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이 죽이고 시민군 탓?…카빈 총상의 진실
입력 2020.05.13 (19:18)
수정 2020.05.13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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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KBS는 희생자 165명의 검시기록을 다시 살펴보고 있는데요.
희생자 가운데는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지고도 '타박사'로 기록된 사례들을 어제 보도했는데요.
총상 사망자에 대한 논란은 또 있습니다.
카빈 총상 사망자는 계엄군이 아니라 총을 든 시민들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인데, 과연 그럴까요?
김정대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80년 5월 21일 저녁.
광주에서 전남 담양 집으로 돌아가던 고규석 씨 일행은 광주교도소 옆을 지나다 계엄군의 무차별 총격을 받았습니다.
탑승자 4명 중 고규석 씨 등 두 명이 현장에서 숨지고 계엄군에게 붙잡힌 두 명도 폭행당했습니다.
숨진 두 사람의 검시 기록에는 계엄군이 사용한 'M16' 대신 '카빈' 총상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기록됐습니다.
당시 교도소에 주둔했던 공수부대의 군기록에서도 고규석 씨 일행의 피격이 확인되는데도 정작 검시 기록에는 시민군에 의해 숨진 것으로 돼 있습니다.
[정수만/전 5·18유족회장 : "광주에서 일어난 일들에 자기들의 정당성, 합리적인 거 이런 것들을 주장하기 위해서 (조작하지 않았나 봅니다)."]
KBS 취재팀이 카빈 총상 사망자 30여 명을 모두 분석해보니, 비슷한 사례가 더 나왔습니다.
5월 20일 밤 계엄군의 광주역 앞에서 희생된 김재화 씨와 김만두 씨.
두 사람 모두 카빈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튿날 전남도청 앞에서 숨진 윤형근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카빈 총상으로 볼 수 없는 큰 상처가 몸에 남아있었지만 카빈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쓰여 있습니다.
21일 계엄군의 집단발포 후에야 시민들이 무장한 사실에 비춰보면 모두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김성봉/5·18 당시 광주기독병원 외과 과장 : "(사입구가) 6~7㎝ 됐다는 건 그런 소총으로 당한 게 아닙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들어가는 입구가 그럴 수는없는 거죠."]
계엄군의 M16 총에 맞아 희생된 것이 분명한데도 시민군에 의해 숨진 것으로 호도되는 5.18 역사.
진상 규명마저 더디면서 40년이 지난 지금도 '시민군들이 쏜 총에 시민들이 희생됐다’는 왜곡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정대입니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KBS는 희생자 165명의 검시기록을 다시 살펴보고 있는데요.
희생자 가운데는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지고도 '타박사'로 기록된 사례들을 어제 보도했는데요.
총상 사망자에 대한 논란은 또 있습니다.
카빈 총상 사망자는 계엄군이 아니라 총을 든 시민들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인데, 과연 그럴까요?
김정대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80년 5월 21일 저녁.
광주에서 전남 담양 집으로 돌아가던 고규석 씨 일행은 광주교도소 옆을 지나다 계엄군의 무차별 총격을 받았습니다.
탑승자 4명 중 고규석 씨 등 두 명이 현장에서 숨지고 계엄군에게 붙잡힌 두 명도 폭행당했습니다.
숨진 두 사람의 검시 기록에는 계엄군이 사용한 'M16' 대신 '카빈' 총상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기록됐습니다.
당시 교도소에 주둔했던 공수부대의 군기록에서도 고규석 씨 일행의 피격이 확인되는데도 정작 검시 기록에는 시민군에 의해 숨진 것으로 돼 있습니다.
[정수만/전 5·18유족회장 : "광주에서 일어난 일들에 자기들의 정당성, 합리적인 거 이런 것들을 주장하기 위해서 (조작하지 않았나 봅니다)."]
KBS 취재팀이 카빈 총상 사망자 30여 명을 모두 분석해보니, 비슷한 사례가 더 나왔습니다.
5월 20일 밤 계엄군의 광주역 앞에서 희생된 김재화 씨와 김만두 씨.
두 사람 모두 카빈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튿날 전남도청 앞에서 숨진 윤형근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카빈 총상으로 볼 수 없는 큰 상처가 몸에 남아있었지만 카빈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쓰여 있습니다.
21일 계엄군의 집단발포 후에야 시민들이 무장한 사실에 비춰보면 모두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김성봉/5·18 당시 광주기독병원 외과 과장 : "(사입구가) 6~7㎝ 됐다는 건 그런 소총으로 당한 게 아닙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들어가는 입구가 그럴 수는없는 거죠."]
계엄군의 M16 총에 맞아 희생된 것이 분명한데도 시민군에 의해 숨진 것으로 호도되는 5.18 역사.
진상 규명마저 더디면서 40년이 지난 지금도 '시민군들이 쏜 총에 시민들이 희생됐다’는 왜곡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정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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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20-05-13 19:4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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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KBS는 희생자 165명의 검시기록을 다시 살펴보고 있는데요.
희생자 가운데는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지고도 '타박사'로 기록된 사례들을 어제 보도했는데요.
총상 사망자에 대한 논란은 또 있습니다.
카빈 총상 사망자는 계엄군이 아니라 총을 든 시민들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인데, 과연 그럴까요?
김정대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80년 5월 21일 저녁.
광주에서 전남 담양 집으로 돌아가던 고규석 씨 일행은 광주교도소 옆을 지나다 계엄군의 무차별 총격을 받았습니다.
탑승자 4명 중 고규석 씨 등 두 명이 현장에서 숨지고 계엄군에게 붙잡힌 두 명도 폭행당했습니다.
숨진 두 사람의 검시 기록에는 계엄군이 사용한 'M16' 대신 '카빈' 총상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기록됐습니다.
당시 교도소에 주둔했던 공수부대의 군기록에서도 고규석 씨 일행의 피격이 확인되는데도 정작 검시 기록에는 시민군에 의해 숨진 것으로 돼 있습니다.
[정수만/전 5·18유족회장 : "광주에서 일어난 일들에 자기들의 정당성, 합리적인 거 이런 것들을 주장하기 위해서 (조작하지 않았나 봅니다)."]
KBS 취재팀이 카빈 총상 사망자 30여 명을 모두 분석해보니, 비슷한 사례가 더 나왔습니다.
5월 20일 밤 계엄군의 광주역 앞에서 희생된 김재화 씨와 김만두 씨.
두 사람 모두 카빈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튿날 전남도청 앞에서 숨진 윤형근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카빈 총상으로 볼 수 없는 큰 상처가 몸에 남아있었지만 카빈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쓰여 있습니다.
21일 계엄군의 집단발포 후에야 시민들이 무장한 사실에 비춰보면 모두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김성봉/5·18 당시 광주기독병원 외과 과장 : "(사입구가) 6~7㎝ 됐다는 건 그런 소총으로 당한 게 아닙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들어가는 입구가 그럴 수는없는 거죠."]
계엄군의 M16 총에 맞아 희생된 것이 분명한데도 시민군에 의해 숨진 것으로 호도되는 5.18 역사.
진상 규명마저 더디면서 40년이 지난 지금도 '시민군들이 쏜 총에 시민들이 희생됐다’는 왜곡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정대입니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KBS는 희생자 165명의 검시기록을 다시 살펴보고 있는데요.
희생자 가운데는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지고도 '타박사'로 기록된 사례들을 어제 보도했는데요.
총상 사망자에 대한 논란은 또 있습니다.
카빈 총상 사망자는 계엄군이 아니라 총을 든 시민들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인데, 과연 그럴까요?
김정대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80년 5월 21일 저녁.
광주에서 전남 담양 집으로 돌아가던 고규석 씨 일행은 광주교도소 옆을 지나다 계엄군의 무차별 총격을 받았습니다.
탑승자 4명 중 고규석 씨 등 두 명이 현장에서 숨지고 계엄군에게 붙잡힌 두 명도 폭행당했습니다.
숨진 두 사람의 검시 기록에는 계엄군이 사용한 'M16' 대신 '카빈' 총상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기록됐습니다.
당시 교도소에 주둔했던 공수부대의 군기록에서도 고규석 씨 일행의 피격이 확인되는데도 정작 검시 기록에는 시민군에 의해 숨진 것으로 돼 있습니다.
[정수만/전 5·18유족회장 : "광주에서 일어난 일들에 자기들의 정당성, 합리적인 거 이런 것들을 주장하기 위해서 (조작하지 않았나 봅니다)."]
KBS 취재팀이 카빈 총상 사망자 30여 명을 모두 분석해보니, 비슷한 사례가 더 나왔습니다.
5월 20일 밤 계엄군의 광주역 앞에서 희생된 김재화 씨와 김만두 씨.
두 사람 모두 카빈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튿날 전남도청 앞에서 숨진 윤형근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카빈 총상으로 볼 수 없는 큰 상처가 몸에 남아있었지만 카빈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쓰여 있습니다.
21일 계엄군의 집단발포 후에야 시민들이 무장한 사실에 비춰보면 모두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김성봉/5·18 당시 광주기독병원 외과 과장 : "(사입구가) 6~7㎝ 됐다는 건 그런 소총으로 당한 게 아닙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들어가는 입구가 그럴 수는없는 거죠."]
계엄군의 M16 총에 맞아 희생된 것이 분명한데도 시민군에 의해 숨진 것으로 호도되는 5.18 역사.
진상 규명마저 더디면서 40년이 지난 지금도 '시민군들이 쏜 총에 시민들이 희생됐다’는 왜곡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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