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 100년’ 독립운동 구심점 된 상하이…배경은?

입력 2019.04.11 (12:16) 수정 2019.04.11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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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00년 전 임시정부가 세워졌던 중국 상하이는 191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독립운동의 중심지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만주와 연해주 지역에 독립운동가들의 거점이 집중돼 있었는데요,

어떻게, 왜, 1920년대 들어 상하이가 우리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됐는지 김도엽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리포트]

3·1 운동이 벌어질 당시, 상하이 거주 한인은 1,000명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한 연해주는 15만 명이 거주하고 있었고, 독립운동을 위한 자원도 상하이보다 우위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독립운동의 구심점은 결국, 상하이가 됐습니다.

그 시작은 3·1 운동 이전에 이미 상하이에 거점을 마련한 '신한 청년단'이었습니다.

여운형, 신규식 등이 중심이 된 이들은 파리 강화회의에 김규식을 파견하고 도쿄에 밀사를 보내 2.8 선언을 촉발하기도 했습니다.

3·1 운동 이후 해외로 도피처를 찾던 독립 세력에게 상하이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바로 일본의 영향력이 적은 지역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편 전쟁 이후 상하이는 서구 열강의 조계지로 쪼개졌고 그 과정에서 절묘한 세력 간 균형이 조성됐습니다.

특히 프랑스 대혁명 정신에 따라 정치적 망명자에 관대한 프랑스 조계지는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또한, 와이탄에 들어선 금융기관을 통해 수월하게 전신환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근대적 금융 시스템은 미국과 남미, 유럽에서 독립자금을 수혈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김명섭/연세대 교수 : "상하이의 근대적인 금융 조건 또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습니다."]

사상가의 도피처이자 근대적 교통, 통신, 금융 시스템을 갖춘 상하이는 각지에 흩어져 있던 독립운동의 주축들을 한 데 모이게 했고,

결국, 100년 전 오늘 29명의 독립 운동가들은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제로 한다는 임시헌장을 통과시키며 임시정부를 출범시켰습니다.

상하이에서 KBS 뉴스 김도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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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정 100년’ 독립운동 구심점 된 상하이…배경은?
    • 입력 2019-04-11 12:18:36
    • 수정2019-04-11 12:3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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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00년 전 임시정부가 세워졌던 중국 상하이는 191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독립운동의 중심지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만주와 연해주 지역에 독립운동가들의 거점이 집중돼 있었는데요,

어떻게, 왜, 1920년대 들어 상하이가 우리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됐는지 김도엽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리포트]

3·1 운동이 벌어질 당시, 상하이 거주 한인은 1,000명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한 연해주는 15만 명이 거주하고 있었고, 독립운동을 위한 자원도 상하이보다 우위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독립운동의 구심점은 결국, 상하이가 됐습니다.

그 시작은 3·1 운동 이전에 이미 상하이에 거점을 마련한 '신한 청년단'이었습니다.

여운형, 신규식 등이 중심이 된 이들은 파리 강화회의에 김규식을 파견하고 도쿄에 밀사를 보내 2.8 선언을 촉발하기도 했습니다.

3·1 운동 이후 해외로 도피처를 찾던 독립 세력에게 상하이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바로 일본의 영향력이 적은 지역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편 전쟁 이후 상하이는 서구 열강의 조계지로 쪼개졌고 그 과정에서 절묘한 세력 간 균형이 조성됐습니다.

특히 프랑스 대혁명 정신에 따라 정치적 망명자에 관대한 프랑스 조계지는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또한, 와이탄에 들어선 금융기관을 통해 수월하게 전신환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근대적 금융 시스템은 미국과 남미, 유럽에서 독립자금을 수혈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김명섭/연세대 교수 : "상하이의 근대적인 금융 조건 또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습니다."]

사상가의 도피처이자 근대적 교통, 통신, 금융 시스템을 갖춘 상하이는 각지에 흩어져 있던 독립운동의 주축들을 한 데 모이게 했고,

결국, 100년 전 오늘 29명의 독립 운동가들은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제로 한다는 임시헌장을 통과시키며 임시정부를 출범시켰습니다.

상하이에서 KBS 뉴스 김도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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