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민족 명산·교류 상징 ‘금강산’의 오늘
입력 2018.12.01 (08:08)
수정 2018.12.01 (10:3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남북 철도 공동조사가 시작되면서 교류 재개의 기대감이 커지는 또 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금강산인데요.
특히 올해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지 20년, 또 중단된 지 10년을 맞은 해인만큼 남북이 금강산에 갖는 의미가 남다릅니다.
우리민족의 명산이자 남북 교류의 상징인 금강산.
이번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금강산의 의미와 관광 재개 가능성을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깎아지른 듯한 바위 벼랑 사이로 새하얀 물줄기가 거침없이 쏟아져 내린다.
높이 74m, 너비 4m. 금강산을 지키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구룡폭포의 웅장한 자태다.
옥빛 구슬을 꿰어놓은 듯한 ‘련주담’ 과 봉황새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것 같다는 ‘비봉폭포’도 화려한 모습을 드러냈다.
현대그룹과 북한 조선아시아 태평양 평화위원회가 금강산 관광 20주년을 맞아 가진 남북 공동 기념행사를 통해 10년 만에 공개된 금강산의 절경이다.
이번 공동행사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리건택 부위원장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기원하며 남북관계에서 금강산이 가지는 의미를 거듭 강조했다.
[현정은/현대그룹 회장 : "얼어붙었던 한반도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이곳 금강산에도 훈풍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금강산관광의 문은 다시 열려야 합니다."]
[리건택/조선 아시아 태평양 평화위원회 부위원장 : "금강산은 우리겨레의 마음속의 천하제일의 명산으로 뿐 아니라 민족의 화합과 평화번영을 위한 대화합의 장으로 민족의 혈맥과 지맥을 하나로 이어놓은 통일의 상징으로 더욱 소중히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금강산 관광 시작 20년, 그리고 중단 10년.
금강산은 다시 한 번 남북 교류와 화해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까.
[정주영/1998년 10월/당시 현대그룹 명예회장 : "금강산을 세계적인 관광지구로 공동개발하기로 하였으며 모든 사업은 우리정부의 승인을 받는 날부터 효력을 발생하기로 합의하고 의정서를 교환하였습니다."]
1998년 10월, 북한을 방문한 현대 정주영 회장은 금강산 관광 사업에 대한 남북 합의서를 들고 돌아왔다.
1989년, 기업인으로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해 ‘금강산관광 개발 의정서'를 체결 한지 9년, 소떼를 몰고 방북한 지 넉 달 만의 일이었다.
당시 북한에서도 정주영 회장의 방문을 주요하게 다루며 금강산 관광 사업을 민족을 위한 길이라 언급했다.
[북한기록영화 ‘절세의 애국자 김정일 장군’ : "고령의 몸으로 평양을 찾아온 그의 건강도 염려해주시고 민족을 위해 하나라도 기여하려는 그의 마음을 더 귀중히 여겨주시며 경제 협력 사업에서 그가 제기하는 모든 문제들을 다 풀어주셨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금강산 관광 사업에 합의한 것은 당시 북한 경제 상황 때문이었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 국가들이 잇따라 붕괴하고, 90년대 중반‘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극심한 경제난을 겪으며 위기를 극복할 돌파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그 당시 북한은 사실 자본주의 가장 자본주의화된 한국 기업과의 협력이라든지 또는 경제 협력을 하는 것을 상당히 주저했어요. 그러니까 한국 기업하고 경제 협력을 하겠다고 손을 내밀 때는 그만큼 북한 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그런 어떤 상황이라고 할 수가 있는 거고 북한 입장에서 외화를 또 벌어들이는 게 굉장히 중요한 과제였어요 그 당시에. 그래서 이 외화를 가지고 경제 발전에 종잣돈을 활용하겠다는 그런 뜻을 갖고 있었던 거죠."]
마침내 1998년 11월, 동해항에서 금강호가 출항하면서 금강산 관광의 막이 올랐다.
분단이후 처음으로 마주한 금강산의 수려한 풍치.
대한민국 관광객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금강산 안내를 담당하던 북한 안내원들에 대한 호기심도 커졌던 시기다.
[김연실/당시 금강산 안내원 : "김연실이라고 합니다. 아니 그렇게 선생님들 사진을 계속 찍으시는데 기념으로 될 만한 사진 저한테 보내주셔야지 제가 사진을 찍겠습니다. 선생님들만 가지면 안됩니다."]
["철따라 고운 옷 갈아입는 산 (이름도 아름다워 금강이라네. 금강 이라네!) 박수! 우리 가수보다 나은데? (아유, 또 비행기 또)."]
금강산 관광 사업의 규모는 해를 거듭할수록 커져갔다.
2003년부터는 육로관광이 허용 됐고 2004년엔 당일관광은 물론, 1박2일, 2박3일 관광 상품까지 등장했다.
사업 시작 7년 만인 2005년 6월, 누적 관광객은 100만 명을 돌파 했다.
당시 KBS는 이를 기념해 온정각 앞마당 야외 특설 무대에서 금강산 열린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2008년 7월/KBS 뉴스9 : "금강산 관광을 나섰던 50대여성이 북한군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순항 중이던 금강산 관광 사업에 제동이 걸린 건 2008년 7월.
관광객 통제구역을 지나 북측 군 경계지역에 진입한 남측 관광객을 북한군 초병이 사살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재발방지를 위한 당국간 합의를 요구했지만 북측은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고, 남북관계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그 당시 우리 정부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서 북한에 유감표명을 요구했던 거고 또 재발방지를 위해서 특단의 대책을 세워줄 것을 요구를 했던 거예요. 북한은 우리 당국 차원에서 이런 부분을 약속하면 괜찮은데 현대아산하고 그런 약속을 했어요. 그러면서 사실 금강산 관광 재개의 가능성이 점점점점 낮아져왔습니다."]
이후 2010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으로 남북관계는 완전히 얼어붙었고 2011월 4월엔 북한이 현대아산의 금강산 독점사업권을 취소했다.
금강산에 상주하던 남측 인원마저 전원 철수 하면서 남북 금강산 관광은 기약 없는 사업이 되고 말았다.
남과 북 모두 경제적 손실 역시 막대했다.
[김영희/한국산업은행 남북경협연구단 선임연구위원 : "2017년 기점으로 북한에 들어가는 외화수입이 어느 정도냐 하니까 그 때한 4000만 달러라고 얘기가 있었어요. 생각하면 지난 10년 동안 중단 된 것이 4000만 달러니까, 어떻게 되요? 4억 달러? 그것만. 여기서 들어가는 돈만 4억 달러. 거기다가 호텔이라던가 여타 서비스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것을 생각하면 북한도 적자 손실을 봤다고 볼 수있고, 현대 아산 같은 경우 에는 매출 손실액이 1조 한 5천 억원. 그러면 달러로 환산하면 한 13억 달러정도 손실을 봤다고 볼 수 있죠."]
[문재인 대통령/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 : "남과북은 올해 안에 동해선 철도와 도로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가질 것입니다. 환경이 조성 되는대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의 정상화도 이루어 질 것입니다."]
2018년, 남북관계에 불어온 훈풍은 얼어붙었던 금강산 관광 사업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지난 9월 발표된 평양공동선언문에 남북 두 정상이 ‘금강산 관광사업을 정상화하겠다는 문구’를 포함한 것이다.
게다가 김정은 위원장이 세 번의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경제 개발 의지를 거듭 강조하면서 북한의 관광사업계획은 더욱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4년 6월, 북한 당국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개발을 공식화했다.
이듬해 5월엔 금강산에서 투자설명회도 개최했다.
중국ㆍ홍콩 등 해외기업 관계자가 대거 참석한 자리.
[류수지/중국인 투자자 : "이번에 조선에 와서 느낀 소감은 모든 것이 새롭다는 것입니다. 최근 몇 년간 조선에서는 정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투자설명회를 통해서 기초 시설에 있어서나 여행 관련 시설에 있어서나 모두 국제적 수순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투자자들은 금강산 곳곳을 관광하며 투자의지를 드러냈다.
실제 북한 당국은 원산-금강산 일대에 각종 위락시설을 집중 건설하고 있고 원산 갈마비행장을 국제공항으로 리모델링 하는 등 관광객 유치에 대비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금강산 일대를 특구로 지정해 개발하는 것을 두고 단순한 관광수익 획득 차원을 넘어 더 큰 경제효과를 얻기 위한 치밀한 전략이라고 분석한다.
[김영희/한국산업은행 남북경협연구단 선임연구위원 : "북한이 이 원산-금강산 관광을 통해 벌어들이는 경제적 효과라는 것을 실제 관광수입 뿐 아니라 여타 산업에 파급효과 이것까지 하면 대단히 클거다 이렇게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이 원산-금강산 관광지대 에 올인하고 있지 않느냐. 그렇기 때문에 이제 그 대북제재가 완화가 되면 이 세밀한 구체적이고 아주 디테일한 계획을 기반으로 해가지고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개발이 좀 더 추진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보여져요."]
원산 출신 탈북민 역시 금강산 일대가 관광지로 개발 된다면 인근 주민들의 경제 상황도 향상 될 것이라 말한다.
[박은미/2012년 탈북 : "주민들한테는 정말 좋은 것이죠. 왜냐하면 교류가 있다 보면 거기에 마켓이라던가 그리고 자기가 장사할 수 있는 곳들이 많아지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 시장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한테는 더 큰 이익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수익적인 면에서 더 이익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관광개발에 따른 성공여부도 결국엔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달렸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대북제재 해제 없이는 외부 투자를 기반으로 한 개발이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금강산 관광 20주년 남북 공동기념행사에 각별한 의미가 부여되는 건 관광 재개가 다시 한 번 남북 교류의 커다란 물꼬를 틔워줄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 측의 상응조치라는 것이 그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어느 시점에서는 접점을 모색할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북한과 미국 간의 이견차가 커보이는데 상황 변화에 따라서 북미 간에 타협점이 모색이 되고 그러면서 다른 프로젝트보다는 우선순위로 금강산 관광이 재개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저희들은 평가하고 있는 거죠."]
[11월 3일/북한 금강산 안내원 : "예로부터 삼천리 조국강산에는 아름다운 명승지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금강산은 으뜸가는 조선의 자랑으로 되며 또 세계적인 명산입니다."]
한민족의 명산이자 남북 교류의 상징 금강산.
지난 10년간 커진 그리움의 크기만큼 남과 북이 금강산에서 만날 날이 하루 빨리 앞당겨지기를 기대해 본다.
남북 철도 공동조사가 시작되면서 교류 재개의 기대감이 커지는 또 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금강산인데요.
특히 올해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지 20년, 또 중단된 지 10년을 맞은 해인만큼 남북이 금강산에 갖는 의미가 남다릅니다.
우리민족의 명산이자 남북 교류의 상징인 금강산.
이번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금강산의 의미와 관광 재개 가능성을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깎아지른 듯한 바위 벼랑 사이로 새하얀 물줄기가 거침없이 쏟아져 내린다.
높이 74m, 너비 4m. 금강산을 지키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구룡폭포의 웅장한 자태다.
옥빛 구슬을 꿰어놓은 듯한 ‘련주담’ 과 봉황새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것 같다는 ‘비봉폭포’도 화려한 모습을 드러냈다.
현대그룹과 북한 조선아시아 태평양 평화위원회가 금강산 관광 20주년을 맞아 가진 남북 공동 기념행사를 통해 10년 만에 공개된 금강산의 절경이다.
이번 공동행사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리건택 부위원장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기원하며 남북관계에서 금강산이 가지는 의미를 거듭 강조했다.
[현정은/현대그룹 회장 : "얼어붙었던 한반도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이곳 금강산에도 훈풍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금강산관광의 문은 다시 열려야 합니다."]
[리건택/조선 아시아 태평양 평화위원회 부위원장 : "금강산은 우리겨레의 마음속의 천하제일의 명산으로 뿐 아니라 민족의 화합과 평화번영을 위한 대화합의 장으로 민족의 혈맥과 지맥을 하나로 이어놓은 통일의 상징으로 더욱 소중히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금강산 관광 시작 20년, 그리고 중단 10년.
금강산은 다시 한 번 남북 교류와 화해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까.
[정주영/1998년 10월/당시 현대그룹 명예회장 : "금강산을 세계적인 관광지구로 공동개발하기로 하였으며 모든 사업은 우리정부의 승인을 받는 날부터 효력을 발생하기로 합의하고 의정서를 교환하였습니다."]
1998년 10월, 북한을 방문한 현대 정주영 회장은 금강산 관광 사업에 대한 남북 합의서를 들고 돌아왔다.
1989년, 기업인으로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해 ‘금강산관광 개발 의정서'를 체결 한지 9년, 소떼를 몰고 방북한 지 넉 달 만의 일이었다.
당시 북한에서도 정주영 회장의 방문을 주요하게 다루며 금강산 관광 사업을 민족을 위한 길이라 언급했다.
[북한기록영화 ‘절세의 애국자 김정일 장군’ : "고령의 몸으로 평양을 찾아온 그의 건강도 염려해주시고 민족을 위해 하나라도 기여하려는 그의 마음을 더 귀중히 여겨주시며 경제 협력 사업에서 그가 제기하는 모든 문제들을 다 풀어주셨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금강산 관광 사업에 합의한 것은 당시 북한 경제 상황 때문이었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 국가들이 잇따라 붕괴하고, 90년대 중반‘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극심한 경제난을 겪으며 위기를 극복할 돌파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그 당시 북한은 사실 자본주의 가장 자본주의화된 한국 기업과의 협력이라든지 또는 경제 협력을 하는 것을 상당히 주저했어요. 그러니까 한국 기업하고 경제 협력을 하겠다고 손을 내밀 때는 그만큼 북한 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그런 어떤 상황이라고 할 수가 있는 거고 북한 입장에서 외화를 또 벌어들이는 게 굉장히 중요한 과제였어요 그 당시에. 그래서 이 외화를 가지고 경제 발전에 종잣돈을 활용하겠다는 그런 뜻을 갖고 있었던 거죠."]
마침내 1998년 11월, 동해항에서 금강호가 출항하면서 금강산 관광의 막이 올랐다.
분단이후 처음으로 마주한 금강산의 수려한 풍치.
대한민국 관광객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금강산 안내를 담당하던 북한 안내원들에 대한 호기심도 커졌던 시기다.
[김연실/당시 금강산 안내원 : "김연실이라고 합니다. 아니 그렇게 선생님들 사진을 계속 찍으시는데 기념으로 될 만한 사진 저한테 보내주셔야지 제가 사진을 찍겠습니다. 선생님들만 가지면 안됩니다."]
["철따라 고운 옷 갈아입는 산 (이름도 아름다워 금강이라네. 금강 이라네!) 박수! 우리 가수보다 나은데? (아유, 또 비행기 또)."]
금강산 관광 사업의 규모는 해를 거듭할수록 커져갔다.
2003년부터는 육로관광이 허용 됐고 2004년엔 당일관광은 물론, 1박2일, 2박3일 관광 상품까지 등장했다.
사업 시작 7년 만인 2005년 6월, 누적 관광객은 100만 명을 돌파 했다.
당시 KBS는 이를 기념해 온정각 앞마당 야외 특설 무대에서 금강산 열린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2008년 7월/KBS 뉴스9 : "금강산 관광을 나섰던 50대여성이 북한군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순항 중이던 금강산 관광 사업에 제동이 걸린 건 2008년 7월.
관광객 통제구역을 지나 북측 군 경계지역에 진입한 남측 관광객을 북한군 초병이 사살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재발방지를 위한 당국간 합의를 요구했지만 북측은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고, 남북관계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그 당시 우리 정부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서 북한에 유감표명을 요구했던 거고 또 재발방지를 위해서 특단의 대책을 세워줄 것을 요구를 했던 거예요. 북한은 우리 당국 차원에서 이런 부분을 약속하면 괜찮은데 현대아산하고 그런 약속을 했어요. 그러면서 사실 금강산 관광 재개의 가능성이 점점점점 낮아져왔습니다."]
이후 2010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으로 남북관계는 완전히 얼어붙었고 2011월 4월엔 북한이 현대아산의 금강산 독점사업권을 취소했다.
금강산에 상주하던 남측 인원마저 전원 철수 하면서 남북 금강산 관광은 기약 없는 사업이 되고 말았다.
남과 북 모두 경제적 손실 역시 막대했다.
[김영희/한국산업은행 남북경협연구단 선임연구위원 : "2017년 기점으로 북한에 들어가는 외화수입이 어느 정도냐 하니까 그 때한 4000만 달러라고 얘기가 있었어요. 생각하면 지난 10년 동안 중단 된 것이 4000만 달러니까, 어떻게 되요? 4억 달러? 그것만. 여기서 들어가는 돈만 4억 달러. 거기다가 호텔이라던가 여타 서비스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것을 생각하면 북한도 적자 손실을 봤다고 볼 수있고, 현대 아산 같은 경우 에는 매출 손실액이 1조 한 5천 억원. 그러면 달러로 환산하면 한 13억 달러정도 손실을 봤다고 볼 수 있죠."]
[문재인 대통령/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 : "남과북은 올해 안에 동해선 철도와 도로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가질 것입니다. 환경이 조성 되는대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의 정상화도 이루어 질 것입니다."]
2018년, 남북관계에 불어온 훈풍은 얼어붙었던 금강산 관광 사업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지난 9월 발표된 평양공동선언문에 남북 두 정상이 ‘금강산 관광사업을 정상화하겠다는 문구’를 포함한 것이다.
게다가 김정은 위원장이 세 번의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경제 개발 의지를 거듭 강조하면서 북한의 관광사업계획은 더욱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4년 6월, 북한 당국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개발을 공식화했다.
이듬해 5월엔 금강산에서 투자설명회도 개최했다.
중국ㆍ홍콩 등 해외기업 관계자가 대거 참석한 자리.
[류수지/중국인 투자자 : "이번에 조선에 와서 느낀 소감은 모든 것이 새롭다는 것입니다. 최근 몇 년간 조선에서는 정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투자설명회를 통해서 기초 시설에 있어서나 여행 관련 시설에 있어서나 모두 국제적 수순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투자자들은 금강산 곳곳을 관광하며 투자의지를 드러냈다.
실제 북한 당국은 원산-금강산 일대에 각종 위락시설을 집중 건설하고 있고 원산 갈마비행장을 국제공항으로 리모델링 하는 등 관광객 유치에 대비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금강산 일대를 특구로 지정해 개발하는 것을 두고 단순한 관광수익 획득 차원을 넘어 더 큰 경제효과를 얻기 위한 치밀한 전략이라고 분석한다.
[김영희/한국산업은행 남북경협연구단 선임연구위원 : "북한이 이 원산-금강산 관광을 통해 벌어들이는 경제적 효과라는 것을 실제 관광수입 뿐 아니라 여타 산업에 파급효과 이것까지 하면 대단히 클거다 이렇게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이 원산-금강산 관광지대 에 올인하고 있지 않느냐. 그렇기 때문에 이제 그 대북제재가 완화가 되면 이 세밀한 구체적이고 아주 디테일한 계획을 기반으로 해가지고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개발이 좀 더 추진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보여져요."]
원산 출신 탈북민 역시 금강산 일대가 관광지로 개발 된다면 인근 주민들의 경제 상황도 향상 될 것이라 말한다.
[박은미/2012년 탈북 : "주민들한테는 정말 좋은 것이죠. 왜냐하면 교류가 있다 보면 거기에 마켓이라던가 그리고 자기가 장사할 수 있는 곳들이 많아지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 시장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한테는 더 큰 이익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수익적인 면에서 더 이익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관광개발에 따른 성공여부도 결국엔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달렸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대북제재 해제 없이는 외부 투자를 기반으로 한 개발이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금강산 관광 20주년 남북 공동기념행사에 각별한 의미가 부여되는 건 관광 재개가 다시 한 번 남북 교류의 커다란 물꼬를 틔워줄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 측의 상응조치라는 것이 그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어느 시점에서는 접점을 모색할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북한과 미국 간의 이견차가 커보이는데 상황 변화에 따라서 북미 간에 타협점이 모색이 되고 그러면서 다른 프로젝트보다는 우선순위로 금강산 관광이 재개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저희들은 평가하고 있는 거죠."]
[11월 3일/북한 금강산 안내원 : "예로부터 삼천리 조국강산에는 아름다운 명승지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금강산은 으뜸가는 조선의 자랑으로 되며 또 세계적인 명산입니다."]
한민족의 명산이자 남북 교류의 상징 금강산.
지난 10년간 커진 그리움의 크기만큼 남과 북이 금강산에서 만날 날이 하루 빨리 앞당겨지기를 기대해 본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클로즈업 북한] 민족 명산·교류 상징 ‘금강산’의 오늘
-
- 입력 2018-12-01 08:44:27
- 수정2018-12-01 10:33:36

[앵커]
남북 철도 공동조사가 시작되면서 교류 재개의 기대감이 커지는 또 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금강산인데요.
특히 올해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지 20년, 또 중단된 지 10년을 맞은 해인만큼 남북이 금강산에 갖는 의미가 남다릅니다.
우리민족의 명산이자 남북 교류의 상징인 금강산.
이번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금강산의 의미와 관광 재개 가능성을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깎아지른 듯한 바위 벼랑 사이로 새하얀 물줄기가 거침없이 쏟아져 내린다.
높이 74m, 너비 4m. 금강산을 지키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구룡폭포의 웅장한 자태다.
옥빛 구슬을 꿰어놓은 듯한 ‘련주담’ 과 봉황새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것 같다는 ‘비봉폭포’도 화려한 모습을 드러냈다.
현대그룹과 북한 조선아시아 태평양 평화위원회가 금강산 관광 20주년을 맞아 가진 남북 공동 기념행사를 통해 10년 만에 공개된 금강산의 절경이다.
이번 공동행사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리건택 부위원장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기원하며 남북관계에서 금강산이 가지는 의미를 거듭 강조했다.
[현정은/현대그룹 회장 : "얼어붙었던 한반도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이곳 금강산에도 훈풍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금강산관광의 문은 다시 열려야 합니다."]
[리건택/조선 아시아 태평양 평화위원회 부위원장 : "금강산은 우리겨레의 마음속의 천하제일의 명산으로 뿐 아니라 민족의 화합과 평화번영을 위한 대화합의 장으로 민족의 혈맥과 지맥을 하나로 이어놓은 통일의 상징으로 더욱 소중히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금강산 관광 시작 20년, 그리고 중단 10년.
금강산은 다시 한 번 남북 교류와 화해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까.
[정주영/1998년 10월/당시 현대그룹 명예회장 : "금강산을 세계적인 관광지구로 공동개발하기로 하였으며 모든 사업은 우리정부의 승인을 받는 날부터 효력을 발생하기로 합의하고 의정서를 교환하였습니다."]
1998년 10월, 북한을 방문한 현대 정주영 회장은 금강산 관광 사업에 대한 남북 합의서를 들고 돌아왔다.
1989년, 기업인으로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해 ‘금강산관광 개발 의정서'를 체결 한지 9년, 소떼를 몰고 방북한 지 넉 달 만의 일이었다.
당시 북한에서도 정주영 회장의 방문을 주요하게 다루며 금강산 관광 사업을 민족을 위한 길이라 언급했다.
[북한기록영화 ‘절세의 애국자 김정일 장군’ : "고령의 몸으로 평양을 찾아온 그의 건강도 염려해주시고 민족을 위해 하나라도 기여하려는 그의 마음을 더 귀중히 여겨주시며 경제 협력 사업에서 그가 제기하는 모든 문제들을 다 풀어주셨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금강산 관광 사업에 합의한 것은 당시 북한 경제 상황 때문이었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 국가들이 잇따라 붕괴하고, 90년대 중반‘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극심한 경제난을 겪으며 위기를 극복할 돌파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그 당시 북한은 사실 자본주의 가장 자본주의화된 한국 기업과의 협력이라든지 또는 경제 협력을 하는 것을 상당히 주저했어요. 그러니까 한국 기업하고 경제 협력을 하겠다고 손을 내밀 때는 그만큼 북한 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그런 어떤 상황이라고 할 수가 있는 거고 북한 입장에서 외화를 또 벌어들이는 게 굉장히 중요한 과제였어요 그 당시에. 그래서 이 외화를 가지고 경제 발전에 종잣돈을 활용하겠다는 그런 뜻을 갖고 있었던 거죠."]
마침내 1998년 11월, 동해항에서 금강호가 출항하면서 금강산 관광의 막이 올랐다.
분단이후 처음으로 마주한 금강산의 수려한 풍치.
대한민국 관광객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금강산 안내를 담당하던 북한 안내원들에 대한 호기심도 커졌던 시기다.
[김연실/당시 금강산 안내원 : "김연실이라고 합니다. 아니 그렇게 선생님들 사진을 계속 찍으시는데 기념으로 될 만한 사진 저한테 보내주셔야지 제가 사진을 찍겠습니다. 선생님들만 가지면 안됩니다."]
["철따라 고운 옷 갈아입는 산 (이름도 아름다워 금강이라네. 금강 이라네!) 박수! 우리 가수보다 나은데? (아유, 또 비행기 또)."]
금강산 관광 사업의 규모는 해를 거듭할수록 커져갔다.
2003년부터는 육로관광이 허용 됐고 2004년엔 당일관광은 물론, 1박2일, 2박3일 관광 상품까지 등장했다.
사업 시작 7년 만인 2005년 6월, 누적 관광객은 100만 명을 돌파 했다.
당시 KBS는 이를 기념해 온정각 앞마당 야외 특설 무대에서 금강산 열린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2008년 7월/KBS 뉴스9 : "금강산 관광을 나섰던 50대여성이 북한군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순항 중이던 금강산 관광 사업에 제동이 걸린 건 2008년 7월.
관광객 통제구역을 지나 북측 군 경계지역에 진입한 남측 관광객을 북한군 초병이 사살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재발방지를 위한 당국간 합의를 요구했지만 북측은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고, 남북관계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그 당시 우리 정부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서 북한에 유감표명을 요구했던 거고 또 재발방지를 위해서 특단의 대책을 세워줄 것을 요구를 했던 거예요. 북한은 우리 당국 차원에서 이런 부분을 약속하면 괜찮은데 현대아산하고 그런 약속을 했어요. 그러면서 사실 금강산 관광 재개의 가능성이 점점점점 낮아져왔습니다."]
이후 2010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으로 남북관계는 완전히 얼어붙었고 2011월 4월엔 북한이 현대아산의 금강산 독점사업권을 취소했다.
금강산에 상주하던 남측 인원마저 전원 철수 하면서 남북 금강산 관광은 기약 없는 사업이 되고 말았다.
남과 북 모두 경제적 손실 역시 막대했다.
[김영희/한국산업은행 남북경협연구단 선임연구위원 : "2017년 기점으로 북한에 들어가는 외화수입이 어느 정도냐 하니까 그 때한 4000만 달러라고 얘기가 있었어요. 생각하면 지난 10년 동안 중단 된 것이 4000만 달러니까, 어떻게 되요? 4억 달러? 그것만. 여기서 들어가는 돈만 4억 달러. 거기다가 호텔이라던가 여타 서비스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것을 생각하면 북한도 적자 손실을 봤다고 볼 수있고, 현대 아산 같은 경우 에는 매출 손실액이 1조 한 5천 억원. 그러면 달러로 환산하면 한 13억 달러정도 손실을 봤다고 볼 수 있죠."]
[문재인 대통령/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 : "남과북은 올해 안에 동해선 철도와 도로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가질 것입니다. 환경이 조성 되는대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의 정상화도 이루어 질 것입니다."]
2018년, 남북관계에 불어온 훈풍은 얼어붙었던 금강산 관광 사업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지난 9월 발표된 평양공동선언문에 남북 두 정상이 ‘금강산 관광사업을 정상화하겠다는 문구’를 포함한 것이다.
게다가 김정은 위원장이 세 번의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경제 개발 의지를 거듭 강조하면서 북한의 관광사업계획은 더욱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4년 6월, 북한 당국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개발을 공식화했다.
이듬해 5월엔 금강산에서 투자설명회도 개최했다.
중국ㆍ홍콩 등 해외기업 관계자가 대거 참석한 자리.
[류수지/중국인 투자자 : "이번에 조선에 와서 느낀 소감은 모든 것이 새롭다는 것입니다. 최근 몇 년간 조선에서는 정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투자설명회를 통해서 기초 시설에 있어서나 여행 관련 시설에 있어서나 모두 국제적 수순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투자자들은 금강산 곳곳을 관광하며 투자의지를 드러냈다.
실제 북한 당국은 원산-금강산 일대에 각종 위락시설을 집중 건설하고 있고 원산 갈마비행장을 국제공항으로 리모델링 하는 등 관광객 유치에 대비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금강산 일대를 특구로 지정해 개발하는 것을 두고 단순한 관광수익 획득 차원을 넘어 더 큰 경제효과를 얻기 위한 치밀한 전략이라고 분석한다.
[김영희/한국산업은행 남북경협연구단 선임연구위원 : "북한이 이 원산-금강산 관광을 통해 벌어들이는 경제적 효과라는 것을 실제 관광수입 뿐 아니라 여타 산업에 파급효과 이것까지 하면 대단히 클거다 이렇게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이 원산-금강산 관광지대 에 올인하고 있지 않느냐. 그렇기 때문에 이제 그 대북제재가 완화가 되면 이 세밀한 구체적이고 아주 디테일한 계획을 기반으로 해가지고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개발이 좀 더 추진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보여져요."]
원산 출신 탈북민 역시 금강산 일대가 관광지로 개발 된다면 인근 주민들의 경제 상황도 향상 될 것이라 말한다.
[박은미/2012년 탈북 : "주민들한테는 정말 좋은 것이죠. 왜냐하면 교류가 있다 보면 거기에 마켓이라던가 그리고 자기가 장사할 수 있는 곳들이 많아지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 시장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한테는 더 큰 이익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수익적인 면에서 더 이익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관광개발에 따른 성공여부도 결국엔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달렸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대북제재 해제 없이는 외부 투자를 기반으로 한 개발이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금강산 관광 20주년 남북 공동기념행사에 각별한 의미가 부여되는 건 관광 재개가 다시 한 번 남북 교류의 커다란 물꼬를 틔워줄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 측의 상응조치라는 것이 그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어느 시점에서는 접점을 모색할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북한과 미국 간의 이견차가 커보이는데 상황 변화에 따라서 북미 간에 타협점이 모색이 되고 그러면서 다른 프로젝트보다는 우선순위로 금강산 관광이 재개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저희들은 평가하고 있는 거죠."]
[11월 3일/북한 금강산 안내원 : "예로부터 삼천리 조국강산에는 아름다운 명승지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금강산은 으뜸가는 조선의 자랑으로 되며 또 세계적인 명산입니다."]
한민족의 명산이자 남북 교류의 상징 금강산.
지난 10년간 커진 그리움의 크기만큼 남과 북이 금강산에서 만날 날이 하루 빨리 앞당겨지기를 기대해 본다.
남북 철도 공동조사가 시작되면서 교류 재개의 기대감이 커지는 또 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금강산인데요.
특히 올해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지 20년, 또 중단된 지 10년을 맞은 해인만큼 남북이 금강산에 갖는 의미가 남다릅니다.
우리민족의 명산이자 남북 교류의 상징인 금강산.
이번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금강산의 의미와 관광 재개 가능성을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깎아지른 듯한 바위 벼랑 사이로 새하얀 물줄기가 거침없이 쏟아져 내린다.
높이 74m, 너비 4m. 금강산을 지키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구룡폭포의 웅장한 자태다.
옥빛 구슬을 꿰어놓은 듯한 ‘련주담’ 과 봉황새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것 같다는 ‘비봉폭포’도 화려한 모습을 드러냈다.
현대그룹과 북한 조선아시아 태평양 평화위원회가 금강산 관광 20주년을 맞아 가진 남북 공동 기념행사를 통해 10년 만에 공개된 금강산의 절경이다.
이번 공동행사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리건택 부위원장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기원하며 남북관계에서 금강산이 가지는 의미를 거듭 강조했다.
[현정은/현대그룹 회장 : "얼어붙었던 한반도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이곳 금강산에도 훈풍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금강산관광의 문은 다시 열려야 합니다."]
[리건택/조선 아시아 태평양 평화위원회 부위원장 : "금강산은 우리겨레의 마음속의 천하제일의 명산으로 뿐 아니라 민족의 화합과 평화번영을 위한 대화합의 장으로 민족의 혈맥과 지맥을 하나로 이어놓은 통일의 상징으로 더욱 소중히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금강산 관광 시작 20년, 그리고 중단 10년.
금강산은 다시 한 번 남북 교류와 화해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까.
[정주영/1998년 10월/당시 현대그룹 명예회장 : "금강산을 세계적인 관광지구로 공동개발하기로 하였으며 모든 사업은 우리정부의 승인을 받는 날부터 효력을 발생하기로 합의하고 의정서를 교환하였습니다."]
1998년 10월, 북한을 방문한 현대 정주영 회장은 금강산 관광 사업에 대한 남북 합의서를 들고 돌아왔다.
1989년, 기업인으로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해 ‘금강산관광 개발 의정서'를 체결 한지 9년, 소떼를 몰고 방북한 지 넉 달 만의 일이었다.
당시 북한에서도 정주영 회장의 방문을 주요하게 다루며 금강산 관광 사업을 민족을 위한 길이라 언급했다.
[북한기록영화 ‘절세의 애국자 김정일 장군’ : "고령의 몸으로 평양을 찾아온 그의 건강도 염려해주시고 민족을 위해 하나라도 기여하려는 그의 마음을 더 귀중히 여겨주시며 경제 협력 사업에서 그가 제기하는 모든 문제들을 다 풀어주셨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금강산 관광 사업에 합의한 것은 당시 북한 경제 상황 때문이었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 국가들이 잇따라 붕괴하고, 90년대 중반‘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극심한 경제난을 겪으며 위기를 극복할 돌파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그 당시 북한은 사실 자본주의 가장 자본주의화된 한국 기업과의 협력이라든지 또는 경제 협력을 하는 것을 상당히 주저했어요. 그러니까 한국 기업하고 경제 협력을 하겠다고 손을 내밀 때는 그만큼 북한 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그런 어떤 상황이라고 할 수가 있는 거고 북한 입장에서 외화를 또 벌어들이는 게 굉장히 중요한 과제였어요 그 당시에. 그래서 이 외화를 가지고 경제 발전에 종잣돈을 활용하겠다는 그런 뜻을 갖고 있었던 거죠."]
마침내 1998년 11월, 동해항에서 금강호가 출항하면서 금강산 관광의 막이 올랐다.
분단이후 처음으로 마주한 금강산의 수려한 풍치.
대한민국 관광객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금강산 안내를 담당하던 북한 안내원들에 대한 호기심도 커졌던 시기다.
[김연실/당시 금강산 안내원 : "김연실이라고 합니다. 아니 그렇게 선생님들 사진을 계속 찍으시는데 기념으로 될 만한 사진 저한테 보내주셔야지 제가 사진을 찍겠습니다. 선생님들만 가지면 안됩니다."]
["철따라 고운 옷 갈아입는 산 (이름도 아름다워 금강이라네. 금강 이라네!) 박수! 우리 가수보다 나은데? (아유, 또 비행기 또)."]
금강산 관광 사업의 규모는 해를 거듭할수록 커져갔다.
2003년부터는 육로관광이 허용 됐고 2004년엔 당일관광은 물론, 1박2일, 2박3일 관광 상품까지 등장했다.
사업 시작 7년 만인 2005년 6월, 누적 관광객은 100만 명을 돌파 했다.
당시 KBS는 이를 기념해 온정각 앞마당 야외 특설 무대에서 금강산 열린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2008년 7월/KBS 뉴스9 : "금강산 관광을 나섰던 50대여성이 북한군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순항 중이던 금강산 관광 사업에 제동이 걸린 건 2008년 7월.
관광객 통제구역을 지나 북측 군 경계지역에 진입한 남측 관광객을 북한군 초병이 사살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재발방지를 위한 당국간 합의를 요구했지만 북측은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고, 남북관계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그 당시 우리 정부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서 북한에 유감표명을 요구했던 거고 또 재발방지를 위해서 특단의 대책을 세워줄 것을 요구를 했던 거예요. 북한은 우리 당국 차원에서 이런 부분을 약속하면 괜찮은데 현대아산하고 그런 약속을 했어요. 그러면서 사실 금강산 관광 재개의 가능성이 점점점점 낮아져왔습니다."]
이후 2010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으로 남북관계는 완전히 얼어붙었고 2011월 4월엔 북한이 현대아산의 금강산 독점사업권을 취소했다.
금강산에 상주하던 남측 인원마저 전원 철수 하면서 남북 금강산 관광은 기약 없는 사업이 되고 말았다.
남과 북 모두 경제적 손실 역시 막대했다.
[김영희/한국산업은행 남북경협연구단 선임연구위원 : "2017년 기점으로 북한에 들어가는 외화수입이 어느 정도냐 하니까 그 때한 4000만 달러라고 얘기가 있었어요. 생각하면 지난 10년 동안 중단 된 것이 4000만 달러니까, 어떻게 되요? 4억 달러? 그것만. 여기서 들어가는 돈만 4억 달러. 거기다가 호텔이라던가 여타 서비스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것을 생각하면 북한도 적자 손실을 봤다고 볼 수있고, 현대 아산 같은 경우 에는 매출 손실액이 1조 한 5천 억원. 그러면 달러로 환산하면 한 13억 달러정도 손실을 봤다고 볼 수 있죠."]
[문재인 대통령/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 : "남과북은 올해 안에 동해선 철도와 도로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가질 것입니다. 환경이 조성 되는대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의 정상화도 이루어 질 것입니다."]
2018년, 남북관계에 불어온 훈풍은 얼어붙었던 금강산 관광 사업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지난 9월 발표된 평양공동선언문에 남북 두 정상이 ‘금강산 관광사업을 정상화하겠다는 문구’를 포함한 것이다.
게다가 김정은 위원장이 세 번의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경제 개발 의지를 거듭 강조하면서 북한의 관광사업계획은 더욱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4년 6월, 북한 당국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개발을 공식화했다.
이듬해 5월엔 금강산에서 투자설명회도 개최했다.
중국ㆍ홍콩 등 해외기업 관계자가 대거 참석한 자리.
[류수지/중국인 투자자 : "이번에 조선에 와서 느낀 소감은 모든 것이 새롭다는 것입니다. 최근 몇 년간 조선에서는 정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투자설명회를 통해서 기초 시설에 있어서나 여행 관련 시설에 있어서나 모두 국제적 수순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투자자들은 금강산 곳곳을 관광하며 투자의지를 드러냈다.
실제 북한 당국은 원산-금강산 일대에 각종 위락시설을 집중 건설하고 있고 원산 갈마비행장을 국제공항으로 리모델링 하는 등 관광객 유치에 대비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금강산 일대를 특구로 지정해 개발하는 것을 두고 단순한 관광수익 획득 차원을 넘어 더 큰 경제효과를 얻기 위한 치밀한 전략이라고 분석한다.
[김영희/한국산업은행 남북경협연구단 선임연구위원 : "북한이 이 원산-금강산 관광을 통해 벌어들이는 경제적 효과라는 것을 실제 관광수입 뿐 아니라 여타 산업에 파급효과 이것까지 하면 대단히 클거다 이렇게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이 원산-금강산 관광지대 에 올인하고 있지 않느냐. 그렇기 때문에 이제 그 대북제재가 완화가 되면 이 세밀한 구체적이고 아주 디테일한 계획을 기반으로 해가지고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개발이 좀 더 추진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보여져요."]
원산 출신 탈북민 역시 금강산 일대가 관광지로 개발 된다면 인근 주민들의 경제 상황도 향상 될 것이라 말한다.
[박은미/2012년 탈북 : "주민들한테는 정말 좋은 것이죠. 왜냐하면 교류가 있다 보면 거기에 마켓이라던가 그리고 자기가 장사할 수 있는 곳들이 많아지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 시장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한테는 더 큰 이익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수익적인 면에서 더 이익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관광개발에 따른 성공여부도 결국엔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달렸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대북제재 해제 없이는 외부 투자를 기반으로 한 개발이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금강산 관광 20주년 남북 공동기념행사에 각별한 의미가 부여되는 건 관광 재개가 다시 한 번 남북 교류의 커다란 물꼬를 틔워줄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 측의 상응조치라는 것이 그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어느 시점에서는 접점을 모색할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북한과 미국 간의 이견차가 커보이는데 상황 변화에 따라서 북미 간에 타협점이 모색이 되고 그러면서 다른 프로젝트보다는 우선순위로 금강산 관광이 재개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저희들은 평가하고 있는 거죠."]
[11월 3일/북한 금강산 안내원 : "예로부터 삼천리 조국강산에는 아름다운 명승지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금강산은 으뜸가는 조선의 자랑으로 되며 또 세계적인 명산입니다."]
한민족의 명산이자 남북 교류의 상징 금강산.
지난 10년간 커진 그리움의 크기만큼 남과 북이 금강산에서 만날 날이 하루 빨리 앞당겨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