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외신의 북한 취재 ‘선전과 사실 사이’

입력 2015.07.11 (08:08) 수정 2015.07.11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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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하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김정은 시대 달라진 점 중 하나는 북한에 대한 외신의 취재가 크게 늘었다는 점인데요,

가뭄 피해는 물론주요 정치 이슈, 주민들의 일상이 외신을 통해 공개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엄격한 통제 하에 북한 당국의 입맛대로 이뤄지는 취재가 얼마나 사실을 반영하는 거냐, 외신들 사이에 논란도 뜨거운데요,

클로즈업 북한, 오늘은 김정은 시대 북한의 외신 활용법과 이를 둘러싼 논란을 집중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주, 북한 황해도의 농촌 들녘, 한 농부가 메마른 논에 양수기를 동원해 물을 대고 있다.

하지만 역부족인 듯, 곧 논은 다시 갈라진 바닥을 드러낸다.

쩍쩍 금이 간 논바닥, 바닥을 드러낸 저수지, 북한 가뭄이 이달 들어서도 좀처럼 해갈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녹취> 신웅현(은파군 협동농장 관리위원장) : "우리 군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계속되는 가물로 인하여 수천 정보의 농지를 피해 보고 있습니다."

아예 논을 갈아엎고, 옥수수로 바꿔 심은 현장도 공개됐다.

<녹취> 김경남(은파군 협동농장 작업반장) : "여기가 바로 지난해까지 벼농사를 하던 땅입니다. 그러나 올해 극심한 왕가물(가뭄)으로 인해서 벼농사를 짓지 못하고 갈아엎고 강냉이(옥수수)를..."

생생한 영상과 주민 인터뷰를 통해 북한의 가뭄 상황을 외부에 알린 것은 미국의 AP 통신.

이미 지난달부터 북한의 가뭄은 전 세계적인 이슈로 자리매김했다.

가뭄 피해에 대한 AP, CCTV의 현장 취재 내용을 BBC와 CNN 등 유력 언론들이 다시 인용해 대대적으로 전하고 나선 것이다.

비슷한 시기, 한편으로 북한은 CNN 취재진을 두 달 만에 다시 평양에 불러들였다.

북한 국가우주개발국 소속 과학자들은 먼저, 지난 2009년과 12년 각각 쏴 올린 광명성 2호와 3호에 대해 언급했다.

<녹취> 윤창혁(국가우주개발국 부소장) : "지금도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종종 데이터 전송에 문제가 생기긴 하지만…"

그리곤 새로운 인공위성 2개가 개발을 마치고 발사대기 상태에 놓여있다고 주장했다.

<녹취> 윤창혁(국가우주개발국 부소장) : "서구는 우리의 사업에 대해 지나치게 의심을 품습니다. 우리를 믿지 못하겠다면, 최소한 제재를 풀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걸 막지 말아야 합니다."

필요할 때마다 외신을 적극 끌어들이는 이런 북한의 최근 행보는 ‘신비주의’로 일관했던 이전과는 크게 다르다는 평가다.

<인터뷰> 정영태(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김정일 시대에는 외신 활용도가 그렇게 높지 않았습니다. 내부적으로 오히려 이것을 차단하고 봉쇄하는데 치중을 했지...그러나 김정은 체제 때는 그것과는 달리 오히려 소위 평양이라고 하는 곳을 드라마의 세트장과 같이 상당히 잘 만들어놓고 이것을 자꾸 선전하고 부각함으로써 이것이 바로 김정은 체제의 나름대로 성과다.."

김정은 시대 들어 체제선전 도구로 외신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에도 가장 파격으로 손꼽히는 것은 2013년 전승절 60주년 행사다.

백여 명의 외신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김정은 제 1위원장.

북한은 이례적으로, 최고 지도자에 대한 외신의 ‘근접 취재’까지 허용했다.

<녹취> 중국 봉황TV 기자 : "중국인민들에게 몇 마디 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봉황TV 기자입니다."

쏟아지는 질문에 답을 하진 않았지만, 김정은은 시종 여유 있는 태도를 유지했다.

이런 김정은의 모습은 늘 밀착 경호를 받으며 먼발치에서 카메라에 포착되곤 했던 선대 때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인터뷰> 김근식(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일단 젊은 지도자, 그리고 서방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는 지도자, 그리고 가능하면 김정일 시대와 달리 폐쇄적인 북한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서 상당히 국제 규범에 따르는 북한, 이런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아마 외신들을 잘 활용하는 그런 이미지를 연출하는 것 같습니다."

북한은 자신들의 입장 표명 창구로도 외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최근 CNN이 내보낸 북한 조국통일연구원 박용철 부원장과의 인터뷰.

<녹취> 박용철(조국통일연구원 부원장) : "(올해 고위간부 15명의 사형을 명령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어느 국가나 반국가적인 범죄행위를 찾아내 처벌하고 처형하는 것은 매우 정상적인 일입니다."

이후 현영철 처형이 알려지는 등 김정은의 공포 통치가 국제적 논란으로 떠오르자, 외신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북한이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외신을 이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엔 억류돼 있던 케네스 배 등 미국인 3명에 대해 CNN, AP통신의 인터뷰를 허용했다.

<녹취> 케네스 배(당시 억류 미국인) : "미국 정부나 밖에 계신 분들이 (석방)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억류된 미국인들은 하나같이 미국 정부에 고위급 인사를 파견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국과의 대화통로를 열기 위해 외신 인터뷰를 활용했다는 분석이다.

<인터뷰> 김근식(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예컨대 북한이 핵실험이라든지 미사일 발사 실험이라든지 이런 것들의 정당성을 국제 사회에 주장하고자 할 때는 또 김정은 스스로의 어떤 정치적인 영향력과 정치적인 정당성을 과시하는 그런 정치 행사에도 외신을 초청해서 국제 사회에 그것들을 내보내려 하는 것은 제가 볼 때 북한으로서는 외신을 활용한 정치적인 어떤 최대화의 효용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외신을 국제 사회에 대한 ‘메시지 전달 카드’로 활용함과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주민 결속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최근 북한 매체에 외신과 관련된 뉴스가 부쩍 늘어난 것도 이런 맥락 중 하나이다.

지난 해 8월, 조선중앙TV는 세계 각국 학생 사백 여 명을 ‘송도원 야영소’에 초청했다는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녹취> 탄자니아 학생 : "야영소의 시설이 매우 좋습니다. 이런 야영소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북한 어린이들은 정말 운 좋은 아이들입니다."

노동신문은 이를 다룬 CNN과 AP 통신 기사를 언급하며, ‘미국 언론마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실제 외신이 전한 내용은 어땠을까?

‘말 안 듣는 자녀를 조용히 시키려면 이번 여름에 북한에 보내라’거나 ‘미개한 나라의 오아시스’라며 북한을 조롱한 것이다.

<인터뷰> 정영태(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바깥에서 김정은 체제 하에서의 북한 생활이라든가 여러 가지 측면을 자랑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 체제가 상당히 우수하고 또 살만하고 행복한 곳이다.’ 이런 것을 북한 주민들한테 강조를 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 체제를 좋아하게 되는, 또 신뢰하게 되는(효과를 노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 취재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돼 왔고, 그 논란은 최근 미국으로까지 확산되는 분위기다.

새벽녘 대동강 건너편에서 본 평양시, 평양 옥류아동병원의 재활시설과 ‘김정숙 공장’에서 생산되는 북한 국기.

시가행진을 기다리는 북한 여성들까지, 지난 달 10일, 뉴욕타임스가 ‘북한에서 보낸 6일’ 기사에 실은 북한의 모습이다.

그런데 북한 주민들의 실제 일상 모습을 담아내려 했다는 이 기사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이 북한의 실상을 외면한 취재라며 ‘르포가 선전도구가 됐다’고 정면 비판에 나섰다.

이에 또 다른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가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뉴욕타임스를 대신해 반박에 나서면서, 북한 취재의 사실과 진실을 놓고 외신들 사이에 날선 공방이 벌어졌다.

엄격한 통제로 외신 취재 ‘한계’ 불가피 이 같은 공방은 오히려 북한 취재에 엄청난 제약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실제 북한에서 외신 취재는 철저히 당국의 통제 아래 이루어진다는 것이 조선중앙TV 기자 출신 탈북자의 전언이다.

<인터뷰> 장해성(탈북자/조선중앙TV 20년 근무) : "외신 기자들 오는 경우에는 조선중앙TV에 외사부가 따로 있습니다. 외사부 사람들은 정상적으로 교육을 받는 게 외신 기자들이 어떤 부문을 취재하고 싶다고 하면 어떤 부문에 한해서 어떤 거 어떤 거 주의해라, 어떤 거 부각시켜라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말하자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문은 일체 나가지 못하게 다 차단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외신과 인터뷰할 주민들을 선별하고, 예상 답변까지 준비해 놓는다고 한다.

<녹취>북한 학생(지난 5월, CNN 방송) : "(장래희망이 뭔가요?-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을 온 세상에 자랑하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인터뷰>장해성(탈북자/조선중앙TV 20년 근무) : "말 잘할 사람, 말 잘하는 데서 제일 중요한 건 김일성, 김정일의 위대성을 어떻게 돋보이게 잘 말할 것인가. 여러 계층별로 해서 준비시켰다가 이 사람을 요구한다 하면 이 사람을 들이밀고 저 사람을 요구한다고 하면 저 사람을 들이밀고...그건 다 연극입니다."

‘은둔의 왕국’ 북한이 취재를 대폭 허용하는 등 외신에 관대했던 시기가 있었다.

바로 김정은 제 1위원장의 집권 직후이다.

김정은의 집권 이듬해인 2012년 초, 북한은 서방 언론사 최초로 AP 통신의 평양 지국 개설을 허용했다.

수십 년 간 외신 취재에 제한을 뒀던 북한이 서방 언론사, 그것도 ‘주적’인 미국의 언론사에 문호를 개방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무렵엔 외신의 촬영에 대한 통제나 검열도 대폭 완화됐다.

열병식 도중 업힌 채 실려 나오는 병사나 지쳐 주저앉은 군인들의 모습이 여과 없이 외신의 카메라에 담긴 것이다.

하지만 집권 4년차를 맞은 지금, 북한은 외신 취재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다시금 죄고 있는 분위기다.

<인터뷰> 김근식(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북한 입장에서 외신에 대한 양면성을 잘 알고 있는 것이죠. 지금 북한 입장에서 외신에 대한 어떤 과도기적인 방식, 어떨 때는 활용하고 어떨 때는 통제해야 되는, 그런 아마 중간적인 어정쩡한 상태가 최근에 김정은 시대 들어와서 외신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제를 벗어나 북한의 은밀한 모습을 취재하려는 외신의 집요함도, 북한 당국으로선 골칫거리다.

<녹취>2013년 4월, BBC 다큐멘터리 진짜 북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난 2013년엔 대학생 방문단으로 위장해 북한에 들어간 영국 BBC 기자의 다큐멘터리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외국인 관광객을 적극 유치하면서 언론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북한의 실상을 고발하고 있다.

북한 전역을 여행한 네덜란드 사진작가 앨리스 윌링가선전물로 봤던 모습과 전혀 다른 북한의 실상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최근, 자신이 목격한 실제 모습과 북한의 선전물을 결합한 독특한 작품으로 북한 실상을 외부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인터뷰> 정영태(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북한이 내부적으로 꽁꽁 감춰놓은 여러 가지 치부라든가 이런 것들이 서서히 외신을 통해서 나가는 그런 것이 반복되다 보면 소위 김정은 체제 자체에서 이것이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체제 선전과 주민 결속 수단으로 외신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북한.

하지만 잘 짜인 겉모습 뒤에 숨겨진 이천 오백 만 북한 주민들의 비참한 현실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외신의 북한 보도는 앞으로도 조롱 그 이상을 벗어나기 힘들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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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7-11 08:22:23
    • 수정2015-07-11 22: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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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하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김정은 시대 달라진 점 중 하나는 북한에 대한 외신의 취재가 크게 늘었다는 점인데요,

가뭄 피해는 물론주요 정치 이슈, 주민들의 일상이 외신을 통해 공개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엄격한 통제 하에 북한 당국의 입맛대로 이뤄지는 취재가 얼마나 사실을 반영하는 거냐, 외신들 사이에 논란도 뜨거운데요,

클로즈업 북한, 오늘은 김정은 시대 북한의 외신 활용법과 이를 둘러싼 논란을 집중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주, 북한 황해도의 농촌 들녘, 한 농부가 메마른 논에 양수기를 동원해 물을 대고 있다.

하지만 역부족인 듯, 곧 논은 다시 갈라진 바닥을 드러낸다.

쩍쩍 금이 간 논바닥, 바닥을 드러낸 저수지, 북한 가뭄이 이달 들어서도 좀처럼 해갈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녹취> 신웅현(은파군 협동농장 관리위원장) : "우리 군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계속되는 가물로 인하여 수천 정보의 농지를 피해 보고 있습니다."

아예 논을 갈아엎고, 옥수수로 바꿔 심은 현장도 공개됐다.

<녹취> 김경남(은파군 협동농장 작업반장) : "여기가 바로 지난해까지 벼농사를 하던 땅입니다. 그러나 올해 극심한 왕가물(가뭄)으로 인해서 벼농사를 짓지 못하고 갈아엎고 강냉이(옥수수)를..."

생생한 영상과 주민 인터뷰를 통해 북한의 가뭄 상황을 외부에 알린 것은 미국의 AP 통신.

이미 지난달부터 북한의 가뭄은 전 세계적인 이슈로 자리매김했다.

가뭄 피해에 대한 AP, CCTV의 현장 취재 내용을 BBC와 CNN 등 유력 언론들이 다시 인용해 대대적으로 전하고 나선 것이다.

비슷한 시기, 한편으로 북한은 CNN 취재진을 두 달 만에 다시 평양에 불러들였다.

북한 국가우주개발국 소속 과학자들은 먼저, 지난 2009년과 12년 각각 쏴 올린 광명성 2호와 3호에 대해 언급했다.

<녹취> 윤창혁(국가우주개발국 부소장) : "지금도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종종 데이터 전송에 문제가 생기긴 하지만…"

그리곤 새로운 인공위성 2개가 개발을 마치고 발사대기 상태에 놓여있다고 주장했다.

<녹취> 윤창혁(국가우주개발국 부소장) : "서구는 우리의 사업에 대해 지나치게 의심을 품습니다. 우리를 믿지 못하겠다면, 최소한 제재를 풀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걸 막지 말아야 합니다."

필요할 때마다 외신을 적극 끌어들이는 이런 북한의 최근 행보는 ‘신비주의’로 일관했던 이전과는 크게 다르다는 평가다.

<인터뷰> 정영태(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김정일 시대에는 외신 활용도가 그렇게 높지 않았습니다. 내부적으로 오히려 이것을 차단하고 봉쇄하는데 치중을 했지...그러나 김정은 체제 때는 그것과는 달리 오히려 소위 평양이라고 하는 곳을 드라마의 세트장과 같이 상당히 잘 만들어놓고 이것을 자꾸 선전하고 부각함으로써 이것이 바로 김정은 체제의 나름대로 성과다.."

김정은 시대 들어 체제선전 도구로 외신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에도 가장 파격으로 손꼽히는 것은 2013년 전승절 60주년 행사다.

백여 명의 외신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김정은 제 1위원장.

북한은 이례적으로, 최고 지도자에 대한 외신의 ‘근접 취재’까지 허용했다.

<녹취> 중국 봉황TV 기자 : "중국인민들에게 몇 마디 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봉황TV 기자입니다."

쏟아지는 질문에 답을 하진 않았지만, 김정은은 시종 여유 있는 태도를 유지했다.

이런 김정은의 모습은 늘 밀착 경호를 받으며 먼발치에서 카메라에 포착되곤 했던 선대 때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인터뷰> 김근식(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일단 젊은 지도자, 그리고 서방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는 지도자, 그리고 가능하면 김정일 시대와 달리 폐쇄적인 북한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서 상당히 국제 규범에 따르는 북한, 이런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아마 외신들을 잘 활용하는 그런 이미지를 연출하는 것 같습니다."

북한은 자신들의 입장 표명 창구로도 외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최근 CNN이 내보낸 북한 조국통일연구원 박용철 부원장과의 인터뷰.

<녹취> 박용철(조국통일연구원 부원장) : "(올해 고위간부 15명의 사형을 명령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어느 국가나 반국가적인 범죄행위를 찾아내 처벌하고 처형하는 것은 매우 정상적인 일입니다."

이후 현영철 처형이 알려지는 등 김정은의 공포 통치가 국제적 논란으로 떠오르자, 외신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북한이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외신을 이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엔 억류돼 있던 케네스 배 등 미국인 3명에 대해 CNN, AP통신의 인터뷰를 허용했다.

<녹취> 케네스 배(당시 억류 미국인) : "미국 정부나 밖에 계신 분들이 (석방)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억류된 미국인들은 하나같이 미국 정부에 고위급 인사를 파견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국과의 대화통로를 열기 위해 외신 인터뷰를 활용했다는 분석이다.

<인터뷰> 김근식(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예컨대 북한이 핵실험이라든지 미사일 발사 실험이라든지 이런 것들의 정당성을 국제 사회에 주장하고자 할 때는 또 김정은 스스로의 어떤 정치적인 영향력과 정치적인 정당성을 과시하는 그런 정치 행사에도 외신을 초청해서 국제 사회에 그것들을 내보내려 하는 것은 제가 볼 때 북한으로서는 외신을 활용한 정치적인 어떤 최대화의 효용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외신을 국제 사회에 대한 ‘메시지 전달 카드’로 활용함과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주민 결속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최근 북한 매체에 외신과 관련된 뉴스가 부쩍 늘어난 것도 이런 맥락 중 하나이다.

지난 해 8월, 조선중앙TV는 세계 각국 학생 사백 여 명을 ‘송도원 야영소’에 초청했다는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녹취> 탄자니아 학생 : "야영소의 시설이 매우 좋습니다. 이런 야영소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북한 어린이들은 정말 운 좋은 아이들입니다."

노동신문은 이를 다룬 CNN과 AP 통신 기사를 언급하며, ‘미국 언론마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실제 외신이 전한 내용은 어땠을까?

‘말 안 듣는 자녀를 조용히 시키려면 이번 여름에 북한에 보내라’거나 ‘미개한 나라의 오아시스’라며 북한을 조롱한 것이다.

<인터뷰> 정영태(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바깥에서 김정은 체제 하에서의 북한 생활이라든가 여러 가지 측면을 자랑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 체제가 상당히 우수하고 또 살만하고 행복한 곳이다.’ 이런 것을 북한 주민들한테 강조를 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 체제를 좋아하게 되는, 또 신뢰하게 되는(효과를 노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 취재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돼 왔고, 그 논란은 최근 미국으로까지 확산되는 분위기다.

새벽녘 대동강 건너편에서 본 평양시, 평양 옥류아동병원의 재활시설과 ‘김정숙 공장’에서 생산되는 북한 국기.

시가행진을 기다리는 북한 여성들까지, 지난 달 10일, 뉴욕타임스가 ‘북한에서 보낸 6일’ 기사에 실은 북한의 모습이다.

그런데 북한 주민들의 실제 일상 모습을 담아내려 했다는 이 기사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이 북한의 실상을 외면한 취재라며 ‘르포가 선전도구가 됐다’고 정면 비판에 나섰다.

이에 또 다른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가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뉴욕타임스를 대신해 반박에 나서면서, 북한 취재의 사실과 진실을 놓고 외신들 사이에 날선 공방이 벌어졌다.

엄격한 통제로 외신 취재 ‘한계’ 불가피 이 같은 공방은 오히려 북한 취재에 엄청난 제약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실제 북한에서 외신 취재는 철저히 당국의 통제 아래 이루어진다는 것이 조선중앙TV 기자 출신 탈북자의 전언이다.

<인터뷰> 장해성(탈북자/조선중앙TV 20년 근무) : "외신 기자들 오는 경우에는 조선중앙TV에 외사부가 따로 있습니다. 외사부 사람들은 정상적으로 교육을 받는 게 외신 기자들이 어떤 부문을 취재하고 싶다고 하면 어떤 부문에 한해서 어떤 거 어떤 거 주의해라, 어떤 거 부각시켜라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말하자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문은 일체 나가지 못하게 다 차단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외신과 인터뷰할 주민들을 선별하고, 예상 답변까지 준비해 놓는다고 한다.

<녹취>북한 학생(지난 5월, CNN 방송) : "(장래희망이 뭔가요?-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을 온 세상에 자랑하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인터뷰>장해성(탈북자/조선중앙TV 20년 근무) : "말 잘할 사람, 말 잘하는 데서 제일 중요한 건 김일성, 김정일의 위대성을 어떻게 돋보이게 잘 말할 것인가. 여러 계층별로 해서 준비시켰다가 이 사람을 요구한다 하면 이 사람을 들이밀고 저 사람을 요구한다고 하면 저 사람을 들이밀고...그건 다 연극입니다."

‘은둔의 왕국’ 북한이 취재를 대폭 허용하는 등 외신에 관대했던 시기가 있었다.

바로 김정은 제 1위원장의 집권 직후이다.

김정은의 집권 이듬해인 2012년 초, 북한은 서방 언론사 최초로 AP 통신의 평양 지국 개설을 허용했다.

수십 년 간 외신 취재에 제한을 뒀던 북한이 서방 언론사, 그것도 ‘주적’인 미국의 언론사에 문호를 개방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무렵엔 외신의 촬영에 대한 통제나 검열도 대폭 완화됐다.

열병식 도중 업힌 채 실려 나오는 병사나 지쳐 주저앉은 군인들의 모습이 여과 없이 외신의 카메라에 담긴 것이다.

하지만 집권 4년차를 맞은 지금, 북한은 외신 취재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다시금 죄고 있는 분위기다.

<인터뷰> 김근식(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북한 입장에서 외신에 대한 양면성을 잘 알고 있는 것이죠. 지금 북한 입장에서 외신에 대한 어떤 과도기적인 방식, 어떨 때는 활용하고 어떨 때는 통제해야 되는, 그런 아마 중간적인 어정쩡한 상태가 최근에 김정은 시대 들어와서 외신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제를 벗어나 북한의 은밀한 모습을 취재하려는 외신의 집요함도, 북한 당국으로선 골칫거리다.

<녹취>2013년 4월, BBC 다큐멘터리 진짜 북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난 2013년엔 대학생 방문단으로 위장해 북한에 들어간 영국 BBC 기자의 다큐멘터리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외국인 관광객을 적극 유치하면서 언론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북한의 실상을 고발하고 있다.

북한 전역을 여행한 네덜란드 사진작가 앨리스 윌링가선전물로 봤던 모습과 전혀 다른 북한의 실상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최근, 자신이 목격한 실제 모습과 북한의 선전물을 결합한 독특한 작품으로 북한 실상을 외부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인터뷰> 정영태(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북한이 내부적으로 꽁꽁 감춰놓은 여러 가지 치부라든가 이런 것들이 서서히 외신을 통해서 나가는 그런 것이 반복되다 보면 소위 김정은 체제 자체에서 이것이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체제 선전과 주민 결속 수단으로 외신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북한.

하지만 잘 짜인 겉모습 뒤에 숨겨진 이천 오백 만 북한 주민들의 비참한 현실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외신의 북한 보도는 앞으로도 조롱 그 이상을 벗어나기 힘들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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