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신화 만든 ‘이상화 가족 희생·눈물’
입력 2014.02.12 (21:14)
수정 2014.02.12 (23:0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역사를 새로 쓴 이상화 선수 뒤에는 가족들의 희생과 남모를 눈물이 숨어 있었습니다.
김도환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기도하듯 꽉 잡은 두손 힘들었을 딸을 생각하며 어머니 김인순 씨는 끝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녹취> 어머니 김인순 : "상화야! 고생했다. 장하다! 상화야..."
시련이 닥친 건 90년대 말 IMF 때 아버지의 월급만으로 선수생활을 계속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머니 김인순 씨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스케이트화를 신은 딸이 밴쿠버 금메달 이후 슬럼프가 찾아오자 뒷바라지를 못해준 게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녹취> 김인순(이상화 어머니) : "상화야, 이제 남은 천 미터 유종의 미 거두자..."
함께 빙판을 지쳤던 오빠 역시 동생을 위해 선수 생활을 포기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자신의 꿈을 접은 오빠는 이상화의 숨은 조력자였습니다.
<인터뷰>오빠 : "잘했다! 상화야, 잘했어..."
지독한 연습벌레로 불리며 오르기보다 지키기가 어렵다는 챔피언 수성에 성공한 이상화,
인간 승리의 드라마가 완성되기까진 이처럼 가족의 남모를 헌신이 숨어 있었습니다.
KBS 뉴스 김도환입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역사를 새로 쓴 이상화 선수 뒤에는 가족들의 희생과 남모를 눈물이 숨어 있었습니다.
김도환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기도하듯 꽉 잡은 두손 힘들었을 딸을 생각하며 어머니 김인순 씨는 끝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녹취> 어머니 김인순 : "상화야! 고생했다. 장하다! 상화야..."
시련이 닥친 건 90년대 말 IMF 때 아버지의 월급만으로 선수생활을 계속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머니 김인순 씨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스케이트화를 신은 딸이 밴쿠버 금메달 이후 슬럼프가 찾아오자 뒷바라지를 못해준 게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녹취> 김인순(이상화 어머니) : "상화야, 이제 남은 천 미터 유종의 미 거두자..."
함께 빙판을 지쳤던 오빠 역시 동생을 위해 선수 생활을 포기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자신의 꿈을 접은 오빠는 이상화의 숨은 조력자였습니다.
<인터뷰>오빠 : "잘했다! 상화야, 잘했어..."
지독한 연습벌레로 불리며 오르기보다 지키기가 어렵다는 챔피언 수성에 성공한 이상화,
인간 승리의 드라마가 완성되기까진 이처럼 가족의 남모를 헌신이 숨어 있었습니다.
KBS 뉴스 김도환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금빛 신화 만든 ‘이상화 가족 희생·눈물’
-
- 입력 2014-02-12 21:18:01
- 수정2014-02-12 23:06:37
<앵커 멘트>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역사를 새로 쓴 이상화 선수 뒤에는 가족들의 희생과 남모를 눈물이 숨어 있었습니다.
김도환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기도하듯 꽉 잡은 두손 힘들었을 딸을 생각하며 어머니 김인순 씨는 끝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녹취> 어머니 김인순 : "상화야! 고생했다. 장하다! 상화야..."
시련이 닥친 건 90년대 말 IMF 때 아버지의 월급만으로 선수생활을 계속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머니 김인순 씨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스케이트화를 신은 딸이 밴쿠버 금메달 이후 슬럼프가 찾아오자 뒷바라지를 못해준 게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녹취> 김인순(이상화 어머니) : "상화야, 이제 남은 천 미터 유종의 미 거두자..."
함께 빙판을 지쳤던 오빠 역시 동생을 위해 선수 생활을 포기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자신의 꿈을 접은 오빠는 이상화의 숨은 조력자였습니다.
<인터뷰>오빠 : "잘했다! 상화야, 잘했어..."
지독한 연습벌레로 불리며 오르기보다 지키기가 어렵다는 챔피언 수성에 성공한 이상화,
인간 승리의 드라마가 완성되기까진 이처럼 가족의 남모를 헌신이 숨어 있었습니다.
KBS 뉴스 김도환입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역사를 새로 쓴 이상화 선수 뒤에는 가족들의 희생과 남모를 눈물이 숨어 있었습니다.
김도환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기도하듯 꽉 잡은 두손 힘들었을 딸을 생각하며 어머니 김인순 씨는 끝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녹취> 어머니 김인순 : "상화야! 고생했다. 장하다! 상화야..."
시련이 닥친 건 90년대 말 IMF 때 아버지의 월급만으로 선수생활을 계속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머니 김인순 씨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스케이트화를 신은 딸이 밴쿠버 금메달 이후 슬럼프가 찾아오자 뒷바라지를 못해준 게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녹취> 김인순(이상화 어머니) : "상화야, 이제 남은 천 미터 유종의 미 거두자..."
함께 빙판을 지쳤던 오빠 역시 동생을 위해 선수 생활을 포기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자신의 꿈을 접은 오빠는 이상화의 숨은 조력자였습니다.
<인터뷰>오빠 : "잘했다! 상화야, 잘했어..."
지독한 연습벌레로 불리며 오르기보다 지키기가 어렵다는 챔피언 수성에 성공한 이상화,
인간 승리의 드라마가 완성되기까진 이처럼 가족의 남모를 헌신이 숨어 있었습니다.
KBS 뉴스 김도환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슈
소치 동계올림픽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