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와의 약속 지켜가는 최보민·석지현

입력 2014.09.24 (08:36) 수정 2014.09.24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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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파운드 궁사 최보민(30·청주시청)과 석지현(24·현대모비스)은 작년 10월 4일을 잊지 못한다.

사랑하는 스승과 사대에서 함께한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프랑스와의 세계양궁선수권대회 여자 단체 8강전이 열린 터키 안탈리아에는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의 강풍이 불었다.

신현종 감독의 지휘를 받던 최보민, 석지현은 지독한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각각 0점, 7점을 쏘았다.

명중률이 높아 10점을 쏘지 못하면 실수로 여겨지는 컴파운드 양궁에서 0점, 7점은 상상할 수도 없는 저득점이었다.

신 감독은 강풍에 고전하는 선수들을 위해 발사 순서를 변칙적으로 마구 바꿔 체력을 아끼고 조준점을 찾아내는 작전을 가동했다.

"바꿔! 나와! 빨리! 바꿔! 나와!"

석지현, 최보민, 서정희(하이트진로)는 흔들리는 활을 잡고 시위를 놓지 못한 채 사대를 들락거렸다.

그러던 과정에서 최보민이 드디어 감각을 찾아 10점 구역에 화살을 꽂았다.

"텐∼!"

그것이 최보민과 석지현이 마지막으로 들은 신현종 감독의 목소리였다.

신 감독은 10점을 외친 뒤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 현지 병원으로 옮겨졌다.

최보민, 석지현은 신 감독이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신 감독은 14일 뒤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뇌사 상태로 순직했다.

신 감독은 최보민과 한솥밥을 먹던 실업팀 청원군청 근처의 공원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지도자를 잃은 청원군청 팀은 청주시청으로 통합됐고 최보민도 둥지를 옮겼다.

최보민, 석지현은 신 감독과 안방에서 열리는 첫 메이저 국제종합대회인 아시안게임을 준비해왔다.

작년부터 상시로 운영된 컴파운드 대표팀에서 석지현은 신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의 에이스로서 분위기를 띄웠다.

석지현은 한국이 처음으로 출전한 작년 세계양궁연맹(WA) 월드컵에서 2관왕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했다.

최보민에게 신 감독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신 감독은 최보민을 발굴해 리커브 양궁에서 2000년대 중반 세계무대를 누비도록 성장시킨 지도자였다.

최보민이 어깨를 다쳐 은퇴 위기에 몰렸을 때 컴파운드로 전향을 권하고 새 인생을 설계하도록 도운 지도자도 신 감독이었다.

석지현, 최보민은 별세한 스승과의 약속을 차곡차곡 지켜가고 있다.

최보민, 석지현은 23일 인천계양아시아드양궁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예선라운드에서 똑같은 695점을 쏘아 1, 2위에 올랐다.

나란히 올해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했고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에 이어 개인전 본선 출전권까지 따냈다.

석지현, 최보민은 오는 25일부터 신 감독과의 약속을 마무리하기 위한 본선 토너먼트에 들어간다.

최보민은 "우리가 오래전부터 목표로 삼은 금메달을 목에 걸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양궁장에서 보낸 스승에게 잘못을 하지 않는 일은 양궁을 잘하는 길밖에 없다는 게 최보민의 각오로 자리잡았다.

석지현도 "할 수 있는 기량을 다해서 단체전 금메달 획득을 돕고 개인전 금메달에도 도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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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사와의 약속 지켜가는 최보민·석지현
    • 입력 2014-09-24 08:36:08
    • 수정2014-09-24 08:51:49
    연합뉴스
컴파운드 궁사 최보민(30·청주시청)과 석지현(24·현대모비스)은 작년 10월 4일을 잊지 못한다.

사랑하는 스승과 사대에서 함께한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프랑스와의 세계양궁선수권대회 여자 단체 8강전이 열린 터키 안탈리아에는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의 강풍이 불었다.

신현종 감독의 지휘를 받던 최보민, 석지현은 지독한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각각 0점, 7점을 쏘았다.

명중률이 높아 10점을 쏘지 못하면 실수로 여겨지는 컴파운드 양궁에서 0점, 7점은 상상할 수도 없는 저득점이었다.

신 감독은 강풍에 고전하는 선수들을 위해 발사 순서를 변칙적으로 마구 바꿔 체력을 아끼고 조준점을 찾아내는 작전을 가동했다.

"바꿔! 나와! 빨리! 바꿔! 나와!"

석지현, 최보민, 서정희(하이트진로)는 흔들리는 활을 잡고 시위를 놓지 못한 채 사대를 들락거렸다.

그러던 과정에서 최보민이 드디어 감각을 찾아 10점 구역에 화살을 꽂았다.

"텐∼!"

그것이 최보민과 석지현이 마지막으로 들은 신현종 감독의 목소리였다.

신 감독은 10점을 외친 뒤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 현지 병원으로 옮겨졌다.

최보민, 석지현은 신 감독이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신 감독은 14일 뒤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뇌사 상태로 순직했다.

신 감독은 최보민과 한솥밥을 먹던 실업팀 청원군청 근처의 공원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지도자를 잃은 청원군청 팀은 청주시청으로 통합됐고 최보민도 둥지를 옮겼다.

최보민, 석지현은 신 감독과 안방에서 열리는 첫 메이저 국제종합대회인 아시안게임을 준비해왔다.

작년부터 상시로 운영된 컴파운드 대표팀에서 석지현은 신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의 에이스로서 분위기를 띄웠다.

석지현은 한국이 처음으로 출전한 작년 세계양궁연맹(WA) 월드컵에서 2관왕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했다.

최보민에게 신 감독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신 감독은 최보민을 발굴해 리커브 양궁에서 2000년대 중반 세계무대를 누비도록 성장시킨 지도자였다.

최보민이 어깨를 다쳐 은퇴 위기에 몰렸을 때 컴파운드로 전향을 권하고 새 인생을 설계하도록 도운 지도자도 신 감독이었다.

석지현, 최보민은 별세한 스승과의 약속을 차곡차곡 지켜가고 있다.

최보민, 석지현은 23일 인천계양아시아드양궁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예선라운드에서 똑같은 695점을 쏘아 1, 2위에 올랐다.

나란히 올해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했고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에 이어 개인전 본선 출전권까지 따냈다.

석지현, 최보민은 오는 25일부터 신 감독과의 약속을 마무리하기 위한 본선 토너먼트에 들어간다.

최보민은 "우리가 오래전부터 목표로 삼은 금메달을 목에 걸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양궁장에서 보낸 스승에게 잘못을 하지 않는 일은 양궁을 잘하는 길밖에 없다는 게 최보민의 각오로 자리잡았다.

석지현도 "할 수 있는 기량을 다해서 단체전 금메달 획득을 돕고 개인전 금메달에도 도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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