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단일화, 2002년 때와 같은점·다른점은?
입력 2012.11.1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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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간의 단일화 과정을 보면 지난 2천 2년 대선을 연상케 하는데요.
10년 전과 지금,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모습의 단일화 과정을 김병용 기자가 비교했습니다.
<리포트>
2002년 대선 후보 등록 20일 전, 노무현-정몽준 후보측이 당시 부동의 1위였던 이회창 후보를 꺾을 방안을 찾아보자며 만났습니다.
단일화를 전제로 회동한 이번과는 다른점입니다.
양측은 이른바 '담판'을 거쳐 협상 열흘만에 단일화 룰에 전격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이틀 뒤 여론조사 '룰'이 유출됐다는 이유로 정 후보 측 협상단이 총사퇴하고 결렬 위기에 봉착합니다.
<녹취> 이철(국민통합21 단일화 추진단장/2002.11.18 - 후보 등록 9일전) : "공정하고 객관적인 여론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번엔 룰 문제는 꺼내보지도 못하고 한 번의 상견례 뒤 하루 만에 양측이 돌아앉았습니다.
다시 2002년, 양측은 이틀간의 냉전 끝에 다시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녹취> 신계륜(노무현 후보 비서실장) : "충분히 협의해서 빠른 시일 내에, 시간 내에 좋은 결론을 낼 수 있다."
27시간의 마라톤 협상에도 돌파구를 찾지 못했지만 노 후보가 정 후보의 요구를 전격 수용하면서 TV 토론과 여론조사가 실시됐습니다.
<녹취> 노무현(민주당 대통령 후보) : "이번에도 역시 국민 여러분을 믿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녹취> 정몽준(국민통합21 대통령 후보) : "저는 저의 운명을 국민 여러분 손에 맡겼습니다."
양측이 러브샷을 하기까지 두 번의 결렬 위기를 거쳤습니다.
이번 대선, 후보 등록까진 열흘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여론조사 외에 다른 방법을 추가하기도 현실적으론 어려운 시간입니다.
2002년엔 실무팀의 실수를 후보가 직접 나서 풀었습니다.
이번에도 단일화의 성패는 결국 두 후보의 결단에 따라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KBS 뉴스 김병용입니다.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간의 단일화 과정을 보면 지난 2천 2년 대선을 연상케 하는데요.
10년 전과 지금,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모습의 단일화 과정을 김병용 기자가 비교했습니다.
<리포트>
2002년 대선 후보 등록 20일 전, 노무현-정몽준 후보측이 당시 부동의 1위였던 이회창 후보를 꺾을 방안을 찾아보자며 만났습니다.
단일화를 전제로 회동한 이번과는 다른점입니다.
양측은 이른바 '담판'을 거쳐 협상 열흘만에 단일화 룰에 전격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이틀 뒤 여론조사 '룰'이 유출됐다는 이유로 정 후보 측 협상단이 총사퇴하고 결렬 위기에 봉착합니다.
<녹취> 이철(국민통합21 단일화 추진단장/2002.11.18 - 후보 등록 9일전) : "공정하고 객관적인 여론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번엔 룰 문제는 꺼내보지도 못하고 한 번의 상견례 뒤 하루 만에 양측이 돌아앉았습니다.
다시 2002년, 양측은 이틀간의 냉전 끝에 다시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녹취> 신계륜(노무현 후보 비서실장) : "충분히 협의해서 빠른 시일 내에, 시간 내에 좋은 결론을 낼 수 있다."
27시간의 마라톤 협상에도 돌파구를 찾지 못했지만 노 후보가 정 후보의 요구를 전격 수용하면서 TV 토론과 여론조사가 실시됐습니다.
<녹취> 노무현(민주당 대통령 후보) : "이번에도 역시 국민 여러분을 믿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녹취> 정몽준(국민통합21 대통령 후보) : "저는 저의 운명을 국민 여러분 손에 맡겼습니다."
양측이 러브샷을 하기까지 두 번의 결렬 위기를 거쳤습니다.
이번 대선, 후보 등록까진 열흘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여론조사 외에 다른 방법을 추가하기도 현실적으론 어려운 시간입니다.
2002년엔 실무팀의 실수를 후보가 직접 나서 풀었습니다.
이번에도 단일화의 성패는 결국 두 후보의 결단에 따라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KBS 뉴스 김병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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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2-11-17 21:50:28
<앵커 멘트>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간의 단일화 과정을 보면 지난 2천 2년 대선을 연상케 하는데요.
10년 전과 지금,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모습의 단일화 과정을 김병용 기자가 비교했습니다.
<리포트>
2002년 대선 후보 등록 20일 전, 노무현-정몽준 후보측이 당시 부동의 1위였던 이회창 후보를 꺾을 방안을 찾아보자며 만났습니다.
단일화를 전제로 회동한 이번과는 다른점입니다.
양측은 이른바 '담판'을 거쳐 협상 열흘만에 단일화 룰에 전격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이틀 뒤 여론조사 '룰'이 유출됐다는 이유로 정 후보 측 협상단이 총사퇴하고 결렬 위기에 봉착합니다.
<녹취> 이철(국민통합21 단일화 추진단장/2002.11.18 - 후보 등록 9일전) : "공정하고 객관적인 여론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번엔 룰 문제는 꺼내보지도 못하고 한 번의 상견례 뒤 하루 만에 양측이 돌아앉았습니다.
다시 2002년, 양측은 이틀간의 냉전 끝에 다시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녹취> 신계륜(노무현 후보 비서실장) : "충분히 협의해서 빠른 시일 내에, 시간 내에 좋은 결론을 낼 수 있다."
27시간의 마라톤 협상에도 돌파구를 찾지 못했지만 노 후보가 정 후보의 요구를 전격 수용하면서 TV 토론과 여론조사가 실시됐습니다.
<녹취> 노무현(민주당 대통령 후보) : "이번에도 역시 국민 여러분을 믿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녹취> 정몽준(국민통합21 대통령 후보) : "저는 저의 운명을 국민 여러분 손에 맡겼습니다."
양측이 러브샷을 하기까지 두 번의 결렬 위기를 거쳤습니다.
이번 대선, 후보 등록까진 열흘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여론조사 외에 다른 방법을 추가하기도 현실적으론 어려운 시간입니다.
2002년엔 실무팀의 실수를 후보가 직접 나서 풀었습니다.
이번에도 단일화의 성패는 결국 두 후보의 결단에 따라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KBS 뉴스 김병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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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용 기자 kb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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