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코끼리, 휴대전화로 공존

입력 2015.01.17 (08:35) 수정 2015.01.1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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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인도에서는 코끼리가 사람을 해치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데요.

각종 개발과 도시화로 코끼리 서식지가 나날이 줄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생 코끼리들이 살 곳을 빼앗기게 되자 사람들이 사는 도시까지 내려오다 보니 코끼리와 인간의 충돌이 잦아지는 겁니다.

인도에서 코끼리 공격으로 숨지는 사람만 해마다 4백명이나 됩니다.

그런데 인도 남부 한 지역에서 인명 피해를 획기적으로 줄였다고 합니다.

주민 대부분이 갖고 있는 휴대전화를 이용했는데요.

주민들이 어떻게 코끼리와 평화 공존을 이뤘는지 박수현 순회 특파원이 인도 현지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인도의 수도 뉴델리.

차들이 빼곡한 도로 위를 코끼리가 위태롭게 걸어갑니다.

뉴델리에서 코끼리가 살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시 당국이 안전을 우려해 먹이가 풍부한 시내 강둑 근처에서 코끼리가 살지 못하도록 금지하면서, 외곽으로 계속 쫓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인터뷰> 동물 보호 단체 : “도시화로 숲에 도로와 철도, 전기선 등이 들어가면서 코끼리와 인간의 충돌이 30년 동안 크게 늘었습니다."

과연 코끼리와 인간은 함께 살기 힘든 것일까?

해법을 찾은 곳이 있습니다.

남인도 타밀나두 주의 발파라이로 가는 길.

구불구불. 50개가 넘는 굽잇길을 돌아 해발 1,200m의 고산지대로 올라가면 그림 같은 녹차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분주히 찻잎을 따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7만 명의 주민이 주로 차와 커피 등을 재배해 생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차 농장 근로자 : “발파라이의 기후는 차 재배에 최적입니다. 일자리가 많아 행복합니다."

그런데 이 차 밭의 주인은 사람뿐이 아닙니다.

100마리에 가까운 야생 코끼리도 이곳에서 살아갑니다.

이 고원의 주인은 원래 코끼리였습니다.

먹이가 풍부한 열대 우림을 자유롭게 누볐습니다.

그런데 대규모 농장이 들어서면서, 먹이와 서식지가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인터뷰> 지역주민 : "이 지역은 원래 코끼리들이 살던 곳이었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그들과 함께 살기를 원합니다."

문제는 녹차 밭 주변에서 코끼리와 사람이 충돌하는 불상사가 자주 일어난다는 것.

바다와 같은 거대한 차밭 속에 코끼리의 서식지는 마치 섬들처럼 흩어져 있어, 먹이를 찾아 긴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코끼리와 사람이 마주치는 일이 잦아지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코끼리의 공격을 받아 사람이 숨지는 사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에도 아찔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마을의 곡식 창고에 코끼리 2마리가 들이닥친 것입니다.

하지만 코끼리가 나타날 것이라는 휴대 전화 경고 메시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창고지기 : "건물이 부서진 건 큰 문제가 아닙니다. 문자 메시지 때문에 저와 옆 건물의 유치원에 있던 아이들이 재빨리 지붕 위로 올라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목숨을 구한 문자 메시지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비영리단체인 '자연보호재단' 사무실.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녹취> "여보세요?"

인근 차 농장 안의 숲에서 코끼리를 본 주민이 제보 전화를 한 것입니다.

<녹취> "여보세요 가네쉬 선생님. 지금 코끼리를 봤습니다."

신고를 받자, 위치를 파악해 해당 지역 반경 2킬로미터 안에 사는 주민들에게 곧바로 경고 문자 메시지를 보냅니다.

문자는 영어와 지역 언어인 타밀어로 발송됩니다.

문자를 받은 주민들은 해당 지역을 피해 이동하거나 단체로 행동하면서 위험에 미리 대비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립니다.

<녹취> 농장 현장 감독 : "코끼리가 농장 5번 구역 근처에 나타났습니다. 그곳은 들어가지 마시고 뭉쳐 다니세요."

코끼리의 위치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고안해낸 사람은 동물행동심리학자인 아난다 박사.

대부분의 사망 사고가 코끼리와 갑작스럽게 마주친 상황에서 발생한 사실을 발견하고, 이같은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아난다(자연보호재단) : "지난 14년 동안 (이 지역에서) 코끼리 때문에 목숨을 잃은 41명 중 36명은 코끼리의 위치와 이동에 대한 정보 부족 때문에 화를 당했습니다."

코끼리의 위치를 미리 알려 불상사를 막자는 아이디어.

2013년 주민 800명과 함께 시작한 프로젝트는 곧바로 효과를 보자 일 년 만에 참가자가 2400명으로 늘었습니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제보로 4,5마리씩 흩어져 있는 100 마리 가까운 코끼리들의 위치를 거의 파악하게 됐습니다.

코끼리들의 하루 평균 이동 거리는 약 2㎞.

24시간 안에 코끼리가 나타날 수 있는 장소의 주민들에겐 매일 오후 메시지가 보내집니다.

<인터뷰> 문자 메시지 이용 주민 : "문자 메시지 프로그램 때문에 이제 코끼리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어. 안심하고 지낼 수 있습니다."

코끼리의 출몰을 알리기 위해 생각해낸 또다른 방법은 LED 경고등입니다.

지역의 주요한 24곳에 설치돼 있는데요.

이렇게 높은 곳에서 불빛으로 마치 등대처럼, 위험을 알려줍니다.

코끼리가 나타나면 인근 주민들이 휴대 전화를 걸어 작동시킵니다.

문자 메시지를 받을 수 없는 사람들도 볼 수 있고, 무엇보다 코끼리의 이동이 늘고 있는 밤에 특히 유용합니다.

버스나 택시에게도 중요한 길잡이가 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오토 릭샤 운전자 : "경고 등을 보고 위험 지역을 피해서 손님을 안전하게 모실 수 있습니다."

이제 코끼리 관련 사고는 줄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코끼리와 충돌 없이 살기 위한 지난 2년 동안의 노력.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인터뷰> 가네쉬(자연보호재단) : "건물 파손 등의 피해가 한 해 평균 150건에서 절반 이하로 감소했습니다."

(이 지역) 사망 사고는 한 해 평균 3명에서 1명 이하로 줄어들었습니다.

인도에서는 매년 대략 4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코끼리와의 충돌로 목숨을 잃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코끼리와 안전하게 함께 살기위한 발파라이의 혁신적인 노력은 인도 사회에 좋은 본보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뷰> 지역주민 : "계속 코끼리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인터뷰> 아난다 박사 : "코끼리의 존체 자체가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면 됩니다."

함께 살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공존은 긴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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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과 코끼리, 휴대전화로 공존
    • 입력 2015-01-16 10:29:22
    • 수정2015-01-17 09:20:25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인도에서는 코끼리가 사람을 해치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데요.

각종 개발과 도시화로 코끼리 서식지가 나날이 줄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생 코끼리들이 살 곳을 빼앗기게 되자 사람들이 사는 도시까지 내려오다 보니 코끼리와 인간의 충돌이 잦아지는 겁니다.

인도에서 코끼리 공격으로 숨지는 사람만 해마다 4백명이나 됩니다.

그런데 인도 남부 한 지역에서 인명 피해를 획기적으로 줄였다고 합니다.

주민 대부분이 갖고 있는 휴대전화를 이용했는데요.

주민들이 어떻게 코끼리와 평화 공존을 이뤘는지 박수현 순회 특파원이 인도 현지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인도의 수도 뉴델리.

차들이 빼곡한 도로 위를 코끼리가 위태롭게 걸어갑니다.

뉴델리에서 코끼리가 살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시 당국이 안전을 우려해 먹이가 풍부한 시내 강둑 근처에서 코끼리가 살지 못하도록 금지하면서, 외곽으로 계속 쫓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인터뷰> 동물 보호 단체 : “도시화로 숲에 도로와 철도, 전기선 등이 들어가면서 코끼리와 인간의 충돌이 30년 동안 크게 늘었습니다."

과연 코끼리와 인간은 함께 살기 힘든 것일까?

해법을 찾은 곳이 있습니다.

남인도 타밀나두 주의 발파라이로 가는 길.

구불구불. 50개가 넘는 굽잇길을 돌아 해발 1,200m의 고산지대로 올라가면 그림 같은 녹차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분주히 찻잎을 따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7만 명의 주민이 주로 차와 커피 등을 재배해 생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차 농장 근로자 : “발파라이의 기후는 차 재배에 최적입니다. 일자리가 많아 행복합니다."

그런데 이 차 밭의 주인은 사람뿐이 아닙니다.

100마리에 가까운 야생 코끼리도 이곳에서 살아갑니다.

이 고원의 주인은 원래 코끼리였습니다.

먹이가 풍부한 열대 우림을 자유롭게 누볐습니다.

그런데 대규모 농장이 들어서면서, 먹이와 서식지가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인터뷰> 지역주민 : "이 지역은 원래 코끼리들이 살던 곳이었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그들과 함께 살기를 원합니다."

문제는 녹차 밭 주변에서 코끼리와 사람이 충돌하는 불상사가 자주 일어난다는 것.

바다와 같은 거대한 차밭 속에 코끼리의 서식지는 마치 섬들처럼 흩어져 있어, 먹이를 찾아 긴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코끼리와 사람이 마주치는 일이 잦아지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코끼리의 공격을 받아 사람이 숨지는 사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에도 아찔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마을의 곡식 창고에 코끼리 2마리가 들이닥친 것입니다.

하지만 코끼리가 나타날 것이라는 휴대 전화 경고 메시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창고지기 : "건물이 부서진 건 큰 문제가 아닙니다. 문자 메시지 때문에 저와 옆 건물의 유치원에 있던 아이들이 재빨리 지붕 위로 올라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목숨을 구한 문자 메시지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비영리단체인 '자연보호재단' 사무실.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녹취> "여보세요?"

인근 차 농장 안의 숲에서 코끼리를 본 주민이 제보 전화를 한 것입니다.

<녹취> "여보세요 가네쉬 선생님. 지금 코끼리를 봤습니다."

신고를 받자, 위치를 파악해 해당 지역 반경 2킬로미터 안에 사는 주민들에게 곧바로 경고 문자 메시지를 보냅니다.

문자는 영어와 지역 언어인 타밀어로 발송됩니다.

문자를 받은 주민들은 해당 지역을 피해 이동하거나 단체로 행동하면서 위험에 미리 대비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립니다.

<녹취> 농장 현장 감독 : "코끼리가 농장 5번 구역 근처에 나타났습니다. 그곳은 들어가지 마시고 뭉쳐 다니세요."

코끼리의 위치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고안해낸 사람은 동물행동심리학자인 아난다 박사.

대부분의 사망 사고가 코끼리와 갑작스럽게 마주친 상황에서 발생한 사실을 발견하고, 이같은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아난다(자연보호재단) : "지난 14년 동안 (이 지역에서) 코끼리 때문에 목숨을 잃은 41명 중 36명은 코끼리의 위치와 이동에 대한 정보 부족 때문에 화를 당했습니다."

코끼리의 위치를 미리 알려 불상사를 막자는 아이디어.

2013년 주민 800명과 함께 시작한 프로젝트는 곧바로 효과를 보자 일 년 만에 참가자가 2400명으로 늘었습니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제보로 4,5마리씩 흩어져 있는 100 마리 가까운 코끼리들의 위치를 거의 파악하게 됐습니다.

코끼리들의 하루 평균 이동 거리는 약 2㎞.

24시간 안에 코끼리가 나타날 수 있는 장소의 주민들에겐 매일 오후 메시지가 보내집니다.

<인터뷰> 문자 메시지 이용 주민 : "문자 메시지 프로그램 때문에 이제 코끼리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어. 안심하고 지낼 수 있습니다."

코끼리의 출몰을 알리기 위해 생각해낸 또다른 방법은 LED 경고등입니다.

지역의 주요한 24곳에 설치돼 있는데요.

이렇게 높은 곳에서 불빛으로 마치 등대처럼, 위험을 알려줍니다.

코끼리가 나타나면 인근 주민들이 휴대 전화를 걸어 작동시킵니다.

문자 메시지를 받을 수 없는 사람들도 볼 수 있고, 무엇보다 코끼리의 이동이 늘고 있는 밤에 특히 유용합니다.

버스나 택시에게도 중요한 길잡이가 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오토 릭샤 운전자 : "경고 등을 보고 위험 지역을 피해서 손님을 안전하게 모실 수 있습니다."

이제 코끼리 관련 사고는 줄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코끼리와 충돌 없이 살기 위한 지난 2년 동안의 노력.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인터뷰> 가네쉬(자연보호재단) : "건물 파손 등의 피해가 한 해 평균 150건에서 절반 이하로 감소했습니다."

(이 지역) 사망 사고는 한 해 평균 3명에서 1명 이하로 줄어들었습니다.

인도에서는 매년 대략 4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코끼리와의 충돌로 목숨을 잃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코끼리와 안전하게 함께 살기위한 발파라이의 혁신적인 노력은 인도 사회에 좋은 본보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뷰> 지역주민 : "계속 코끼리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인터뷰> 아난다 박사 : "코끼리의 존체 자체가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면 됩니다."

함께 살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공존은 긴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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