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토크] 팔순 이산가족 할아버지의 망향가

입력 2015.01.08 (23:24) 수정 2015.01.12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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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새해 들어 경색됐던 남북 관계에 따뜻한 햇살이 들고 있습니다.

이런 때 더욱 가슴 졸이는 분들 계신 데, 바로 이산가족입니다.

60년 넘게 생이별했던 슬픔만큼이나 상봉을 바라는 마음도 클 텐데요.

이산가족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요?

백승주 앵커가 만나보고 왔습니다.

<리포트>

이른 아침 서울의 주택가.

80대 할아버지가 취재진을 반깁니다.

1950년, 당시 16살 나이에 개성에서 남쪽으로 피난한 이상영 할아버집니다.

백승주(앵커) : "하루 중에 아침 겸 점심 혼자 지어서 드시고 어떻게 지내세요, 일과를?"

이상영(81살/이산가족) : "이제 나이 먹어서요. 낮에 아침 겸 점심 먹고, 저녁에 하루에 두 끼 먹고 그렇게 소일하고 있습니다. 나갈 곳이 있긴 있는데요. 그저 운동 삼아서 산책하고 가끔 아는 사람 만나서 나갔다 들어오고 있죠."

피난 당시 고향엔 어머니와 누나, 여동생 3명이 있었습니다.

잠깐일 줄 알았던 피난이 65년 생이별이 됐다는 생각에 할아버지 가슴은 먹먹해집니다.

이상영(81살/이산가족) : "고향에 두고 온 동생들 생각이 그렇게 가끔 나요. 뭐 어머니나 할머니는 다 돌아가셨겠지만 동생들을 두고 나온 게 께름칙하게 그리울 때가 많죠."

백발 가득한 팔순 나이가 됐지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앞에선 영락없는 10대 소년입니다.

이상영(81살/이산가족) : "어렸을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서 외갓집에 갔을 때가 제일 생각이 나네요. 외가가 괜찮게 살았어요. 그래서 손에 이끌려서 그렇게 다녀오던 생각도 나고요."

백승주(앵커) : "어르신 고향 생각나고 그러실 때에는 어떻게 하세요?"

이상영(81살/이산가족) : : "몹시 생각날 때 그냥 천상 뭐 고향 가까운데 찾아가고 그래요."

백승주(앵커) : "설 다가오면서 더 생각나시고 그러시죠?"

이상영(81살/이산가족) : : "그야, 물론이죠."

백승주(앵커) : "어르신 저희 통일전망대에 왔는데요. 5년 만에 오신다고 하셨어요. 와 보니까 어떤가요?"

이상영(81살/이산가족) : "감개무량하죠."

백승주(앵커) : "저희가 고향은 못 가지만 고향을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땅이에요. 그렇죠?"

오랜만에 다시 보는 고향 땅.

65년 전으로 돌아간 팔순의 노인은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아버지와 목숨을 걸고 피난했던 그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상영(81살/이산가족) : "여기서는 중간에...이게 강 아니에요? 여기서는 배 타고 건너왔죠. (여기는 배 타고 오시고) 건너와 가지고 펄이거든요 펄 물 나갔을 때 펄에는 빠지면서 걸어왔죠."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다가온 고향.

할아버지는 고향 지도가 담긴 누렇게 바랜 신문 한 장을 다시 펼칩니다.

이상영(81살/이산가족) : "여기가 개성 중학교, 사진으로 봐서는 여기쯤 되는 거죠. 제가 살던 집은 이 근방이고요. (그러면 여기쯤 되겠네요.) 그래서 건너와서 개울 건너서 이렇게 내려갔죠 (얼마쯤 걸으셨어요?) 한 30분 정도 걸었어요. "

백승주(앵커) : "이산가족으로서 고통스러운 점, 어려운 점 있으실 것 같아요?"

이상영(81살/이산가족) : "의식주가 첫째가 문제죠. 먹는 것도 그렇고 고향의 또 여러 식구들 놔두고 단둘이서만 피난 나오니까 그리움이 벅차고 그래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생이 많이 됐죠."

백승주(앵커) : "2015년 들어오면서 남북 관계가 좋아진다는 말도 있고 이산가족으로서 희망이 생기지 않으세요? 마음이 어떠세요?"

이상영(81살/이산가족) : "희망이 솟구치죠. 서로 양보할 걸 양보하고 조금 더 이른 시일 내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길 바라고요. 이어서 남북회담도 잘 됐으면 좋겠네요."

이상영(81살/이산가족) : "1950년 12월에 너희들만 놔두고 아버지하고 단둘이 피난 나올 때 며칠 있으면 다시 또 귀향이 돼서 집으로 갈 줄 알고 나왔던 게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구나. 너희들 보기에도 참 미안하고 명절 때마다 너희들이 더 보고 싶고 그랬다. 아무쪼록 통일될 때까지 살아 있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너희들이 살아 있기만을 바란다. 오빠로서 정말 죄책감이 크다. 부디 잘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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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토크] 팔순 이산가족 할아버지의 망향가
    • 입력 2015-01-08 23:34:51
    • 수정2015-01-12 19: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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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경색됐던 남북 관계에 따뜻한 햇살이 들고 있습니다.

이런 때 더욱 가슴 졸이는 분들 계신 데, 바로 이산가족입니다.

60년 넘게 생이별했던 슬픔만큼이나 상봉을 바라는 마음도 클 텐데요.

이산가족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요?

백승주 앵커가 만나보고 왔습니다.

<리포트>

이른 아침 서울의 주택가.

80대 할아버지가 취재진을 반깁니다.

1950년, 당시 16살 나이에 개성에서 남쪽으로 피난한 이상영 할아버집니다.

백승주(앵커) : "하루 중에 아침 겸 점심 혼자 지어서 드시고 어떻게 지내세요, 일과를?"

이상영(81살/이산가족) : "이제 나이 먹어서요. 낮에 아침 겸 점심 먹고, 저녁에 하루에 두 끼 먹고 그렇게 소일하고 있습니다. 나갈 곳이 있긴 있는데요. 그저 운동 삼아서 산책하고 가끔 아는 사람 만나서 나갔다 들어오고 있죠."

피난 당시 고향엔 어머니와 누나, 여동생 3명이 있었습니다.

잠깐일 줄 알았던 피난이 65년 생이별이 됐다는 생각에 할아버지 가슴은 먹먹해집니다.

이상영(81살/이산가족) : "고향에 두고 온 동생들 생각이 그렇게 가끔 나요. 뭐 어머니나 할머니는 다 돌아가셨겠지만 동생들을 두고 나온 게 께름칙하게 그리울 때가 많죠."

백발 가득한 팔순 나이가 됐지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앞에선 영락없는 10대 소년입니다.

이상영(81살/이산가족) : "어렸을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서 외갓집에 갔을 때가 제일 생각이 나네요. 외가가 괜찮게 살았어요. 그래서 손에 이끌려서 그렇게 다녀오던 생각도 나고요."

백승주(앵커) : "어르신 고향 생각나고 그러실 때에는 어떻게 하세요?"

이상영(81살/이산가족) : : "몹시 생각날 때 그냥 천상 뭐 고향 가까운데 찾아가고 그래요."

백승주(앵커) : "설 다가오면서 더 생각나시고 그러시죠?"

이상영(81살/이산가족) : : "그야, 물론이죠."

백승주(앵커) : "어르신 저희 통일전망대에 왔는데요. 5년 만에 오신다고 하셨어요. 와 보니까 어떤가요?"

이상영(81살/이산가족) : "감개무량하죠."

백승주(앵커) : "저희가 고향은 못 가지만 고향을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땅이에요. 그렇죠?"

오랜만에 다시 보는 고향 땅.

65년 전으로 돌아간 팔순의 노인은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아버지와 목숨을 걸고 피난했던 그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상영(81살/이산가족) : "여기서는 중간에...이게 강 아니에요? 여기서는 배 타고 건너왔죠. (여기는 배 타고 오시고) 건너와 가지고 펄이거든요 펄 물 나갔을 때 펄에는 빠지면서 걸어왔죠."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다가온 고향.

할아버지는 고향 지도가 담긴 누렇게 바랜 신문 한 장을 다시 펼칩니다.

이상영(81살/이산가족) : "여기가 개성 중학교, 사진으로 봐서는 여기쯤 되는 거죠. 제가 살던 집은 이 근방이고요. (그러면 여기쯤 되겠네요.) 그래서 건너와서 개울 건너서 이렇게 내려갔죠 (얼마쯤 걸으셨어요?) 한 30분 정도 걸었어요. "

백승주(앵커) : "이산가족으로서 고통스러운 점, 어려운 점 있으실 것 같아요?"

이상영(81살/이산가족) : "의식주가 첫째가 문제죠. 먹는 것도 그렇고 고향의 또 여러 식구들 놔두고 단둘이서만 피난 나오니까 그리움이 벅차고 그래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생이 많이 됐죠."

백승주(앵커) : "2015년 들어오면서 남북 관계가 좋아진다는 말도 있고 이산가족으로서 희망이 생기지 않으세요? 마음이 어떠세요?"

이상영(81살/이산가족) : "희망이 솟구치죠. 서로 양보할 걸 양보하고 조금 더 이른 시일 내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길 바라고요. 이어서 남북회담도 잘 됐으면 좋겠네요."

이상영(81살/이산가족) : "1950년 12월에 너희들만 놔두고 아버지하고 단둘이 피난 나올 때 며칠 있으면 다시 또 귀향이 돼서 집으로 갈 줄 알고 나왔던 게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구나. 너희들 보기에도 참 미안하고 명절 때마다 너희들이 더 보고 싶고 그랬다. 아무쪼록 통일될 때까지 살아 있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너희들이 살아 있기만을 바란다. 오빠로서 정말 죄책감이 크다. 부디 잘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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