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리포트] ‘영흥도 탈환’ 숨은 전쟁영웅 박동진 중사
입력 2016.07.29 (21:32)
수정 2016.07.29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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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영화 '인천 상륙 작전'은 실제 상륙 작전이 이뤄지기 전에 적의 군사 기밀을 빼낸 우리 해군 첩보대의 활약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들 첩보대가 근거지로 삼았던 곳은 영흥도라는 섬입니다.
인천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서, 인천은 물론 서울과 경기 지역 북한군 동향을 파악하는 데 최적의 위치였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 해군은 인천 상륙작전 한 달 전에 먼저 영흥도를 탈환하는 작전을 실시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큰 전공을 세운 군인이 있었습니다.
장덕수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낙동강 방어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던 1950년 8월 12일.
미 극동군사령부는 비밀리에 인천 상륙 작전을 위한 정보 수집을 우리 해군에 지시합니다.
일명 '엑스레이' 작전입니다.
해군은 이에 인천과 인접한 영흥도를 첩보 거점으로 삼기로 하고, 탈환 작전에 나섰습니다.
작전에 투입한 병력은 불과 100여 명.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뭉친 장병들은 적의 거센 저항을 뚫고, 8월 18일 덕적도를 시작으로 대이작도와 영흥도까지 연이어 수복했습니다.
작전 개시 사흘 만에 거둔 전과였습니다.
<녹취> 조성훈(군사편찬연구소 전쟁사 부장) : "(영흥도를 탈환함으로써) 아군 해군 첩보팀, 미 극동군사령부의 첩보팀이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적 동향을 파악하는 데 주요한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치열한 교전 속에서 아군 피해도 적지 않았습니다.
분대장이었던 박동진 중사는 은신처에 숨어있는 10여 명의 적군을 향해 돌진하다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20살의 꽃다운 나이에 숨지면서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습니다.
국가보훈처는 이 같은 호국 의지를 기려, 박 중사를 '8월의 6.25 전쟁 영웅'으로 선정했습니다.
KBS 뉴스 장덕수입니다.
영화 '인천 상륙 작전'은 실제 상륙 작전이 이뤄지기 전에 적의 군사 기밀을 빼낸 우리 해군 첩보대의 활약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들 첩보대가 근거지로 삼았던 곳은 영흥도라는 섬입니다.
인천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서, 인천은 물론 서울과 경기 지역 북한군 동향을 파악하는 데 최적의 위치였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 해군은 인천 상륙작전 한 달 전에 먼저 영흥도를 탈환하는 작전을 실시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큰 전공을 세운 군인이 있었습니다.
장덕수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낙동강 방어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던 1950년 8월 12일.
미 극동군사령부는 비밀리에 인천 상륙 작전을 위한 정보 수집을 우리 해군에 지시합니다.
일명 '엑스레이' 작전입니다.
해군은 이에 인천과 인접한 영흥도를 첩보 거점으로 삼기로 하고, 탈환 작전에 나섰습니다.
작전에 투입한 병력은 불과 100여 명.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뭉친 장병들은 적의 거센 저항을 뚫고, 8월 18일 덕적도를 시작으로 대이작도와 영흥도까지 연이어 수복했습니다.
작전 개시 사흘 만에 거둔 전과였습니다.
<녹취> 조성훈(군사편찬연구소 전쟁사 부장) : "(영흥도를 탈환함으로써) 아군 해군 첩보팀, 미 극동군사령부의 첩보팀이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적 동향을 파악하는 데 주요한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치열한 교전 속에서 아군 피해도 적지 않았습니다.
분대장이었던 박동진 중사는 은신처에 숨어있는 10여 명의 적군을 향해 돌진하다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20살의 꽃다운 나이에 숨지면서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습니다.
국가보훈처는 이 같은 호국 의지를 기려, 박 중사를 '8월의 6.25 전쟁 영웅'으로 선정했습니다.
KBS 뉴스 장덕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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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리포트] ‘영흥도 탈환’ 숨은 전쟁영웅 박동진 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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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6-07-29 21:35:41
- 수정2016-07-29 22:34:10
<앵커 멘트>
영화 '인천 상륙 작전'은 실제 상륙 작전이 이뤄지기 전에 적의 군사 기밀을 빼낸 우리 해군 첩보대의 활약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들 첩보대가 근거지로 삼았던 곳은 영흥도라는 섬입니다.
인천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서, 인천은 물론 서울과 경기 지역 북한군 동향을 파악하는 데 최적의 위치였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 해군은 인천 상륙작전 한 달 전에 먼저 영흥도를 탈환하는 작전을 실시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큰 전공을 세운 군인이 있었습니다.
장덕수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낙동강 방어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던 1950년 8월 12일.
미 극동군사령부는 비밀리에 인천 상륙 작전을 위한 정보 수집을 우리 해군에 지시합니다.
일명 '엑스레이' 작전입니다.
해군은 이에 인천과 인접한 영흥도를 첩보 거점으로 삼기로 하고, 탈환 작전에 나섰습니다.
작전에 투입한 병력은 불과 100여 명.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뭉친 장병들은 적의 거센 저항을 뚫고, 8월 18일 덕적도를 시작으로 대이작도와 영흥도까지 연이어 수복했습니다.
작전 개시 사흘 만에 거둔 전과였습니다.
<녹취> 조성훈(군사편찬연구소 전쟁사 부장) : "(영흥도를 탈환함으로써) 아군 해군 첩보팀, 미 극동군사령부의 첩보팀이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적 동향을 파악하는 데 주요한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치열한 교전 속에서 아군 피해도 적지 않았습니다.
분대장이었던 박동진 중사는 은신처에 숨어있는 10여 명의 적군을 향해 돌진하다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20살의 꽃다운 나이에 숨지면서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습니다.
국가보훈처는 이 같은 호국 의지를 기려, 박 중사를 '8월의 6.25 전쟁 영웅'으로 선정했습니다.
KBS 뉴스 장덕수입니다.
영화 '인천 상륙 작전'은 실제 상륙 작전이 이뤄지기 전에 적의 군사 기밀을 빼낸 우리 해군 첩보대의 활약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들 첩보대가 근거지로 삼았던 곳은 영흥도라는 섬입니다.
인천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서, 인천은 물론 서울과 경기 지역 북한군 동향을 파악하는 데 최적의 위치였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 해군은 인천 상륙작전 한 달 전에 먼저 영흥도를 탈환하는 작전을 실시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큰 전공을 세운 군인이 있었습니다.
장덕수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낙동강 방어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던 1950년 8월 12일.
미 극동군사령부는 비밀리에 인천 상륙 작전을 위한 정보 수집을 우리 해군에 지시합니다.
일명 '엑스레이' 작전입니다.
해군은 이에 인천과 인접한 영흥도를 첩보 거점으로 삼기로 하고, 탈환 작전에 나섰습니다.
작전에 투입한 병력은 불과 100여 명.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뭉친 장병들은 적의 거센 저항을 뚫고, 8월 18일 덕적도를 시작으로 대이작도와 영흥도까지 연이어 수복했습니다.
작전 개시 사흘 만에 거둔 전과였습니다.
<녹취> 조성훈(군사편찬연구소 전쟁사 부장) : "(영흥도를 탈환함으로써) 아군 해군 첩보팀, 미 극동군사령부의 첩보팀이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적 동향을 파악하는 데 주요한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치열한 교전 속에서 아군 피해도 적지 않았습니다.
분대장이었던 박동진 중사는 은신처에 숨어있는 10여 명의 적군을 향해 돌진하다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20살의 꽃다운 나이에 숨지면서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습니다.
국가보훈처는 이 같은 호국 의지를 기려, 박 중사를 '8월의 6.25 전쟁 영웅'으로 선정했습니다.
KBS 뉴스 장덕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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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수 기자 joanne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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