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투성이 현지 조사…설악산 예우가 이 정도?

입력 2016.10.09 (12:01) 수정 2016.10.09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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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조사를 증명할 자료 없음'
'조사자 이름이 없음'
'명단에 없는 조사자임'
'조사 장소를 알 수 없음'

설악산 케이블카의 환경영향평가 부실 의혹이 새롭게 떠올랐습니다. 위의 내용은 국립생태원이 양양군의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해 내놓은 의견의 일부입니다. 이렇게 부실한 환경영향평가서는 반려해야 마땅하다는 것이 환경단체의 주장입니다.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요?

설악산 케이블카 환경영향평가서 현지조사표 사례설악산 케이블카 환경영향평가서 현지조사표 사례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위와 같은 현지조사표가 첨부됩니다. 언제, 누가, 어디서, 어떤 생물을 조사했는지 증명하는 자료입니다. 그런데 일부 조사에서 이런 증명 자료가 아예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환경영향평가서에는 현지조사를 한 것처럼 기록돼 있는데, 정작 이를 증명할 현지조사표가 없는 겁니다. 실제로 조사를 했는지가 불확실한 거죠.

조사를 증명할 현지조사표 등이 없는 사례. 국회 환경노동위 서형수 의원 국감자료.조사를 증명할 현지조사표 등이 없는 사례. 국회 환경노동위 서형수 의원 국감자료.

환경영향평가서 분석 결과 이런 사례가 6개나 발견됐습니다. 환경부는 생태환경을 조사할 때 현지에서 현지조사표를 수기로 작성하도록 규정했습니다. 그런데도 현지조사표가 없다는 건 심각한 결함입니다. 현지조사를 하지 않고도 조사한 것처럼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한 경우는 '평가서 반려' 사유에 해당합니다.

조사지점과 해발 고도, 좌표가 없는 현지조사표.조사지점과 해발 고도, 좌표가 없는 현지조사표.

조사 지점을 알 수 없는 현지조사표.조사 지점을 알 수 없는 현지조사표.


일부 현지조사표는 내용 자체에 결함이 있습니다. 현지조사표에는 조사 시점과 장소가 명확하게 기재돼야 합니다. 해발 고도와 GPS 좌표를 명기하는 겁니다. 하지만 일부 조사표는 조사 장소 기록이 아예 비어 있습니다. 위 조사표의 경우 해발 고도뿐만 아니라 GPS 좌표 등에 대한 내용이 공백입니다. 또 일부 조사표는 조사 시간이 없습니다. 어디서 조사했는지, 거짓 작성된 것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겁니다. 이런 사례는 11개에 이릅니다.

곤충과 무척추동물 전문 조사자가 포유류와 양서 파충류까지 조사한 사례.곤충과 무척추동물 전문 조사자가 포유류와 양서 파충류까지 조사한 사례.

곤충과 무척추동물 전문 조사자가 포유류와 양서 파충류까지 조사한 사례.곤충과 무척추동물 전문 조사자가 포유류와 양서 파충류까지 조사한 사례.


조사자가 자신의 전문이 아닌 분야를 조사한 사례도 많습니다. 위 현지조사표의 연구원은 육상 곤충과 저서성 대형무척추동물 조사자로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보듯이 포유류와 양서파충류까지 조사했습니다. 심지어는 식물분야 조사자가 포유류를 조사한 사례도 있습니다. 비전문가가 다른 전문 분야의 생태환경을 조사한 겁니다. 이런 경우가 10여 개에 이릅니다.

케이블카 예정지에서 포착된 산양. 멸종위기1급 야생동물.케이블카 예정지에서 포착된 산양. 멸종위기1급 야생동물.

참여하지도 않은 전문가가 참여한 것으로 기재됐다는 '유령 조사자'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국회 환경노동위 이정미 의원이 환경영향평가서 작성에 참여한 것으로 기록된 전문가들에게 질의서를 보낸 결과, 한 전문가는 자신이 참여한 적도 없고 조사비를 받은 적도 없다고 답변한 겁니다.

조사자 질의답변서. 환경영향평가서에 등재된 전문가가 참여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국회 환노위 이정미 의원실 국감자료.조사자 질의답변서. 환경영향평가서에 등재된 전문가가 참여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국회 환노위 이정미 의원실 국감자료.

국립생태원도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한 의견서에서 위와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명단에 없는 조사자가 현지조사표에 등장하거나, 조사자가 아예 제시되지 않기도 하고, 현지조사를 증빙할 자료가 없는 경우도 있다고 적시했습니다. 앞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환경영향평가서가 심각하게 부실하다고 지적한 데 이어 국립생태원도 환경영향평가서의 결함을 지적한 겁니다.

국립생태원 의견서. 명단에 없는 조사자 등장이나 조사 증빙자료 부재를 지적했다.국립생태원 의견서. 명단에 없는 조사자 등장이나 조사 증빙자료 부재를 지적했다.

[연관기사] ☞ “미흡한 조사, 심각한 훼손 우려”…그래도 케이블카?

설악산 끝청봉 케이블카 예정지설악산 끝청봉 케이블카 예정지

이에 대해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한 업체 측은 환경영향평가서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지조사표를 비롯해 일부 증빙 자료가 빠진 경우는 있지만, 현지 조사를 한 것은 분명하다는 겁니다. 또 비전문가가 다른 분야를 조사한 경우도 관행상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명했습니다. 이른바 '유령 전문가'에 대해서도 해당 전문가가 환경영향평가에 실제로 참여했다고 반박했습니다.

현지조사에 대한 환경부 규정. 조사 일시와 조사 지역 좌표 등을 기록하도록 명시했다.현지조사에 대한 환경부 규정. 조사 일시와 조사 지역 좌표 등을 기록하도록 명시했다.

하지만 환경부가 마련한 현지조사 작성 지침은 조사 인력이 이미 등록된 사람이어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또 조사 일시를 분 단위로 기록하고 조사 지역 역시 지점 명과 좌표, 면적을 기록하도록 했습니다. 양양군이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는 위의 지침을 명백하게 어긴 것입니다.

케이블카 상부정류장 예정지케이블카 상부정류장 예정지

환경영향평가서를 거짓으로 작성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원주지방환경청은 부실한 현지조사표나 '유령 조사자' 의혹에 대해 현재 조사하고 있다고 답할 뿐 공식적인 의견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나라 최초 유네스코 세계생물권보존지역으로 지정된 설악산.우리나라 최초 유네스코 세계생물권보존지역으로 지정된 설악산.

설악산은 우리나라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생물권보존지역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한라산, 지리산에 이어 세 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입니다. 천연기념물입니다. 산림청이 정한 산림유전자원 보호 지역이자 백두대간 보호 핵심 지역입니다. 세계자연보전연맹도 생태 보전을 위한 최고 등급인 카테고리 Ⅰa(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한 곳입니다. 우리만이 아니라 세계의 자연 유산입니다. 세계적 멸종위기종의 보고입니다.

설악산 케이블카 조감도설악산 케이블카 조감도

설악산의 가을설악산의 가을

이런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면 다른 어느 곳보다, 생태 훼손을 줄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 철저한 노력은 설악산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입니다. 혹시라도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는 생태 자원에 대해 국내 최고의 전문가가 조사하는 것이 마땅한 겁니다. 부실한 조사와 비전문가, 심지어 유령 전문가까지 거론되는 환경영향평가서로 설악산을 재단하는 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인에 대한 모욕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설악산 케이블카의 진행 과정은 현재 우리의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가 될 것입니다.

[연관기사] ☞ ‘산양 핵심 서식지 관통’… 그래도 케이블카?

[사진 제공: 설악산 국민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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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실투성이 현지 조사…설악산 예우가 이 정도?
    • 입력 2016-10-09 12:01:32
    • 수정2016-10-09 13:05:44
    취재K
'현지조사를 증명할 자료 없음'
'조사자 이름이 없음'
'명단에 없는 조사자임'
'조사 장소를 알 수 없음'

설악산 케이블카의 환경영향평가 부실 의혹이 새롭게 떠올랐습니다. 위의 내용은 국립생태원이 양양군의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해 내놓은 의견의 일부입니다. 이렇게 부실한 환경영향평가서는 반려해야 마땅하다는 것이 환경단체의 주장입니다.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요?

설악산 케이블카 환경영향평가서 현지조사표 사례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위와 같은 현지조사표가 첨부됩니다. 언제, 누가, 어디서, 어떤 생물을 조사했는지 증명하는 자료입니다. 그런데 일부 조사에서 이런 증명 자료가 아예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환경영향평가서에는 현지조사를 한 것처럼 기록돼 있는데, 정작 이를 증명할 현지조사표가 없는 겁니다. 실제로 조사를 했는지가 불확실한 거죠.

조사를 증명할 현지조사표 등이 없는 사례. 국회 환경노동위 서형수 의원 국감자료.
환경영향평가서 분석 결과 이런 사례가 6개나 발견됐습니다. 환경부는 생태환경을 조사할 때 현지에서 현지조사표를 수기로 작성하도록 규정했습니다. 그런데도 현지조사표가 없다는 건 심각한 결함입니다. 현지조사를 하지 않고도 조사한 것처럼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한 경우는 '평가서 반려' 사유에 해당합니다.

조사지점과 해발 고도, 좌표가 없는 현지조사표.
조사 지점을 알 수 없는 현지조사표.

일부 현지조사표는 내용 자체에 결함이 있습니다. 현지조사표에는 조사 시점과 장소가 명확하게 기재돼야 합니다. 해발 고도와 GPS 좌표를 명기하는 겁니다. 하지만 일부 조사표는 조사 장소 기록이 아예 비어 있습니다. 위 조사표의 경우 해발 고도뿐만 아니라 GPS 좌표 등에 대한 내용이 공백입니다. 또 일부 조사표는 조사 시간이 없습니다. 어디서 조사했는지, 거짓 작성된 것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겁니다. 이런 사례는 11개에 이릅니다.

곤충과 무척추동물 전문 조사자가 포유류와 양서 파충류까지 조사한 사례.
곤충과 무척추동물 전문 조사자가 포유류와 양서 파충류까지 조사한 사례.

조사자가 자신의 전문이 아닌 분야를 조사한 사례도 많습니다. 위 현지조사표의 연구원은 육상 곤충과 저서성 대형무척추동물 조사자로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보듯이 포유류와 양서파충류까지 조사했습니다. 심지어는 식물분야 조사자가 포유류를 조사한 사례도 있습니다. 비전문가가 다른 전문 분야의 생태환경을 조사한 겁니다. 이런 경우가 10여 개에 이릅니다.

케이블카 예정지에서 포착된 산양. 멸종위기1급 야생동물.
참여하지도 않은 전문가가 참여한 것으로 기재됐다는 '유령 조사자'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국회 환경노동위 이정미 의원이 환경영향평가서 작성에 참여한 것으로 기록된 전문가들에게 질의서를 보낸 결과, 한 전문가는 자신이 참여한 적도 없고 조사비를 받은 적도 없다고 답변한 겁니다.

조사자 질의답변서. 환경영향평가서에 등재된 전문가가 참여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국회 환노위 이정미 의원실 국감자료.
국립생태원도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한 의견서에서 위와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명단에 없는 조사자가 현지조사표에 등장하거나, 조사자가 아예 제시되지 않기도 하고, 현지조사를 증빙할 자료가 없는 경우도 있다고 적시했습니다. 앞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환경영향평가서가 심각하게 부실하다고 지적한 데 이어 국립생태원도 환경영향평가서의 결함을 지적한 겁니다.

국립생태원 의견서. 명단에 없는 조사자 등장이나 조사 증빙자료 부재를 지적했다.
[연관기사] ☞ “미흡한 조사, 심각한 훼손 우려”…그래도 케이블카?

설악산 끝청봉 케이블카 예정지
이에 대해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한 업체 측은 환경영향평가서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지조사표를 비롯해 일부 증빙 자료가 빠진 경우는 있지만, 현지 조사를 한 것은 분명하다는 겁니다. 또 비전문가가 다른 분야를 조사한 경우도 관행상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명했습니다. 이른바 '유령 전문가'에 대해서도 해당 전문가가 환경영향평가에 실제로 참여했다고 반박했습니다.

현지조사에 대한 환경부 규정. 조사 일시와 조사 지역 좌표 등을 기록하도록 명시했다.
하지만 환경부가 마련한 현지조사 작성 지침은 조사 인력이 이미 등록된 사람이어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또 조사 일시를 분 단위로 기록하고 조사 지역 역시 지점 명과 좌표, 면적을 기록하도록 했습니다. 양양군이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는 위의 지침을 명백하게 어긴 것입니다.

케이블카 상부정류장 예정지
환경영향평가서를 거짓으로 작성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원주지방환경청은 부실한 현지조사표나 '유령 조사자' 의혹에 대해 현재 조사하고 있다고 답할 뿐 공식적인 의견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나라 최초 유네스코 세계생물권보존지역으로 지정된 설악산.
설악산은 우리나라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생물권보존지역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한라산, 지리산에 이어 세 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입니다. 천연기념물입니다. 산림청이 정한 산림유전자원 보호 지역이자 백두대간 보호 핵심 지역입니다. 세계자연보전연맹도 생태 보전을 위한 최고 등급인 카테고리 Ⅰa(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한 곳입니다. 우리만이 아니라 세계의 자연 유산입니다. 세계적 멸종위기종의 보고입니다.

설악산 케이블카 조감도
설악산의 가을
이런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면 다른 어느 곳보다, 생태 훼손을 줄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 철저한 노력은 설악산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입니다. 혹시라도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는 생태 자원에 대해 국내 최고의 전문가가 조사하는 것이 마땅한 겁니다. 부실한 조사와 비전문가, 심지어 유령 전문가까지 거론되는 환경영향평가서로 설악산을 재단하는 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인에 대한 모욕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설악산 케이블카의 진행 과정은 현재 우리의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가 될 것입니다.

[연관기사] ☞ ‘산양 핵심 서식지 관통’… 그래도 케이블카?

[사진 제공: 설악산 국민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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