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원 앵커 :
일제가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국내 명산마다 박았던 쇠말뚝 30여개가 뽑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강산에는 일제의 쇠말뚝들이 곳곳에 박혀있습니다.
김종진 앵커 :
일제는 쇠말뚝 뿐 아니라 곳곳에 일본식 건물이나 조형물을 세워서 우리 국토의 혈맥과 기를 끊으려 했습니다.
광복 50주년을 맞아서 일제 풍수침략 실태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황상무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황상무 기자 :
해발 천306m의 대암산 자락. 태백산맥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명산의 한 무리의 젊은이둘이 오릅니다. 이 명산에 일본인들이 박은 쇠말뚝을 뽑기 위해서입니다. 일제는 왜 이곳에 쇠말뚝을 박았을까? 산위에서 보면 쇠말뚝이 박힌 지형은 거북이 모양입니다. 말죽은 정확하게 거북이의 정수리에 꽂혀 있습니다.
주광석(한국 풍수지리학회장) :
갓난아이가 처음에 났을 때 그 머리통 뒤를 보면 말랑말랑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걸 백희열이라고 그래서 사람을 치사시킬 수 있는 이곳에 침을 놓으면 사람이 치사한다는 요러한 오행 동에 의해서 우리나라의 명산이 될 수 있는 곳 산정상은 전부 같은 방법으로 쇠말뚝을 박아서 사혈을 시켰죠.
황상무 기자 :
작업이 시작된 지 13시간.
이주호(양구 사랑회장) :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서 이런 쇠말뚝을 이렇게 깊이 박았다는 거에 대해서 상당한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
황상무 기자 :
쇠말뚝은 전국에 몇 개나 될까? 민간단체들의 끈질긴 추적으로 지금까지 뽑힌 쇠말뚝은 34개. 한결같이 이른바 명산의 명당 터에서 발견됐습니다.
서길수(서경대 교수) :
전 국민이 모두 당시에 믿고 있던 국민정서중의 하나가 소위 명당사상입니다.
그래서 명당에다가 전국의 중요한 혈에다가 혀를 질러버리면 우린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고로 우린 어쩔 수 없는 백성이다 이런 패배감을 심어주는 거 열등의식을 주는 거.
황상무 기자 :
풍수침략에 희생된 대표적인 곳은 서울. 서울의 진산은 북한산입니다. 한반도의 명치끝에 해당하는 지점으로 백두대간의 정기가 이곳에 모여 꽃을 피운다는 형세입니다. 일제는 이 명치끝의 정수리에 해당하는 백운대 정상에 22개 쇠말뚝을 박음으로써 서울의 정기를 억누르려했습니다.
쇠말뚝뿐이 아닙니다. 서울의 주산인 북악의 기슭에는 총독의 잠자리를, 앞마당에는 총독의 청사를 세웠습니다. 서울의 내명당인 경복궁을 앞뒤로 포위한 것입니다. 북악산에서 남산으로 흐르는 기는 경성 부청과 조선 …….을 세워 끊었습니다. 서울의 혈맥을 요소마다 누른 것입니다. 남산에는 신궁까지 세워 풍수지리상 요지마다 철저하게 훼손했습니다. 경복궁 앞마당에 세워진 총독부 청사입니다. 풍수학계는 이 총독부 청사를 일제가 우리 땅에 세운 가장 거대한 쇠말뚝으로 보고 있습니다. 삼천리의 서기가 한곳으로 모였다는 경복궁 근정전. 이 근정전을 거대한 총독부가 가로막아 우리 안에 가뒀습니다.
구윤석(우리를 생각하는 모임) :
이제는 우리는 희망이 없다, 독립의 희망을 포기하게 하는 스스로 좌절하고 자포자기하게 하는 그런 효과를 노리는 고도의 대중심리 전법이랄까.
황상무 기자 :
평지에는 위압적인 건물을 산에는 쇠말뚝을, 일제는 우리가 호랑이로 여긴 한반도의 허파와 명치 위장과 단전에 깊숙이 꽂았습니다. 민간 차원에서 쇠말뚝을 뽑기 시작한지 이제10년. 이 사업은 민간운동으로 출발했었습니다. 최근 쇠말뚝 제거작업이 펼쳐지면서 이곳 식당은 이제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이 됐습니다. 길이 150cm짜리 쇠막대는 식사중인 손님들에게 언제나 관심거리입니다.
지난 90년 매주 산행을 즐기던 나氏는 일본인들이 용두산 중턱에 파묻었던 쇠말뚝을 찾아냅니다.
나정엽(보성식당 주인) :
그것이 있기에 빼다보니깐 그게 쇠말뚝이라는 거를 확실히 알았죠 저는요
황상무 기자 :
5년 전까지 쇠말뚝이 꼽혀있던 이 자리는 용의 형상을 갖추고 있는 대구 용두산에서 바로 척추부분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풍수지리학자와 동네 노인들의 확인을 거친 끝에 하루 종일 땅을 파내고 명산의 생명선을 다시 살려냈습니다.
확인된 것만 30개. 미확인 분까지 포함하면 120여개의 말뚝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제가 갖은 방법으로 짖누르고자 했던 민족정기. 이제는 세계로 향해 뻗어가는 민족정신으로 재무장하는 것이 광복 50주년을 맞는 우리의 과제입니다.
KBS 뉴스, 황상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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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21] 우리 혈맥 되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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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1995-03-05 21:00:00

이규원 앵커 :
일제가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국내 명산마다 박았던 쇠말뚝 30여개가 뽑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강산에는 일제의 쇠말뚝들이 곳곳에 박혀있습니다.
김종진 앵커 :
일제는 쇠말뚝 뿐 아니라 곳곳에 일본식 건물이나 조형물을 세워서 우리 국토의 혈맥과 기를 끊으려 했습니다.
광복 50주년을 맞아서 일제 풍수침략 실태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황상무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황상무 기자 :
해발 천306m의 대암산 자락. 태백산맥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명산의 한 무리의 젊은이둘이 오릅니다. 이 명산에 일본인들이 박은 쇠말뚝을 뽑기 위해서입니다. 일제는 왜 이곳에 쇠말뚝을 박았을까? 산위에서 보면 쇠말뚝이 박힌 지형은 거북이 모양입니다. 말죽은 정확하게 거북이의 정수리에 꽂혀 있습니다.
주광석(한국 풍수지리학회장) :
갓난아이가 처음에 났을 때 그 머리통 뒤를 보면 말랑말랑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걸 백희열이라고 그래서 사람을 치사시킬 수 있는 이곳에 침을 놓으면 사람이 치사한다는 요러한 오행 동에 의해서 우리나라의 명산이 될 수 있는 곳 산정상은 전부 같은 방법으로 쇠말뚝을 박아서 사혈을 시켰죠.
황상무 기자 :
작업이 시작된 지 13시간.
이주호(양구 사랑회장) :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서 이런 쇠말뚝을 이렇게 깊이 박았다는 거에 대해서 상당한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
황상무 기자 :
쇠말뚝은 전국에 몇 개나 될까? 민간단체들의 끈질긴 추적으로 지금까지 뽑힌 쇠말뚝은 34개. 한결같이 이른바 명산의 명당 터에서 발견됐습니다.
서길수(서경대 교수) :
전 국민이 모두 당시에 믿고 있던 국민정서중의 하나가 소위 명당사상입니다.
그래서 명당에다가 전국의 중요한 혈에다가 혀를 질러버리면 우린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고로 우린 어쩔 수 없는 백성이다 이런 패배감을 심어주는 거 열등의식을 주는 거.
황상무 기자 :
풍수침략에 희생된 대표적인 곳은 서울. 서울의 진산은 북한산입니다. 한반도의 명치끝에 해당하는 지점으로 백두대간의 정기가 이곳에 모여 꽃을 피운다는 형세입니다. 일제는 이 명치끝의 정수리에 해당하는 백운대 정상에 22개 쇠말뚝을 박음으로써 서울의 정기를 억누르려했습니다.
쇠말뚝뿐이 아닙니다. 서울의 주산인 북악의 기슭에는 총독의 잠자리를, 앞마당에는 총독의 청사를 세웠습니다. 서울의 내명당인 경복궁을 앞뒤로 포위한 것입니다. 북악산에서 남산으로 흐르는 기는 경성 부청과 조선 …….을 세워 끊었습니다. 서울의 혈맥을 요소마다 누른 것입니다. 남산에는 신궁까지 세워 풍수지리상 요지마다 철저하게 훼손했습니다. 경복궁 앞마당에 세워진 총독부 청사입니다. 풍수학계는 이 총독부 청사를 일제가 우리 땅에 세운 가장 거대한 쇠말뚝으로 보고 있습니다. 삼천리의 서기가 한곳으로 모였다는 경복궁 근정전. 이 근정전을 거대한 총독부가 가로막아 우리 안에 가뒀습니다.
구윤석(우리를 생각하는 모임) :
이제는 우리는 희망이 없다, 독립의 희망을 포기하게 하는 스스로 좌절하고 자포자기하게 하는 그런 효과를 노리는 고도의 대중심리 전법이랄까.
황상무 기자 :
평지에는 위압적인 건물을 산에는 쇠말뚝을, 일제는 우리가 호랑이로 여긴 한반도의 허파와 명치 위장과 단전에 깊숙이 꽂았습니다. 민간 차원에서 쇠말뚝을 뽑기 시작한지 이제10년. 이 사업은 민간운동으로 출발했었습니다. 최근 쇠말뚝 제거작업이 펼쳐지면서 이곳 식당은 이제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이 됐습니다. 길이 150cm짜리 쇠막대는 식사중인 손님들에게 언제나 관심거리입니다.
지난 90년 매주 산행을 즐기던 나氏는 일본인들이 용두산 중턱에 파묻었던 쇠말뚝을 찾아냅니다.
나정엽(보성식당 주인) :
그것이 있기에 빼다보니깐 그게 쇠말뚝이라는 거를 확실히 알았죠 저는요
황상무 기자 :
5년 전까지 쇠말뚝이 꼽혀있던 이 자리는 용의 형상을 갖추고 있는 대구 용두산에서 바로 척추부분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풍수지리학자와 동네 노인들의 확인을 거친 끝에 하루 종일 땅을 파내고 명산의 생명선을 다시 살려냈습니다.
확인된 것만 30개. 미확인 분까지 포함하면 120여개의 말뚝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제가 갖은 방법으로 짖누르고자 했던 민족정기. 이제는 세계로 향해 뻗어가는 민족정신으로 재무장하는 것이 광복 50주년을 맞는 우리의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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