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 경제] 애써 키워서 폐기 ‘악순환’…해법 없나?

입력 2019.03.26 (18:06) 수정 2019.03.2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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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농사가 잘 되면 농민들 입장에서는 좋은 일일 것 같지만, '풍년의 역설'이라고 하죠.

가격 폭락으로 정성껏 기른 작물들을 시장에 내지도 못 하고 갈아엎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산지에서 그냥 폐기하는 일이 매년 속출하고 있는데, 해법은 없는지 경제부 조혜진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올해 월동 채소가 가격이 많이 떨어지면서 산지 폐기되는 양이 상당하다고 하는데, 현지 분위기가 어떤가요?

[기자]

네, 느끼셨겠지만 올 겨울은 유독 포근한 날씨를 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월동 채소들이 과잉 생산되면서 산지 폐기량이 늘었습니다.

제가 제주도 양배추 농가에 다녀왔는데요.

화면 보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이맘때 나오는 양배추의 98%, 거의 대부분이 제주산인데요.

수확 마무리를 해야 할 때인데, 트랙터로 다 갈아엎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만 해도 도매시장에서 양배추 8에서 10kg 한 망 당 5,6천 원 정도에 팔렸는데, 올해는 가격이 2,3천 원으로 절반도 안 되게 떨어졌습니다.

해상운송료나 인건비를 포함한 원가가 3200원 수준이니까, 원가도 나오지 않는 겁니다.

결국 제주에서만 2만 2천톤의 양배추를 산지 폐기했습니다.

다른 작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들어 석달 간 폐기된 채소는 배추 4만 6천 톤, 대파 5천 톤 등 모두 7만 3천 톤에 달합니다.

[앵커]

1년 간 밭에서 애써 키운 작물을 갈아엎는 농민들의 상심이 참 클 것 같은데요.

채솟값이 얼마나 떨어진 겁니까?

[기자]

네, 농식품부가 지난 3년 동안 집계한 월동채소류 가격을 보겠습니다.

무는 만 3,600원이 7700원, 배추는 1만 2천 원이 3700원대로 68%나 떨어졌고요.

양파도 3만 2천 원대였던 게 만 3천 원 선, 대파는 2700원 대가 1300원 대로 반타작 났습니다.

대부분 채소 가격이 50% 안팎으로 크게 떨어졌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송파 가락시장에 가서 경매사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아주 심각한 상황이라고 토로하더라고요.

얘기 들어보시죠.

[김영권/도매시장 양파 경매사 : "전례 없는 상황인 것 같고요. 저도 한 20년 경매하는 동안 이런 시세 흐름은 처음인데요."]

조생양파의 주산지인 전남 무안에선 다음달 출하를 앞두고 2년 연속 폐기를 선택했는데요.

역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5년 간 먹지도 못하고 버려진 채소가 39만 톤에 이릅니다.

[앵커]

매년 반복되는 일이면 농가에서 그 비용을 모두 부담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미리 수확량을 예측해 조절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정부 차원의 대책은 없나요?

[기자]

농산물 같은 경우 매년 소비되는 양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만큼 공급량이 가격을 결정하게 되는데요.

이 때문에 정부는 2017년부터 채소가격안정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농민과 정부가 계약을 맺고 출하량을 조절하는 건데요.

참여하는 농가는 재배한 농산물의 50%까지를 정부 방침에 따라 출하 시기를 조절하거나 폐기해야 합니다.

대신 정부와 지자체 등이 조성한 수급 안정 사업비로 가격이 폭락해도 평년 가격의 80% 수준으로 보전해 줍니다.

하지만 전체 작물의 10%만이 채소가격안정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앵커]

농산물 가격 변동을 정부에서 보전해준다고 하는데도 참여하는 농가는 얼마 안 되네요.

나머지 90%의 농민들이 참여하지 않는 이유가 뭔가요?

[기자]

농민들은 보전해주는 가격이 너무 낮다고 합니다.

특히 농산물 가격이 폭등했을 경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데 이런 부분을 받아들일 정도로 유인책이 되지는 못 하는 겁니다.

게다가 FTA 등으로 수입 농산물이 들어오는 데에 대한 반발로 인한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많은 농가에서 풍년에 가격이 폭락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현지 유통상인에게 파는 걸 택하는 겁니다.

애초에 채소 수급을 공공의 영역에서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현재 채소가격안정제에 참여하는 농가들과 계약을 체결하는 주체는 지역 농협입니다.

하지만 농산물 가격이 오를 때 농민들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해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지역 농협에서는 서로 다 아는 사이다 보니 칼 같이 손해를 감수하라고 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계약을 파기할 경우 처벌이나 불이익 등 이를 제재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앵커]

농민들과 정부의 입장이 팽팽해 보이는데요.

결국 산지폐기밖에는 답이 없는 건가요?

[기자]

사실 산지폐기 자체도 비용이 안 드는 일은 아닙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대체 작물을 심는 데 필요한 비용이나, 농약 비용 등 90%를 지원해줍니다.

그러다 보니 지난 5년동안 산지폐기에 든 돈만 무려 5백억 원입니다.

산지폐기는 가장 간단한 방법일 뿐 합리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결국, 농민들과 정부 사이에 접점을 찾아야 하는데요.

가격 안정제에서 보전하는 단가는 평년 가격의 80%로 사실상 평균 가격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보다 현실적인 단가를 위해 정부가 일방적으로 가격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논의해야 합니다.

농민들 역시 제대로 충실하게 계약을 이행해야 합니다.

생산부터 유통까지, 보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계획이 마련되지 않으면 매년 피해는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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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인트 경제] 애써 키워서 폐기 ‘악순환’…해법 없나?
    • 입력 2019-03-26 18:10:54
    • 수정2019-03-26 18: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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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농사가 잘 되면 농민들 입장에서는 좋은 일일 것 같지만, '풍년의 역설'이라고 하죠.

가격 폭락으로 정성껏 기른 작물들을 시장에 내지도 못 하고 갈아엎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산지에서 그냥 폐기하는 일이 매년 속출하고 있는데, 해법은 없는지 경제부 조혜진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올해 월동 채소가 가격이 많이 떨어지면서 산지 폐기되는 양이 상당하다고 하는데, 현지 분위기가 어떤가요?

[기자]

네, 느끼셨겠지만 올 겨울은 유독 포근한 날씨를 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월동 채소들이 과잉 생산되면서 산지 폐기량이 늘었습니다.

제가 제주도 양배추 농가에 다녀왔는데요.

화면 보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이맘때 나오는 양배추의 98%, 거의 대부분이 제주산인데요.

수확 마무리를 해야 할 때인데, 트랙터로 다 갈아엎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만 해도 도매시장에서 양배추 8에서 10kg 한 망 당 5,6천 원 정도에 팔렸는데, 올해는 가격이 2,3천 원으로 절반도 안 되게 떨어졌습니다.

해상운송료나 인건비를 포함한 원가가 3200원 수준이니까, 원가도 나오지 않는 겁니다.

결국 제주에서만 2만 2천톤의 양배추를 산지 폐기했습니다.

다른 작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들어 석달 간 폐기된 채소는 배추 4만 6천 톤, 대파 5천 톤 등 모두 7만 3천 톤에 달합니다.

[앵커]

1년 간 밭에서 애써 키운 작물을 갈아엎는 농민들의 상심이 참 클 것 같은데요.

채솟값이 얼마나 떨어진 겁니까?

[기자]

네, 농식품부가 지난 3년 동안 집계한 월동채소류 가격을 보겠습니다.

무는 만 3,600원이 7700원, 배추는 1만 2천 원이 3700원대로 68%나 떨어졌고요.

양파도 3만 2천 원대였던 게 만 3천 원 선, 대파는 2700원 대가 1300원 대로 반타작 났습니다.

대부분 채소 가격이 50% 안팎으로 크게 떨어졌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송파 가락시장에 가서 경매사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아주 심각한 상황이라고 토로하더라고요.

얘기 들어보시죠.

[김영권/도매시장 양파 경매사 : "전례 없는 상황인 것 같고요. 저도 한 20년 경매하는 동안 이런 시세 흐름은 처음인데요."]

조생양파의 주산지인 전남 무안에선 다음달 출하를 앞두고 2년 연속 폐기를 선택했는데요.

역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5년 간 먹지도 못하고 버려진 채소가 39만 톤에 이릅니다.

[앵커]

매년 반복되는 일이면 농가에서 그 비용을 모두 부담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미리 수확량을 예측해 조절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정부 차원의 대책은 없나요?

[기자]

농산물 같은 경우 매년 소비되는 양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만큼 공급량이 가격을 결정하게 되는데요.

이 때문에 정부는 2017년부터 채소가격안정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농민과 정부가 계약을 맺고 출하량을 조절하는 건데요.

참여하는 농가는 재배한 농산물의 50%까지를 정부 방침에 따라 출하 시기를 조절하거나 폐기해야 합니다.

대신 정부와 지자체 등이 조성한 수급 안정 사업비로 가격이 폭락해도 평년 가격의 80% 수준으로 보전해 줍니다.

하지만 전체 작물의 10%만이 채소가격안정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앵커]

농산물 가격 변동을 정부에서 보전해준다고 하는데도 참여하는 농가는 얼마 안 되네요.

나머지 90%의 농민들이 참여하지 않는 이유가 뭔가요?

[기자]

농민들은 보전해주는 가격이 너무 낮다고 합니다.

특히 농산물 가격이 폭등했을 경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데 이런 부분을 받아들일 정도로 유인책이 되지는 못 하는 겁니다.

게다가 FTA 등으로 수입 농산물이 들어오는 데에 대한 반발로 인한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많은 농가에서 풍년에 가격이 폭락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현지 유통상인에게 파는 걸 택하는 겁니다.

애초에 채소 수급을 공공의 영역에서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현재 채소가격안정제에 참여하는 농가들과 계약을 체결하는 주체는 지역 농협입니다.

하지만 농산물 가격이 오를 때 농민들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해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지역 농협에서는 서로 다 아는 사이다 보니 칼 같이 손해를 감수하라고 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계약을 파기할 경우 처벌이나 불이익 등 이를 제재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앵커]

농민들과 정부의 입장이 팽팽해 보이는데요.

결국 산지폐기밖에는 답이 없는 건가요?

[기자]

사실 산지폐기 자체도 비용이 안 드는 일은 아닙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대체 작물을 심는 데 필요한 비용이나, 농약 비용 등 90%를 지원해줍니다.

그러다 보니 지난 5년동안 산지폐기에 든 돈만 무려 5백억 원입니다.

산지폐기는 가장 간단한 방법일 뿐 합리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결국, 농민들과 정부 사이에 접점을 찾아야 하는데요.

가격 안정제에서 보전하는 단가는 평년 가격의 80%로 사실상 평균 가격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보다 현실적인 단가를 위해 정부가 일방적으로 가격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논의해야 합니다.

농민들 역시 제대로 충실하게 계약을 이행해야 합니다.

생산부터 유통까지, 보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계획이 마련되지 않으면 매년 피해는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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