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완전범죄는 없다” 진화하는 과학 수사

입력 2013.01.25 (08:35) 수정 2013.01.25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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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CSI란 미국 드라마 보신 적 있으신가요?

완전범죄를 하기 위해 온갖 머리를 굴리는 범죄자와 이걸 잡아내려는 경찰 과학수사팀이 쫓고 쫓기는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이 드라마 못지않은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지문 하나 안 남긴 범인도 잡아내고야 마는 우리 과학수사대의 활약을 취재했습니다.

김기흥 기자,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일들이 실제로도 가능한 게 많다죠?

<기자 멘트>

사건 현장에서 먹다 남은 깍두기를 통해 용의자의 성씨를 특정할 수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저도 처음엔 그랬는데요.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첨단 과학 수사 기법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흔적을 없애려는 그들과 무조건 찾아야 하는 전쟁아닌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먹다 남은 깍두기와 찢겨진 다이어리를 통해 과학 수사 기법의 현주소를 들어다봤습니다.

<리포트>

지난해 10월, 이 식당에선 잔혹한 살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석 달이나 지났지만 가게 문은 지금까지도 굳게 닫혀있는데요.

주변 상인들은 아직 그 때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녹취> 인근 상인 (음성변조) : "나는 진짜 놀랐죠. 며칠 동안 후유증이 심했죠."

<녹취> 인근 상인 (음성변조) : "심리상으로는 조금 불안 불안하고 무서워서 밤에 아무도 안 돌아다녔어요."

식당 안에 설치된 CCTV입니다.

한 남성이 밥을 먹고 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흉기를 꺼내 들고 여종업원이 쉬는 곳으로 갑니다.

순식간에 결코 해선 안 될 일을 저지르고 마는데요.

다시 식탁으로 돌아온 이 남성.

너무나도 태연합니다.

범행 흔적을 감추려고, 사용한 수저와 그릇은 물론 음식 찌꺼기까지 봉투에 담아가는 치밀함을 보이는데요.

하지만 이 끔찍한 현장을 목격한 건 오로지 이 CCTV 뿐이었습니다.

<녹취> 인근 상인 (음성변조) : "못 봤죠. 봤으면 제가 신고했죠."

옷소매로 손을 감싼 채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 범행 후에는 장갑을 끼고 금고에 있던 현금을 챙기는 등 완전범죄를 노렸습니다.

그런 만큼 경찰 수사는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CCTV 화면 속의 용의자를 공개수배까지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인터뷰> 차상학 (팀장/청주 청남경찰서 강력범죄수사팀) : "(지문을 안 남기려고) 장갑을 낀다거나 아니면 자기가 만졌던 물건을 닦는 경우는 종종 있었는데 먹던 수저, 물 컵, 밥그릇까지 가져간 건 좀 특이한 경우죠."

하지만 이런 치밀함도 경찰의 집요함을 당해내진 못했습니다.

이 남성이 미처 챙기지 못한 ‘아주 작은’ 물증이 현장에서 발견된 겁니다.

<인터뷰> 차상학(팀장/청주 청남경찰서 강력범죄수사팀) : "(중간에 몇 가지를 빠뜨린 거죠. (먹던) 깍두기 일부와 먹다 버린 뼈다귀 몇 개 부분..."

남성이 베어 문 깍두기와 뼈다귀에서 극소량의 타액이 묻어있었던 건데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여기서 채취된 시료만으로 남성이 희귀 성씨인 현 모 씨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아버지의 성씨를 이어받는 부계사회에서는 성(性) 염색체인 Y염색체의 지표를 분석해 범인의 성씨를 추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 박기원(센터장/국립과학수사연구원 유전자감식센터) : "아주 극소량, 그리고 완전히 부패된 증거물에서도 분석이 가능해졌습니다."

성씨를 파악해 수사범위를 좁혀나간 경찰은 탐문수사 등을 통해 결국 사건 발생 열흘 만에 44살 현모 씨를 붙잡았습니다.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겠다는 범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인터뷰> 심중규(경사/청주 청남경찰서) : "(반찬을) 베어 먹은 자국에서 유전자(DNA) 정보가 검출된 거죠. 설마 베어 먹은 부분에서 유전자가 채취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성씨까지 가려낼 정도로 발전한 DNA 분석 수사는 미제사건 해결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5년 전 이 산에서는 50대 여성등산객이 살해됐습니다.

<인터뷰> 최경호(경사/인천 남동경찰서) : "담배 두 개비가 여기 떨어져 있었죠. 하나는 피해자의 DNA가 나왔고요. 하나는 남자의 것이 발견됐습니다."

담배꽁초에 남아 있던 타액을 통해 용의자로 보이는 남성의 DNA는 확보됐지만 수사는 답보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석 달 전, 드디어 용의자의 신원이 파악됐는데요.

이후 수사는 급물살을 탔습니다.

그런데 용의자로 지목된 50대 권 모 씨는 절도와 성폭행 혐의로 이미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습니다.

권 씨는 살인사건 혐의를 완전히 부인했는데요.

하지만 증거가 나왔습니다.

권 씨가 수감 되면서 압수된 다이어리의 12월 부분이 찢긴 상태였는데, 사건 당시 흉기를 쌌던 종이가 바로 그 12월 분 속지였던 겁니다.

<인터뷰> 최경호(경사/인천 남동경찰서) : "구속 수감될 때 가지고 있던 다이어리를 확인해서 그 뒷부분을 맞춰본 거죠. 그랬더니 같은 장에서 뜯겨져 나온 것을 확인했고요."

결국 권 씨는 출소 1년을 앞두고 가중처벌을 받을 처지가 됐습니다.

그런데 5년 전 DNA 분석결과로는 알 수 없었던 용의자 정보를, 석 달 전 경찰이 파악할 수 있었던 이윤 뭘까요?

바로 지난 2010년 강력 범죄자의 DNA를 채취해 영구 보관하는 법이 시행되면서, 권 씨의 DNA가 전산기록으로 저장된 덕분이었습니다.

<인터뷰> 박기원(센터장/국립과학수사연구원 유전자감식센터) : "(사건 현장)증거물에서 검출된 유전자형 그리고 구속 피의자의 유전자형을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하고 나중에 검색하는 시스템입니다. (제도 시행 이후) 그동안 미제로 남았던 사건들이 상당히 많이 해결되고 있습니다. "

여기에 지문 감식 기술의 발달도 미제사건을 푸는 데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 검거되기까지 무려 8년 동안 주택가에서 연쇄 성폭행을 저지른 이른바 ‘면목동 발바리’ 사건.

5년 전 범행현장에 남긴 엄지손톱 절반 크기의 지문 일부가 검거에 결정적이었습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흐릿했던 지문을 5년 만에 감식해 낸 겁니다.

<인터뷰> 장철환(지문감정관/경찰청 과학수사센터) : "약 40% 정도 발견률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 못 밝히던 지문들이 밝혀지기 시작했고요. 그 부분들은 수사를 통해 범인 검거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경찰은 개선된 지문 감식 기술을 토대로 앞으로 3개월간 주요 미제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용의자 지문을 재검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입술 지문이나 발바닥 지문 등 다양한 범죄 흔적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할 계획입니다.

<인터뷰> 장철환(지문감정관/경찰청 과학수사센터) : "최근 점점 범죄자들의 증거인멸 시도가 증가하고 있고요. 조금이라도 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여러 가지 기술들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점점 교묘해지는 범죄만큼 이를 따라잡기 위한 첨단 과학수사 기법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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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1-25 08:37:36
    • 수정2013-01-25 09: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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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CSI란 미국 드라마 보신 적 있으신가요? 완전범죄를 하기 위해 온갖 머리를 굴리는 범죄자와 이걸 잡아내려는 경찰 과학수사팀이 쫓고 쫓기는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이 드라마 못지않은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지문 하나 안 남긴 범인도 잡아내고야 마는 우리 과학수사대의 활약을 취재했습니다. 김기흥 기자,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일들이 실제로도 가능한 게 많다죠? <기자 멘트> 사건 현장에서 먹다 남은 깍두기를 통해 용의자의 성씨를 특정할 수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저도 처음엔 그랬는데요.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첨단 과학 수사 기법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흔적을 없애려는 그들과 무조건 찾아야 하는 전쟁아닌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먹다 남은 깍두기와 찢겨진 다이어리를 통해 과학 수사 기법의 현주소를 들어다봤습니다. <리포트> 지난해 10월, 이 식당에선 잔혹한 살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석 달이나 지났지만 가게 문은 지금까지도 굳게 닫혀있는데요. 주변 상인들은 아직 그 때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녹취> 인근 상인 (음성변조) : "나는 진짜 놀랐죠. 며칠 동안 후유증이 심했죠." <녹취> 인근 상인 (음성변조) : "심리상으로는 조금 불안 불안하고 무서워서 밤에 아무도 안 돌아다녔어요." 식당 안에 설치된 CCTV입니다. 한 남성이 밥을 먹고 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흉기를 꺼내 들고 여종업원이 쉬는 곳으로 갑니다. 순식간에 결코 해선 안 될 일을 저지르고 마는데요. 다시 식탁으로 돌아온 이 남성. 너무나도 태연합니다. 범행 흔적을 감추려고, 사용한 수저와 그릇은 물론 음식 찌꺼기까지 봉투에 담아가는 치밀함을 보이는데요. 하지만 이 끔찍한 현장을 목격한 건 오로지 이 CCTV 뿐이었습니다. <녹취> 인근 상인 (음성변조) : "못 봤죠. 봤으면 제가 신고했죠." 옷소매로 손을 감싼 채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 범행 후에는 장갑을 끼고 금고에 있던 현금을 챙기는 등 완전범죄를 노렸습니다. 그런 만큼 경찰 수사는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CCTV 화면 속의 용의자를 공개수배까지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인터뷰> 차상학 (팀장/청주 청남경찰서 강력범죄수사팀) : "(지문을 안 남기려고) 장갑을 낀다거나 아니면 자기가 만졌던 물건을 닦는 경우는 종종 있었는데 먹던 수저, 물 컵, 밥그릇까지 가져간 건 좀 특이한 경우죠." 하지만 이런 치밀함도 경찰의 집요함을 당해내진 못했습니다. 이 남성이 미처 챙기지 못한 ‘아주 작은’ 물증이 현장에서 발견된 겁니다. <인터뷰> 차상학(팀장/청주 청남경찰서 강력범죄수사팀) : "(중간에 몇 가지를 빠뜨린 거죠. (먹던) 깍두기 일부와 먹다 버린 뼈다귀 몇 개 부분..." 남성이 베어 문 깍두기와 뼈다귀에서 극소량의 타액이 묻어있었던 건데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여기서 채취된 시료만으로 남성이 희귀 성씨인 현 모 씨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아버지의 성씨를 이어받는 부계사회에서는 성(性) 염색체인 Y염색체의 지표를 분석해 범인의 성씨를 추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 박기원(센터장/국립과학수사연구원 유전자감식센터) : "아주 극소량, 그리고 완전히 부패된 증거물에서도 분석이 가능해졌습니다." 성씨를 파악해 수사범위를 좁혀나간 경찰은 탐문수사 등을 통해 결국 사건 발생 열흘 만에 44살 현모 씨를 붙잡았습니다.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겠다는 범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인터뷰> 심중규(경사/청주 청남경찰서) : "(반찬을) 베어 먹은 자국에서 유전자(DNA) 정보가 검출된 거죠. 설마 베어 먹은 부분에서 유전자가 채취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성씨까지 가려낼 정도로 발전한 DNA 분석 수사는 미제사건 해결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5년 전 이 산에서는 50대 여성등산객이 살해됐습니다. <인터뷰> 최경호(경사/인천 남동경찰서) : "담배 두 개비가 여기 떨어져 있었죠. 하나는 피해자의 DNA가 나왔고요. 하나는 남자의 것이 발견됐습니다." 담배꽁초에 남아 있던 타액을 통해 용의자로 보이는 남성의 DNA는 확보됐지만 수사는 답보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석 달 전, 드디어 용의자의 신원이 파악됐는데요. 이후 수사는 급물살을 탔습니다. 그런데 용의자로 지목된 50대 권 모 씨는 절도와 성폭행 혐의로 이미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습니다. 권 씨는 살인사건 혐의를 완전히 부인했는데요. 하지만 증거가 나왔습니다. 권 씨가 수감 되면서 압수된 다이어리의 12월 부분이 찢긴 상태였는데, 사건 당시 흉기를 쌌던 종이가 바로 그 12월 분 속지였던 겁니다. <인터뷰> 최경호(경사/인천 남동경찰서) : "구속 수감될 때 가지고 있던 다이어리를 확인해서 그 뒷부분을 맞춰본 거죠. 그랬더니 같은 장에서 뜯겨져 나온 것을 확인했고요." 결국 권 씨는 출소 1년을 앞두고 가중처벌을 받을 처지가 됐습니다. 그런데 5년 전 DNA 분석결과로는 알 수 없었던 용의자 정보를, 석 달 전 경찰이 파악할 수 있었던 이윤 뭘까요? 바로 지난 2010년 강력 범죄자의 DNA를 채취해 영구 보관하는 법이 시행되면서, 권 씨의 DNA가 전산기록으로 저장된 덕분이었습니다. <인터뷰> 박기원(센터장/국립과학수사연구원 유전자감식센터) : "(사건 현장)증거물에서 검출된 유전자형 그리고 구속 피의자의 유전자형을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하고 나중에 검색하는 시스템입니다. (제도 시행 이후) 그동안 미제로 남았던 사건들이 상당히 많이 해결되고 있습니다. " 여기에 지문 감식 기술의 발달도 미제사건을 푸는 데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 검거되기까지 무려 8년 동안 주택가에서 연쇄 성폭행을 저지른 이른바 ‘면목동 발바리’ 사건. 5년 전 범행현장에 남긴 엄지손톱 절반 크기의 지문 일부가 검거에 결정적이었습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흐릿했던 지문을 5년 만에 감식해 낸 겁니다. <인터뷰> 장철환(지문감정관/경찰청 과학수사센터) : "약 40% 정도 발견률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 못 밝히던 지문들이 밝혀지기 시작했고요. 그 부분들은 수사를 통해 범인 검거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경찰은 개선된 지문 감식 기술을 토대로 앞으로 3개월간 주요 미제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용의자 지문을 재검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입술 지문이나 발바닥 지문 등 다양한 범죄 흔적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할 계획입니다. <인터뷰> 장철환(지문감정관/경찰청 과학수사센터) : "최근 점점 범죄자들의 증거인멸 시도가 증가하고 있고요. 조금이라도 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여러 가지 기술들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점점 교묘해지는 범죄만큼 이를 따라잡기 위한 첨단 과학수사 기법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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