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人] 60년 전통 한지 제조법 ‘외발뜨기’ 이상옥 한지장

입력 2022.03.22 (20:02) 수정 2022.03.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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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목판인쇄술과 함께 종이는 기록문화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죠.

국보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같은 문화재를 통해 우수성이 입증된 우리 종이 한지를 전통제지법 그대로 만드는 장인 만나보시죠.

[리포트]

거친 닥나무는 아흔아홉 번의 손길을 거쳐 한지로 거듭납니다.

갑옷에 쓰일 만큼 견고한데다 쉬 변질되지 않아 묵을수록 빛을 발합니다.

["우리가 생산한 종이가 사찰 같은 데도 아주 요긴하게 잘 쓰이고 우리 종이를 가지고 작품 해놓은 게 문화재로 보존되는 걸 보면 마음이 좀 좋아요."]

대를 잇는 한지장의 고집과 자부심이 천년을 견디는 우리 종이, 한지로 완성됩니다.

천년 고찰과 암자가 즐비한 지리산, 그 아래 함양 마천면 일대는 한지의 본고장으로 불립니다.

불경과 불화에 필요한 종이를 직접 만들어 쓴 사찰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요.

조선중기에 만든 이 지장도에도 한지가 쓰였습니다.

[만일스님/벽송사 주지 : "몇 백 년, 몇 천 년 가까이 된 종이지만 지금도 남아 있는 게 있습니다. 특히 지리산권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남한에서 금강산 다음으로 이 지리산 일대가 절이 제일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주위에는 절에서부터 이 한지공예기술이 굉장히 발달됐고 지금도 전승이 잘 되고 있습니다."]

인근 창원마을, 이상옥 씨는 사찰의 전통제지법대로 60년 넘게 한지를 만들어 온 한지장인입니다.

질 좋은 한지를 위해 국내산 참닥나무를 직접 재배해 원료로 씁니다.

[이상옥/한지장 : "힘든 건 닥을 쪄서 닥무지를 해야 하고, 또 벗겨서 가공을 해야 하고, 그 과정이 가장 힘들어요."]

수확한 닥나무는 다발을 지어 쪄내는 ‘닥무지’를 거쳐, 수차례 껍질을 벗기고 긁어내는 등 수많은 공정을 거칩니다.

[이상옥/한지장 : "종이 한 장에 손이 99번 간다고 공정이, 이걸 또 삶아서 두 번 헹궈서, 또 티를 골라내야 하고 그래야 종이가 돼요."]

백닥을 삶고 갈아서 만든 닥 곤죽인데요.

섬유질이 풍부한 것이 우리 닥의 특징입니다.

[이상옥/한지장 : "국산 닥으로 하는 건 이렇게 섬유질이 좋아요. 그러니까 종이가 질겨요. 수입산은 갈면 섬유질이 하나도 없고 밀가루가 돼버려요."]

손수 재배한 ‘황촉규’는 점액질을 체에 내려 닥풀로 활용하는데요.

종이가 서로 붙지 않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산에서 내려온 찬물에 '닥 곤죽'과 '닥풀'을 섞어 풀어주고 나면 발을 걸어서 한지를 뜨는데요.

앞에서 떠서 뒤로 흘려보내고, 좌우 ‘옆물질’로 종이두께를 조절하는 전통기법 ‘외발뜨기’입니다.

[이상옥/한지장 : "우리 외발뜨기는 두 번을 가져다 붙여야 한 장이 되거든요. 그러니까 종이가 질겨요."]

외발뜨기로 닥 섬유질은 상하좌우 우물 정자를 그리며 질긴 조직의 종이가 됩니다.

굴렁대를 굴려 물기를 빼고 압착기로 남은 물기를 완전 제거해 건조시키면 한지가 완성되는데요.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한지장은 14살 때부터 외발뜨기를 고집했습니다.

[이상옥/한지장 : "옛날에는 아마 이 지역 사람도 있고 객지 일군들까지 데려와서 하고 그랬죠. 이쪽 개울가에 한 3개, 저쪽 개울가에 한 3개. 내가 알기로는 한 여섯 군데 공장이 있었어요."]

인근 공방이 문을 닫으면서 외롭게 외발뜨기를 지켜왔는데요.

다행히 아들이 함양 한지와 외발뜨기 맥을 잇겠다고 나섰습니다.

[이권희/이상옥 한지장 아들 : "(저희 종이가) 문화재 보존하는 데도 많이 들어갔는데 그런 데서 자부심도 느끼고 저희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던 맥을 이어서 제가 하면서 거래처가 있을 거 아니에요. 민화 그리는 분도 있고 그림 그리는 분들도 많이 사 가시는데 이걸 이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닥나무 섬유질이 얽히고설켜 한 장의 한지가 만들어지듯 아흔아홉 번의 손길이 얽혀 숨 쉬는 종이가 완성됩니다.

자연과 전통의 결을 살려온 한지장의 60년 여정이 우리 종이처럼 강인하고 소박하게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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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人] 60년 전통 한지 제조법 ‘외발뜨기’ 이상옥 한지장
    • 입력 2022-03-22 20:02:04
    • 수정2022-03-22 20:22:37
    뉴스7(창원)
[앵커]

목판인쇄술과 함께 종이는 기록문화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죠.

국보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같은 문화재를 통해 우수성이 입증된 우리 종이 한지를 전통제지법 그대로 만드는 장인 만나보시죠.

[리포트]

거친 닥나무는 아흔아홉 번의 손길을 거쳐 한지로 거듭납니다.

갑옷에 쓰일 만큼 견고한데다 쉬 변질되지 않아 묵을수록 빛을 발합니다.

["우리가 생산한 종이가 사찰 같은 데도 아주 요긴하게 잘 쓰이고 우리 종이를 가지고 작품 해놓은 게 문화재로 보존되는 걸 보면 마음이 좀 좋아요."]

대를 잇는 한지장의 고집과 자부심이 천년을 견디는 우리 종이, 한지로 완성됩니다.

천년 고찰과 암자가 즐비한 지리산, 그 아래 함양 마천면 일대는 한지의 본고장으로 불립니다.

불경과 불화에 필요한 종이를 직접 만들어 쓴 사찰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요.

조선중기에 만든 이 지장도에도 한지가 쓰였습니다.

[만일스님/벽송사 주지 : "몇 백 년, 몇 천 년 가까이 된 종이지만 지금도 남아 있는 게 있습니다. 특히 지리산권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남한에서 금강산 다음으로 이 지리산 일대가 절이 제일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주위에는 절에서부터 이 한지공예기술이 굉장히 발달됐고 지금도 전승이 잘 되고 있습니다."]

인근 창원마을, 이상옥 씨는 사찰의 전통제지법대로 60년 넘게 한지를 만들어 온 한지장인입니다.

질 좋은 한지를 위해 국내산 참닥나무를 직접 재배해 원료로 씁니다.

[이상옥/한지장 : "힘든 건 닥을 쪄서 닥무지를 해야 하고, 또 벗겨서 가공을 해야 하고, 그 과정이 가장 힘들어요."]

수확한 닥나무는 다발을 지어 쪄내는 ‘닥무지’를 거쳐, 수차례 껍질을 벗기고 긁어내는 등 수많은 공정을 거칩니다.

[이상옥/한지장 : "종이 한 장에 손이 99번 간다고 공정이, 이걸 또 삶아서 두 번 헹궈서, 또 티를 골라내야 하고 그래야 종이가 돼요."]

백닥을 삶고 갈아서 만든 닥 곤죽인데요.

섬유질이 풍부한 것이 우리 닥의 특징입니다.

[이상옥/한지장 : "국산 닥으로 하는 건 이렇게 섬유질이 좋아요. 그러니까 종이가 질겨요. 수입산은 갈면 섬유질이 하나도 없고 밀가루가 돼버려요."]

손수 재배한 ‘황촉규’는 점액질을 체에 내려 닥풀로 활용하는데요.

종이가 서로 붙지 않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산에서 내려온 찬물에 '닥 곤죽'과 '닥풀'을 섞어 풀어주고 나면 발을 걸어서 한지를 뜨는데요.

앞에서 떠서 뒤로 흘려보내고, 좌우 ‘옆물질’로 종이두께를 조절하는 전통기법 ‘외발뜨기’입니다.

[이상옥/한지장 : "우리 외발뜨기는 두 번을 가져다 붙여야 한 장이 되거든요. 그러니까 종이가 질겨요."]

외발뜨기로 닥 섬유질은 상하좌우 우물 정자를 그리며 질긴 조직의 종이가 됩니다.

굴렁대를 굴려 물기를 빼고 압착기로 남은 물기를 완전 제거해 건조시키면 한지가 완성되는데요.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한지장은 14살 때부터 외발뜨기를 고집했습니다.

[이상옥/한지장 : "옛날에는 아마 이 지역 사람도 있고 객지 일군들까지 데려와서 하고 그랬죠. 이쪽 개울가에 한 3개, 저쪽 개울가에 한 3개. 내가 알기로는 한 여섯 군데 공장이 있었어요."]

인근 공방이 문을 닫으면서 외롭게 외발뜨기를 지켜왔는데요.

다행히 아들이 함양 한지와 외발뜨기 맥을 잇겠다고 나섰습니다.

[이권희/이상옥 한지장 아들 : "(저희 종이가) 문화재 보존하는 데도 많이 들어갔는데 그런 데서 자부심도 느끼고 저희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던 맥을 이어서 제가 하면서 거래처가 있을 거 아니에요. 민화 그리는 분도 있고 그림 그리는 분들도 많이 사 가시는데 이걸 이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닥나무 섬유질이 얽히고설켜 한 장의 한지가 만들어지듯 아흔아홉 번의 손길이 얽혀 숨 쉬는 종이가 완성됩니다.

자연과 전통의 결을 살려온 한지장의 60년 여정이 우리 종이처럼 강인하고 소박하게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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