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당시 김일성 스탈린에게 지원 간청

입력 1994.07.2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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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성 앵커 :

김일성은 특히, UN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황이 불리해지자 스탈린에게 지원을 긴급 요청했고, 스탈린은 모택동에게 중공군이 참전하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다음은 전쟁발발 이후의 상황입니다.

이현주 기자가 정리를 해 드립니다.


이현주 기자 :

UN군의 참전으로 전황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 50년 7월 5일. 스티코프 평양주재 소련대사는 스탈린에게 긴급 암호전문을 보냅니다. 김일성과 박헌영을 만났는데, 소련의 원조와 지원이 절실하다. 그리고 미군의 상륙작전이 예상되므로 무기보급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스탈린은 이에 따라, 즉각 모택동에게 중공군 9개 사단을 국경지대에 집결하도록 요청합니다. 이에 대해 모택동은, 군사행동은 유보하는 대신에 북한 대표에게 한 가지 충고를 줍니다. 미군이 대구, 부산 지역을 강화하면서 북한군을 묶어 놓고, 다른 지역에서 상륙작전을 감행할 것이라는 경고였습니다. 그러나 9월 15일, 인천 상륙작전은 성공하고 전황이 역전되기 시작합니다.

9월 29일 연합군의 서울 탈환 후, 김일성은 박헌영과 함께 스탈린에게 긴급 친서를 보냅니다. 김일성은 이 친서에서, 소련군의 직접출동을 호소하면서 직접출동이 여의치 않다면 중공 등, 다른 나라들과 국제의용군이라도 조직해 도와달라고 애걸합니다.

10월 1일 스탈린은 모택동에게 전문을 보내 중공의용군 5,6개 사단이라도 빨리 38선에 진출시켜야 할 것이라고 요청합니다. 10월 하순 중공지도부는, 팽덕희와 고광 등 군부가 미군이 한반도 전역을 점령할’경우, 중국의 안보를 보장할 수 없다는 논리로, 주은래 등, 참전반대파를 설득해 참전을 결정합니다.

전황이 개선될 기미가 없자 다급해진 스탈린은, 51년 3월 모택동에게 소련군폭격 항공사단 제공계획을 통보하는 등, 직접적인 군사개입 의사까지 밝힙니다. 그러나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6월말 휴전회담 개최논의가 시작되면서 소련군의 직접개입은 취소됩니다. 스탈린은 휴전협상과 관련해, 모택동이 전면에 나서서 휴전 협상을 이끌어 달라고 요청하면서 협상의 막후역할을 해냅니다.

KBS뉴스, 이현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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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전쟁 당시 김일성 스탈린에게 지원 간청
    • 입력 1994-07-20 21:00:00
    뉴스 9

이윤성 앵커 :

김일성은 특히, UN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황이 불리해지자 스탈린에게 지원을 긴급 요청했고, 스탈린은 모택동에게 중공군이 참전하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다음은 전쟁발발 이후의 상황입니다.

이현주 기자가 정리를 해 드립니다.


이현주 기자 :

UN군의 참전으로 전황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 50년 7월 5일. 스티코프 평양주재 소련대사는 스탈린에게 긴급 암호전문을 보냅니다. 김일성과 박헌영을 만났는데, 소련의 원조와 지원이 절실하다. 그리고 미군의 상륙작전이 예상되므로 무기보급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스탈린은 이에 따라, 즉각 모택동에게 중공군 9개 사단을 국경지대에 집결하도록 요청합니다. 이에 대해 모택동은, 군사행동은 유보하는 대신에 북한 대표에게 한 가지 충고를 줍니다. 미군이 대구, 부산 지역을 강화하면서 북한군을 묶어 놓고, 다른 지역에서 상륙작전을 감행할 것이라는 경고였습니다. 그러나 9월 15일, 인천 상륙작전은 성공하고 전황이 역전되기 시작합니다.

9월 29일 연합군의 서울 탈환 후, 김일성은 박헌영과 함께 스탈린에게 긴급 친서를 보냅니다. 김일성은 이 친서에서, 소련군의 직접출동을 호소하면서 직접출동이 여의치 않다면 중공 등, 다른 나라들과 국제의용군이라도 조직해 도와달라고 애걸합니다.

10월 1일 스탈린은 모택동에게 전문을 보내 중공의용군 5,6개 사단이라도 빨리 38선에 진출시켜야 할 것이라고 요청합니다. 10월 하순 중공지도부는, 팽덕희와 고광 등 군부가 미군이 한반도 전역을 점령할’경우, 중국의 안보를 보장할 수 없다는 논리로, 주은래 등, 참전반대파를 설득해 참전을 결정합니다.

전황이 개선될 기미가 없자 다급해진 스탈린은, 51년 3월 모택동에게 소련군폭격 항공사단 제공계획을 통보하는 등, 직접적인 군사개입 의사까지 밝힙니다. 그러나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6월말 휴전회담 개최논의가 시작되면서 소련군의 직접개입은 취소됩니다. 스탈린은 휴전협상과 관련해, 모택동이 전면에 나서서 휴전 협상을 이끌어 달라고 요청하면서 협상의 막후역할을 해냅니다.

KBS뉴스, 이현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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