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휴대전화라도”…외국인 희생자 멀고 먼 ‘귀향길’

입력 2022.11.04 (21:34) 수정 2022.11.04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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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봄날의 벚꽃과 흩날리는 가을의 낙엽.

외국인 희생자들이 남긴 사진 속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던 서울의 풍경들이 아름답게 담겨있었습니다.

누구보다 한국을 좋아했지만, 그날 이후 이들의 소중한 하루는 멈춰버렸고...

결국 가슴 아픈 모습으로 귀국길에 오르게 됐습니다.

하지만 돌아가기도 쉽지 않습니다.

전쟁 때문에 딸을 찾으러 올 수 없는 부모는 사진만이라도 찾아달라 호소했고, 자녀를 고국으로 데려갈 비용이 부족해 난처해진 가족들도 있습니다.

김세현, 신현욱 기자가 차례로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을 다니던 A씨는 '교환 학생' 으로 한국을 찾았습니다.

입국한 지 겨우 두 달.

이태원을 방문했다 참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김찬호/OO대학교 관계자 : "사고를 당했던 소식도 저희가 듣고 있어서 알고 있고…."]

러시아에 있는 A 씨 부모는 아직 딸을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항공편 대부분이 끊겨, 데리러 오는 것도, 시신을 운구해가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급한대로 유품이라도 챙겨 보내달라며, 주한 러시아대사관에 부탁했는데, 그 중에서도 '휴대전화기'를 꼭 찾아달라고 했습니다.

딸이 남긴 마지막 생의 흔적들을 전화기 속 '사진'으로라도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데니스 압드라쉬코프/주한 러시아대사관 총영사 : "자녀가 있다고 한다면, 그 소지품을 찾는 건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전화기는 전원이 꺼져있었습니다.

이태원 현장에서 분실됐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이 때부터, 전화기를 찾기 위한 작전 아닌 작전이 시작됐습니다.

유일한 단서는, A씨가 러시아에 남겨뒀던 휴대폰 '유심칩 사진' 한 장.

러시아대사관은 한국 경찰에 SOS를 쳤고, 경찰은 이 유심칩 정보로 통신사에 정보를 요청했습니다.

원래는 제공이 엄격히 제한된 정보지만, 유족의 애끓는 마음을 고려해 전향적인 법 해석이 이뤄졌고, 그렇게, 잃어버린 전화기를 특정해낼 수 있었습니다.

[김재환/경찰청 외사기획정보과 경위 : "다른 분실된 휴대전화는 모두 유실물 센터로 이관이 됐는데 딱 하나, 그 사망자가 사용하던 기종과 똑같은 핸드폰이 용산 경찰서에 남아있어서,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고인'이 된 주인과 전화기는 고국으로 함께 돌아갈 수 없습니다.

대사관 측은, '시신 운구'와 '전화기 배송' 방법을 따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세현 입니다.

[리포트]

"그냥 한국에 살고 싶었다", "무모하게 한국에 왔지만, 이런 내가 자랑스럽다"...

고려인 4세 박 율리아나 씨가 넉 달 전 SNS에 올린 글입니다.

마냥 좋기만 한 '모국'으로 어머니도 모셔오고 싶다 했지만 그 바람은, 끝내 이루지 못했습니다.

[김순배/지인 : "(한국을 뿌리라고 생각해) 잘 정착해서 러시아에 계신 어머니를 데려오고 싶은 계획도 있다고 들었거든요."]

박 씨는 결국 숨을 거둔 채로 '본인이 다시' 고려인 마을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하지만 시신을 러시아로 운구하는 데만 7백만 원 가량이 들어, 형편이 넉넉잖은 가족들은 막막함을 호소했습니다.

[쁘리마코바 따띠아나/지인 : "(시신을) 보내기 위해서 먼저 결제해야 하잖아요. 그만큼 아버님이 돈이 없죠."]

이 안타까운 사연에, 주한 러시아인 커뮤니티와 지인들이 발 벗고 '모금'에 나섰습니다.

[박 아루트르/아버지 : "금액이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위로의 마음을 전해주신 분들께 마음의 빚을 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돌아가게 된 박 씨.

하지만 그마저도 '느린 길'이 됐습니다.

전쟁으로 막힌 하늘길 대신에, 배편으로 '귀향'하게 됐고, 그렇게 박 씨는 오늘(4일) 동해항을 떠나서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습니다.

외국인 희생자들의 유족에게는 낯선 나라에서의 장례와 수습 절차 하나 하나가 고역입니다.

[조형식/서강대학교 한국어학원장 : "한국 학생들 같으면 장례식장을 바로 차려서 함께 했을텐데 외국인 학생들이다 보니까 가족들하고도 연락이 되어야 하는데 안되고..."]

이번 참사로 숨진 외국인은 26명, 그들 중 14명은 아직도 가족에게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신현욱입니다.

촬영기자:정형철 김중용 김민준 서다은 김현민/영상편집:김대범 위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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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 휴대전화라도”…외국인 희생자 멀고 먼 ‘귀향길’
    • 입력 2022-11-04 21:34:00
    • 수정2022-11-04 21:54:26
    뉴스 9
[앵커]

봄날의 벚꽃과 흩날리는 가을의 낙엽.

외국인 희생자들이 남긴 사진 속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던 서울의 풍경들이 아름답게 담겨있었습니다.

누구보다 한국을 좋아했지만, 그날 이후 이들의 소중한 하루는 멈춰버렸고...

결국 가슴 아픈 모습으로 귀국길에 오르게 됐습니다.

하지만 돌아가기도 쉽지 않습니다.

전쟁 때문에 딸을 찾으러 올 수 없는 부모는 사진만이라도 찾아달라 호소했고, 자녀를 고국으로 데려갈 비용이 부족해 난처해진 가족들도 있습니다.

김세현, 신현욱 기자가 차례로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을 다니던 A씨는 '교환 학생' 으로 한국을 찾았습니다.

입국한 지 겨우 두 달.

이태원을 방문했다 참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김찬호/OO대학교 관계자 : "사고를 당했던 소식도 저희가 듣고 있어서 알고 있고…."]

러시아에 있는 A 씨 부모는 아직 딸을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항공편 대부분이 끊겨, 데리러 오는 것도, 시신을 운구해가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급한대로 유품이라도 챙겨 보내달라며, 주한 러시아대사관에 부탁했는데, 그 중에서도 '휴대전화기'를 꼭 찾아달라고 했습니다.

딸이 남긴 마지막 생의 흔적들을 전화기 속 '사진'으로라도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데니스 압드라쉬코프/주한 러시아대사관 총영사 : "자녀가 있다고 한다면, 그 소지품을 찾는 건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전화기는 전원이 꺼져있었습니다.

이태원 현장에서 분실됐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이 때부터, 전화기를 찾기 위한 작전 아닌 작전이 시작됐습니다.

유일한 단서는, A씨가 러시아에 남겨뒀던 휴대폰 '유심칩 사진' 한 장.

러시아대사관은 한국 경찰에 SOS를 쳤고, 경찰은 이 유심칩 정보로 통신사에 정보를 요청했습니다.

원래는 제공이 엄격히 제한된 정보지만, 유족의 애끓는 마음을 고려해 전향적인 법 해석이 이뤄졌고, 그렇게, 잃어버린 전화기를 특정해낼 수 있었습니다.

[김재환/경찰청 외사기획정보과 경위 : "다른 분실된 휴대전화는 모두 유실물 센터로 이관이 됐는데 딱 하나, 그 사망자가 사용하던 기종과 똑같은 핸드폰이 용산 경찰서에 남아있어서,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고인'이 된 주인과 전화기는 고국으로 함께 돌아갈 수 없습니다.

대사관 측은, '시신 운구'와 '전화기 배송' 방법을 따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세현 입니다.

[리포트]

"그냥 한국에 살고 싶었다", "무모하게 한국에 왔지만, 이런 내가 자랑스럽다"...

고려인 4세 박 율리아나 씨가 넉 달 전 SNS에 올린 글입니다.

마냥 좋기만 한 '모국'으로 어머니도 모셔오고 싶다 했지만 그 바람은, 끝내 이루지 못했습니다.

[김순배/지인 : "(한국을 뿌리라고 생각해) 잘 정착해서 러시아에 계신 어머니를 데려오고 싶은 계획도 있다고 들었거든요."]

박 씨는 결국 숨을 거둔 채로 '본인이 다시' 고려인 마을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하지만 시신을 러시아로 운구하는 데만 7백만 원 가량이 들어, 형편이 넉넉잖은 가족들은 막막함을 호소했습니다.

[쁘리마코바 따띠아나/지인 : "(시신을) 보내기 위해서 먼저 결제해야 하잖아요. 그만큼 아버님이 돈이 없죠."]

이 안타까운 사연에, 주한 러시아인 커뮤니티와 지인들이 발 벗고 '모금'에 나섰습니다.

[박 아루트르/아버지 : "금액이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위로의 마음을 전해주신 분들께 마음의 빚을 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돌아가게 된 박 씨.

하지만 그마저도 '느린 길'이 됐습니다.

전쟁으로 막힌 하늘길 대신에, 배편으로 '귀향'하게 됐고, 그렇게 박 씨는 오늘(4일) 동해항을 떠나서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습니다.

외국인 희생자들의 유족에게는 낯선 나라에서의 장례와 수습 절차 하나 하나가 고역입니다.

[조형식/서강대학교 한국어학원장 : "한국 학생들 같으면 장례식장을 바로 차려서 함께 했을텐데 외국인 학생들이다 보니까 가족들하고도 연락이 되어야 하는데 안되고..."]

이번 참사로 숨진 외국인은 26명, 그들 중 14명은 아직도 가족에게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신현욱입니다.

촬영기자:정형철 김중용 김민준 서다은 김현민/영상편집:김대범 위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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