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리우의 주인공

입력 2016.07.17 (22:55) 수정 2016.07.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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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활주로처럼 곧게 뻗은 도로 위에서 자전거 한 대가 질주합니다.

발 대신 손으로 바퀴를 돌리는 '핸드 사이클' 국가 대표, 전미경 선수입니다.

<녹취> 전미경(장애인 올림픽 사이클 국가대표) : "자전거를 처음으로 시작하게 된 게...자전거를 탔는데 바람이 얼굴에 톡톡 치더라고요. 그 느낌이 아주 좋은 거에요."

사력을 다해 팔을 돌리는 그녀.

훈련은 매번 한계와 맞서는 싸움입니다.

<녹취> 전미경(장애인 올림픽 사이클 국가대표) : "힘들 때는 그냥 하나둘 하나둘 구령을 붙여요. 너무 힘들어서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다른 생각을 하다가는 위험할 수가 있거든요."

8KM의 순환 도로 다섯 바퀴를 돌아 모두 40km의 역주를 마칩니다.

<녹취> "아. 아. 아."

손잡이에 묶어놨던 오른손에서 고통이 밀려옵니다.

<녹취> 전미경(장애인 올림픽 사이클 국가대표) : "헐겁게 묶으면 이게 힘을 그나마도 못 쓰니까 그래서 안 빠지게 하려고 꽉 묶으면 손이 너무 타는 도중에도 너무 저리거든요."

<오프닝>

팔로 바퀴를 굴리는 자전거입니다.

직접 타보니 어깨와 팔의 힘이 생각보다 더 많이 필요하고, 시야 확보도 쉽지 않아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닙니다.

장애인 선수들이 이 자전거를 타고 질주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훈련을 거쳤는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다음 달 브라질 리우 올림픽이 개막하는데요.

올림픽은 비장애인 엘리트 선수만의 축제가 아니라며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더 큰 감동을 준비하고 있는 리우 올림픽의 또 다른 주인공들을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경기도 이천에 자리 잡은 장애인 훈련원.

전미경 선수가 근력 운동에 땀을 쏟고 있습니다.

<인터뷰> 전미경(장애인 올림픽 사이클 국가대표) : "한 손은 아예 못 쓰거든요. 그래서 모든 걸 잡으려면 감아서 잡고 하다 보니까 힘쓰는 게 조금 더 힘들어요/ 그래도 즐겁습니다. 이렇게 움직일 수 있다는 자체가."

2004년 교통사고로 목뼈를 크게 다쳐 평생 침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란 진단을 받았던 그녀.

어느 날 온 힘을 다해 손가락 끝을 까딱거리는데 성공한 뒤 눈물겨운 재활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전미경(장애인 올림픽 사이클 국가대표) : "사실 자살하려고 재활을 시작했어요. 평생 남 손에 음식을 먹어야 하고 배변도 혼자서 못해서 남이 아기처럼 다 닦아줘야 하고, 근데 사람이 참 신기하죠. 이게 손이 까딱거리면서 제가 뭘 하나씩 집어먹게 돼요. 그다음에 포크를 쓰게 되고화장실을 혼자 가고 싶네요."

5년의 긴 노력 끝에 완벽하진 않지만 양팔을 쓸 수 있게 된 그녀는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사고 전 수영을 잘했던 그녀는 수영 국가 대표가 돼, 4년 전 런던 장애인 올림픽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올림픽 메달이란 꿈을 이루기 위해 사이클로 종목을 바꿨습니다.

올림픽을 불과 1년 앞두고 시작한 새로운 도전.

그녀는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인터뷰> 진용철(사이클 대표팀 코치) : "일반인이 63빌딩을 지하부터 꼭대기까지 3번 왔다 갔다 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걸어서."

훈련원으로 전 선수의 남편이 찾아왔습니다.

멀리 부산에서 매주 주말마다 올라와 응원 해주는 남편.

전 선수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도전을 펼칠 수 있는 든든한 배경입니다.

<인터뷰> 박봉균(전미경 선수 남편) : "계속 좀 더 새로운 길, 좀 더 해볼만한 길을 찾아가니까, 더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거니까 박수를 쳐야죠."

<인터뷰> 전미경(장애인 올림픽 사이클 국가대표) : "누가 아파도 다 힘들지만, 특히 여자가 아프게 되니까 가정이 너무 힘들어요. 항상 미안하고 진짜 고맙다는 말을 남편한테 못하겠더라고요. 너무 미안하니까"

테니스 코트 위에서 휠체어가 춤을 춥니다.

왼손으로 빠르게 바퀴를 굴리고, 오른손으론 라켓을 쥐고 날아오는 공을 쫓아 힘껏 때립니다.

역대 최연소로 태극마크를 단 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 18살 임호원 선수입니다.

<인터뷰> 임호원(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 : "솔직히 뭐라 해야 하지 (리우 올림픽) 가게 될 줄 전혀 몰랐으니까 조금 놀랍기도 했어요. 아, 내가 이런 데를 벌써 가는구나."

훈련원에서 합숙 훈련 중인 임 선수가 오랜만에 집에 왔습니다.

임호원 선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교통사고로 하반신을 잃었습니다.

한쪽 다리는 무릎 위 다른 쪽은 엉덩이 위만 남았습니다.

<인터뷰> 전효심(임호원 선수 어머니) : "맨날 울었죠. 호원이 눈뜨기 전까지 계속 울었던 같아요. 호원이가 눈 뜨고 엄마 찾고 그때부터는 아 울면 안 되겠다."

9살 어린 나이에 중도 장애인이 된 후 호원 군은 대부분 시간을 집 안에서 보냈습니다.

<인터뷰> 전효심(임호원 선수 어머니) : "금방 웃었다가 금방 막 소리 질렀다가 금방 막 이렇게 바뀌니까 그게 우울증이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어린 나이에 하반신을 잃었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상체를 단련했습니다.

하반신의 길이가 달라 만성적인 척추 측만증과 싸우며 운동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녹취> 정필교(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팀 감독) : "최상위에 있는 선수 중에 절단장애는 거의 없습니다. 한쪽 다리가 절단인 선수들은 있어도 양쪽 다리가 절단된 선수는 아마 없어요. 굉장히 불리한 조건인데도 불구하고 휠체어하고 자기 몸하고는 일부가 돼 있다고..."

임호원 선수가 최연소 국가 대표가 된 비결, 누구를 만나도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주눅들지 않는 도전 정신입니다.

<인터뷰> 임호원(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 : "힘든 경기할 때 제일 재밌죠. 쉬운 경기 할 때보다는 저보다 좀 높은 분들을 만나서..."

이번엔 4회 연속 장애인 올림픽 무대를 밟는 베테랑 이하걸과 짝을 이뤄, 복식에서 메달에 도전합니다.

<인터뷰> 임호원(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 : "테니스를 안 했다면 아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 않을까요. 미래도 없고 꿈도 없고 그랬을 거 같은데 저는 인제 와서 생각해보면 다친 것도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은 안 해요."

2012년 런던 장애인올림픽.

육상 여자 100m 출발선에 유난히 키가 작은 선수가 눈에 띕니다.

대부분이 20대인 경쟁 선수들과 비교하면 가장 나이가 많은 35살.

출발 총성이 울리자 재빠르게 달려나갑니다.

놀라운 역주 끝에 당당히 은메달을 목에 건 전민재.

한국 장애인 육상의 간판인 그녀가 4년 전 영광을 재연하기 위해 담금질에 한창입니다.

3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이어지는 훈련에도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5살 때 뇌염을 앓고 뇌성마비 장애 1급 판정을 받은 그녀.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억울한 생각에 힘든 사춘기를 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운동을 시작하고 그녀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인터뷰> 전선정(전민재 선수 동생) : "운동하기 전에는 밖에 나가는 걸 거의 싫어했거든요. 근데 지금은 뭐 같이 다니는 것도 좋아하고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26살의 늦은 나이로 육상을 시작했지만 곧바로 국내 정상에 올랐고 우리 나이로 마흔이 된 지금까지 '육상 여제'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인터뷰> 전선정(전민재 선수 동생) : "일단 보폭이 짧으니까요. 언니는 빨리 뛰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선수들 한 보폭 갈 때 언니는 두 걸음 간다든지 그렇게 연습하는 것 같아요."

전민재 선수는 음성으로 의사를 표시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로 SNS를 통해 세상과 소통합니다.

전민재 선수의 SNS 프로필 사진에는 만화 '달려라 하니'의 주인공 '하니'가 올려져있습니다.

<녹취> 전민재(장애인 올림픽 육상 대표) : "(하니 처럼 뛰면 기뻐요?) 예 (얼마나 기뻐요?) (뛸 때가 가장 기뻐요?) 예"

육상 선수로는 환갑이 넘은, 마흔 살에 도전하는 올림픽.

경쟁자들의 나이와 성적을 정리해 두고 보면서 의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녹취> 전민재(장애인 올림픽 육상 대표) : "(이겼어요 졌어요? 졌어요?) 네 (나머지는 한 번씩 이겨봤어요?) 네 (가능성이 있네요.)"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자신을 믿는다는 그녀가 올림픽에 출전하는 각오를 불편한 손대신 발 글씨로 써서 밝혔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사이클과 육상, 사격 양궁 등 11개 종목에 139명의 선수단이 참가해 종합 순위 12위에 도전합니다.

<인터뷰> 임호원(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 : "리우 도착해서 좋은 컨디션과 마음으로 꼭 메달을 따고 싶습니다. 희생해주신 부모님이랑 형 여행 한번 꼭 보내드리고 싶어요."

<인터뷰> 전미경(장애인 올림픽 사이클 국가대표) : "인천 공항에 돌아올 때 꼭 목에 무겁게 해서 돌아올 거 같아요. 그러고 싶고요. 꼭 그렇게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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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도 리우의 주인공
    • 입력 2016-07-17 23:16:05
    • 수정2016-07-18 17:00:13
    취재파일K
<프롤로그> 활주로처럼 곧게 뻗은 도로 위에서 자전거 한 대가 질주합니다. 발 대신 손으로 바퀴를 돌리는 '핸드 사이클' 국가 대표, 전미경 선수입니다. <녹취> 전미경(장애인 올림픽 사이클 국가대표) : "자전거를 처음으로 시작하게 된 게...자전거를 탔는데 바람이 얼굴에 톡톡 치더라고요. 그 느낌이 아주 좋은 거에요." 사력을 다해 팔을 돌리는 그녀. 훈련은 매번 한계와 맞서는 싸움입니다. <녹취> 전미경(장애인 올림픽 사이클 국가대표) : "힘들 때는 그냥 하나둘 하나둘 구령을 붙여요. 너무 힘들어서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다른 생각을 하다가는 위험할 수가 있거든요." 8KM의 순환 도로 다섯 바퀴를 돌아 모두 40km의 역주를 마칩니다. <녹취> "아. 아. 아." 손잡이에 묶어놨던 오른손에서 고통이 밀려옵니다. <녹취> 전미경(장애인 올림픽 사이클 국가대표) : "헐겁게 묶으면 이게 힘을 그나마도 못 쓰니까 그래서 안 빠지게 하려고 꽉 묶으면 손이 너무 타는 도중에도 너무 저리거든요." <오프닝> 팔로 바퀴를 굴리는 자전거입니다. 직접 타보니 어깨와 팔의 힘이 생각보다 더 많이 필요하고, 시야 확보도 쉽지 않아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닙니다. 장애인 선수들이 이 자전거를 타고 질주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훈련을 거쳤는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다음 달 브라질 리우 올림픽이 개막하는데요. 올림픽은 비장애인 엘리트 선수만의 축제가 아니라며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더 큰 감동을 준비하고 있는 리우 올림픽의 또 다른 주인공들을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경기도 이천에 자리 잡은 장애인 훈련원. 전미경 선수가 근력 운동에 땀을 쏟고 있습니다. <인터뷰> 전미경(장애인 올림픽 사이클 국가대표) : "한 손은 아예 못 쓰거든요. 그래서 모든 걸 잡으려면 감아서 잡고 하다 보니까 힘쓰는 게 조금 더 힘들어요/ 그래도 즐겁습니다. 이렇게 움직일 수 있다는 자체가." 2004년 교통사고로 목뼈를 크게 다쳐 평생 침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란 진단을 받았던 그녀. 어느 날 온 힘을 다해 손가락 끝을 까딱거리는데 성공한 뒤 눈물겨운 재활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전미경(장애인 올림픽 사이클 국가대표) : "사실 자살하려고 재활을 시작했어요. 평생 남 손에 음식을 먹어야 하고 배변도 혼자서 못해서 남이 아기처럼 다 닦아줘야 하고, 근데 사람이 참 신기하죠. 이게 손이 까딱거리면서 제가 뭘 하나씩 집어먹게 돼요. 그다음에 포크를 쓰게 되고화장실을 혼자 가고 싶네요." 5년의 긴 노력 끝에 완벽하진 않지만 양팔을 쓸 수 있게 된 그녀는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사고 전 수영을 잘했던 그녀는 수영 국가 대표가 돼, 4년 전 런던 장애인 올림픽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올림픽 메달이란 꿈을 이루기 위해 사이클로 종목을 바꿨습니다. 올림픽을 불과 1년 앞두고 시작한 새로운 도전. 그녀는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인터뷰> 진용철(사이클 대표팀 코치) : "일반인이 63빌딩을 지하부터 꼭대기까지 3번 왔다 갔다 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걸어서." 훈련원으로 전 선수의 남편이 찾아왔습니다. 멀리 부산에서 매주 주말마다 올라와 응원 해주는 남편. 전 선수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도전을 펼칠 수 있는 든든한 배경입니다. <인터뷰> 박봉균(전미경 선수 남편) : "계속 좀 더 새로운 길, 좀 더 해볼만한 길을 찾아가니까, 더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거니까 박수를 쳐야죠." <인터뷰> 전미경(장애인 올림픽 사이클 국가대표) : "누가 아파도 다 힘들지만, 특히 여자가 아프게 되니까 가정이 너무 힘들어요. 항상 미안하고 진짜 고맙다는 말을 남편한테 못하겠더라고요. 너무 미안하니까" 테니스 코트 위에서 휠체어가 춤을 춥니다. 왼손으로 빠르게 바퀴를 굴리고, 오른손으론 라켓을 쥐고 날아오는 공을 쫓아 힘껏 때립니다. 역대 최연소로 태극마크를 단 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 18살 임호원 선수입니다. <인터뷰> 임호원(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 : "솔직히 뭐라 해야 하지 (리우 올림픽) 가게 될 줄 전혀 몰랐으니까 조금 놀랍기도 했어요. 아, 내가 이런 데를 벌써 가는구나." 훈련원에서 합숙 훈련 중인 임 선수가 오랜만에 집에 왔습니다. 임호원 선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교통사고로 하반신을 잃었습니다. 한쪽 다리는 무릎 위 다른 쪽은 엉덩이 위만 남았습니다. <인터뷰> 전효심(임호원 선수 어머니) : "맨날 울었죠. 호원이 눈뜨기 전까지 계속 울었던 같아요. 호원이가 눈 뜨고 엄마 찾고 그때부터는 아 울면 안 되겠다." 9살 어린 나이에 중도 장애인이 된 후 호원 군은 대부분 시간을 집 안에서 보냈습니다. <인터뷰> 전효심(임호원 선수 어머니) : "금방 웃었다가 금방 막 소리 질렀다가 금방 막 이렇게 바뀌니까 그게 우울증이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어린 나이에 하반신을 잃었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상체를 단련했습니다. 하반신의 길이가 달라 만성적인 척추 측만증과 싸우며 운동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녹취> 정필교(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팀 감독) : "최상위에 있는 선수 중에 절단장애는 거의 없습니다. 한쪽 다리가 절단인 선수들은 있어도 양쪽 다리가 절단된 선수는 아마 없어요. 굉장히 불리한 조건인데도 불구하고 휠체어하고 자기 몸하고는 일부가 돼 있다고..." 임호원 선수가 최연소 국가 대표가 된 비결, 누구를 만나도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주눅들지 않는 도전 정신입니다. <인터뷰> 임호원(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 : "힘든 경기할 때 제일 재밌죠. 쉬운 경기 할 때보다는 저보다 좀 높은 분들을 만나서..." 이번엔 4회 연속 장애인 올림픽 무대를 밟는 베테랑 이하걸과 짝을 이뤄, 복식에서 메달에 도전합니다. <인터뷰> 임호원(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 : "테니스를 안 했다면 아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 않을까요. 미래도 없고 꿈도 없고 그랬을 거 같은데 저는 인제 와서 생각해보면 다친 것도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은 안 해요." 2012년 런던 장애인올림픽. 육상 여자 100m 출발선에 유난히 키가 작은 선수가 눈에 띕니다. 대부분이 20대인 경쟁 선수들과 비교하면 가장 나이가 많은 35살. 출발 총성이 울리자 재빠르게 달려나갑니다. 놀라운 역주 끝에 당당히 은메달을 목에 건 전민재. 한국 장애인 육상의 간판인 그녀가 4년 전 영광을 재연하기 위해 담금질에 한창입니다. 3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이어지는 훈련에도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5살 때 뇌염을 앓고 뇌성마비 장애 1급 판정을 받은 그녀.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억울한 생각에 힘든 사춘기를 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운동을 시작하고 그녀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인터뷰> 전선정(전민재 선수 동생) : "운동하기 전에는 밖에 나가는 걸 거의 싫어했거든요. 근데 지금은 뭐 같이 다니는 것도 좋아하고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26살의 늦은 나이로 육상을 시작했지만 곧바로 국내 정상에 올랐고 우리 나이로 마흔이 된 지금까지 '육상 여제'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인터뷰> 전선정(전민재 선수 동생) : "일단 보폭이 짧으니까요. 언니는 빨리 뛰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선수들 한 보폭 갈 때 언니는 두 걸음 간다든지 그렇게 연습하는 것 같아요." 전민재 선수는 음성으로 의사를 표시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로 SNS를 통해 세상과 소통합니다. 전민재 선수의 SNS 프로필 사진에는 만화 '달려라 하니'의 주인공 '하니'가 올려져있습니다. <녹취> 전민재(장애인 올림픽 육상 대표) : "(하니 처럼 뛰면 기뻐요?) 예 (얼마나 기뻐요?) (뛸 때가 가장 기뻐요?) 예" 육상 선수로는 환갑이 넘은, 마흔 살에 도전하는 올림픽. 경쟁자들의 나이와 성적을 정리해 두고 보면서 의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녹취> 전민재(장애인 올림픽 육상 대표) : "(이겼어요 졌어요? 졌어요?) 네 (나머지는 한 번씩 이겨봤어요?) 네 (가능성이 있네요.)"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자신을 믿는다는 그녀가 올림픽에 출전하는 각오를 불편한 손대신 발 글씨로 써서 밝혔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사이클과 육상, 사격 양궁 등 11개 종목에 139명의 선수단이 참가해 종합 순위 12위에 도전합니다. <인터뷰> 임호원(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 : "리우 도착해서 좋은 컨디션과 마음으로 꼭 메달을 따고 싶습니다. 희생해주신 부모님이랑 형 여행 한번 꼭 보내드리고 싶어요." <인터뷰> 전미경(장애인 올림픽 사이클 국가대표) : "인천 공항에 돌아올 때 꼭 목에 무겁게 해서 돌아올 거 같아요. 그러고 싶고요. 꼭 그렇게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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