천 그루가 시험 재배 중입니다. 하지만 야생성이 강한 유향 나무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입니다.
5천 년을 이어온 고대의 향기 유향. 이 은은한 향기를 지켜가기 위해 뒤늦게나마 보호운동이 시작돼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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