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eye] 난개발 역습? 마을이 없어졌다!

입력 2013.05.11 (08:37) 수정 2013.05.1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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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뭔가가 막 솟아오르고 있죠?

화면으로 봐도 정말 신기하네요?

용암도 아닌데 맨땅에서 진흙이 솟아오르는 장면입니다.

인도네시아 자바섬 동부 지역 얘긴데 진흙이 도시 하나를 송두리째 집어삼켜 버렸다고 합니다.

7년 전 인도네시아 자원개발회사가 가스공을 뚫다가 빚어진 일이라는데요

자원 개발이 낳은 부작용 진흙 대재앙이 업체 잘못일까요? 자연재해ㄹ까요?

알 수 없는 진흙 재앙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한재호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석유와 가스로 유명한 인도네시아 자바섬 동부의 자원 도시 시드아르죠.

높이 솟은 산과 마을을 배경으로 호수 하나가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7년 전 갑자기 짠물(?) 호숩니다.

이 드넓은 호수 안에는 땅속에서 솟은 진흙이 10미터 높이로 쌓여 있습니다.

한 번 빠지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늪과 같은 곳.

원래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습니다.

녹슨 양철 지붕만 간신히 남아 있는 공장이 사람이 살았음을 말해 줄 뿐입니다.

전기를 공급하던 송전탑들도 호수에 갇힌 채 기울거나 쓰러졌습니다.

12개 마을, 만 천 2백여 채의 집과 건물, 공장 30여 개가 진흙 뻘에 묻혔습니다.

4만 넘던 주민은 생활 기반을 잃었습니다.

<인터뷰> 수위토(매몰 피해지 주민) : "직업도 살림살이도 가축도 모두 잃은 채 몇 년 동안 방치된 채 살았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

비극이 시작된 건 7년 전, 2006년 5월 29일입니다.

인도네시아 굴지의 자원개발업체 '라핀도'사가 가스공을 뚫다가 갑자기 진흙이 솟구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곧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습니다.

큼지막한 콘크리트로 구멍을 메워도 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인터뷰> 푸르노또(매몰 피해지 주민) : "진흙이 주변으로 넘치기 시작했는데 곧 그치겠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더군요"

하루 최대 15만 제곱미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섭씨 40도의 뜨거운 물도 함께 분출됐습니다.

급속히 퍼져 나간 진흙탕에 집도 공장도 하나 둘씩 매몰돼 갔습니다.

2006년 첫 해에만 330만 제곱미터, 지금까지 여의도만한 720만 제곱미터가 진흙으로 뒤덮였습니다.

진흙더미는 철도와 도로까지 덮쳤고 고속도로가 끊긴 곳도 있습니다.

진흙이 본격적으로 분출하기 시작했던 지난 2007년 당시 이 철도와 바로 옆의 간선도로가 완전히 진흙에 뒤덮여 이 지역 교통이 한동안 마비됐습니다.

그러던 것을 진흙을 모두 치우고 옆에 제방을 쌓은 뒤 길을 다시 열었습니다.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생계가 막막해졌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선 이것저것 가릴 겨를이 없습니다.

이 이상한 재앙을 구경하러 찾아오는 관광객을 안내하고 끼니를 잇는 가정도 많습니다.

뻘에 갇힌 집과 농토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지만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인터뷰> 수나르니(매몰 피해지 주민) : "남편이 몇 달 전에 다리를 다쳐서 일을 못해요. 그래서 저라도 나와서 이렇게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돼요."

진흙과 함께 솟아 나오는 유황 냄새도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목이 아프고 가슴도 답답하고, 숨쉬기도 점점 힘들어져 병원을 집 드나들 듯 한다고 주민들은 하소연합니다.

<인터뷰> 무슬리마(매몰 피해지 주민) : "숨이 차고 머리가 아프니까 제 돈을 주고 계속 보건소라도 다녀야 돼요."

마을들이 매몰되자 라핀도사는 인접한 지역에 집을 지어 피해주민들을 이주시켰습니다.

갑자기 낯선 땅에 선 농촌 주민들에게 도시는 두려움 그 자체였습니다.

공사장에서 품을 팔거나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장사를 시작했다 밑천을 날리기 일쑤였습니다.

하나 둘, 주민들이 떠나가면서 빈집들도 빠르게 늘어갑니다.

<인터뷰> 수나리요(피해지 이주민) : "주택 개발 업자들이 벌써 상권을 장악해서 야채 가게도 열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농사짓던 사람들도 덩달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호수 옆 갈대밭은 원래 논이었습니다.

그런데 진흙 호수에서 나온 짠물이 논으로 흘러들어 쓸모없는 땅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농민들이 더 이상 벼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자 정부는 땅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몇 푼을 배상하고 말았습니다.

<인터뷰> 페리(매몰지 주변마을 주민) : "2007년에 제방이 무너졌을 때 진흙과 물이 흘러 들어와 논을 덮었어요. 그 뒤로 여기선 더 이상 농사를 못 지어요."

배상은 지리하고 힘겨운 싸움입니다.

호수 외곽 주민에 대한 배상은 거의 마무리됐지만,정작 매몰지 배상이 만만치 않습니다.

라핀도사가 재앙의 원인을 지진 탓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흙 분출 이틀 전, 현장에서 260킬로미터 떨어진 족자카르타에서 지진이 일어나 시추지역 지형을 심하게 흔들었다는 겁니다.

피해 주민들이 지진과 관련 없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자, 대법원은 2009년 라핀도사의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주민들은 라핀도사가 약속한 금액의 20%만 배상한 뒤 판결이 나오자 배상을 멈췄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수파르디(매몰 피해지 주민) : "2007년 대통령령으로 20%를 선지급 하고 80%는 2년 뒤 지급하는 것으로 정해놨지만 아직 소식이 없어요."

라핀도 그룹 총수는 인도네시아 제1야당 골카르당 대표인 아브리잘 바크리로 내년에 치러릴 대선 주잡니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재앙 7주년이 되는 이달 말까지 배상을 끝내라고 압박했습니다.

대선을 의식한 듯 그는 아직 못다한 배상을 마무리 짓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미 배상이 75% 끝났다며, 소유권 증명을 못하는 주민은 제외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인터뷰> 주윗토(매몰 피해지 주민) : "정부에 여러 차례 호소해봤지만 정부는 보상 문제를 심각하게 취급하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

성난 주민들은 라핀도사를 성토하고 있습니다

. 호수에서 물 빼는 작업도 막았습니다.

대형 펌프는 멈춘 지 오래 된 듯 고철 덩어리가 됐고, 물과 진흙을 분리하는 배 2척도 호수 안에 방치돼 있습니다.

물을 강으로 흘려보내던 초대형 파이프 역시 주민들이 중간을 잘라 폐물이 됐습니다.

길고 긴 감정싸움에 배상이 어떻게 얼마나 이뤄질 지는 이달 말이 돼 봐야 압니다.

자원개발의 부작용이 불러온 거대한 진흙 재앙 앞에서 인간은 할 말을 잃게 됩니다.

사람의 힘으론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지금으로선 그저 바라보는 건 말고는 달리 손쓸 방법이 없다는 사실에 주민들은 좌절합니다.

지금도 진흙은 끊임없이 솟구치고 있습니다.

피해지역도 자꾸만 넓어지고 있습니다.

사라진 도시의 비밀도 좀처럼 풀릴 것 같지 않습니다.

자연에 맞서려던 인간!

탐욕을 쫒던 도전이 치명적인 역습을 받은 건 아닌지 자연이 인간에게 엄중히 경고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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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eye] 난개발 역습? 마을이 없어졌다!
    • 입력 2013-05-11 08:43:16
    • 수정2013-05-11 09:05:56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뭔가가 막 솟아오르고 있죠?

화면으로 봐도 정말 신기하네요?

용암도 아닌데 맨땅에서 진흙이 솟아오르는 장면입니다.

인도네시아 자바섬 동부 지역 얘긴데 진흙이 도시 하나를 송두리째 집어삼켜 버렸다고 합니다.

7년 전 인도네시아 자원개발회사가 가스공을 뚫다가 빚어진 일이라는데요

자원 개발이 낳은 부작용 진흙 대재앙이 업체 잘못일까요? 자연재해ㄹ까요?

알 수 없는 진흙 재앙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한재호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석유와 가스로 유명한 인도네시아 자바섬 동부의 자원 도시 시드아르죠.

높이 솟은 산과 마을을 배경으로 호수 하나가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7년 전 갑자기 짠물(?) 호숩니다.

이 드넓은 호수 안에는 땅속에서 솟은 진흙이 10미터 높이로 쌓여 있습니다.

한 번 빠지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늪과 같은 곳.

원래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습니다.

녹슨 양철 지붕만 간신히 남아 있는 공장이 사람이 살았음을 말해 줄 뿐입니다.

전기를 공급하던 송전탑들도 호수에 갇힌 채 기울거나 쓰러졌습니다.

12개 마을, 만 천 2백여 채의 집과 건물, 공장 30여 개가 진흙 뻘에 묻혔습니다.

4만 넘던 주민은 생활 기반을 잃었습니다.

<인터뷰> 수위토(매몰 피해지 주민) : "직업도 살림살이도 가축도 모두 잃은 채 몇 년 동안 방치된 채 살았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

비극이 시작된 건 7년 전, 2006년 5월 29일입니다.

인도네시아 굴지의 자원개발업체 '라핀도'사가 가스공을 뚫다가 갑자기 진흙이 솟구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곧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습니다.

큼지막한 콘크리트로 구멍을 메워도 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인터뷰> 푸르노또(매몰 피해지 주민) : "진흙이 주변으로 넘치기 시작했는데 곧 그치겠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더군요"

하루 최대 15만 제곱미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섭씨 40도의 뜨거운 물도 함께 분출됐습니다.

급속히 퍼져 나간 진흙탕에 집도 공장도 하나 둘씩 매몰돼 갔습니다.

2006년 첫 해에만 330만 제곱미터, 지금까지 여의도만한 720만 제곱미터가 진흙으로 뒤덮였습니다.

진흙더미는 철도와 도로까지 덮쳤고 고속도로가 끊긴 곳도 있습니다.

진흙이 본격적으로 분출하기 시작했던 지난 2007년 당시 이 철도와 바로 옆의 간선도로가 완전히 진흙에 뒤덮여 이 지역 교통이 한동안 마비됐습니다.

그러던 것을 진흙을 모두 치우고 옆에 제방을 쌓은 뒤 길을 다시 열었습니다.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생계가 막막해졌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선 이것저것 가릴 겨를이 없습니다.

이 이상한 재앙을 구경하러 찾아오는 관광객을 안내하고 끼니를 잇는 가정도 많습니다.

뻘에 갇힌 집과 농토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지만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인터뷰> 수나르니(매몰 피해지 주민) : "남편이 몇 달 전에 다리를 다쳐서 일을 못해요. 그래서 저라도 나와서 이렇게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돼요."

진흙과 함께 솟아 나오는 유황 냄새도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목이 아프고 가슴도 답답하고, 숨쉬기도 점점 힘들어져 병원을 집 드나들 듯 한다고 주민들은 하소연합니다.

<인터뷰> 무슬리마(매몰 피해지 주민) : "숨이 차고 머리가 아프니까 제 돈을 주고 계속 보건소라도 다녀야 돼요."

마을들이 매몰되자 라핀도사는 인접한 지역에 집을 지어 피해주민들을 이주시켰습니다.

갑자기 낯선 땅에 선 농촌 주민들에게 도시는 두려움 그 자체였습니다.

공사장에서 품을 팔거나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장사를 시작했다 밑천을 날리기 일쑤였습니다.

하나 둘, 주민들이 떠나가면서 빈집들도 빠르게 늘어갑니다.

<인터뷰> 수나리요(피해지 이주민) : "주택 개발 업자들이 벌써 상권을 장악해서 야채 가게도 열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농사짓던 사람들도 덩달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호수 옆 갈대밭은 원래 논이었습니다.

그런데 진흙 호수에서 나온 짠물이 논으로 흘러들어 쓸모없는 땅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농민들이 더 이상 벼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자 정부는 땅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몇 푼을 배상하고 말았습니다.

<인터뷰> 페리(매몰지 주변마을 주민) : "2007년에 제방이 무너졌을 때 진흙과 물이 흘러 들어와 논을 덮었어요. 그 뒤로 여기선 더 이상 농사를 못 지어요."

배상은 지리하고 힘겨운 싸움입니다.

호수 외곽 주민에 대한 배상은 거의 마무리됐지만,정작 매몰지 배상이 만만치 않습니다.

라핀도사가 재앙의 원인을 지진 탓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흙 분출 이틀 전, 현장에서 260킬로미터 떨어진 족자카르타에서 지진이 일어나 시추지역 지형을 심하게 흔들었다는 겁니다.

피해 주민들이 지진과 관련 없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자, 대법원은 2009년 라핀도사의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주민들은 라핀도사가 약속한 금액의 20%만 배상한 뒤 판결이 나오자 배상을 멈췄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수파르디(매몰 피해지 주민) : "2007년 대통령령으로 20%를 선지급 하고 80%는 2년 뒤 지급하는 것으로 정해놨지만 아직 소식이 없어요."

라핀도 그룹 총수는 인도네시아 제1야당 골카르당 대표인 아브리잘 바크리로 내년에 치러릴 대선 주잡니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재앙 7주년이 되는 이달 말까지 배상을 끝내라고 압박했습니다.

대선을 의식한 듯 그는 아직 못다한 배상을 마무리 짓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미 배상이 75% 끝났다며, 소유권 증명을 못하는 주민은 제외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인터뷰> 주윗토(매몰 피해지 주민) : "정부에 여러 차례 호소해봤지만 정부는 보상 문제를 심각하게 취급하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

성난 주민들은 라핀도사를 성토하고 있습니다

. 호수에서 물 빼는 작업도 막았습니다.

대형 펌프는 멈춘 지 오래 된 듯 고철 덩어리가 됐고, 물과 진흙을 분리하는 배 2척도 호수 안에 방치돼 있습니다.

물을 강으로 흘려보내던 초대형 파이프 역시 주민들이 중간을 잘라 폐물이 됐습니다.

길고 긴 감정싸움에 배상이 어떻게 얼마나 이뤄질 지는 이달 말이 돼 봐야 압니다.

자원개발의 부작용이 불러온 거대한 진흙 재앙 앞에서 인간은 할 말을 잃게 됩니다.

사람의 힘으론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지금으로선 그저 바라보는 건 말고는 달리 손쓸 방법이 없다는 사실에 주민들은 좌절합니다.

지금도 진흙은 끊임없이 솟구치고 있습니다.

피해지역도 자꾸만 넓어지고 있습니다.

사라진 도시의 비밀도 좀처럼 풀릴 것 같지 않습니다.

자연에 맞서려던 인간!

탐욕을 쫒던 도전이 치명적인 역습을 받은 건 아닌지 자연이 인간에게 엄중히 경고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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