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섬 남쪽 코르샤코프항구, 사할린동포들 고난의 현장
사할린동포1세,브이코프탄광
여기가 강제징용의 현장
⊙ 김종진 앵커
사할린 한인1세들이 이틀전에 영구귀국했습니다. 60년전 앳된 얼굴로 징용에 끌려갔던 사할린교포들이 어떤 고난의 삶을 살아왔는지 그 역사의 현장을 찾아봤습니다. 안세득기자입니다.
⊙안세득 기자
바다물도 얼어붙는 사할린섬 남쪽 코르샤코프 항구. 60년전 한인1세들이 삶의 첫발을 내딛던 곳입니다. 1945년1월 이곳에서 한인 3천여명이 강제노역에 맞서 대규모파업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시위는 나흘만에 진압돼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임판개 (사할린1세)
허리끈으로 목을 걸고 그냥 이렇게... 이런 자살하는 이런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안세득 기자
이런 악몽에도 불구하고 징용한인들은 이항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귀국선이 왔을 때 가장 빨리 배를 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코르샤코프 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이 언덕에서 한인1세들은 고향쪽 바다를 바라보며 망향의 한을 달랬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지금도 망향의 언덕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코르샤코프에서 자동차로 두시간 거리 또 다른 현장 브이코프 탄광. 러시아말로 까레이스키라고 불린 한인1세들이 가장 많이 목숨을 잃은 곳입니다.
한인광부 2천명 가운데 2백여명이 사고를 당했습니다.
⊙김부조 (브이코프탄광 광부)
일은 많이 시켰지만 못먹어서 밥을 많이 안주기 때문에 못먹어서 돌아가셨습니다.
⊙안세득 기자
까레이스키의 후손 한인2-3세 250여명은 아직도 탄광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는 일은 60년전과 비슷하지만 막장은 그때보다 깊어졌습니다. 사할린에서 KBS뉴스 안세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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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할린섬 남쪽 코르샤코프항구, 사할린동포들 고난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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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00-02-04 21:00:00
사할린섬 남쪽 코르샤코프항구, 사할린동포들 고난의 현장
사할린동포1세,브이코프탄광
여기가 강제징용의 현장
⊙ 김종진 앵커
사할린 한인1세들이 이틀전에 영구귀국했습니다. 60년전 앳된 얼굴로 징용에 끌려갔던 사할린교포들이 어떤 고난의 삶을 살아왔는지 그 역사의 현장을 찾아봤습니다. 안세득기자입니다.
⊙안세득 기자
바다물도 얼어붙는 사할린섬 남쪽 코르샤코프 항구. 60년전 한인1세들이 삶의 첫발을 내딛던 곳입니다. 1945년1월 이곳에서 한인 3천여명이 강제노역에 맞서 대규모파업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시위는 나흘만에 진압돼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임판개 (사할린1세)
허리끈으로 목을 걸고 그냥 이렇게... 이런 자살하는 이런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안세득 기자
이런 악몽에도 불구하고 징용한인들은 이항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귀국선이 왔을 때 가장 빨리 배를 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코르샤코프 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이 언덕에서 한인1세들은 고향쪽 바다를 바라보며 망향의 한을 달랬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지금도 망향의 언덕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코르샤코프에서 자동차로 두시간 거리 또 다른 현장 브이코프 탄광. 러시아말로 까레이스키라고 불린 한인1세들이 가장 많이 목숨을 잃은 곳입니다.
한인광부 2천명 가운데 2백여명이 사고를 당했습니다.
⊙김부조 (브이코프탄광 광부)
일은 많이 시켰지만 못먹어서 밥을 많이 안주기 때문에 못먹어서 돌아가셨습니다.
⊙안세득 기자
까레이스키의 후손 한인2-3세 250여명은 아직도 탄광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는 일은 60년전과 비슷하지만 막장은 그때보다 깊어졌습니다. 사할린에서 KBS뉴스 안세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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