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나 여고 동창인데…” 친구 사칭해 억대 사기

입력 2012.05.24 (09:02) 수정 2012.05.24 (09:1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고등학교 시절 친구라고 하면,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뭔가 특별한 게 있죠.

특히 오랫동안 가족들 뒷바라지만 해온 중년 주부들이라면 정말 만나고 싶고, 궁금한 친구가 있을 거에요.

네, 그런데, 바로 이런 주부들을 울린 여성이 있습니다.

그리운 친구라고 속이고, 돈을 가로챈 건데요.

오언종 아나운서, 수십 년 만에 전화 통화만 몇 번 했을 뿐인데, 덜컥 큰돈을 보내줬다는 게 저로선 잘 이해가 안 가요?

순수하고 아름답던 추억을 간직한 여고 시절. 그대 그 시절을 함께 한 친구를 만나고 싶어 하는 중년 여성들의 심리를 이용한 것이죠.

수 십 년 만에 애타게 보고 싶던 친구와 통화를 하게 된 피해자들은 남편이 직업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간절한 부탁에 덜컥 수 천 만 원을 건넸습니다.

여고 동창을 사칭해 사기행각을 벌인 씁쓸한 사건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단발머리를 곱게 빗고, 정성스럽게 다려 입은 교복치마...

빛바랜 사진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수줍게 포즈를 취하는 여고생들...

아름답고 순수한 여고시절의 그 친구들, 시간이 지날수록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할 텐데요,

<인터뷰> 한경애(서울시 신길동) : “뭐라고 할까... 가끔 이제 우울하고 그럴 때 (친구들이) 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나이 먹으면 다 그렇죠. 아무래도 친구들 생각 많이 하죠.”

<녹취> 한선주(인천시 효성동) :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그 시대가 가장 인생에서 꽃피던 시절이잖아요. 꿈도 많고. 그러니까 그 시절을 같이 했던 친구들이 그리운 거죠.”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50살 주부 한 모 씨 역시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3년 전, 한 씨는 여고시절 단짝친구의 소식을 알고 싶어, 여고 동문 홈페이지에 친구를 찾는다는 사연을 남겼습니다.

<녹취> 피해자(음성변조) : “한 3년 전에 고등학교 사이트에다가 제가 보고 싶은 친구의 이름을 올리고, 연락을 주라 (하고) 제 휴대전화 번호를 남겼어요. 그런데 1년 후에 미국에서 제 친구 (강씨)라고 하면서 전화가 왔어요. 제 휴대전화로. 그 친구는 너무너무 보고 싶었던 친구였어요.”

거짓말처럼... 사연을 남긴 진 1년 만에 미국에서 걸려온 친구의 전화. 자신이 한 씨가 찾는 강 씨라고 했습니다.

30여 년 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는 다행히 미국에 잘 정착해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였는데요,

<녹취> 피해자(음성변조) : “(한국에서) 이혼하고, 미국 들어가서 지금은 미국남자랑 살고 있는데, 00뱅크, 자기가 지점장이래요. ‘너 참 대단하다’그랬는데, 그 애가 고등학교 때 영어를 잘했거든요.”

목소리나 말투는 어렴풋이 남아있는 친구와 달랐지만, 30년 넘는 세월 탓이려니 했습니다.

한 씨가 이 여성이 자신의 친구 강 씨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요,

친구와 통화가 된 직후, 학교 후배라는 여성이 보내온 메일 한통 때문이었습니다.

<녹취> 피해자(음성변조) : “(후배라는 여성이) ‘며칠 전에 선배님이 (친구찾는) 내용을 보고 000선배한테 이 내용을 전해드렸는데, 혹시 전화받으셨나요?’ 하고 이메일이 온 거예요. 제 이메일로. 그래서 제가 후배인 줄 알고요, ‘네네 감사합니다. 어제 통화했어요.‘ 그랬어요.”

이렇게 혹시나 하는 의심을 할 새도 없이, 드디어 자신이 그토록 찾고 싶었던 친구를 찾았다고 믿게 된 겁니다.

아름다운 여고시절,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

그런데, 두 번 쯤 연락을 주고 받았을 때, 강 씨는 한 씨에게 부탁할 게 있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녹취> 피해자(음성변조) : “미국남편이 (군인이라) 별을 다는데, 별 달기 전에 재산공개가 들어간대요. (남편) 몰래 돈을 가지고 있는데, 이게 좀 문제가 됐다, 이 돈이 날아가게 생겼다 (하면서) 남편이 별도 못 단다는 거야. 해고 된다는 거예요. (나에게) 좀 도와줄 수 없냐고 (했어요.)”

내용인 즉, 자신이 모아놓은 거액의 비자금을 한 씨에게 맡길 테니, 은행지점장인 자신의 역량으로 서류를 꾸밀 수 있도록 자신과 거래한 흔적을 만들어달라는 거였습니다.

바로 되돌려 줄 테니 일단 돈을 먼저 보내달라는 부탁이었는데요,

친구 남편이 직업까지 잃게 생겼다는 말에,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한 씨는 남편의 사업자금 6천 7백여 만 원을 선뜻 보내줬습니다.

<녹취> 피해자(음성변조) : “2010년 10월 29일 날 제가 돈을 5만9천 달러를 보냈고... (사기라고) 전혀 의심을 못했죠. (친구의) 그 말을 제가 백퍼센트 (믿었어요.) 나도 모르겠어요. 귀신에 홀렸나 봐요. ”

하지만 돈을 보낸 직후, 친구는 연락을 끊고,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때서야.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요,

알고 보니 그 여인은 한 씨의 친구도 아니었고, 학교 후배인척 연기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 씨가 돈을 보낸 통장 명의자와 후배라는 여성이 보낸 메일 이름이 같죠?

하지만 이 여인을 검거하기는 쉽지 않았는데요,

미국인과 결혼해 2008년 미국시민권을 취득한 박 여인이, 미국시민권자의 신분으로 추적을 피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김승태(경위/경기지방경찰청 제2청 외사계) : “(피의자가) 미국에 있었으니까 한국에서는 검거가 불가능하고, 전화도 미국 휴대전화고, 이메일도 미국 이메일이고, 돈을 받는 통장도 미국 통장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추적이 불가능한 상태였어요.”

인터폴과의 공조수사를 통해 사건발생 1년 반 만에 경찰에 붙잡힌 41살 박 모 여인...

그런데, 박 여인의 동일한 사기수법에 당한 4,50대 중년 여성들, 한 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뷰> 김승태(경위/경기지방경찰청 제2청 외사계) : “저희가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피해자) 5명, (피해금액은) 18만 달러, 2억 원 정도 돼요.(피해자들이) 여고생 시절 동심으로 돌아가니까 (피의자의) 그 말을 그냥 믿었고, 이 여자가 미국 유명은행의 지점장이라고 하니까 더 이상 의심을 안 하고 (사기를 당했습니다.)”

끈질긴 추적 끝에 박 여인은 검거됐지만, 돈도 잃고, 자신들의 아름다운 추억마저 범죄에 이용된 피해여성들의 상처는 꽤 깊어보였습니다.

<녹취> 피해자(음성변조) : “진짜 궁금했어요. (사기범이) 진짜 이 친구인가. 아니면 또 다른 사람인가. 전혀 엉뚱한 사람이 어찌어찌 알고서 사기를 친 거예요. 뭐가 뭔지 도저히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멍해가지고요.”

여고시절 오래된 친구를 그리워하는 중년여성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해 돈을 편취한 이번 사건.

경찰은 미국시민권자인 41살 박 모 여인을 사기혐의로 구속했는데요,

친구 찾기 사이트나 학교 홈페이지를 이용해 친구를 찾을 때는 개인 연락처보다는 메일 주소를 남기고, 주위 다른 친구들과 함께 연락을 취하는 등 사전조치가 필요해 보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뉴스 따라잡기] “나 여고 동창인데…” 친구 사칭해 억대 사기
    • 입력 2012-05-24 09:02:37
    • 수정2012-05-24 09:14:24
    아침뉴스타임
<앵커 멘트> 고등학교 시절 친구라고 하면,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뭔가 특별한 게 있죠. 특히 오랫동안 가족들 뒷바라지만 해온 중년 주부들이라면 정말 만나고 싶고, 궁금한 친구가 있을 거에요. 네, 그런데, 바로 이런 주부들을 울린 여성이 있습니다. 그리운 친구라고 속이고, 돈을 가로챈 건데요. 오언종 아나운서, 수십 년 만에 전화 통화만 몇 번 했을 뿐인데, 덜컥 큰돈을 보내줬다는 게 저로선 잘 이해가 안 가요? 순수하고 아름답던 추억을 간직한 여고 시절. 그대 그 시절을 함께 한 친구를 만나고 싶어 하는 중년 여성들의 심리를 이용한 것이죠. 수 십 년 만에 애타게 보고 싶던 친구와 통화를 하게 된 피해자들은 남편이 직업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간절한 부탁에 덜컥 수 천 만 원을 건넸습니다. 여고 동창을 사칭해 사기행각을 벌인 씁쓸한 사건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단발머리를 곱게 빗고, 정성스럽게 다려 입은 교복치마... 빛바랜 사진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수줍게 포즈를 취하는 여고생들... 아름답고 순수한 여고시절의 그 친구들, 시간이 지날수록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할 텐데요, <인터뷰> 한경애(서울시 신길동) : “뭐라고 할까... 가끔 이제 우울하고 그럴 때 (친구들이) 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나이 먹으면 다 그렇죠. 아무래도 친구들 생각 많이 하죠.” <녹취> 한선주(인천시 효성동) :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그 시대가 가장 인생에서 꽃피던 시절이잖아요. 꿈도 많고. 그러니까 그 시절을 같이 했던 친구들이 그리운 거죠.”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50살 주부 한 모 씨 역시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3년 전, 한 씨는 여고시절 단짝친구의 소식을 알고 싶어, 여고 동문 홈페이지에 친구를 찾는다는 사연을 남겼습니다. <녹취> 피해자(음성변조) : “한 3년 전에 고등학교 사이트에다가 제가 보고 싶은 친구의 이름을 올리고, 연락을 주라 (하고) 제 휴대전화 번호를 남겼어요. 그런데 1년 후에 미국에서 제 친구 (강씨)라고 하면서 전화가 왔어요. 제 휴대전화로. 그 친구는 너무너무 보고 싶었던 친구였어요.” 거짓말처럼... 사연을 남긴 진 1년 만에 미국에서 걸려온 친구의 전화. 자신이 한 씨가 찾는 강 씨라고 했습니다. 30여 년 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는 다행히 미국에 잘 정착해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였는데요, <녹취> 피해자(음성변조) : “(한국에서) 이혼하고, 미국 들어가서 지금은 미국남자랑 살고 있는데, 00뱅크, 자기가 지점장이래요. ‘너 참 대단하다’그랬는데, 그 애가 고등학교 때 영어를 잘했거든요.” 목소리나 말투는 어렴풋이 남아있는 친구와 달랐지만, 30년 넘는 세월 탓이려니 했습니다. 한 씨가 이 여성이 자신의 친구 강 씨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요, 친구와 통화가 된 직후, 학교 후배라는 여성이 보내온 메일 한통 때문이었습니다. <녹취> 피해자(음성변조) : “(후배라는 여성이) ‘며칠 전에 선배님이 (친구찾는) 내용을 보고 000선배한테 이 내용을 전해드렸는데, 혹시 전화받으셨나요?’ 하고 이메일이 온 거예요. 제 이메일로. 그래서 제가 후배인 줄 알고요, ‘네네 감사합니다. 어제 통화했어요.‘ 그랬어요.” 이렇게 혹시나 하는 의심을 할 새도 없이, 드디어 자신이 그토록 찾고 싶었던 친구를 찾았다고 믿게 된 겁니다. 아름다운 여고시절,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 그런데, 두 번 쯤 연락을 주고 받았을 때, 강 씨는 한 씨에게 부탁할 게 있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녹취> 피해자(음성변조) : “미국남편이 (군인이라) 별을 다는데, 별 달기 전에 재산공개가 들어간대요. (남편) 몰래 돈을 가지고 있는데, 이게 좀 문제가 됐다, 이 돈이 날아가게 생겼다 (하면서) 남편이 별도 못 단다는 거야. 해고 된다는 거예요. (나에게) 좀 도와줄 수 없냐고 (했어요.)” 내용인 즉, 자신이 모아놓은 거액의 비자금을 한 씨에게 맡길 테니, 은행지점장인 자신의 역량으로 서류를 꾸밀 수 있도록 자신과 거래한 흔적을 만들어달라는 거였습니다. 바로 되돌려 줄 테니 일단 돈을 먼저 보내달라는 부탁이었는데요, 친구 남편이 직업까지 잃게 생겼다는 말에,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한 씨는 남편의 사업자금 6천 7백여 만 원을 선뜻 보내줬습니다. <녹취> 피해자(음성변조) : “2010년 10월 29일 날 제가 돈을 5만9천 달러를 보냈고... (사기라고) 전혀 의심을 못했죠. (친구의) 그 말을 제가 백퍼센트 (믿었어요.) 나도 모르겠어요. 귀신에 홀렸나 봐요. ” 하지만 돈을 보낸 직후, 친구는 연락을 끊고,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때서야.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요, 알고 보니 그 여인은 한 씨의 친구도 아니었고, 학교 후배인척 연기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 씨가 돈을 보낸 통장 명의자와 후배라는 여성이 보낸 메일 이름이 같죠? 하지만 이 여인을 검거하기는 쉽지 않았는데요, 미국인과 결혼해 2008년 미국시민권을 취득한 박 여인이, 미국시민권자의 신분으로 추적을 피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김승태(경위/경기지방경찰청 제2청 외사계) : “(피의자가) 미국에 있었으니까 한국에서는 검거가 불가능하고, 전화도 미국 휴대전화고, 이메일도 미국 이메일이고, 돈을 받는 통장도 미국 통장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추적이 불가능한 상태였어요.” 인터폴과의 공조수사를 통해 사건발생 1년 반 만에 경찰에 붙잡힌 41살 박 모 여인... 그런데, 박 여인의 동일한 사기수법에 당한 4,50대 중년 여성들, 한 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뷰> 김승태(경위/경기지방경찰청 제2청 외사계) : “저희가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피해자) 5명, (피해금액은) 18만 달러, 2억 원 정도 돼요.(피해자들이) 여고생 시절 동심으로 돌아가니까 (피의자의) 그 말을 그냥 믿었고, 이 여자가 미국 유명은행의 지점장이라고 하니까 더 이상 의심을 안 하고 (사기를 당했습니다.)” 끈질긴 추적 끝에 박 여인은 검거됐지만, 돈도 잃고, 자신들의 아름다운 추억마저 범죄에 이용된 피해여성들의 상처는 꽤 깊어보였습니다. <녹취> 피해자(음성변조) : “진짜 궁금했어요. (사기범이) 진짜 이 친구인가. 아니면 또 다른 사람인가. 전혀 엉뚱한 사람이 어찌어찌 알고서 사기를 친 거예요. 뭐가 뭔지 도저히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멍해가지고요.” 여고시절 오래된 친구를 그리워하는 중년여성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해 돈을 편취한 이번 사건. 경찰은 미국시민권자인 41살 박 모 여인을 사기혐의로 구속했는데요, 친구 찾기 사이트나 학교 홈페이지를 이용해 친구를 찾을 때는 개인 연락처보다는 메일 주소를 남기고, 주위 다른 친구들과 함께 연락을 취하는 등 사전조치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