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동물원에서 도축장으로…꽃사슴의 기구한 운명

입력 2015.11.18 (08:32) 수정 2015.11.18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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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 시인 노천명은 사슴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동물원에서도 많은 관람객들에게 사랑받는 동물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대표적 동물원, 서울대공원에 있던 사슴과 흑염소들이 도축장으로 팔려가고 있다는 동물 보호 단체의 폭로가 있었는데요.

우여곡절 끝에 팔려간 동물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뉴스따라잡기에서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서울대공원의 사슴 축사 옆, 화물차 두 대가 서 있습니다.

잠시 뒤, 사슴과 염소 여러 마리가 화물칸에 실립니다.

<녹취> “가! 가!”

동물들을 실은 화물차는 1시간 반 쯤 달려 경기도 외곽의 한 농장에 도착합니다.

동물을 도축해 시중에 식용 고기로 납품하거나, 직접 손님을 받아 식당 영업을 하는 도축 농장입니다.

<녹취> 도축장 관계자(음성변조) : "주말에 손님을 내가 많이 받아요. 여기 오셔가지고 드시는 음식도 맛있어야 되고 여러 가지 그런 부분이 있잖아요. 야외에 원하시면 야외에 세팅을 다하고 (해요.)"

전날까지도 동물원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하던 동물들이 도축 농장에 실려 간 이유는 뭘까.

<인터뷰> 박수연(케어 공동대표) : "어린이들한테 관람용으로 또 많은 시민들한테 관람용으로 전시됐던 사슴과 흑염소 한 43마리 정도가 도축장으로 갈 것이다. 서울대공원의 내부 고발로 저희가 알게 된 거고요."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있던 동물들이 도축장으로 팔려가고 있다는 제보가 사실로 확인된 겁니다.

<녹취> 도축장 관계자(음성변조) : "(별로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것 같아요. 다 피나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밥은 안 주고 물만 주죠. 놀랐으니까."

동물단체 활동가가 손님을 가장해, 농장 관계자에게 접근합니다.

외부에 마련된 우리 안에는 사슴과 흑염소들이 갇혀 있었습니다.

<녹취> 도축장 관계자(음성변조) : "물사슴 이라고 이것이 제일 맛있는 사슴이에요. 두 번째 맛있는 것이 꽃사슴이에요. (아까 얼마라고 하셨죠?) 150만 원. 저것 잡으면 50명, 40명, 50명 (먹어요.)"

이때 (또 다른) 농장 관계자가 뜻밖의 말을 흘립니다.

<녹취> 도축장 관계자(음성변조) : "예쁘죠? 서울대공원에서 가져온 거예요. 입찰받아가지고. (염소도 서울대공원에서 입찰받아서 데리고 오는 거예요?) 입찰 받아가지고 다 가지고 오는 것이죠."

사실 관계를 확인한 동물보호단체는 즉각 서울대공원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도축장에 팔려간 동물들을 다시 데려와야 한다는 주장도 폈습니다.

<인터뷰> 박수연(케어 공동대표) : "계속 번식을 해서 마리 수가 불어나다 보니까 공간적인 한계로 인해 매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는 것이 대공원의 입장이었습니다. 저희가 (매각한 동물들이) 도축장에 있다, 동물들을 구해달라고 (했는데) 도축장에 한번 가보지도 않았고."

개체수가 기준 이상으로 늘어나면 사육 환경이 열악해 지기 때문에, 넘치는 숫자만큼 동물들을 매각해야 한다는 게 동물원 측 입장이었습니다.

이런 동물은 ‘잉여동물’로 분류됐습니다.

하지만 동물원 측은 동물을 사간 사람이 식용 고기 도축업자라는 사실은 몰랐다는 주장을 펴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동물단체는 이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몇 년 동안 이뤄져 온 매각이었던 만큼, 서울대공원 측이 알고도 모른 척 방조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수연(케어 공동대표) : "매각하는 당시에 그 사람이 뭘 하는 사람인지까지는 알 수 없다. 이것이 한 번 정도 이루어졌었던 일이라면 몰랐다고 할 수 있겠지만. 수년간에 걸쳐서 1년에 수차례 매각을 통해서 그런 업자들이 (동물들을) 들고나갔다는 것에 대해서 몰랐다는 것은 사실 저희가 납득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동물들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두 달 전 열렸던 한 토론회에서도 의미심장한 발언이 나왔습니다.

“동물원 동물의 복지를 위한 긴급 시민토론회”에서 서울대공원의 한 사육사가 했던 발언입니다.

<녹취> 서울대공원 사육사(음성변조) : "제가 8월 18일, 19일 사슴 매각 및 반출 담당에게 분명히 이야기했습니다. 사슴의 반출자는 사슴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분명히 도축되어 식용으로 가능성이 많다고 했습니다. 사슴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간과할 수 있습니까? 서울 동물원 담당자는 사슴들이 사슴농장에 팔려가서 도축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의 직무를 유기한 혐의가 있습니다."

동물원 내부에서도 이미 문제제기가 있었다는 정황을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지난 3년 동안 서울대공원이 잉여동물을 매각해 판매한 금액은 해마다 1500만 원 안팎에 이릅니다.

때문에, 대공원이 동물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수연(케어 공동대표) : "잉여 개체가 나오지 않게 하려면 중성화 수술을 통해서 마릿수를 늘어나지 않게 조절을 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번식을 시켰고, 매각을 시켰고, 이런 것들이 수년동안 반복돼 왔던 것을 보면 어떤 수익을 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아니었나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취재진은 서울대공원 측의 공식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들을 수 없었는데요.

동물보호단체는 도축장으로 팔려간 게 확인된 사슴과 염소 40여 마리를 구조하기 위해 긴급 행동에 나섰습니다.

거리 캠페인, 단식 농성 등으로 실태를 알리는 한편, 대공원 측에 대책과 재발방지책을 요구했습니다.

지난달 18일 서울대공원 측과 동물단체는 마침내 합의점을 찾았는데요.

재매입 비용을 분담하고 새 보금자리를 찾아주기로 한 겁니다.

재매입 비용에는 시민들이 모아준 성금 천 만 원도 포함됐습니다.

그리고 이틀 전, 언제 도축될지 모르는 처지에 있던 동물들이 새 보금자리로 옮겨졌습니다.

<인터뷰> 박수연(케어 공동대표) : "저희들이 바라는 것이 큰 것이 아니에요. 어린이들한테 사랑받았던 그래서 많은 사람들한테 길들여지고 이미 야생성을 잃어버린 이 동물만큼은 최선을 다해서 마지막까지 그곳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숨을 거둘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동물원의 자세가 아닌가."

살았을 땐 동물원 구경거리로 죽어선 식용 고기가 될 뻔했던 동물들, 그들을 구한 것 역시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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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동물원에서 도축장으로…꽃사슴의 기구한 운명
    • 입력 2015-11-18 08:34:50
    • 수정2015-11-18 09: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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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 시인 노천명은 사슴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동물원에서도 많은 관람객들에게 사랑받는 동물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대표적 동물원, 서울대공원에 있던 사슴과 흑염소들이 도축장으로 팔려가고 있다는 동물 보호 단체의 폭로가 있었는데요.

우여곡절 끝에 팔려간 동물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뉴스따라잡기에서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서울대공원의 사슴 축사 옆, 화물차 두 대가 서 있습니다.

잠시 뒤, 사슴과 염소 여러 마리가 화물칸에 실립니다.

<녹취> “가! 가!”

동물들을 실은 화물차는 1시간 반 쯤 달려 경기도 외곽의 한 농장에 도착합니다.

동물을 도축해 시중에 식용 고기로 납품하거나, 직접 손님을 받아 식당 영업을 하는 도축 농장입니다.

<녹취> 도축장 관계자(음성변조) : "주말에 손님을 내가 많이 받아요. 여기 오셔가지고 드시는 음식도 맛있어야 되고 여러 가지 그런 부분이 있잖아요. 야외에 원하시면 야외에 세팅을 다하고 (해요.)"

전날까지도 동물원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하던 동물들이 도축 농장에 실려 간 이유는 뭘까.

<인터뷰> 박수연(케어 공동대표) : "어린이들한테 관람용으로 또 많은 시민들한테 관람용으로 전시됐던 사슴과 흑염소 한 43마리 정도가 도축장으로 갈 것이다. 서울대공원의 내부 고발로 저희가 알게 된 거고요."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있던 동물들이 도축장으로 팔려가고 있다는 제보가 사실로 확인된 겁니다.

<녹취> 도축장 관계자(음성변조) : "(별로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것 같아요. 다 피나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밥은 안 주고 물만 주죠. 놀랐으니까."

동물단체 활동가가 손님을 가장해, 농장 관계자에게 접근합니다.

외부에 마련된 우리 안에는 사슴과 흑염소들이 갇혀 있었습니다.

<녹취> 도축장 관계자(음성변조) : "물사슴 이라고 이것이 제일 맛있는 사슴이에요. 두 번째 맛있는 것이 꽃사슴이에요. (아까 얼마라고 하셨죠?) 150만 원. 저것 잡으면 50명, 40명, 50명 (먹어요.)"

이때 (또 다른) 농장 관계자가 뜻밖의 말을 흘립니다.

<녹취> 도축장 관계자(음성변조) : "예쁘죠? 서울대공원에서 가져온 거예요. 입찰받아가지고. (염소도 서울대공원에서 입찰받아서 데리고 오는 거예요?) 입찰 받아가지고 다 가지고 오는 것이죠."

사실 관계를 확인한 동물보호단체는 즉각 서울대공원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도축장에 팔려간 동물들을 다시 데려와야 한다는 주장도 폈습니다.

<인터뷰> 박수연(케어 공동대표) : "계속 번식을 해서 마리 수가 불어나다 보니까 공간적인 한계로 인해 매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는 것이 대공원의 입장이었습니다. 저희가 (매각한 동물들이) 도축장에 있다, 동물들을 구해달라고 (했는데) 도축장에 한번 가보지도 않았고."

개체수가 기준 이상으로 늘어나면 사육 환경이 열악해 지기 때문에, 넘치는 숫자만큼 동물들을 매각해야 한다는 게 동물원 측 입장이었습니다.

이런 동물은 ‘잉여동물’로 분류됐습니다.

하지만 동물원 측은 동물을 사간 사람이 식용 고기 도축업자라는 사실은 몰랐다는 주장을 펴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동물단체는 이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몇 년 동안 이뤄져 온 매각이었던 만큼, 서울대공원 측이 알고도 모른 척 방조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수연(케어 공동대표) : "매각하는 당시에 그 사람이 뭘 하는 사람인지까지는 알 수 없다. 이것이 한 번 정도 이루어졌었던 일이라면 몰랐다고 할 수 있겠지만. 수년간에 걸쳐서 1년에 수차례 매각을 통해서 그런 업자들이 (동물들을) 들고나갔다는 것에 대해서 몰랐다는 것은 사실 저희가 납득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동물들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두 달 전 열렸던 한 토론회에서도 의미심장한 발언이 나왔습니다.

“동물원 동물의 복지를 위한 긴급 시민토론회”에서 서울대공원의 한 사육사가 했던 발언입니다.

<녹취> 서울대공원 사육사(음성변조) : "제가 8월 18일, 19일 사슴 매각 및 반출 담당에게 분명히 이야기했습니다. 사슴의 반출자는 사슴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분명히 도축되어 식용으로 가능성이 많다고 했습니다. 사슴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간과할 수 있습니까? 서울 동물원 담당자는 사슴들이 사슴농장에 팔려가서 도축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의 직무를 유기한 혐의가 있습니다."

동물원 내부에서도 이미 문제제기가 있었다는 정황을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지난 3년 동안 서울대공원이 잉여동물을 매각해 판매한 금액은 해마다 1500만 원 안팎에 이릅니다.

때문에, 대공원이 동물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수연(케어 공동대표) : "잉여 개체가 나오지 않게 하려면 중성화 수술을 통해서 마릿수를 늘어나지 않게 조절을 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번식을 시켰고, 매각을 시켰고, 이런 것들이 수년동안 반복돼 왔던 것을 보면 어떤 수익을 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아니었나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취재진은 서울대공원 측의 공식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들을 수 없었는데요.

동물보호단체는 도축장으로 팔려간 게 확인된 사슴과 염소 40여 마리를 구조하기 위해 긴급 행동에 나섰습니다.

거리 캠페인, 단식 농성 등으로 실태를 알리는 한편, 대공원 측에 대책과 재발방지책을 요구했습니다.

지난달 18일 서울대공원 측과 동물단체는 마침내 합의점을 찾았는데요.

재매입 비용을 분담하고 새 보금자리를 찾아주기로 한 겁니다.

재매입 비용에는 시민들이 모아준 성금 천 만 원도 포함됐습니다.

그리고 이틀 전, 언제 도축될지 모르는 처지에 있던 동물들이 새 보금자리로 옮겨졌습니다.

<인터뷰> 박수연(케어 공동대표) : "저희들이 바라는 것이 큰 것이 아니에요. 어린이들한테 사랑받았던 그래서 많은 사람들한테 길들여지고 이미 야생성을 잃어버린 이 동물만큼은 최선을 다해서 마지막까지 그곳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숨을 거둘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동물원의 자세가 아닌가."

살았을 땐 동물원 구경거리로 죽어선 식용 고기가 될 뻔했던 동물들, 그들을 구한 것 역시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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