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전4기 작은 거인; 1904년 한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93세를 일기로 사망하기까지의 등소평 일대기 자료화면 #모택동 주은래 천안문 사태

입력 1997.02.2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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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찬 앵커 :

등소평은 격동의 중국 현대사에서 세차례의 실각을 극복하고 끈질기게 정치생명을 유지해온 파란만장의 일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부도옹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작은거인 또 개혁과 개방의 설계사로 불리면서 한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입니다.

등소평의 일대기를 국제부 정창훈 기자가 정리해 전해 드립니다.


⊙정창훈 기자 :

키 150㎝의 작은거인이었던 등소평 1904 사천성 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16살에 프랑스 유학길에 오르면서 오뚜기 같은 인생을 시작합니다. 중국으로 돌아온 23살이 등소평은 국민당군과 싸운 뛰어난 투쟁력으로 모택동에 발탁됩니다. 그러나 28살 되던해 모택동과 함께 당에서 쫓겨나는 첫 시련을 맞습니다. 30년대 기나긴 대장정을 거쳐 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던 날 모택동과 나란히 천안문 광장에 섭니다. 52년 부총리로 중앙정치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등소평은 그러나 66년 문화혁명때 자본주의자로 몰려 강제 노동형에 처해지는 두번째 시련을 맞습니다. 73년 주은래의 도움으로 당 부주석으로 복권하지만 3년뒤 천안문 군중집회의 배후 조종자로 몰려 세번째로 실각합니다. 그러나 같은 해 모택동의 사망과 4인방의 실각으로 등소평은 오뚜기 같이 다시 일어섭니다. 명실공히 중국의 최고 실권자로서 등소평은 자본주의를 도입하게 됩니다. 그러나 천안문 사태때 학생들의 거센 민주화 물결을 강경진압하는 강한 면모도 보였습니다.


"천안문 사건 희생자에 대해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화합의 정신으로 통치하시오."


90년대 들어 등소평은 현실 정치 뒤로 숨어 중국 최고 실권자로서 현대화 작업을 지휘합니다. 그러나 나이를 막을 수는 없는 일 오뚜기 등소평은 마지막 소원이던 올해 7월 홍콩 반환식에 끝내 참석하지 못하고 93살을 일기로 역사의 장으로 사라졌습니다.

KBS 뉴스, 정창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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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전4기 작은 거인; 1904년 한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93세를 일기로 사망하기까지의 등소평 일대기 자료화면 #모택동 주은래 천안문 사태
    • 입력 1997-02-20 21:00:00
    뉴스 9

⊙류근찬 앵커 :

등소평은 격동의 중국 현대사에서 세차례의 실각을 극복하고 끈질기게 정치생명을 유지해온 파란만장의 일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부도옹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작은거인 또 개혁과 개방의 설계사로 불리면서 한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입니다.

등소평의 일대기를 국제부 정창훈 기자가 정리해 전해 드립니다.


⊙정창훈 기자 :

키 150㎝의 작은거인이었던 등소평 1904 사천성 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16살에 프랑스 유학길에 오르면서 오뚜기 같은 인생을 시작합니다. 중국으로 돌아온 23살이 등소평은 국민당군과 싸운 뛰어난 투쟁력으로 모택동에 발탁됩니다. 그러나 28살 되던해 모택동과 함께 당에서 쫓겨나는 첫 시련을 맞습니다. 30년대 기나긴 대장정을 거쳐 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던 날 모택동과 나란히 천안문 광장에 섭니다. 52년 부총리로 중앙정치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등소평은 그러나 66년 문화혁명때 자본주의자로 몰려 강제 노동형에 처해지는 두번째 시련을 맞습니다. 73년 주은래의 도움으로 당 부주석으로 복권하지만 3년뒤 천안문 군중집회의 배후 조종자로 몰려 세번째로 실각합니다. 그러나 같은 해 모택동의 사망과 4인방의 실각으로 등소평은 오뚜기 같이 다시 일어섭니다. 명실공히 중국의 최고 실권자로서 등소평은 자본주의를 도입하게 됩니다. 그러나 천안문 사태때 학생들의 거센 민주화 물결을 강경진압하는 강한 면모도 보였습니다.


"천안문 사건 희생자에 대해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화합의 정신으로 통치하시오."


90년대 들어 등소평은 현실 정치 뒤로 숨어 중국 최고 실권자로서 현대화 작업을 지휘합니다. 그러나 나이를 막을 수는 없는 일 오뚜기 등소평은 마지막 소원이던 올해 7월 홍콩 반환식에 끝내 참석하지 못하고 93살을 일기로 역사의 장으로 사라졌습니다.

KBS 뉴스, 정창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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