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받고, 도움주는 삶”…당당하게 늙을 권리

입력 2018.05.08 (21:37) 수정 2018.05.08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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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나라는 노인 인구가 전체의 14%를 넘으며 '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2025년이면 전체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일 거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100세 시대'가 과장이 아닌 현실로 다가온 지금, 더 오래 사는 건 축복이 아닌 숙제일지도 모릅니다.

법정 정년인 60세를 꽉 채우더라도, 수십 년을 더 살아가야 하니까요.

그래서 노인들은 다시 일하길 원합니다.

'일'은 단순한 생계수단, 그 이상의 보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아버지, 어머니의 현재, 그들의 자녀가 마주할 미래.

먼저 엄진아 기자가 '노년의 일' 그 현실을 점검했습니다.

[리포트]

10년 넘게 문화해설사로 일한 할아버지들.

40년 교직 경험을 살려, 고궁으로, 박물관으로 매일 출근했습니다.

그런데 2년 전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냥 오늘부로 그만 둔다...그게 얼마나 섭섭한지 몰랐어."]

문화해설사 일자리가 노인기초연금 수급자 일자리로 바뀌면서 생긴 일입니다.

교사 출신인 할아버지들은 기초연금 보다 소득이 많아 일을 못하게 된 겁니다.

[김선태/76살 :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데 꿈을 좌절시켜 버린 것이 좀 아쉬웠죠. 돈 보다는 나름대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

노인이 노인 환자를 돌보는 '노노케어' 종사자인 이 할아버지도 여러번 일을 중단했습니다.

돌봐줄 노인 환자를 직접 찾아야하기 때문입니다.

[조OO/'노노케어' 종사자 : "구청에서도 매칭(연결) 안 해 주고. 내가 동에 찾아가서 사정을 했어. 좀 해줘라 했더니 안된대. 개인정보 보호라나 뭐 어쩌고 일절 안된대."]

정부 노인 일자리가 지난 5년 새 두배 가까이 늘긴 했지만 이처럼 곳곳에 헛점이 있는 겁니다.

[고현종/노인일자리 기관 종로시니어클럽 :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거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딱 막으니까...일자리의 내용들이 좀 다양하지 않고. 또 약간 전문성이 있는 일자리는 참여자 모집하기가 어려운 거죠."]

[기자]

일하고 싶은 노인들은 이렇게 상담 창구를 찾습니다.

박봉에다 차별, 허드랫일이나 다름없는 민간 일자리보다 정부 노인 일자리가 그나마 낫기 때문인데요.

그럼 정부 일자리는 어떨까요?

지난해 기준 46만 7천개의 노인 일자리 중 '노노(老老)케어', 청소년 선도 같은 공익 활동이 33만 7천개.

실버 카페, 반찬가게 등 시장형 사업이 5만 5천개.

청소, 포장업 등 인력 파견이 만 9천개입니다.

보시는 것 처럼 대부분 단순 노동 업무들인데요.

그동안 노인 일자리 자체가 워낙 없었기 때문에 이 자체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은데요.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세대에 진입하기 때문입니다.

1955년에서 63년생까지, '베이비붐 세대'는 약 720만 명.

전체 인구의 14%에 달합니다.

학력 수준은 높고, 소득은 비교적 안정적이고, 전문직 종사자도 많습니다.

[박향희/'신나는조합'(노인일자리사회적기업) 이사 : "그분들은 굉장히 중요한 사회적 자원이라고 생각하고, 그분들을 오히려 공공의 영역이나 민간에서 활용한다고 생각을 해야 된다고 보고 있어요."]

더 이상 노인을 부양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그들의 풍부한 경험을 살려 사회에 보탬이 되는 동반자로 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강푸른 기자와 함께 '당당하게 늙을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보시죠.

[리포트]

머리를 다듬고, 옷을 골라 입습니다.

["다녀올게."]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나선 출근길.

["안녕. (안녕하세요)."]

올해 61살 베이비붐 세대 이영섭 씨의 두 번째 직장은 소상공인과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프리마켓 벤처기업입니다.

직원 평균 나이 28살 창업 5년 차.

임금은 첫 직장에 비할 바 못되지만 열정은 많고 경험은 부족한 이 젊은 기업에 이영섭 씨는 노하우를 아낌없이 내어 놓습니다.

[이영섭/2013년 대기업 퇴직 :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회사의 손익이 왔다 갔다 하고 굉장히 내가 하는 역할이 크고 중요하고..."]

26년 동안 대기업에서 자금 운용을 한 경험을 살려 업무는 복잡한 회계 일을 맡았습니다.

40대 초보 CEO에겐 버겁던 일이었습니다.

[김주연/벤처기업 CEO : "숫자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컨트롤 하시는게 굉장히 탁월하셔서 실제적으로 금액에 로스가 나는 부분들에 대해서 많이 조언을 해주셔서.."]

일하고 싶다고 밝힌 고령자 중 36%가 경제적 도움도 좋지만, 일하는 즐거움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대기업, MBA, 고액 연봉.

젊은 시절을 장식하던 화려한 수식어보다, 이영섭 씨를 지금 웃게 하는 건, '아직 쓸모있는 사람'임을 확인받은 것입니다.

[이영섭/2013년 퇴직 : "이런 건 어떻게 아셨냐고 하고, 박수도 쳐주고. 빨리 회사가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가면 내가 뭔가 이 친구들한테 해줄 게 있겠구나."]

KBS 뉴스 강푸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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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움받고, 도움주는 삶”…당당하게 늙을 권리
    • 입력 2018-05-08 21:35:50
    • 수정2018-05-08 21: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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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나라는 노인 인구가 전체의 14%를 넘으며 '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2025년이면 전체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일 거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100세 시대'가 과장이 아닌 현실로 다가온 지금, 더 오래 사는 건 축복이 아닌 숙제일지도 모릅니다.

법정 정년인 60세를 꽉 채우더라도, 수십 년을 더 살아가야 하니까요.

그래서 노인들은 다시 일하길 원합니다.

'일'은 단순한 생계수단, 그 이상의 보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아버지, 어머니의 현재, 그들의 자녀가 마주할 미래.

먼저 엄진아 기자가 '노년의 일' 그 현실을 점검했습니다.

[리포트]

10년 넘게 문화해설사로 일한 할아버지들.

40년 교직 경험을 살려, 고궁으로, 박물관으로 매일 출근했습니다.

그런데 2년 전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냥 오늘부로 그만 둔다...그게 얼마나 섭섭한지 몰랐어."]

문화해설사 일자리가 노인기초연금 수급자 일자리로 바뀌면서 생긴 일입니다.

교사 출신인 할아버지들은 기초연금 보다 소득이 많아 일을 못하게 된 겁니다.

[김선태/76살 :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데 꿈을 좌절시켜 버린 것이 좀 아쉬웠죠. 돈 보다는 나름대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

노인이 노인 환자를 돌보는 '노노케어' 종사자인 이 할아버지도 여러번 일을 중단했습니다.

돌봐줄 노인 환자를 직접 찾아야하기 때문입니다.

[조OO/'노노케어' 종사자 : "구청에서도 매칭(연결) 안 해 주고. 내가 동에 찾아가서 사정을 했어. 좀 해줘라 했더니 안된대. 개인정보 보호라나 뭐 어쩌고 일절 안된대."]

정부 노인 일자리가 지난 5년 새 두배 가까이 늘긴 했지만 이처럼 곳곳에 헛점이 있는 겁니다.

[고현종/노인일자리 기관 종로시니어클럽 :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거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딱 막으니까...일자리의 내용들이 좀 다양하지 않고. 또 약간 전문성이 있는 일자리는 참여자 모집하기가 어려운 거죠."]

[기자]

일하고 싶은 노인들은 이렇게 상담 창구를 찾습니다.

박봉에다 차별, 허드랫일이나 다름없는 민간 일자리보다 정부 노인 일자리가 그나마 낫기 때문인데요.

그럼 정부 일자리는 어떨까요?

지난해 기준 46만 7천개의 노인 일자리 중 '노노(老老)케어', 청소년 선도 같은 공익 활동이 33만 7천개.

실버 카페, 반찬가게 등 시장형 사업이 5만 5천개.

청소, 포장업 등 인력 파견이 만 9천개입니다.

보시는 것 처럼 대부분 단순 노동 업무들인데요.

그동안 노인 일자리 자체가 워낙 없었기 때문에 이 자체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은데요.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세대에 진입하기 때문입니다.

1955년에서 63년생까지, '베이비붐 세대'는 약 720만 명.

전체 인구의 14%에 달합니다.

학력 수준은 높고, 소득은 비교적 안정적이고, 전문직 종사자도 많습니다.

[박향희/'신나는조합'(노인일자리사회적기업) 이사 : "그분들은 굉장히 중요한 사회적 자원이라고 생각하고, 그분들을 오히려 공공의 영역이나 민간에서 활용한다고 생각을 해야 된다고 보고 있어요."]

더 이상 노인을 부양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그들의 풍부한 경험을 살려 사회에 보탬이 되는 동반자로 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강푸른 기자와 함께 '당당하게 늙을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보시죠.

[리포트]

머리를 다듬고, 옷을 골라 입습니다.

["다녀올게."]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나선 출근길.

["안녕. (안녕하세요)."]

올해 61살 베이비붐 세대 이영섭 씨의 두 번째 직장은 소상공인과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프리마켓 벤처기업입니다.

직원 평균 나이 28살 창업 5년 차.

임금은 첫 직장에 비할 바 못되지만 열정은 많고 경험은 부족한 이 젊은 기업에 이영섭 씨는 노하우를 아낌없이 내어 놓습니다.

[이영섭/2013년 대기업 퇴직 :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회사의 손익이 왔다 갔다 하고 굉장히 내가 하는 역할이 크고 중요하고..."]

26년 동안 대기업에서 자금 운용을 한 경험을 살려 업무는 복잡한 회계 일을 맡았습니다.

40대 초보 CEO에겐 버겁던 일이었습니다.

[김주연/벤처기업 CEO : "숫자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컨트롤 하시는게 굉장히 탁월하셔서 실제적으로 금액에 로스가 나는 부분들에 대해서 많이 조언을 해주셔서.."]

일하고 싶다고 밝힌 고령자 중 36%가 경제적 도움도 좋지만, 일하는 즐거움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대기업, MBA, 고액 연봉.

젊은 시절을 장식하던 화려한 수식어보다, 이영섭 씨를 지금 웃게 하는 건, '아직 쓸모있는 사람'임을 확인받은 것입니다.

[이영섭/2013년 퇴직 : "이런 건 어떻게 아셨냐고 하고, 박수도 쳐주고. 빨리 회사가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가면 내가 뭔가 이 친구들한테 해줄 게 있겠구나."]

KBS 뉴스 강푸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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