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인천까지, 목숨건 탈출 48시간

입력 2002.08.2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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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자유를 찾기 위해서 어선을 타고 탈북한 세 가족 21명의 얘기는 정말 극적인 드라마였습니다.
⊙앵커: 이들이 북한을 탈출해서 인천에 도착하기까지의 48시간을 김정균 프로듀서가 구성했습니다.
⊙기자: 17일 새벽 평안북도 홍건도 포구에는 궂은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순룡범 씨는 세 가족 21명을 이끌고 10년을 준비해 온 탈북을 결행하기로 했습니다.
룡범 씨가 당시 당직근무를 하던 기관장 리경성 씨를 유인해 배에 태우고 홍건도를 출발한 시간은 새벽 4시.
룡범 씨는 이날을 위해 북한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양의 옥수수와 쌀 그리고 경유와 소금 8포를 준비했습니다.
배는 곧바로 기수를 서쪽으로 잡고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20톤의 작은 목선에 탄 21명은 목숨을 걸고 파도를 가르며 계속 서쪽을 향해달렸습니다.
⊙김수훈(서장/인천해양결창서): 중국쪽으로 한참 가다가 남하를 한겁니다.그러니까 북한쪽 레이더에서 이미 사라졌었죠, 그 당시에는...
⊙기자: 갑판 곳곳에는 그물 등 어구를 갖춰놓고 철저하게 어선으로 위장했습니다.
배이름은 아예 지워버렸습니다.
어른 서너 명이 서 있기도 비좁은 두 평 남짓한 선실에서 21명이 몸을 움츠리며 긴장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낡은 선실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밥과 옥수수, 탈출 당시의 절박함과 긴장감이 배어나옵니다.
가까스로 북한 영해를 벗어난 배는 뱃머리를 남쪽으로 돌려 그리운 자유의 땅 그리고 고향이 있는 남쪽을 향해 넘실대는 파도를 가르며 계속 달렸습니다.
18일 오후 6시, 뱃머리를 급히 돌려 우리 영해에 들어선 순간 이번에는 전투태세까지 갖춘 해경 경비정과 맞닥뜨립니다.
⊙김수훈(서장/인천해양경찰서): 중국도 경비정이 나와 있는데 거기에 붙들리면 큰일난다는 생각을 해서 한국쪽으로 가까이 접근했다는 얘기입니다.
⊙기자: 탈출 38시간 만에 이들의 눈에 보인 것은 태극기였습니다.
룡범 씨는 용수철처럼 뱃머리로 튀어나와 두 팔을 흔들었습니다.
⊙김재만(정장/인천해양경찰서): 한 2마일권에 가서 보니까 중국 어선으로 판명이 됐었습니다.
⊙기자: 긴장감이 감도는 순간 낯설지 않은 북한 사투리가 튀어나왔습니다.
⊙김재만(정장/인천해양경찰서): 70세 먹은 노인이 저희는 이북에서 넘어온 귀순자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기자: 긴장 때문에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지 경비정으로 옮겨진 가족들은 먹을 것부터 찾았습니다.
⊙김재만(정장/인천해양경찰서): 인원이 21명이기 때문에 라면 25개를 끓이고 그 다음에 밥이 남은 것을 같이 해서 우리가 끓여서 줬습니다.
⊙기자: 19일 새벽 4시, 이들은 48시간 만에 꿈에도 그리던 자유의 땅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KBS뉴스 김정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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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에서 인천까지, 목숨건 탈출 48시간
    • 입력 2002-08-20 19:00:00
    뉴스 7
⊙앵커: 자유를 찾기 위해서 어선을 타고 탈북한 세 가족 21명의 얘기는 정말 극적인 드라마였습니다. ⊙앵커: 이들이 북한을 탈출해서 인천에 도착하기까지의 48시간을 김정균 프로듀서가 구성했습니다. ⊙기자: 17일 새벽 평안북도 홍건도 포구에는 궂은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순룡범 씨는 세 가족 21명을 이끌고 10년을 준비해 온 탈북을 결행하기로 했습니다. 룡범 씨가 당시 당직근무를 하던 기관장 리경성 씨를 유인해 배에 태우고 홍건도를 출발한 시간은 새벽 4시. 룡범 씨는 이날을 위해 북한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양의 옥수수와 쌀 그리고 경유와 소금 8포를 준비했습니다. 배는 곧바로 기수를 서쪽으로 잡고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20톤의 작은 목선에 탄 21명은 목숨을 걸고 파도를 가르며 계속 서쪽을 향해달렸습니다. ⊙김수훈(서장/인천해양결창서): 중국쪽으로 한참 가다가 남하를 한겁니다.그러니까 북한쪽 레이더에서 이미 사라졌었죠, 그 당시에는... ⊙기자: 갑판 곳곳에는 그물 등 어구를 갖춰놓고 철저하게 어선으로 위장했습니다. 배이름은 아예 지워버렸습니다. 어른 서너 명이 서 있기도 비좁은 두 평 남짓한 선실에서 21명이 몸을 움츠리며 긴장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낡은 선실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밥과 옥수수, 탈출 당시의 절박함과 긴장감이 배어나옵니다. 가까스로 북한 영해를 벗어난 배는 뱃머리를 남쪽으로 돌려 그리운 자유의 땅 그리고 고향이 있는 남쪽을 향해 넘실대는 파도를 가르며 계속 달렸습니다. 18일 오후 6시, 뱃머리를 급히 돌려 우리 영해에 들어선 순간 이번에는 전투태세까지 갖춘 해경 경비정과 맞닥뜨립니다. ⊙김수훈(서장/인천해양경찰서): 중국도 경비정이 나와 있는데 거기에 붙들리면 큰일난다는 생각을 해서 한국쪽으로 가까이 접근했다는 얘기입니다. ⊙기자: 탈출 38시간 만에 이들의 눈에 보인 것은 태극기였습니다. 룡범 씨는 용수철처럼 뱃머리로 튀어나와 두 팔을 흔들었습니다. ⊙김재만(정장/인천해양경찰서): 한 2마일권에 가서 보니까 중국 어선으로 판명이 됐었습니다. ⊙기자: 긴장감이 감도는 순간 낯설지 않은 북한 사투리가 튀어나왔습니다. ⊙김재만(정장/인천해양경찰서): 70세 먹은 노인이 저희는 이북에서 넘어온 귀순자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기자: 긴장 때문에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지 경비정으로 옮겨진 가족들은 먹을 것부터 찾았습니다. ⊙김재만(정장/인천해양경찰서): 인원이 21명이기 때문에 라면 25개를 끓이고 그 다음에 밥이 남은 것을 같이 해서 우리가 끓여서 줬습니다. ⊙기자: 19일 새벽 4시, 이들은 48시간 만에 꿈에도 그리던 자유의 땅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KBS뉴스 김정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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