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주민, 폭우로 나흘째 고립

입력 1999.08.0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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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현정 앵커 :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에 600여 명의 주민들은 나흘째 고립된 채 구호의 손길조차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폐허가 되다시피 한 장남면을 구본국, 김원장 두 기자가 차례로 보도합니다.


⊙ 구본국 기자 :

남쪽으로는 불안한 임진강, 북쪽으로는 사미천에 완전히 고립된 경기도 연천의 장남면, 장남면으로 들어가기 유일한 방법은 조그마한 모터보트뿐입니다. 일단 급한 환자들은 119구조대 보트를 이용해 밖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민들은 아직 장남면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연천으로 나오는 버스는 지붕만 드러낸 채 물속에 잠겨 있습니다. 가족의 생사도 모르는 한 주민은 오늘에야 집으로 돌아갑니다.


⊙ 주민 :

집에 나온 지가 나흘 됐어요. 그래 가지고 길이 막혀서 못 들어갔어요.


⊙ 구본국 기자 :

물길을 건너온 장남면은 그야말로 폐허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공사장 건물은 쓰러진지 오래고 조그마한 방범초소는 자신의 자리를 잃고 내팽개쳐 있습니다. 전신주도 무너져 전기공급이 중단된 것은 오래전의 일입니다. 수해로부터 장남면을 보호하기 위해 제방을 쌓아놨지만 제방마저 이렇게 쉽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다리 역시 무너져있고 다리를 향하는 길은 마치 엿가락을 휘어 놓은 듯 굽어 있습니다. 아스팔트길의 한 중간은 떨어져 가정집 안마당에 걸쳐 있습니다.


⊙ 주민 :

이게 아스팔트가 떠가지고 이 집 마당으로 다 들어온 거예요.

- 여기는 원래 마당이었어요?

네, 마당이에요.


⊙ 구본국 기자 :

5만여 마리의 닭을 키우던 양계장은 닭 대신 뻘로 가득 찼습니다. 힘없이 진흙 속에서 닭들을 꺼내보지만 살아있는 닭은 거의 없고 오히려 치울 일이 걱정입니다.


- 대책이 없나요?

- 전혀 없죠.


갑작스런 폭우에 모든 것이 물에 휩쓸려간 장남면에는 이제 주민들만 남았습니다.

KBS 뉴스, 구본국입니다.


⊙ 김원장 기자 :

방학을 맞아 할머니 집을 찾은 소현이 남매는 나흘째 연락이 끊겼습니다. 전화가 안 돼 서울의 엄마한테는 잘 있다는 말도 못 했습니다.


⊙ 할머니 :

나흘 전에 비가 와서 나가려고 했는데 그날 저녁 비 쏟아져 부모와 떨어졌지.


⊙ 김원장 기자 :

젊은 부모들은 어린아이들의 우유가 떨어져 곳곳에서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 주민 :

어른이 굶으면 상관없지만 애들은 먹어야 할 것 아니에요.


⊙ 김원장 기자 :

이곳 농민들에게 가장 소중한 인삼밭은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무너져 내렸습니다. 지난 4년간 어렵게 기른 6년근 인삼들이 모두 쓰러져 누웠습니다. 썩기 전에 모두 캐내 왔지만 이미 값어치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 보통 평균 잡아서 한 7만원 7만 5천원 이렇게 나오는데 지금은 만원도 안 나온다고 한 칸에.


물에 잠겼던 집을 찾은 사람들은 현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집안의 가구는 모두 넘어지고 소파는 부엌까지 떠내려왔습니다.


⊙ 주민 :

우리 남편이 드럼통 하나 가져와 아들과 드럼통 잡고 헤엄쳐 나왔죠.


⊙ 김원장 기자 :

며느리가 사준 귀한 이불도 모두 진흙에 잠겼습니다.


⊙ 주민 :

(96년 수해직후) 전부 새로 산 거예요. 다 하나도 없어. 다 없어졌어.


⊙ 김원장 기자 :

이런 장남면 주민들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연천 하늘에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KBS 뉴스, 김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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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주민, 폭우로 나흘째 고립
    • 입력 1999-08-03 21:00:00
    뉴스 9

⊙ 황현정 앵커 :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에 600여 명의 주민들은 나흘째 고립된 채 구호의 손길조차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폐허가 되다시피 한 장남면을 구본국, 김원장 두 기자가 차례로 보도합니다.


⊙ 구본국 기자 :

남쪽으로는 불안한 임진강, 북쪽으로는 사미천에 완전히 고립된 경기도 연천의 장남면, 장남면으로 들어가기 유일한 방법은 조그마한 모터보트뿐입니다. 일단 급한 환자들은 119구조대 보트를 이용해 밖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민들은 아직 장남면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연천으로 나오는 버스는 지붕만 드러낸 채 물속에 잠겨 있습니다. 가족의 생사도 모르는 한 주민은 오늘에야 집으로 돌아갑니다.


⊙ 주민 :

집에 나온 지가 나흘 됐어요. 그래 가지고 길이 막혀서 못 들어갔어요.


⊙ 구본국 기자 :

물길을 건너온 장남면은 그야말로 폐허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공사장 건물은 쓰러진지 오래고 조그마한 방범초소는 자신의 자리를 잃고 내팽개쳐 있습니다. 전신주도 무너져 전기공급이 중단된 것은 오래전의 일입니다. 수해로부터 장남면을 보호하기 위해 제방을 쌓아놨지만 제방마저 이렇게 쉽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다리 역시 무너져있고 다리를 향하는 길은 마치 엿가락을 휘어 놓은 듯 굽어 있습니다. 아스팔트길의 한 중간은 떨어져 가정집 안마당에 걸쳐 있습니다.


⊙ 주민 :

이게 아스팔트가 떠가지고 이 집 마당으로 다 들어온 거예요.

- 여기는 원래 마당이었어요?

네, 마당이에요.


⊙ 구본국 기자 :

5만여 마리의 닭을 키우던 양계장은 닭 대신 뻘로 가득 찼습니다. 힘없이 진흙 속에서 닭들을 꺼내보지만 살아있는 닭은 거의 없고 오히려 치울 일이 걱정입니다.


- 대책이 없나요?

- 전혀 없죠.


갑작스런 폭우에 모든 것이 물에 휩쓸려간 장남면에는 이제 주민들만 남았습니다.

KBS 뉴스, 구본국입니다.


⊙ 김원장 기자 :

방학을 맞아 할머니 집을 찾은 소현이 남매는 나흘째 연락이 끊겼습니다. 전화가 안 돼 서울의 엄마한테는 잘 있다는 말도 못 했습니다.


⊙ 할머니 :

나흘 전에 비가 와서 나가려고 했는데 그날 저녁 비 쏟아져 부모와 떨어졌지.


⊙ 김원장 기자 :

젊은 부모들은 어린아이들의 우유가 떨어져 곳곳에서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 주민 :

어른이 굶으면 상관없지만 애들은 먹어야 할 것 아니에요.


⊙ 김원장 기자 :

이곳 농민들에게 가장 소중한 인삼밭은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무너져 내렸습니다. 지난 4년간 어렵게 기른 6년근 인삼들이 모두 쓰러져 누웠습니다. 썩기 전에 모두 캐내 왔지만 이미 값어치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 보통 평균 잡아서 한 7만원 7만 5천원 이렇게 나오는데 지금은 만원도 안 나온다고 한 칸에.


물에 잠겼던 집을 찾은 사람들은 현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집안의 가구는 모두 넘어지고 소파는 부엌까지 떠내려왔습니다.


⊙ 주민 :

우리 남편이 드럼통 하나 가져와 아들과 드럼통 잡고 헤엄쳐 나왔죠.


⊙ 김원장 기자 :

며느리가 사준 귀한 이불도 모두 진흙에 잠겼습니다.


⊙ 주민 :

(96년 수해직후) 전부 새로 산 거예요. 다 하나도 없어. 다 없어졌어.


⊙ 김원장 기자 :

이런 장남면 주민들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연천 하늘에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KBS 뉴스, 김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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