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란 “정화야, 행복은 메달순이 아니야”
입력 2014.09.18 (11:33)
수정 2014.09.1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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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화, 이미 대단한 일을 해냈잖아요."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 역도 48㎏급에 나서는 임정화(28)의 이름이 나오자 '한국 역도의 전설' 장미란(31)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진다.
장미란은 18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다른 대표 선수들도 열심히 응원하지만, 특히 정화에게는 애착이 간다"고 운을 뗐다.
장미란은 임정화가 15살이던 2001년 태릉선수촌에 입촌할 때부터 오누이처럼 지냈고, 장미란이 은퇴한 후에도 자주 연락하며 인연을 이어갔다.
장미란은 "어린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가 됐는데 그때도 또래보다 정말 의젓했다"며 "내가 언니지만 친구처럼 지낸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임정화는 "미란 언니는 내 인생 최고의 스승"이라며 "미란 언니가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몸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준비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이번 대회를 준비했다"고 했다.
"그런 말은 하지 말아달라"고 웃던 장미란은 "내가 메달을 더 얻긴 했지만 내가 은퇴한 후에도 정화는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국가대표가 되지 않았나"라며 "부상을 딛고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것만으로도 정화는 대단한 일을 한 것"이라고 후배를 격려했다.
임정화는 2001년 세계주니어여자역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유망주로 떠오른 그는 역도 최연소 국가대표(14세 11개월) 기록을 세웠고, 한국 기록도 수차례 갈아치우며 '소녀 기록 제조기'로 주목받았다.
이후 그는 장미란, 윤진희와 함께 여자 역도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장미란이 세계 최고 선수로 우뚝 서고, 윤진희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53㎏급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는 동안 임정화는 지독한 메이저 대회 징크스에 시달리며 뒷걸음질쳤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인상 86㎏·용상 110㎏·합계 196㎏으로 천웨이링(대만)과 동률을 이루고도 몸무게가 500g 더 무거워 동메달을 놓치는 불운을 겪었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체중조절에 실패해 바벨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실격당했다.
이후 허리부상에 시달리며 은퇴 위기까지 몰렸지만 재기에 성공해 4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장미란은 "그 어려운 시기에도 웃으면서 재활을 했다"며 "정말 대견하고 놀랍다"고 떠올렸다.
임정화는 20일 달빛 축제정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리는 여자 역도 48㎏급에 나선다.
이형근 역도 대표팀 감독은 "정화가 부상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이 후배들에게 큰 교훈을 줬다"며 "정화가 부담 갖지 않고 스스로 만족할 경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미란도 같은 마음이다. 그는 "이미 정화는 많은 것을 보여줬다"고 말하면서 "순위에 집착하면 자신의 기록도 놓치는 경우가 있다.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남이 아닌 자신과 멋진 승부를 하고 플랫폼을 내려왔으면 한다"고 격려했다.
장미란은 "당일 경기장에서 임정화를 응원할 생각이다"라며 "나는 엑스트라다. 그날은 정화가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했다.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 역도 48㎏급에 나서는 임정화(28)의 이름이 나오자 '한국 역도의 전설' 장미란(31)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진다.
장미란은 18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다른 대표 선수들도 열심히 응원하지만, 특히 정화에게는 애착이 간다"고 운을 뗐다.
장미란은 임정화가 15살이던 2001년 태릉선수촌에 입촌할 때부터 오누이처럼 지냈고, 장미란이 은퇴한 후에도 자주 연락하며 인연을 이어갔다.
장미란은 "어린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가 됐는데 그때도 또래보다 정말 의젓했다"며 "내가 언니지만 친구처럼 지낸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임정화는 "미란 언니는 내 인생 최고의 스승"이라며 "미란 언니가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몸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준비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이번 대회를 준비했다"고 했다.
"그런 말은 하지 말아달라"고 웃던 장미란은 "내가 메달을 더 얻긴 했지만 내가 은퇴한 후에도 정화는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국가대표가 되지 않았나"라며 "부상을 딛고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것만으로도 정화는 대단한 일을 한 것"이라고 후배를 격려했다.
임정화는 2001년 세계주니어여자역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유망주로 떠오른 그는 역도 최연소 국가대표(14세 11개월) 기록을 세웠고, 한국 기록도 수차례 갈아치우며 '소녀 기록 제조기'로 주목받았다.
이후 그는 장미란, 윤진희와 함께 여자 역도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장미란이 세계 최고 선수로 우뚝 서고, 윤진희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53㎏급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는 동안 임정화는 지독한 메이저 대회 징크스에 시달리며 뒷걸음질쳤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인상 86㎏·용상 110㎏·합계 196㎏으로 천웨이링(대만)과 동률을 이루고도 몸무게가 500g 더 무거워 동메달을 놓치는 불운을 겪었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체중조절에 실패해 바벨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실격당했다.
이후 허리부상에 시달리며 은퇴 위기까지 몰렸지만 재기에 성공해 4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장미란은 "그 어려운 시기에도 웃으면서 재활을 했다"며 "정말 대견하고 놀랍다"고 떠올렸다.
임정화는 20일 달빛 축제정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리는 여자 역도 48㎏급에 나선다.
이형근 역도 대표팀 감독은 "정화가 부상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이 후배들에게 큰 교훈을 줬다"며 "정화가 부담 갖지 않고 스스로 만족할 경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미란도 같은 마음이다. 그는 "이미 정화는 많은 것을 보여줬다"고 말하면서 "순위에 집착하면 자신의 기록도 놓치는 경우가 있다.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남이 아닌 자신과 멋진 승부를 하고 플랫폼을 내려왔으면 한다"고 격려했다.
장미란은 "당일 경기장에서 임정화를 응원할 생각이다"라며 "나는 엑스트라다. 그날은 정화가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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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4-09-18 11:33:07
- 수정2014-09-18 11:48:24

"우리 정화, 이미 대단한 일을 해냈잖아요."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 역도 48㎏급에 나서는 임정화(28)의 이름이 나오자 '한국 역도의 전설' 장미란(31)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진다.
장미란은 18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다른 대표 선수들도 열심히 응원하지만, 특히 정화에게는 애착이 간다"고 운을 뗐다.
장미란은 임정화가 15살이던 2001년 태릉선수촌에 입촌할 때부터 오누이처럼 지냈고, 장미란이 은퇴한 후에도 자주 연락하며 인연을 이어갔다.
장미란은 "어린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가 됐는데 그때도 또래보다 정말 의젓했다"며 "내가 언니지만 친구처럼 지낸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임정화는 "미란 언니는 내 인생 최고의 스승"이라며 "미란 언니가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몸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준비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이번 대회를 준비했다"고 했다.
"그런 말은 하지 말아달라"고 웃던 장미란은 "내가 메달을 더 얻긴 했지만 내가 은퇴한 후에도 정화는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국가대표가 되지 않았나"라며 "부상을 딛고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것만으로도 정화는 대단한 일을 한 것"이라고 후배를 격려했다.
임정화는 2001년 세계주니어여자역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유망주로 떠오른 그는 역도 최연소 국가대표(14세 11개월) 기록을 세웠고, 한국 기록도 수차례 갈아치우며 '소녀 기록 제조기'로 주목받았다.
이후 그는 장미란, 윤진희와 함께 여자 역도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장미란이 세계 최고 선수로 우뚝 서고, 윤진희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53㎏급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는 동안 임정화는 지독한 메이저 대회 징크스에 시달리며 뒷걸음질쳤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인상 86㎏·용상 110㎏·합계 196㎏으로 천웨이링(대만)과 동률을 이루고도 몸무게가 500g 더 무거워 동메달을 놓치는 불운을 겪었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체중조절에 실패해 바벨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실격당했다.
이후 허리부상에 시달리며 은퇴 위기까지 몰렸지만 재기에 성공해 4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장미란은 "그 어려운 시기에도 웃으면서 재활을 했다"며 "정말 대견하고 놀랍다"고 떠올렸다.
임정화는 20일 달빛 축제정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리는 여자 역도 48㎏급에 나선다.
이형근 역도 대표팀 감독은 "정화가 부상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이 후배들에게 큰 교훈을 줬다"며 "정화가 부담 갖지 않고 스스로 만족할 경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미란도 같은 마음이다. 그는 "이미 정화는 많은 것을 보여줬다"고 말하면서 "순위에 집착하면 자신의 기록도 놓치는 경우가 있다.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남이 아닌 자신과 멋진 승부를 하고 플랫폼을 내려왔으면 한다"고 격려했다.
장미란은 "당일 경기장에서 임정화를 응원할 생각이다"라며 "나는 엑스트라다. 그날은 정화가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했다.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 역도 48㎏급에 나서는 임정화(28)의 이름이 나오자 '한국 역도의 전설' 장미란(31)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진다.
장미란은 18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다른 대표 선수들도 열심히 응원하지만, 특히 정화에게는 애착이 간다"고 운을 뗐다.
장미란은 임정화가 15살이던 2001년 태릉선수촌에 입촌할 때부터 오누이처럼 지냈고, 장미란이 은퇴한 후에도 자주 연락하며 인연을 이어갔다.
장미란은 "어린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가 됐는데 그때도 또래보다 정말 의젓했다"며 "내가 언니지만 친구처럼 지낸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임정화는 "미란 언니는 내 인생 최고의 스승"이라며 "미란 언니가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몸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준비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이번 대회를 준비했다"고 했다.
"그런 말은 하지 말아달라"고 웃던 장미란은 "내가 메달을 더 얻긴 했지만 내가 은퇴한 후에도 정화는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국가대표가 되지 않았나"라며 "부상을 딛고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것만으로도 정화는 대단한 일을 한 것"이라고 후배를 격려했다.
임정화는 2001년 세계주니어여자역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유망주로 떠오른 그는 역도 최연소 국가대표(14세 11개월) 기록을 세웠고, 한국 기록도 수차례 갈아치우며 '소녀 기록 제조기'로 주목받았다.
이후 그는 장미란, 윤진희와 함께 여자 역도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장미란이 세계 최고 선수로 우뚝 서고, 윤진희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53㎏급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는 동안 임정화는 지독한 메이저 대회 징크스에 시달리며 뒷걸음질쳤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인상 86㎏·용상 110㎏·합계 196㎏으로 천웨이링(대만)과 동률을 이루고도 몸무게가 500g 더 무거워 동메달을 놓치는 불운을 겪었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체중조절에 실패해 바벨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실격당했다.
이후 허리부상에 시달리며 은퇴 위기까지 몰렸지만 재기에 성공해 4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장미란은 "그 어려운 시기에도 웃으면서 재활을 했다"며 "정말 대견하고 놀랍다"고 떠올렸다.
임정화는 20일 달빛 축제정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리는 여자 역도 48㎏급에 나선다.
이형근 역도 대표팀 감독은 "정화가 부상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이 후배들에게 큰 교훈을 줬다"며 "정화가 부담 갖지 않고 스스로 만족할 경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미란도 같은 마음이다. 그는 "이미 정화는 많은 것을 보여줬다"고 말하면서 "순위에 집착하면 자신의 기록도 놓치는 경우가 있다.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남이 아닌 자신과 멋진 승부를 하고 플랫폼을 내려왔으면 한다"고 격려했다.
장미란은 "당일 경기장에서 임정화를 응원할 생각이다"라며 "나는 엑스트라다. 그날은 정화가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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