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섬 남쪽 코르샤코프항구, 사할린동포들 고난의 현장

입력 2000.02.04 (21: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사할린섬 남쪽 코르샤코프항구, 사할린동포들 고난의 현장

사할린동포1세,브이코프탄광

여기가 강제징용의 현장


⊙ 김종진 앵커

사할린 한인1세들이 이틀전에 영구귀국했습니다. 60년전 앳된 얼굴로 징용에 끌려갔던 사할린교포들이 어떤 고난의 삶을 살아왔는지 그 역사의 현장을 찾아봤습니다. 안세득기자입니다.


⊙안세득 기자

바다물도 얼어붙는 사할린섬 남쪽 코르샤코프 항구. 60년전 한인1세들이 삶의 첫발을 내딛던 곳입니다. 1945년1월 이곳에서 한인 3천여명이 강제노역에 맞서 대규모파업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시위는 나흘만에 진압돼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임판개 (사할린1세)

허리끈으로 목을 걸고 그냥 이렇게... 이런 자살하는 이런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안세득 기자

이런 악몽에도 불구하고 징용한인들은 이항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귀국선이 왔을 때 가장 빨리 배를 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코르샤코프 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이 언덕에서 한인1세들은 고향쪽 바다를 바라보며 망향의 한을 달랬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지금도 망향의 언덕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코르샤코프에서 자동차로 두시간 거리 또 다른 현장 브이코프 탄광. 러시아말로 까레이스키라고 불린 한인1세들이 가장 많이 목숨을 잃은 곳입니다.

한인광부 2천명 가운데 2백여명이 사고를 당했습니다.


⊙김부조 (브이코프탄광 광부)

일은 많이 시켰지만 못먹어서 밥을 많이 안주기 때문에 못먹어서 돌아가셨습니다.


⊙안세득 기자

까레이스키의 후손 한인2-3세 250여명은 아직도 탄광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는 일은 60년전과 비슷하지만 막장은 그때보다 깊어졌습니다. 사할린에서 KBS뉴스 안세득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사할린섬 남쪽 코르샤코프항구, 사할린동포들 고난의 현장
    • 입력 2000-02-04 21:00:00
    뉴스 9

사할린섬 남쪽 코르샤코프항구, 사할린동포들 고난의 현장

사할린동포1세,브이코프탄광

여기가 강제징용의 현장


⊙ 김종진 앵커

사할린 한인1세들이 이틀전에 영구귀국했습니다. 60년전 앳된 얼굴로 징용에 끌려갔던 사할린교포들이 어떤 고난의 삶을 살아왔는지 그 역사의 현장을 찾아봤습니다. 안세득기자입니다.


⊙안세득 기자

바다물도 얼어붙는 사할린섬 남쪽 코르샤코프 항구. 60년전 한인1세들이 삶의 첫발을 내딛던 곳입니다. 1945년1월 이곳에서 한인 3천여명이 강제노역에 맞서 대규모파업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시위는 나흘만에 진압돼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임판개 (사할린1세)

허리끈으로 목을 걸고 그냥 이렇게... 이런 자살하는 이런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안세득 기자

이런 악몽에도 불구하고 징용한인들은 이항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귀국선이 왔을 때 가장 빨리 배를 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코르샤코프 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이 언덕에서 한인1세들은 고향쪽 바다를 바라보며 망향의 한을 달랬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지금도 망향의 언덕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코르샤코프에서 자동차로 두시간 거리 또 다른 현장 브이코프 탄광. 러시아말로 까레이스키라고 불린 한인1세들이 가장 많이 목숨을 잃은 곳입니다.

한인광부 2천명 가운데 2백여명이 사고를 당했습니다.


⊙김부조 (브이코프탄광 광부)

일은 많이 시켰지만 못먹어서 밥을 많이 안주기 때문에 못먹어서 돌아가셨습니다.


⊙안세득 기자

까레이스키의 후손 한인2-3세 250여명은 아직도 탄광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는 일은 60년전과 비슷하지만 막장은 그때보다 깊어졌습니다. 사할린에서 KBS뉴스 안세득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