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eye] 끝없는 변신…초밥 1200년 역사

입력 2015.11.21 (08:39) 수정 2015.11.2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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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해 4월 도쿄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 때 모습입니다.

`아베 총리`가 `오바마 대통령`을 `스키야바시 지로`라는 `스시집`, 그러니까 `초밥집`으로 초대했는데, 이 가게, 미슐랭 가이드 별 3개 짜리인 데다 1인분에 우리 돈 30만 원이나 해 화제가 됐죠?

초밥이 외교 무대에도 등장한 건데요,

1200년에 걸친 초밥의 변천사, 그리고 그 속에 녹아있는 일본 문화의 코드를 살펴봤습니다.

도쿄 박재우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일본 오사카 도심 `돗톰보리`.

서울의 청계천과 같은 명물 거리로 먹거리와 볼거리가 많아 항상 관광객들로 넘쳐납니다.

이곳에서 관광객들의 침샘을 자극하는 명소, 일본답게 역시 초밥집입니다.

<녹취> "자! `스시` 어떻습니까? 저렴한 `스시` 점심세트 있습니다."

고슬고슬한 밥 위에 얹은 신선한 생선살, 장인의 손 끝에서 탄생한 오묘한 맛의 조화.

사람들의 눈과 입을 매혹시키는 이 맛은 과연 어디서 시작됐을까요?

섬나라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비와호`.

서울시 보다 더 넓은 호수는 어민들에게 철마다 갖가지 생선을 선물합니다.

<인터뷰> 차타니(어민) : "은어,잉어,빙어,붕어와 같은 여러가지가 잡힙니다.계절에 따라 다릅니다."

이 맑은 호숫물이 흘러드는 이웃 마을.

마을 전체가 수로로 연결된 물의 고장에서 어른 팔뚝보다 큰 잉어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습니다.

봄이 되면 이 호수와 마을 수로에는 붕어가 지천으로 노닙니다.

옛부터 이 마을 사람들은 붕어로 귀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마을의 한 창고를 찾아가 봤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생선을 삭히는 듯한 강한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무거운 돌을 내리고 흰 밥을 걷어내자 붕어가 나옵니다.

봄에 잡은 `붕어`를 소금에 절이고 그 속에 밥을 넣어둔 건 데, 보통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5개월이나 지난 것도 있습니다.

<인터뷰> 마을 주민 : "대략 12월이나 다음해 1월까지 `붕어'를 담아두면 이렇게 됩니다.1월쯤 먹는 것이 가장 맛이 좋습니다."

지난해 6월에 담아두었던 `붕어`를 얇게 한 토막씩 썰어내자, 밥은 모두 삭아 형체가 없고 오렌지색 알만 가득합니다.

비와호 부근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후나스시`입니다.

발효된 `홍어`처럼 톡 쏘면서 알과 살에서는 감칠맛이 납니다.

<인터뷰> 쓰지사와(`후나스시` 계승자) : "생선의 맛과 쌀의 맛이 어우러져서 말할 수 없이 독특한 맛을 냅니다."

이 지역에서 `후나스시`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8세기 헤이안 시대,

귀족이나 왕족들만 먹을 수 있는 귀하고 특별한 음식이었습니다.

태국과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의 `생선 절임` 음식이 중국과 한반도를 거쳐 일본 지배층에게 전해지면서 `후나스시`가 됐다는 설이 유력한데 바로 이 `후나스시`가 일본 초밥의 원조입니다.

`후나스시`는 이렇게 깨끗한 `비와호`의 물에서 잡은 생선과 비옥한 농경지에서 생산한 쌀, 그리고,옛 일본인들의 정성이 빚어낸 저장성 절임음식으로, 당시 최고의 `슬로푸드`였습니다.

색다른 초밥을 만든다는 오사카의 한 가게,

1841년 문을 연 이 식당은 7대째 170년 넘게 `하코스시`를 만들고 있습니다.

`하코`는 상자라는 뜻이니까, 네모난 상자 안에 밥과 다양한 재료를 넣어 누르는 이른바 `누름 초밥`입니다.

<인터뷰> 하시모토 타쿠지(`하코스시` 7대 계승자) : "`하코스시`는 `날 것`이 전혀 없습니다. 맛이 전부 들어가있기 때문에 간장없이 먹을 수 있고,시간이 지나도 맛이 변하지 않습니다."

밥알 사이의 공기를 모두 빼내 산화를 막으면서 수분을 유지하기 때문에 2~3일이 지나도 초밥이 상하지 않고 숙성된 깊은 맛을 냅니다.

일본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습니다.

<인터뷰> 로이징(타이완 관광객) : "맛있고 달콤하면서 예쁩니다."

`하코스시`는 오사카와 교토 등 일본 관서 지방에서 특별한 날에 먹던 고급 전통 음식입니다.

<인터뷰> 테라시마(손님) : "특별한 공간에서 특별한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자주 올 수 없는 곳이라서 기분이 좋습니다."

`후나스시`처럼 장기간 저장하지는 않지만, 일정 시간 숙성을 시켜 `슬로우 푸드`의 맥을 잇고 있는 것입니다.

17세기 에도 시대 초기에는 이같은 `발효 초밥'과 `누름 초밥`이 그대로 새 수도인 도쿄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18세기가 되면서 쌀 생산량이 늘어 생활이 안정되고 인구도 늘면서 서민들은 귀족과 부자들이 먹던 `스시`를 더 빨리 간편하게 먹고 싶어했습니다.

일본에서 오늘날과 같은 `스시`가 등장한 것은 이처럼 포장마차 같은 이동식 식당이 생겨난 에도시대였습니다.

당시 손님들의 눈 앞에서 바로 밥과 생선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스시`를 만들면서 오늘날의 햄버거와 같은 `패스트푸드`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요구가 오늘날과 같은 형태, 즉 손으로 쥐어 만드는 초밥을 만들어냈습니다.

<인터뷰> 히비노 테루토시(교수/교토 부립대학) : "에도 사람들은 성격이 급한 걸로 유명했습니다.그래서,`상자를 쓰지 않고 손으로 눌러서 바로 먹자'고 해서 현재의 `니기리스시`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초밥은 요즘보다 3배 이상 커서 두세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였고, 현재 가장 인기있는 `참다랑어`는 빨리 상했기 때문에 100년 전만 해도 거의 먹지 않았습니다.

도쿄 지역에서만 주로 소비되던 `쥐어 만드는 초밥`이 전국으로 확산된 것은 1923년 관동대지진 때였습니다.

지진으로 초밥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으면서 도쿄의 초밥 주방장들이 전국 각지로 진출한 것입니다.

겉으로는 평범해보이는 이 가게가 초밥 대중화를 획기적으로 이끈 곳입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해 `회전스시`를 창안해낸 겁니다.

그 때가 1958년이었습니다.

<인터뷰> 시라이시 히로시(`회전초밥` 발명가 아들) : "맥주 공장을 견학할 때 맥주 병이 한 방향으로 지나는 것을 보고 초밥집에도 사용하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 가게는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에 회전 스시 시스템을 출품해 표창을 받으면서 전국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회전 스시`의 등장으로 초밥을 더 저렴하고 빨리 먹게 되면서 사실상 일본의 외식 산업이 성장하는 출발점이 됐습니다.

`회전스시`는 `스시`의 유통을 생산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바꾸고, 패스트푸드화를 촉진시키는 또 다른 혁신이었습니다.

저장식 절임 음식에서 다양하고 신선한 즉석 생선 음식으로, 고급 `슬로우푸드`에서 대중적인 `패스트푸드`로, 1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면서 일본의 대표 음식으로 성장한 `스시`.

일본의 역사와 사회상까지 함께 담으면서 스시는 오늘도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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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eye] 끝없는 변신…초밥 1200년 역사
    • 입력 2015-11-21 09:19:47
    • 수정2015-11-21 09:33:31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지난해 4월 도쿄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 때 모습입니다.

`아베 총리`가 `오바마 대통령`을 `스키야바시 지로`라는 `스시집`, 그러니까 `초밥집`으로 초대했는데, 이 가게, 미슐랭 가이드 별 3개 짜리인 데다 1인분에 우리 돈 30만 원이나 해 화제가 됐죠?

초밥이 외교 무대에도 등장한 건데요,

1200년에 걸친 초밥의 변천사, 그리고 그 속에 녹아있는 일본 문화의 코드를 살펴봤습니다.

도쿄 박재우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일본 오사카 도심 `돗톰보리`.

서울의 청계천과 같은 명물 거리로 먹거리와 볼거리가 많아 항상 관광객들로 넘쳐납니다.

이곳에서 관광객들의 침샘을 자극하는 명소, 일본답게 역시 초밥집입니다.

<녹취> "자! `스시` 어떻습니까? 저렴한 `스시` 점심세트 있습니다."

고슬고슬한 밥 위에 얹은 신선한 생선살, 장인의 손 끝에서 탄생한 오묘한 맛의 조화.

사람들의 눈과 입을 매혹시키는 이 맛은 과연 어디서 시작됐을까요?

섬나라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비와호`.

서울시 보다 더 넓은 호수는 어민들에게 철마다 갖가지 생선을 선물합니다.

<인터뷰> 차타니(어민) : "은어,잉어,빙어,붕어와 같은 여러가지가 잡힙니다.계절에 따라 다릅니다."

이 맑은 호숫물이 흘러드는 이웃 마을.

마을 전체가 수로로 연결된 물의 고장에서 어른 팔뚝보다 큰 잉어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습니다.

봄이 되면 이 호수와 마을 수로에는 붕어가 지천으로 노닙니다.

옛부터 이 마을 사람들은 붕어로 귀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마을의 한 창고를 찾아가 봤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생선을 삭히는 듯한 강한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무거운 돌을 내리고 흰 밥을 걷어내자 붕어가 나옵니다.

봄에 잡은 `붕어`를 소금에 절이고 그 속에 밥을 넣어둔 건 데, 보통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5개월이나 지난 것도 있습니다.

<인터뷰> 마을 주민 : "대략 12월이나 다음해 1월까지 `붕어'를 담아두면 이렇게 됩니다.1월쯤 먹는 것이 가장 맛이 좋습니다."

지난해 6월에 담아두었던 `붕어`를 얇게 한 토막씩 썰어내자, 밥은 모두 삭아 형체가 없고 오렌지색 알만 가득합니다.

비와호 부근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후나스시`입니다.

발효된 `홍어`처럼 톡 쏘면서 알과 살에서는 감칠맛이 납니다.

<인터뷰> 쓰지사와(`후나스시` 계승자) : "생선의 맛과 쌀의 맛이 어우러져서 말할 수 없이 독특한 맛을 냅니다."

이 지역에서 `후나스시`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8세기 헤이안 시대,

귀족이나 왕족들만 먹을 수 있는 귀하고 특별한 음식이었습니다.

태국과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의 `생선 절임` 음식이 중국과 한반도를 거쳐 일본 지배층에게 전해지면서 `후나스시`가 됐다는 설이 유력한데 바로 이 `후나스시`가 일본 초밥의 원조입니다.

`후나스시`는 이렇게 깨끗한 `비와호`의 물에서 잡은 생선과 비옥한 농경지에서 생산한 쌀, 그리고,옛 일본인들의 정성이 빚어낸 저장성 절임음식으로, 당시 최고의 `슬로푸드`였습니다.

색다른 초밥을 만든다는 오사카의 한 가게,

1841년 문을 연 이 식당은 7대째 170년 넘게 `하코스시`를 만들고 있습니다.

`하코`는 상자라는 뜻이니까, 네모난 상자 안에 밥과 다양한 재료를 넣어 누르는 이른바 `누름 초밥`입니다.

<인터뷰> 하시모토 타쿠지(`하코스시` 7대 계승자) : "`하코스시`는 `날 것`이 전혀 없습니다. 맛이 전부 들어가있기 때문에 간장없이 먹을 수 있고,시간이 지나도 맛이 변하지 않습니다."

밥알 사이의 공기를 모두 빼내 산화를 막으면서 수분을 유지하기 때문에 2~3일이 지나도 초밥이 상하지 않고 숙성된 깊은 맛을 냅니다.

일본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습니다.

<인터뷰> 로이징(타이완 관광객) : "맛있고 달콤하면서 예쁩니다."

`하코스시`는 오사카와 교토 등 일본 관서 지방에서 특별한 날에 먹던 고급 전통 음식입니다.

<인터뷰> 테라시마(손님) : "특별한 공간에서 특별한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자주 올 수 없는 곳이라서 기분이 좋습니다."

`후나스시`처럼 장기간 저장하지는 않지만, 일정 시간 숙성을 시켜 `슬로우 푸드`의 맥을 잇고 있는 것입니다.

17세기 에도 시대 초기에는 이같은 `발효 초밥'과 `누름 초밥`이 그대로 새 수도인 도쿄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18세기가 되면서 쌀 생산량이 늘어 생활이 안정되고 인구도 늘면서 서민들은 귀족과 부자들이 먹던 `스시`를 더 빨리 간편하게 먹고 싶어했습니다.

일본에서 오늘날과 같은 `스시`가 등장한 것은 이처럼 포장마차 같은 이동식 식당이 생겨난 에도시대였습니다.

당시 손님들의 눈 앞에서 바로 밥과 생선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스시`를 만들면서 오늘날의 햄버거와 같은 `패스트푸드`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요구가 오늘날과 같은 형태, 즉 손으로 쥐어 만드는 초밥을 만들어냈습니다.

<인터뷰> 히비노 테루토시(교수/교토 부립대학) : "에도 사람들은 성격이 급한 걸로 유명했습니다.그래서,`상자를 쓰지 않고 손으로 눌러서 바로 먹자'고 해서 현재의 `니기리스시`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초밥은 요즘보다 3배 이상 커서 두세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였고, 현재 가장 인기있는 `참다랑어`는 빨리 상했기 때문에 100년 전만 해도 거의 먹지 않았습니다.

도쿄 지역에서만 주로 소비되던 `쥐어 만드는 초밥`이 전국으로 확산된 것은 1923년 관동대지진 때였습니다.

지진으로 초밥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으면서 도쿄의 초밥 주방장들이 전국 각지로 진출한 것입니다.

겉으로는 평범해보이는 이 가게가 초밥 대중화를 획기적으로 이끈 곳입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해 `회전스시`를 창안해낸 겁니다.

그 때가 1958년이었습니다.

<인터뷰> 시라이시 히로시(`회전초밥` 발명가 아들) : "맥주 공장을 견학할 때 맥주 병이 한 방향으로 지나는 것을 보고 초밥집에도 사용하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 가게는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에 회전 스시 시스템을 출품해 표창을 받으면서 전국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회전 스시`의 등장으로 초밥을 더 저렴하고 빨리 먹게 되면서 사실상 일본의 외식 산업이 성장하는 출발점이 됐습니다.

`회전스시`는 `스시`의 유통을 생산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바꾸고, 패스트푸드화를 촉진시키는 또 다른 혁신이었습니다.

저장식 절임 음식에서 다양하고 신선한 즉석 생선 음식으로, 고급 `슬로우푸드`에서 대중적인 `패스트푸드`로, 1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면서 일본의 대표 음식으로 성장한 `스시`.

일본의 역사와 사회상까지 함께 담으면서 스시는 오늘도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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