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뉴스] “삭제해 줘요”…‘잊힐 권리’ 현주소는?

입력 2014.12.02 (21:19) 수정 2014.12.02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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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얼마 전 한 대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인터넷에 알몸 채팅 사진을 퍼뜨리겠다는 협박 때문이었습니다.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도 이른바 사이버상의 '신상 털기'로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인터넷에 한 번 실리게 되면 자기가 작성한 글이라도 지우기가 몹시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최근 이른바 '잊힐 권리'라는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본인이 원할 경우 온라인 상의 자기 관련 글이나 사진 등을 삭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건데요.

피해 사례가 늘면서 최근엔 디지털 기록을 대신 삭제해주는 업체까지 등장했습니다.

최준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디지털 흔적…고통받는 피해자들▼

<리포트>

2년 전 시댁과의 갈등으로 이혼한 김 모 씨.

새 출발을 준비하던 김 씨는 이혼 과정에서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 남편이 자신과 찍은 은밀한 사진까지 SNS에 일방적으로 퍼뜨린 겁니다.

<인터뷰> 김 모 씨(사진 유포 피해자/음성변조) : "아무것도 모르는 상탠데, 그쪽 부모님이나 형제들은. 그래서 그것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잠도 못 자고 그러니까…."

병원을 운영하던 양 모 씨는 한 환자의 인터넷 악성 후기 때문에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치료에 불만을 품고 악의적으로 쓴 글이 퍼지면서 병원 문을 닫아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양 모 씨(전 00 병원장/음성변조) : "뭐 통증이라든지 이런 단어만 봐도, 불친절 이런 단어만 봐도 깜짝깜짝 놀라는 거죠."

이런 피해자들이 늘면서 사이버 공간의 개인 자료를 대신 삭제해 주는 이른바 '디지털 장의' 업체까지 생겼습니다.

알몸 사진과 영상을 지워달라는 요청부터 취업을 앞두고 과거에 쓴 정치적 글을 삭제해 달라는 것까지 다양한 의뢰가 들어옵니다.

<인터뷰> 디지털 자료 삭제 업체 대표 : "불편한 진실과 관련된 데이터를 쫙 뽑아서 그걸 가지고 분류를 해요. 삭제 대상, 삭제 비대상으로 분류를 해서 (해당 포털 등에) 삭제 요청을 (합니다.)"

최소 수백에서 수천만원의 비용이 들지만 평판 관리가 필요한 기업과 연예인은 물론 일반인 고객도 늘고 있습니다.

특히 일반인 고객 60% 이상이 청소년일 정도로 피해자 연령대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확산…입법 요구도 나와▼

<기자 멘트>

인터넷에서 한 직장인의 이름을 검색해봤습니다.

댓글부터 사진, 쇼핑몰 거래 내역까지. 여기저기에 수많은 정보가 남아있습니다.

SNS를 통하면 정보의 파급력은 더 커집니다.

페이스북을 예로 들어볼까요?

제가 사진 한 장을 올렸을 때 10명이 한 번씩만 공유해도 사진은 벌써 10개 계정에서 노출됩니다.

이런 식으로 삽시간에 기하급수적으로 퍼져나갑니다.

내 사진이지만 이미 나 혼자선 다 지울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이러다보니 아예 개인의 '잊힐 권리'를 입법화해 법으로 보장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데요.

해외의 경우 지난 5월,유럽 사법 재판소가 세계 최초로 '잊힐 권리'를 인정한 이후 미국과 일본에서도 관련 논의가 활발합니다.

물론 '잊힐 권리'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존재합니다.

이 권리를 이용해 정치인이나 기업이 불리한 정보를 세탁해 대중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현재 국내에서는 '잊힐 권리'가 어느 정도까지 보장되고 있는지 임명규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잊힐 권리’ 국내 논의 어디까지 왔나▼

<리포트>

악성 댓글에 시달릴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인터뷰> 이길재(안암동) :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하면 되지 않을까요?"

<인터뷰> 박수진(종암동) : "못 참을 정도면 아마 자료같은 걸 모아서 법적으로 대응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런 경우 현행법상 인터넷 '임시조치'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게시물로 사생활 침해나 명예 훼손을 당했다고 여겨지면 포털 업체 등에 해당 게시물의 삭제를 요청하는 제도입니다.

<인터뷰> 홍경표(포털업체 관계자) : "게시 중단이 요청된 컨텐츠에 대해서는 30일 간 게시 중단 처리되며 이 기간에 실제 게시자에게 통보가 가서 이의신청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최근 6년 동안 인터넷 임시조치 건수가 4배나 늘 만큼 온라인 권리 침해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이 제도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게시물 삭제는 불법성이 인정될 때만 가능해 포괄적 구제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얼마 전 정부 차원의 연구반이 꾸려졌지만 '잊힐 권리' 법제화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인터뷰> 박노형(고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다른 권리와 긴장관계에서 다른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그런 선에서 합리적인 해결이 되도록 법적 요건 고민."

현재로선 민감한 정보는 인터넷에 올리지 않도록 하고, 권리 침해 시에는 초기에 신속 대응하는 등 개인적인 피해 예방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KBS 뉴스 임명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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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뉴스] “삭제해 줘요”…‘잊힐 권리’ 현주소는?
    • 입력 2014-12-02 21:20:21
    • 수정2014-12-02 21: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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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얼마 전 한 대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인터넷에 알몸 채팅 사진을 퍼뜨리겠다는 협박 때문이었습니다.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도 이른바 사이버상의 '신상 털기'로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인터넷에 한 번 실리게 되면 자기가 작성한 글이라도 지우기가 몹시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최근 이른바 '잊힐 권리'라는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본인이 원할 경우 온라인 상의 자기 관련 글이나 사진 등을 삭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건데요.

피해 사례가 늘면서 최근엔 디지털 기록을 대신 삭제해주는 업체까지 등장했습니다.

최준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디지털 흔적…고통받는 피해자들▼

<리포트>

2년 전 시댁과의 갈등으로 이혼한 김 모 씨.

새 출발을 준비하던 김 씨는 이혼 과정에서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 남편이 자신과 찍은 은밀한 사진까지 SNS에 일방적으로 퍼뜨린 겁니다.

<인터뷰> 김 모 씨(사진 유포 피해자/음성변조) : "아무것도 모르는 상탠데, 그쪽 부모님이나 형제들은. 그래서 그것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잠도 못 자고 그러니까…."

병원을 운영하던 양 모 씨는 한 환자의 인터넷 악성 후기 때문에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치료에 불만을 품고 악의적으로 쓴 글이 퍼지면서 병원 문을 닫아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양 모 씨(전 00 병원장/음성변조) : "뭐 통증이라든지 이런 단어만 봐도, 불친절 이런 단어만 봐도 깜짝깜짝 놀라는 거죠."

이런 피해자들이 늘면서 사이버 공간의 개인 자료를 대신 삭제해 주는 이른바 '디지털 장의' 업체까지 생겼습니다.

알몸 사진과 영상을 지워달라는 요청부터 취업을 앞두고 과거에 쓴 정치적 글을 삭제해 달라는 것까지 다양한 의뢰가 들어옵니다.

<인터뷰> 디지털 자료 삭제 업체 대표 : "불편한 진실과 관련된 데이터를 쫙 뽑아서 그걸 가지고 분류를 해요. 삭제 대상, 삭제 비대상으로 분류를 해서 (해당 포털 등에) 삭제 요청을 (합니다.)"

최소 수백에서 수천만원의 비용이 들지만 평판 관리가 필요한 기업과 연예인은 물론 일반인 고객도 늘고 있습니다.

특히 일반인 고객 60% 이상이 청소년일 정도로 피해자 연령대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확산…입법 요구도 나와▼

<기자 멘트>

인터넷에서 한 직장인의 이름을 검색해봤습니다.

댓글부터 사진, 쇼핑몰 거래 내역까지. 여기저기에 수많은 정보가 남아있습니다.

SNS를 통하면 정보의 파급력은 더 커집니다.

페이스북을 예로 들어볼까요?

제가 사진 한 장을 올렸을 때 10명이 한 번씩만 공유해도 사진은 벌써 10개 계정에서 노출됩니다.

이런 식으로 삽시간에 기하급수적으로 퍼져나갑니다.

내 사진이지만 이미 나 혼자선 다 지울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이러다보니 아예 개인의 '잊힐 권리'를 입법화해 법으로 보장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데요.

해외의 경우 지난 5월,유럽 사법 재판소가 세계 최초로 '잊힐 권리'를 인정한 이후 미국과 일본에서도 관련 논의가 활발합니다.

물론 '잊힐 권리'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존재합니다.

이 권리를 이용해 정치인이나 기업이 불리한 정보를 세탁해 대중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현재 국내에서는 '잊힐 권리'가 어느 정도까지 보장되고 있는지 임명규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잊힐 권리’ 국내 논의 어디까지 왔나▼

<리포트>

악성 댓글에 시달릴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인터뷰> 이길재(안암동) :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하면 되지 않을까요?"

<인터뷰> 박수진(종암동) : "못 참을 정도면 아마 자료같은 걸 모아서 법적으로 대응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런 경우 현행법상 인터넷 '임시조치'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게시물로 사생활 침해나 명예 훼손을 당했다고 여겨지면 포털 업체 등에 해당 게시물의 삭제를 요청하는 제도입니다.

<인터뷰> 홍경표(포털업체 관계자) : "게시 중단이 요청된 컨텐츠에 대해서는 30일 간 게시 중단 처리되며 이 기간에 실제 게시자에게 통보가 가서 이의신청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최근 6년 동안 인터넷 임시조치 건수가 4배나 늘 만큼 온라인 권리 침해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이 제도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게시물 삭제는 불법성이 인정될 때만 가능해 포괄적 구제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얼마 전 정부 차원의 연구반이 꾸려졌지만 '잊힐 권리' 법제화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인터뷰> 박노형(고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다른 권리와 긴장관계에서 다른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그런 선에서 합리적인 해결이 되도록 법적 요건 고민."

현재로선 민감한 정보는 인터넷에 올리지 않도록 하고, 권리 침해 시에는 초기에 신속 대응하는 등 개인적인 피해 예방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KBS 뉴스 임명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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