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공사 면허수당]④ 허위 면허 취득 계속…‘고쳐라’ 권고에도 10년째 제자리

입력 2022.05.30 (08:00) 수정 2022.05.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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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한국도로공사 일부 직원이 소형 건설기계 면허를 허위로 취득한 뒤, 회사로부터 수당과 수강료를 타냈습니다. 수당 비리에 가담한 인원만 142명에 이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연루됐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비단 이번 일이 개인적 일탈로 치부되지 않으려면 사건의 이면을 살펴야합니다. 구조적인 문제를 짚는 게 재발 방지의 첫 걸음입니다. (편집자주)

기사를 싣는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누이 좋고 매부 좋고"…공기업 재정 '숭숭'
② 142명이 학원 2곳에서 부정 면허…조직적 개입? 개인 일탈?
③ 없는 기계 면허수당 지급…도로공사 '조직' 기준 무엇입니까?
④ 소형건설기계 '면허 장사'…권고에도 10년째 제자리
⑤ 공공기관 수당 손 보나?…추가 제보 잇따라


■ 소형건설기계, 12시간 교육만 받으면 면허 발급…"과정부터 문제"

한국도로공사 직원 140여 명이 면허수당을 허위로 타낸 사건. 도로공사가 보유하지 않은 장비에도 수당을 지급하겠다는 내부 지침이 이번 사태를 키운 주요 원인입니다. (참고: “도공, 없는 장비에도 면허수당 지급”…비리로 얼룩진 수당) 또 다른 이유는 없는 걸까? KBS 취재팀은 소형건설기계 면허를 발급하는 과정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춘천의 한 건설기계 학원에 연락이 닿았습니다. 이 학원에선 3톤 미만 굴삭기 교육을 하고 있었습니다. 도로 공사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형 굴삭기였습니다. 2m가 넘는 높이에, 팔 길이는 3m가 넘었습니다. 굴삭기 끝에 달린 삽으로 2m 정도 길이의 철골을 눌러 봤습니다. 큰 힘을 들이지 않았는데도 이 철골은 금방 휘어졌습니다.

이 학원을 운영하는 인유진 씨는 소형 굴삭기의 위력을 보여주면서, 면허 취득 구조 자체를 문제 삼았습니다. 인 씨는 "현행 면허 취득 제도는 잘못됐다"라며 "애초에 왜 이틀 교육만으로 면허를 취득할 수 있게 한 건지, 의도를 모르겠다"고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또, "기계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이 자격증을 불법으로 받아가지고 현장 가서 했다고 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교육은 하루로는 안 되고, 일주일 정도는 시간을 들여서 완벽하게 마스터(숙달)를 할 수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시험 없이 면허를 쉽게 딸 수 있다 보니, 학원에는 아예 허위 발급이 가능하냐는 문의도 끊이지 않는다.시험 없이 면허를 쉽게 딸 수 있다 보니, 학원에는 아예 허위 발급이 가능하냐는 문의도 끊이지 않는다.

■"허위 발급 문의 끊이지 않아"…도로공사 직원들도 허점 이용

대형 건설기계 면허 취득 과정은 까다롭습니다. 대형 면허는 필기 시험도 보고, 실기 시험도 봐야 합니다. 난도도 상당한데요. 굴삭기운전기능사의 경우, 지난해 필기 시험 합격률은 67%, 실기 시험 합격률은 38%였습니다.

반면, 소형건설기계 면허 따기는 쉽습니다. 건설기계관리법 26조 4항을 보면, '소형 건설기계의 건설기계조종사면허의 경우에는 시ㆍ도지사가 지정한 교육기관에서 실시하는 소형 건설기계의 조종에 관한 교육과정의 이수로 제3항의 「국가기술자격법」에 따른 기술자격의 취득을 대신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교육 이수에 관한 내용은 건설기계관리법 시행규칙에 나와 있습니다. 우선 3톤 미만의 굴삭기나 로더, 지게차는 최소 12시간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교육은 이론이 6시간, 실기가 6시간으로 구성됩니다. 실기 교육은 하루 최대 4시간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 종목을 따려고 하는 경우, 이론 교육 6시간은 한 번만 받으면 됩니다.

예를 들어 3톤 미만 굴삭기와 지게차 면허를 따려면, 이론 교육 6시간에 굴삭기 실기 교육 6시간, 지게차 실기 교육 6시간까지 총 18시간 교육을 받으면 되는 겁니다. 이틀에서 사흘 정도면 교육은 모두 끝낼 수 있습니다. 이 렇게 교육을 받으면 이수증을 발급해 줍니다. 이수증을 가지고 지방자치단체의 면허 관련 부서에 제출하면 면허증이 발급됩니다.


단순한 구조임에도, 최소한의 요건조차 지키지 않으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습니다. 학원과 수강생이 짜고 교육 기록을 조작하면 얼마든지 허위 이수증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원도 원주의 한 건설기계학원에서 일하고 있는 홍기헌 씨는 "하루 만에 교육을 마칠 수 없는지 이런 것들을 물어보시는 분들이 간혹 계신다"며, "그분들한테는 이제 정확하게 법에 정해진 대로 정해진 교육을 다 이수하셔야 면허 취득이 가능하시다고 안내를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 면허를 부정하게 딴 도로공사 직원들, 교육 이수증을 허위로 발급해준 학원도 이런 허점을 악용해 사실상 '면허 장사'를 한 겁니다.

올해 3월에도 강원도 동해의 한 건설기계 학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출결 시스템을 조작해 교육 이수증을 허위로 발급해준 학원 원장이 경찰에 적발됐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10년 전 국토교통부에 소형건설기계면허 취득 과정을 개선하라고 권고했지만 바뀌지 않았다.국민권익위원회는 10년 전 국토교통부에 소형건설기계면허 취득 과정을 개선하라고 권고했지만 바뀌지 않았다.

■ 권익위, 11년 전 면허 취득과정 개선 권고…여전히 제자리

이런 문제, 처음 불거진 게 아닙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1년 '6종 소형건설기계 조종사면허 투명성 높인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내용을 보면, '5톤 미만 불도저와 로더, 3톤 미만 지게차와 굴삭기, 소형공기압축기, 콘크리트펌프 등 소형건설기계 6종의 국가기술자격시험을 신설하는 방안을 국토부에 권고했다'고 돼 있습니다.

이런 권고가 나온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허위 이수증을 이용한 면허 부정 발급 때문이었습니다. 서재식 국민권익위원회 제도개선총괄과장은 "현장에서 교육 없이, 실습조차 없이 면허가 발급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한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권고는 권고로 남았을 뿐, 현장은 11년 전과 똑같습니다. 이러는 사이 소형건설기계 면허소지자는 많이 늘어났습니다. 지난해 9월을 기준으로 하면, 전국 소형건설기계 면허 누적 발급 건수는 67만 건이었습니다. 이는 5년 전보다 81% 증가한 수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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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로공사 면허수당]④ 허위 면허 취득 계속…‘고쳐라’ 권고에도 10년째 제자리
    • 입력 2022-05-30 08:00:15
    • 수정2022-05-30 08:00:31
    취재K
한국도로공사 일부 직원이 소형 건설기계 면허를 허위로 취득한 뒤, 회사로부터 수당과 수강료를 타냈습니다. 수당 비리에 가담한 인원만 142명에 이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연루됐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비단 이번 일이 개인적 일탈로 치부되지 않으려면 사건의 이면을 살펴야합니다. 구조적인 문제를 짚는 게 재발 방지의 첫 걸음입니다. (편집자주)<br /><br />기사를 싣는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br />① "누이 좋고 매부 좋고"…공기업 재정 '숭숭'<br />② 142명이 학원 2곳에서 부정 면허…조직적 개입? 개인 일탈?<br />③ 없는 기계 면허수당 지급…도로공사 '조직' 기준 무엇입니까?<br /><strong>④ 소형건설기계 '면허 장사'…권고에도 10년째 제자리</strong><br />⑤ 공공기관 수당 손 보나?…추가 제보 잇따라<br />

■ 소형건설기계, 12시간 교육만 받으면 면허 발급…"과정부터 문제"

한국도로공사 직원 140여 명이 면허수당을 허위로 타낸 사건. 도로공사가 보유하지 않은 장비에도 수당을 지급하겠다는 내부 지침이 이번 사태를 키운 주요 원인입니다. (참고: “도공, 없는 장비에도 면허수당 지급”…비리로 얼룩진 수당) 또 다른 이유는 없는 걸까? KBS 취재팀은 소형건설기계 면허를 발급하는 과정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춘천의 한 건설기계 학원에 연락이 닿았습니다. 이 학원에선 3톤 미만 굴삭기 교육을 하고 있었습니다. 도로 공사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형 굴삭기였습니다. 2m가 넘는 높이에, 팔 길이는 3m가 넘었습니다. 굴삭기 끝에 달린 삽으로 2m 정도 길이의 철골을 눌러 봤습니다. 큰 힘을 들이지 않았는데도 이 철골은 금방 휘어졌습니다.

이 학원을 운영하는 인유진 씨는 소형 굴삭기의 위력을 보여주면서, 면허 취득 구조 자체를 문제 삼았습니다. 인 씨는 "현행 면허 취득 제도는 잘못됐다"라며 "애초에 왜 이틀 교육만으로 면허를 취득할 수 있게 한 건지, 의도를 모르겠다"고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또, "기계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이 자격증을 불법으로 받아가지고 현장 가서 했다고 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교육은 하루로는 안 되고, 일주일 정도는 시간을 들여서 완벽하게 마스터(숙달)를 할 수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시험 없이 면허를 쉽게 딸 수 있다 보니, 학원에는 아예 허위 발급이 가능하냐는 문의도 끊이지 않는다.
■"허위 발급 문의 끊이지 않아"…도로공사 직원들도 허점 이용

대형 건설기계 면허 취득 과정은 까다롭습니다. 대형 면허는 필기 시험도 보고, 실기 시험도 봐야 합니다. 난도도 상당한데요. 굴삭기운전기능사의 경우, 지난해 필기 시험 합격률은 67%, 실기 시험 합격률은 38%였습니다.

반면, 소형건설기계 면허 따기는 쉽습니다. 건설기계관리법 26조 4항을 보면, '소형 건설기계의 건설기계조종사면허의 경우에는 시ㆍ도지사가 지정한 교육기관에서 실시하는 소형 건설기계의 조종에 관한 교육과정의 이수로 제3항의 「국가기술자격법」에 따른 기술자격의 취득을 대신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교육 이수에 관한 내용은 건설기계관리법 시행규칙에 나와 있습니다. 우선 3톤 미만의 굴삭기나 로더, 지게차는 최소 12시간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교육은 이론이 6시간, 실기가 6시간으로 구성됩니다. 실기 교육은 하루 최대 4시간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 종목을 따려고 하는 경우, 이론 교육 6시간은 한 번만 받으면 됩니다.

예를 들어 3톤 미만 굴삭기와 지게차 면허를 따려면, 이론 교육 6시간에 굴삭기 실기 교육 6시간, 지게차 실기 교육 6시간까지 총 18시간 교육을 받으면 되는 겁니다. 이틀에서 사흘 정도면 교육은 모두 끝낼 수 있습니다. 이 렇게 교육을 받으면 이수증을 발급해 줍니다. 이수증을 가지고 지방자치단체의 면허 관련 부서에 제출하면 면허증이 발급됩니다.


단순한 구조임에도, 최소한의 요건조차 지키지 않으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습니다. 학원과 수강생이 짜고 교육 기록을 조작하면 얼마든지 허위 이수증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원도 원주의 한 건설기계학원에서 일하고 있는 홍기헌 씨는 "하루 만에 교육을 마칠 수 없는지 이런 것들을 물어보시는 분들이 간혹 계신다"며, "그분들한테는 이제 정확하게 법에 정해진 대로 정해진 교육을 다 이수하셔야 면허 취득이 가능하시다고 안내를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 면허를 부정하게 딴 도로공사 직원들, 교육 이수증을 허위로 발급해준 학원도 이런 허점을 악용해 사실상 '면허 장사'를 한 겁니다.

올해 3월에도 강원도 동해의 한 건설기계 학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출결 시스템을 조작해 교육 이수증을 허위로 발급해준 학원 원장이 경찰에 적발됐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10년 전 국토교통부에 소형건설기계면허 취득 과정을 개선하라고 권고했지만 바뀌지 않았다.
■ 권익위, 11년 전 면허 취득과정 개선 권고…여전히 제자리

이런 문제, 처음 불거진 게 아닙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1년 '6종 소형건설기계 조종사면허 투명성 높인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내용을 보면, '5톤 미만 불도저와 로더, 3톤 미만 지게차와 굴삭기, 소형공기압축기, 콘크리트펌프 등 소형건설기계 6종의 국가기술자격시험을 신설하는 방안을 국토부에 권고했다'고 돼 있습니다.

이런 권고가 나온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허위 이수증을 이용한 면허 부정 발급 때문이었습니다. 서재식 국민권익위원회 제도개선총괄과장은 "현장에서 교육 없이, 실습조차 없이 면허가 발급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한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권고는 권고로 남았을 뿐, 현장은 11년 전과 똑같습니다. 이러는 사이 소형건설기계 면허소지자는 많이 늘어났습니다. 지난해 9월을 기준으로 하면, 전국 소형건설기계 면허 누적 발급 건수는 67만 건이었습니다. 이는 5년 전보다 81% 증가한 수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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