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평양랭면 주시라요!”…북한 사투리 배운 배우들

입력 2021.10.09 (08:11) 수정 2021.10.0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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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9일)은 한글 반포를 기념하고 우리말의 우수성을 기리는 575번째 한글날이죠.

박사임 앵커! 북한에도 한글날이 있을까요?

네, 북한에선 훈민정음이 창제된 1월 15일을 ‘조선글날’로 기념한다고 합니다.

같은 말인데 기념일도 다르고 북한에서 쓰는 단어나 억양도 우리와 많이 다른 게 현실인데요.

최근 서울 대학로에서는 한글날을 맞이해 북한 사투리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고 합니다.

완벽한 북한 사투리를 구현하기 위해 탈북민 예술감독의 지도까지 받았다고 하는데요.

그 현장으로 함께 가보시죠.

[리포트]

공연 문화의 산실로 불리는 서울 대학로 곳곳에 다양한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들이 붙어 있는데요.

575돌을 맞는 한글날을 기념해, 무대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저 동진이 만나게 되면 죽지 말고 꼭 살아야 한다고 말해줘라. (그래. 돌아오면 동진이가 좋아하는 오마니가 해준 랭면 먹자구나. 몸조심해라.)"]

그런데 배우들이 북한 사투리를 쓰고 있네요!

바로 ‘냉면을 먹고 싶어서’라는 제목의 연극 리허설입니다.

6.25 전쟁 당시 전사한 북한 군인이 철진이라는 음식평론가의 몸에 빙의되는 이야기인데요.

[주은길/연출 :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사실은 말이었던 거 같아요. 북한에서도 여러 가지 많은 사투리가 존재하는데 그걸 모르고 연습을 했었던 거 같아요."]

배우들은 처음 접하는 이북 사투리가 어색하기만 했는데요.

하지만 관객들에게 한국어의 다양성을 전달하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긴장된 모습으로 연기에 몰입하는 배우들.

하지만 북한 억양을 따라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마이가 뭐 해준다 했나 (랭면입니다. 제가 너무 먹고 싶어 하던 랭면입니다.)"]

[전성열/연극배우 : "(대사에) 냉면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 이북 지역에선 랭이란 말을 쓰더라고요. 이건 저희가 단기적으로 연습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서 많이 힘들긴 했습니다."]

배우들은 북한 사투리를 완벽하게 익히기 위해 평양 출신인 오진하 예술감독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오진하/예술감독 : "두음법칙으로 인해서 르 발음을 안 쓰잖아요. 그런 사람이 갑자기 북한에서 쓰는 르 발음을 하자니 힘들죠. 입에 붙으면 그냥 자연스럽게 평양랭면. (평양랭면.) 로동자. (로동자)"]

북한에서도 연극 연출을 했던 오 감독은 배우들의 발음부터 문화적 배경까지 세심하게 지도하는데요.

[오진하/예술감독 : "저희 (연극에서) 어른들한테 그렇습니다(라고 하지), 그렇습네다라고 안 하잖아요."]

[오진하/예술감독 : "했습네까, 그랬습네다, 반갑습네다 그거 북한에 없어요. 사실. 웃기느라고 캐릭터를 웃기게 부각하려고 만들어 낸 거예요. 여기 남한에서."]

배우들도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북한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김미소/연극배우 : "저희가 언어에 대해서 굉장히 편협한 시각을 가지지 않았나 특히 분단국가다 보니 심리적인 거리감이 있잖아요. (마음의) 간극을 좁혀 가는 연습이 됐던 거 같아요."]

잠시 후 공연이 시작될 텐데요.

공연을 보는 것 이상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이북 사투리의 묘한 매력에 푹 빠져 보실까요.

텅 빈 객석이 관객들로 하나둘 채워집니다.

드디어 막이 오르고.

평양냉면의 원류를 맛보고 싶어하는 주인공 철진이 무대에 등장합니다.

계속 이상한 꿈을 꾸던 철진은 탈북민 무당을 찾아가는데요.

철진의 몸에는 6.25전쟁 때 전사한 북한군인 리동진이 빙의돼 있었습니다.

["내 가고 싶은 고향 거기서 오마니가 해주신 냉면 한 그릇 먹고 싶다야"]

철진은 리동진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꿈속에서 동진의 가족들을 만납니다.

["형님 잘 지냈습니까? (젓가락 챙겨오라우 아주 양반이 따로 없구먼 기래)"]

어느새 연극은 정점을 향해 달리고, 철진의 몸에 빙의된 동진은 마침내 어머니가 해준 냉면을 맛보게 되는데요.

["참 맛있다 야. 오마니가 해주신 평양냉면엔 이날의 웃음도 담겨 있고, 형님의 꾸지람 아버지 냄새 그리고 동네 꼬마들의 노랫소리가 담겨있디."]

소원을 푼 북한군인 동진이 철진의 몸속에서 떠나며 연극은 마무리됩니다.

북한 사투리를 접해보지 못한 관객들도 이번 공연을 통해 우리말의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는데요.

[최훈/관람객 : "딱딱한 말투 속에 숨어 있는 따뜻한 어투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었던 거 같아서 알아듣는 데는 지장은 없었던 거 같아요."]

연출을 맡은 주은길 감독은 이번 공연이 젊은 세대에게 울림을 주길 바랐습니다.

[주은길/연출 : "(분단의) 슬픔과 아픔을 갖고 살아가고 있었지 그런 부분을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가시면 성공적인 공연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 사투리를 더 친근하게 느낄 기회들이 많아진다면 평화를 향한 밑거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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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평양랭면 주시라요!”…북한 사투리 배운 배우들
    • 입력 2021-10-09 08:11:13
    • 수정2021-10-09 08: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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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9일)은 한글 반포를 기념하고 우리말의 우수성을 기리는 575번째 한글날이죠.

박사임 앵커! 북한에도 한글날이 있을까요?

네, 북한에선 훈민정음이 창제된 1월 15일을 ‘조선글날’로 기념한다고 합니다.

같은 말인데 기념일도 다르고 북한에서 쓰는 단어나 억양도 우리와 많이 다른 게 현실인데요.

최근 서울 대학로에서는 한글날을 맞이해 북한 사투리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고 합니다.

완벽한 북한 사투리를 구현하기 위해 탈북민 예술감독의 지도까지 받았다고 하는데요.

그 현장으로 함께 가보시죠.

[리포트]

공연 문화의 산실로 불리는 서울 대학로 곳곳에 다양한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들이 붙어 있는데요.

575돌을 맞는 한글날을 기념해, 무대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저 동진이 만나게 되면 죽지 말고 꼭 살아야 한다고 말해줘라. (그래. 돌아오면 동진이가 좋아하는 오마니가 해준 랭면 먹자구나. 몸조심해라.)"]

그런데 배우들이 북한 사투리를 쓰고 있네요!

바로 ‘냉면을 먹고 싶어서’라는 제목의 연극 리허설입니다.

6.25 전쟁 당시 전사한 북한 군인이 철진이라는 음식평론가의 몸에 빙의되는 이야기인데요.

[주은길/연출 :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사실은 말이었던 거 같아요. 북한에서도 여러 가지 많은 사투리가 존재하는데 그걸 모르고 연습을 했었던 거 같아요."]

배우들은 처음 접하는 이북 사투리가 어색하기만 했는데요.

하지만 관객들에게 한국어의 다양성을 전달하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긴장된 모습으로 연기에 몰입하는 배우들.

하지만 북한 억양을 따라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마이가 뭐 해준다 했나 (랭면입니다. 제가 너무 먹고 싶어 하던 랭면입니다.)"]

[전성열/연극배우 : "(대사에) 냉면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 이북 지역에선 랭이란 말을 쓰더라고요. 이건 저희가 단기적으로 연습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서 많이 힘들긴 했습니다."]

배우들은 북한 사투리를 완벽하게 익히기 위해 평양 출신인 오진하 예술감독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오진하/예술감독 : "두음법칙으로 인해서 르 발음을 안 쓰잖아요. 그런 사람이 갑자기 북한에서 쓰는 르 발음을 하자니 힘들죠. 입에 붙으면 그냥 자연스럽게 평양랭면. (평양랭면.) 로동자. (로동자)"]

북한에서도 연극 연출을 했던 오 감독은 배우들의 발음부터 문화적 배경까지 세심하게 지도하는데요.

[오진하/예술감독 : "저희 (연극에서) 어른들한테 그렇습니다(라고 하지), 그렇습네다라고 안 하잖아요."]

[오진하/예술감독 : "했습네까, 그랬습네다, 반갑습네다 그거 북한에 없어요. 사실. 웃기느라고 캐릭터를 웃기게 부각하려고 만들어 낸 거예요. 여기 남한에서."]

배우들도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북한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김미소/연극배우 : "저희가 언어에 대해서 굉장히 편협한 시각을 가지지 않았나 특히 분단국가다 보니 심리적인 거리감이 있잖아요. (마음의) 간극을 좁혀 가는 연습이 됐던 거 같아요."]

잠시 후 공연이 시작될 텐데요.

공연을 보는 것 이상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이북 사투리의 묘한 매력에 푹 빠져 보실까요.

텅 빈 객석이 관객들로 하나둘 채워집니다.

드디어 막이 오르고.

평양냉면의 원류를 맛보고 싶어하는 주인공 철진이 무대에 등장합니다.

계속 이상한 꿈을 꾸던 철진은 탈북민 무당을 찾아가는데요.

철진의 몸에는 6.25전쟁 때 전사한 북한군인 리동진이 빙의돼 있었습니다.

["내 가고 싶은 고향 거기서 오마니가 해주신 냉면 한 그릇 먹고 싶다야"]

철진은 리동진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꿈속에서 동진의 가족들을 만납니다.

["형님 잘 지냈습니까? (젓가락 챙겨오라우 아주 양반이 따로 없구먼 기래)"]

어느새 연극은 정점을 향해 달리고, 철진의 몸에 빙의된 동진은 마침내 어머니가 해준 냉면을 맛보게 되는데요.

["참 맛있다 야. 오마니가 해주신 평양냉면엔 이날의 웃음도 담겨 있고, 형님의 꾸지람 아버지 냄새 그리고 동네 꼬마들의 노랫소리가 담겨있디."]

소원을 푼 북한군인 동진이 철진의 몸속에서 떠나며 연극은 마무리됩니다.

북한 사투리를 접해보지 못한 관객들도 이번 공연을 통해 우리말의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는데요.

[최훈/관람객 : "딱딱한 말투 속에 숨어 있는 따뜻한 어투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었던 거 같아서 알아듣는 데는 지장은 없었던 거 같아요."]

연출을 맡은 주은길 감독은 이번 공연이 젊은 세대에게 울림을 주길 바랐습니다.

[주은길/연출 : "(분단의) 슬픔과 아픔을 갖고 살아가고 있었지 그런 부분을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가시면 성공적인 공연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 사투리를 더 친근하게 느낄 기회들이 많아진다면 평화를 향한 밑거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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