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뉴스] 6·25 전쟁 발발 65년…잊혀져가는 전쟁

입력 2015.06.25 (21:21) 수정 2015.06.25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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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오늘은 동족상잔의 비극 6.25가 일어난지 6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정부는 65주년 기념식을 열어, 6.25의 교훈을 잊지 않을것을 다짐하고 참전 용사들이 진정한 대한민국의 영웅이라고 경의를 표했습니다.

하지만 6.25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갈수록 옅어지는것이 현실인데요.

생사조차 알길이 없는 국군포로의 가족들에게 6.25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입니다.

서지영 기자입니다.

▼잊혀져가는 국군포로·납북자들▼

<리포트>

고 손동식 이등중사는 포로로 잡혀간 후 평생 아오지 탄광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 지난 1984년 숨졌습니다.

손 중사의 생전 소원은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뷰> 손명화(국군포로의 딸) : "고향 못가봤는데 앞으로 통일되면 너라도 꼭 가라..아버지가 죽어서라도 아버지 묘 파서 고향에 묻어달라..."

손 중사의 딸은 지난 2013년 탈북하면서 모셔온 유해를 다음달 현충원에 안장합니다.

1994년 고 조창호 소위의 귀환 이후 국군포로 80여명이 돌아왔지만 2011년 이후부터는 귀환자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동안 민간 차원에서 중국 등을 거쳐 탈북시켰지만 북한이 국경단속을 강화하면서 이같은 시도마저 힘들게 됐습니다.

귀환자들의 증언으로 알려진 생존 국군포로는 560여명이지만 6.25 당시 실종자 8만여명을 감안하면 훨씬 많을걸로 추정됩니다.

그나마 정부가 신상정보를 파악한 국군포로는 41명에 불과하고 17명이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국군포로의 대부분은 80대 이상 고령으로 송환이 시급하지만 북한은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우리 정부의 송환교섭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잊혀진 전쟁…발발 연도도 모른다▼

<기자 멘트>

전쟁으로 폐허가 된 60여년 전 광화문 도심의 모습인데요.

무려 400만명의 사상자를 낸 6.25는 세계사적으로도 참혹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대는 얼마나 6.25를 잘 알고 있을까요?

KBS가 조사해봤더니 20대와 30대의 절반 정도는 6.25가 언제 일어났는지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6.25 전쟁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응답도 절반이 채 안됐습니다.

전쟁을 겪었거나 전후의 힘든 시기를 헤쳐온 50대 이후 세대가 6.25에 대해 잘 알고 있는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녹취> 최동진(86/참전용사) : "지금 세대가 6.25가 무엇인지 6.25가 어떻게 뭔지 모르고 있는데…"

남북한의 충돌 가능성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국민들은 6.25와 같은 전면전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은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연평해전이나 NLL 포격 도발같은 국지전이나 소규모 충돌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대부분 80대 이상인 6.25 참전용사에 대한 처우와 보상은 부족하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 참전기념비에 새겨진 이 문장. 너무도 잘 알려진 말인데요.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6.25에 참전한 사실을 참전용사들이 자랑스러워하고 또 국민들은 그들의 희생을 잊지않고 예우하는 선진국의 사회 분위기를 런던 김덕원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그들의 희생을 기억합니다”▼

<리포트>

6.25 전쟁에 참전했던 영국의 윌리엄 스피크먼씨.

임진강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귀국했다가 석 달 만에 자진 복귀한 전쟁 영웅입니다.

훈장을 모두 한국에 기증했고 죽으면 한국에 묻히고 싶다고 할 만큼 애정이 각별합니다.

<인터뷰> 윌리엄 스피크먼 : "내가 죽으면 한국에 묻히거나 재로 뿌려 지고 싶습니다."

프랑스 참전용사 고 레몽 베나르씨는 유언에 따라 유엔군 전몰 용사들이 있는 유엔 기념공원에 안장됐습니다.

<인터뷰> 니콜 베나르(부인/5월 15일) : "한국에 묻히길 바랐고 우리도 그 바람을 지킬 수 있어 기쁩니다."

참전용사들의 자부심과 한국에 대한 애정은 전쟁을 잊지않고 기억하는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등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일 등 전쟁 기념일을 성대히 치르고 있습니다.

또 전쟁 기념물을 곳곳에 건립해 국민들에게 역사의 교훈으로 활용합니다.

참전군인과 가족들에겐 실질적이고 다양한 복지혜택으로 보답하고 있습니다.

선진국들이 참전용사들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것은 결국 그들이 우리를 위해 희생했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기때문입니다.

런던에서 KBS 뉴스 김덕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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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뉴스] 6·25 전쟁 발발 65년…잊혀져가는 전쟁
    • 입력 2015-06-25 21:22:59
    • 수정2015-06-25 22:18:40
    뉴스 9
<앵커 멘트>

오늘은 동족상잔의 비극 6.25가 일어난지 6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정부는 65주년 기념식을 열어, 6.25의 교훈을 잊지 않을것을 다짐하고 참전 용사들이 진정한 대한민국의 영웅이라고 경의를 표했습니다.

하지만 6.25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갈수록 옅어지는것이 현실인데요.

생사조차 알길이 없는 국군포로의 가족들에게 6.25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입니다.

서지영 기자입니다.

▼잊혀져가는 국군포로·납북자들▼

<리포트>

고 손동식 이등중사는 포로로 잡혀간 후 평생 아오지 탄광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 지난 1984년 숨졌습니다.

손 중사의 생전 소원은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뷰> 손명화(국군포로의 딸) : "고향 못가봤는데 앞으로 통일되면 너라도 꼭 가라..아버지가 죽어서라도 아버지 묘 파서 고향에 묻어달라..."

손 중사의 딸은 지난 2013년 탈북하면서 모셔온 유해를 다음달 현충원에 안장합니다.

1994년 고 조창호 소위의 귀환 이후 국군포로 80여명이 돌아왔지만 2011년 이후부터는 귀환자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동안 민간 차원에서 중국 등을 거쳐 탈북시켰지만 북한이 국경단속을 강화하면서 이같은 시도마저 힘들게 됐습니다.

귀환자들의 증언으로 알려진 생존 국군포로는 560여명이지만 6.25 당시 실종자 8만여명을 감안하면 훨씬 많을걸로 추정됩니다.

그나마 정부가 신상정보를 파악한 국군포로는 41명에 불과하고 17명이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국군포로의 대부분은 80대 이상 고령으로 송환이 시급하지만 북한은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우리 정부의 송환교섭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잊혀진 전쟁…발발 연도도 모른다▼

<기자 멘트>

전쟁으로 폐허가 된 60여년 전 광화문 도심의 모습인데요.

무려 400만명의 사상자를 낸 6.25는 세계사적으로도 참혹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대는 얼마나 6.25를 잘 알고 있을까요?

KBS가 조사해봤더니 20대와 30대의 절반 정도는 6.25가 언제 일어났는지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6.25 전쟁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응답도 절반이 채 안됐습니다.

전쟁을 겪었거나 전후의 힘든 시기를 헤쳐온 50대 이후 세대가 6.25에 대해 잘 알고 있는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녹취> 최동진(86/참전용사) : "지금 세대가 6.25가 무엇인지 6.25가 어떻게 뭔지 모르고 있는데…"

남북한의 충돌 가능성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국민들은 6.25와 같은 전면전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은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연평해전이나 NLL 포격 도발같은 국지전이나 소규모 충돌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대부분 80대 이상인 6.25 참전용사에 대한 처우와 보상은 부족하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 참전기념비에 새겨진 이 문장. 너무도 잘 알려진 말인데요.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6.25에 참전한 사실을 참전용사들이 자랑스러워하고 또 국민들은 그들의 희생을 잊지않고 예우하는 선진국의 사회 분위기를 런던 김덕원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그들의 희생을 기억합니다”▼

<리포트>

6.25 전쟁에 참전했던 영국의 윌리엄 스피크먼씨.

임진강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귀국했다가 석 달 만에 자진 복귀한 전쟁 영웅입니다.

훈장을 모두 한국에 기증했고 죽으면 한국에 묻히고 싶다고 할 만큼 애정이 각별합니다.

<인터뷰> 윌리엄 스피크먼 : "내가 죽으면 한국에 묻히거나 재로 뿌려 지고 싶습니다."

프랑스 참전용사 고 레몽 베나르씨는 유언에 따라 유엔군 전몰 용사들이 있는 유엔 기념공원에 안장됐습니다.

<인터뷰> 니콜 베나르(부인/5월 15일) : "한국에 묻히길 바랐고 우리도 그 바람을 지킬 수 있어 기쁩니다."

참전용사들의 자부심과 한국에 대한 애정은 전쟁을 잊지않고 기억하는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등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일 등 전쟁 기념일을 성대히 치르고 있습니다.

또 전쟁 기념물을 곳곳에 건립해 국민들에게 역사의 교훈으로 활용합니다.

참전군인과 가족들에겐 실질적이고 다양한 복지혜택으로 보답하고 있습니다.

선진국들이 참전용사들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것은 결국 그들이 우리를 위해 희생했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기때문입니다.

런던에서 KBS 뉴스 김덕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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