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영화의 화려한 부활

입력 2005.11.2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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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예술의 나라, 러시아의 영화계가 부활하고 있습니다. 무성영화 시대부터 이어지는 영화의 전통이 있었지만 90년대 소련이 무너지면서 영화의 전통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유가 상승의 여파로 오일달러가 쏟아져 들어오고 소재의 제한이 없어지면서 풍부한 예술적 기반을 바탕으로 할리우드에 못지않은 영화 제작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신성범 특파원이 전해왔습니다.

<리포트>
아르바트 거리는 러시아 문화계의 상징입니다. 아르바트의 아이들이 자라난 이곳은 이제 카지노와 백화점이 진을 치고 있는 모스크바의 명동으로 변했습니다. 카지노 건너편의 영화관... 관객들이 숨을 죽인 채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있습니다. 보고 나오는 관객들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녹취> "감동적입니다.영화를 보면서 울었습니다."

<녹취> "우리 역사와 삶,그 자체입니다."

러시아 영화사에 새로운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는 영화, '제9중대'입니다. 이 영화는 시베리아의 농촌출신 젊은이 7명이 여자 친구,가족과 헤어져 군에 입대하는 장면부터 시작됩니다.

러시아가 아직도 소련으로 불리던 1988년이 무대입니다. 세상물정 모르던 열여덟,열아홉살 농촌 청소년들이 소련의 군인으로 바뀌어 갑니다. 해발 3천미터가 넘는 이국땅 아프가니스탄... 고지위 참호에서 소련군의 보급로를 지키는 것이 이들의 임무입니다.

상대는 소련에 저항하는 아프가니스탄 게릴라,무자헤딘입니다. 황량한 산악지대에서 간헐적으로 전투가 이어지고 마침내 운명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무자헤딘의 대규모 공격이 시작되고 중과부적,병사들은 하나씩 쓰러집니다. 살아남은 병사는 단 한명, 뒤늦게 헬리콥터를 타고 나타난 지휘관의 말은 충격적입니다.

<녹취>병사: "제9중대,임무를 완수했습니다. 보급로를 확보했습니다"

<녹취>연대장: "예정됐던 차량행렬은 취소됐다. 통신은 그동안 왜 두절되었나? 명령을 받지 못했나?"

전쟁이 끝났는데도 철수 명령조차 받지 못한채 허망하게 죽은 병사들의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라 소련군 제345 공수연대 제9중대가 겪었던 실화입니다. 1979년부터 10년동안 만 5천명의 군인이 숨진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소련 시절 내내 잊혀진 전쟁이었습니다.

<녹취>표도르 본다르축 (감독겸 주연): "10년동안 우리 청년들을 아프가니스탄에 보낸 사실조차 잊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읻혀진 우리 세대에게 바치는 노래입니다."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는지 그동안의 금기에 도전한 이 영화는 개봉 한달만에 관객 500만명을 동원하면서 지금까지의 모든 기록을 갱신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관객 가운데 한명입니다. 감독과 배우들을 자기의 사저로 초청해 국방장관을 옆자리에 앉힌채 이 영화를 함께 봤습니다.

'제9중대'는 러시아 영화의 부흥을 알리는 가장 최근의 사례입니다. 선과 악의 대결을 주제로 한 판타지 영화 '야경꾼'의 성공이 신호탄이었습니다. 그 후 1년새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의 기록을 뛰어넘는 러시아 국산 영화가 3편이나 등장했습니다.

<녹취>세르게이 (러시아 문화영화청 차관): "현재 러시아 국산영화의 점유율이 45%를 넘었습니다."

영화 '9중대'의 감독 본다르축은 소련 영화계의 전설이었던 세르게이 본다르축의 아들입니다. 세르게이의 '전쟁과 평화'는 12만명의 군인을 엑스트라로 등장시켜 나폴레옹군과 러시아군의 격돌을 400분,7시간이 넘게 담아낸 대작입니다.

러시아 영화의 영광스런 역사는 모스 필름,모스크바 영화 제작소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전성 시대 이 곳에서는 한해 수백편의 영화가 쏟아졌습니다. 평범한 세 여자의 일과 사랑을 소재로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곳도 모스필름입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모스필름은 황무지였습니다.

러시아 영화의 산실 모스필름은 몇년전만해도 잡초만 무성했다고 합니다. 거의 사망선고를 받았던 러시아 영화가 최근 2,3년 사이 부활하고 있습니다. 스튜디오에도 꺼졌던 조명이 다시 켜지고 카메라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꽃에서 태어난 작고 귀여운 공주와 요정들... 안데르센의 동화 '엄지공주' 이야기입니다.

<녹취>네차에프 (영화감독): "'피노키오'가 제작된 것이 30년전, '빨간모자'는 28년전의 일입니다. 그 후 어린이 영화는 없었습니다."

8,9년 전만 해도 러시아 영화는 한해 열편 안팎이었지만 올해는 모스필름 한 곳에서만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 150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녹취>세르게이 (러시아문화영화청 차관): "내년도 영화 진흥 국가 예산이 30억 루블이 넘게 잡혀 있습니다. 미화로는 1억 천만달러입니다."

예술의 뿌리가 깊은 나라답게 러시아 영화는 음악적인 요소를 강조합니다. 모스 필름안에는 대규모 녹음실이 별도로 있습니다.

<녹취>에고로프 (모스필름 음향감독): "관현악단 120명과 합창단이 동시에 연주할 수 있습니다."

안나 할머니는 손끝의 예술가입니다. 각종 잡동사니를 이용해 모든 종류의 소리를 만들어 내는 효과음의 달인입니다.

<녹취>안나 멜칙 (효과음 제작 50년): "매일 소리를 만들어 시험을 통과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직업입니다."

15살때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소리의 세계로 빠져든지 50년, 지금은 아들이 4대째 가업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장인 정신에 투철한 전문가들... 국산영화를 아끼는 관객들.... 실험 정신에 넘치는 젊은 감독들 그리고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이 러시아 영화를 되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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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영화의 화려한 부활
    • 입력 2005-11-25 10:50:00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예술의 나라, 러시아의 영화계가 부활하고 있습니다. 무성영화 시대부터 이어지는 영화의 전통이 있었지만 90년대 소련이 무너지면서 영화의 전통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유가 상승의 여파로 오일달러가 쏟아져 들어오고 소재의 제한이 없어지면서 풍부한 예술적 기반을 바탕으로 할리우드에 못지않은 영화 제작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신성범 특파원이 전해왔습니다. <리포트> 아르바트 거리는 러시아 문화계의 상징입니다. 아르바트의 아이들이 자라난 이곳은 이제 카지노와 백화점이 진을 치고 있는 모스크바의 명동으로 변했습니다. 카지노 건너편의 영화관... 관객들이 숨을 죽인 채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있습니다. 보고 나오는 관객들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녹취> "감동적입니다.영화를 보면서 울었습니다." <녹취> "우리 역사와 삶,그 자체입니다." 러시아 영화사에 새로운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는 영화, '제9중대'입니다. 이 영화는 시베리아의 농촌출신 젊은이 7명이 여자 친구,가족과 헤어져 군에 입대하는 장면부터 시작됩니다. 러시아가 아직도 소련으로 불리던 1988년이 무대입니다. 세상물정 모르던 열여덟,열아홉살 농촌 청소년들이 소련의 군인으로 바뀌어 갑니다. 해발 3천미터가 넘는 이국땅 아프가니스탄... 고지위 참호에서 소련군의 보급로를 지키는 것이 이들의 임무입니다. 상대는 소련에 저항하는 아프가니스탄 게릴라,무자헤딘입니다. 황량한 산악지대에서 간헐적으로 전투가 이어지고 마침내 운명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무자헤딘의 대규모 공격이 시작되고 중과부적,병사들은 하나씩 쓰러집니다. 살아남은 병사는 단 한명, 뒤늦게 헬리콥터를 타고 나타난 지휘관의 말은 충격적입니다. <녹취>병사: "제9중대,임무를 완수했습니다. 보급로를 확보했습니다" <녹취>연대장: "예정됐던 차량행렬은 취소됐다. 통신은 그동안 왜 두절되었나? 명령을 받지 못했나?" 전쟁이 끝났는데도 철수 명령조차 받지 못한채 허망하게 죽은 병사들의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라 소련군 제345 공수연대 제9중대가 겪었던 실화입니다. 1979년부터 10년동안 만 5천명의 군인이 숨진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소련 시절 내내 잊혀진 전쟁이었습니다. <녹취>표도르 본다르축 (감독겸 주연): "10년동안 우리 청년들을 아프가니스탄에 보낸 사실조차 잊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읻혀진 우리 세대에게 바치는 노래입니다."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는지 그동안의 금기에 도전한 이 영화는 개봉 한달만에 관객 500만명을 동원하면서 지금까지의 모든 기록을 갱신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관객 가운데 한명입니다. 감독과 배우들을 자기의 사저로 초청해 국방장관을 옆자리에 앉힌채 이 영화를 함께 봤습니다. '제9중대'는 러시아 영화의 부흥을 알리는 가장 최근의 사례입니다. 선과 악의 대결을 주제로 한 판타지 영화 '야경꾼'의 성공이 신호탄이었습니다. 그 후 1년새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의 기록을 뛰어넘는 러시아 국산 영화가 3편이나 등장했습니다. <녹취>세르게이 (러시아 문화영화청 차관): "현재 러시아 국산영화의 점유율이 45%를 넘었습니다." 영화 '9중대'의 감독 본다르축은 소련 영화계의 전설이었던 세르게이 본다르축의 아들입니다. 세르게이의 '전쟁과 평화'는 12만명의 군인을 엑스트라로 등장시켜 나폴레옹군과 러시아군의 격돌을 400분,7시간이 넘게 담아낸 대작입니다. 러시아 영화의 영광스런 역사는 모스 필름,모스크바 영화 제작소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전성 시대 이 곳에서는 한해 수백편의 영화가 쏟아졌습니다. 평범한 세 여자의 일과 사랑을 소재로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곳도 모스필름입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모스필름은 황무지였습니다. 러시아 영화의 산실 모스필름은 몇년전만해도 잡초만 무성했다고 합니다. 거의 사망선고를 받았던 러시아 영화가 최근 2,3년 사이 부활하고 있습니다. 스튜디오에도 꺼졌던 조명이 다시 켜지고 카메라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꽃에서 태어난 작고 귀여운 공주와 요정들... 안데르센의 동화 '엄지공주' 이야기입니다. <녹취>네차에프 (영화감독): "'피노키오'가 제작된 것이 30년전, '빨간모자'는 28년전의 일입니다. 그 후 어린이 영화는 없었습니다." 8,9년 전만 해도 러시아 영화는 한해 열편 안팎이었지만 올해는 모스필름 한 곳에서만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 150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녹취>세르게이 (러시아문화영화청 차관): "내년도 영화 진흥 국가 예산이 30억 루블이 넘게 잡혀 있습니다. 미화로는 1억 천만달러입니다." 예술의 뿌리가 깊은 나라답게 러시아 영화는 음악적인 요소를 강조합니다. 모스 필름안에는 대규모 녹음실이 별도로 있습니다. <녹취>에고로프 (모스필름 음향감독): "관현악단 120명과 합창단이 동시에 연주할 수 있습니다." 안나 할머니는 손끝의 예술가입니다. 각종 잡동사니를 이용해 모든 종류의 소리를 만들어 내는 효과음의 달인입니다. <녹취>안나 멜칙 (효과음 제작 50년): "매일 소리를 만들어 시험을 통과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직업입니다." 15살때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소리의 세계로 빠져든지 50년, 지금은 아들이 4대째 가업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장인 정신에 투철한 전문가들... 국산영화를 아끼는 관객들.... 실험 정신에 넘치는 젊은 감독들 그리고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이 러시아 영화를 되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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