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해안 ‘미확인 日 군사시설’ 발굴
입력 2025.08.11 (19:43)
수정 2025.08.1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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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올해는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독립을 되찾은지 8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일본 패전 직전인 1945년 초 일본군은 전남 서남해안에 광범위하게 진지를 구축했습니다.
취재진은 당시 전남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육군 150사단의 진지배치도 전체를 확보해 서남해안 군사시설 추적에 나섰는데요.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던 다수의 시설을 처음으로 발견했습니다.
일제가 서남해안을 전쟁기지화한 명확한 근거들입니다.
연합군이 상륙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주요경비지역으로 설정한 사실도 문서로 확인했습니다.
[와카쓰키 신지/전후사(戰後史) 회의 마쓰에 대표 : "150사단은 본토결전용으로 만든 사단입니다. 미군이 일본 본토에 침공해 오고, 그와 동시에 한국에도 군대를 보낼 것으로 예상한 겁니다."]
일제 해군항공기지가 있었던 광주도 다르지 않습니다.
광주 서구 일대에서 폭탄고와 연료고 시설에 이어 정체불명의 크고 작은 지하동굴이 속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취재 결과, 지금도 광주 도심에 대규모 군사시설이 그대로 묻혀 있을 가능성도 적지 않았습니다.
KBS광주와 목포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일제 군사시설의 존재와 배경을 추적하는 기획보도를 시작합니다.
취재 과정에서 다수의 시설을 찾아내 영상으로 기록했고, 여러 문서와 증언, 일본 현지 취재를 통해 그 실체에 근접했습니다.
오늘은 첫번째 순서로 서남해안 일대에서 찾아낸 일제 군사시설들 단독 보도합니다.
[리포트]
연륙교 공사가 한창인 전남 서남해안.
목포항으로 진입하는 지점에 작은 섬 용출도가 나타납니다.
갯바위 위쪽 수풀을 헤치며 나아가길 30분가량.
몸을 웅크리고 겨우 들어갈 만한 굴이 보입니다.
반대쪽에서 들어오는 불빛을 따라가길 잠시, 아치형 천장에 환기구가 뚫린 콘크리트 구조의 사격실이 나타납니다.
해안가가 내다보이는 총안 위로는 폭격에 대비한 듯 2미터는 되는 콘크리트가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기쿠치 미노루/(일본) 전쟁유적 보존 네트워크 공동대표 : "쇼와20년(1945년) 전후의 일이니까 이 정도의 재료를 사용한 건 상당히 강력한 진지를 구축했다는 거죠."]
일본군 진지배치도의 표기를 계속해서 따라가봤습니다.
반대쪽 해안 수풀 속에도 콘크리트 진지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 해안가 진지는 바다에서는 발견하기 쉽지 않지만 진지에서는 바다쪽이 훤히 내다보입니다.
진도 쉬미항에서 뱃길로 한 시간.
일본군 전투기를 만들기 위해 명반석을 채취한 광산이 있는 가사돕니다.
백 미터가량 이어진 동굴을 지나 인근 수풀을 뒤지자 원형으로 잘 다듬어진 공간이 나타납니다.
지휘소로 표기된 위치입니다.
[신웅주/건축역사학회 학술이사 : "수평으로 오다가 이 지점에서 딱 수직으로 떨어지잖아요. 여기다가 정을 때려서 한겹 한겹 떼내는 건 쉬운데 수직으로 깎아내는 건 상당히 어렵죠."]
곳곳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했던 구멍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기쿠치 미노루/(일본) 전쟁유적 보존 네트워크 공동대표 : "육군 이와하나 화약 제조소에서 만든 다이너마이트 입니다. 육군과 해군이 갈등이 심해서 상호 물자를 공유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바다쪽을 향하는 경사면에 진지들이 집중돼 있고, 콘크리트 환기 시설과 화약고도 발견했습니다.
둘레길에서 불과 20미터 가량 떨어진 일본군의 진지입니다.
콘크리트 일부가 떨어져나가고 내부에는 균열도 보이지만 80년 전 당시 모습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습니다.
서남해안 전쟁기지화의 증거인 일제 군사시설들.
80년 전 일본군 문서에 기록된 시설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KBS 뉴스 지종익입니다.
[리포트]
80년 전 일본군이 작성한 진도 가사도의 진지 배치도.
일제가 규석을 캐냈던 십자동굴 옆으로 경기관총과 중기관총 배치 장소, 지휘소 위치가 비교적 자세히 남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섬마을 주민들조차 자세한 진지의 위치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취재팀이 입수한 일본 육군 150사단의 진지 배치도는 백여장.
지도에는 전남 서남해안에 3백여개, 전북 고창 해안 등에도 백여개가 넘는 진지가 기록돼 있습니다.
진지 위치를 보면, 당시 일본군이 미군 상륙에 대비해 해안가에 집중적으로 방어용 진지를 구축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신주백/연세대 국학연구원 전문연구원 : "광주·전남 지방에 있는 동굴과 해안가 동굴들은 열이면 열은 그 용도입니다. 미군 상륙을 저지하기 위한 기지(입니다)."]
섬 주민들은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일제 군사시설이 곳곳에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박장율/목포 장좌도 76년 거주 : "훤해요 굴이. 위에는 시멘트 콘크리트 하고 공기통 그 위로 뚫어놓고... 앉혀놓고 사격한 자리. 거기는 이쪽 코스를 보고 사격한 자리죠."]
[천상용/목포 율도 주민 : "(용출도에) 나무하러 다니면서 보면 저 위에 굴이 두 개 있어요. 바닥을 깔았지. 거기서 자려고. 자게끔 해야 사격하지. 여기 아주 큰 도로거든요 목포로 들어가는..."]
취재진이 확인한 진지들은 150사단이 작성한 형태별 진지 표준 설계도와도 대부분 일치했습니다.
일본 군사시설은 강제동원으로 건설한 시설물이 많은 만큼 건설 배경과 그 과정에 대한 조사도 필요해 보입니다.
KBS 뉴스 이성각입니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독립을 되찾은지 8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일본 패전 직전인 1945년 초 일본군은 전남 서남해안에 광범위하게 진지를 구축했습니다.
취재진은 당시 전남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육군 150사단의 진지배치도 전체를 확보해 서남해안 군사시설 추적에 나섰는데요.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던 다수의 시설을 처음으로 발견했습니다.
일제가 서남해안을 전쟁기지화한 명확한 근거들입니다.
연합군이 상륙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주요경비지역으로 설정한 사실도 문서로 확인했습니다.
[와카쓰키 신지/전후사(戰後史) 회의 마쓰에 대표 : "150사단은 본토결전용으로 만든 사단입니다. 미군이 일본 본토에 침공해 오고, 그와 동시에 한국에도 군대를 보낼 것으로 예상한 겁니다."]
일제 해군항공기지가 있었던 광주도 다르지 않습니다.
광주 서구 일대에서 폭탄고와 연료고 시설에 이어 정체불명의 크고 작은 지하동굴이 속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취재 결과, 지금도 광주 도심에 대규모 군사시설이 그대로 묻혀 있을 가능성도 적지 않았습니다.
KBS광주와 목포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일제 군사시설의 존재와 배경을 추적하는 기획보도를 시작합니다.
취재 과정에서 다수의 시설을 찾아내 영상으로 기록했고, 여러 문서와 증언, 일본 현지 취재를 통해 그 실체에 근접했습니다.
오늘은 첫번째 순서로 서남해안 일대에서 찾아낸 일제 군사시설들 단독 보도합니다.
[리포트]
연륙교 공사가 한창인 전남 서남해안.
목포항으로 진입하는 지점에 작은 섬 용출도가 나타납니다.
갯바위 위쪽 수풀을 헤치며 나아가길 30분가량.
몸을 웅크리고 겨우 들어갈 만한 굴이 보입니다.
반대쪽에서 들어오는 불빛을 따라가길 잠시, 아치형 천장에 환기구가 뚫린 콘크리트 구조의 사격실이 나타납니다.
해안가가 내다보이는 총안 위로는 폭격에 대비한 듯 2미터는 되는 콘크리트가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기쿠치 미노루/(일본) 전쟁유적 보존 네트워크 공동대표 : "쇼와20년(1945년) 전후의 일이니까 이 정도의 재료를 사용한 건 상당히 강력한 진지를 구축했다는 거죠."]
일본군 진지배치도의 표기를 계속해서 따라가봤습니다.
반대쪽 해안 수풀 속에도 콘크리트 진지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 해안가 진지는 바다에서는 발견하기 쉽지 않지만 진지에서는 바다쪽이 훤히 내다보입니다.
진도 쉬미항에서 뱃길로 한 시간.
일본군 전투기를 만들기 위해 명반석을 채취한 광산이 있는 가사돕니다.
백 미터가량 이어진 동굴을 지나 인근 수풀을 뒤지자 원형으로 잘 다듬어진 공간이 나타납니다.
지휘소로 표기된 위치입니다.
[신웅주/건축역사학회 학술이사 : "수평으로 오다가 이 지점에서 딱 수직으로 떨어지잖아요. 여기다가 정을 때려서 한겹 한겹 떼내는 건 쉬운데 수직으로 깎아내는 건 상당히 어렵죠."]
곳곳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했던 구멍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기쿠치 미노루/(일본) 전쟁유적 보존 네트워크 공동대표 : "육군 이와하나 화약 제조소에서 만든 다이너마이트 입니다. 육군과 해군이 갈등이 심해서 상호 물자를 공유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바다쪽을 향하는 경사면에 진지들이 집중돼 있고, 콘크리트 환기 시설과 화약고도 발견했습니다.
둘레길에서 불과 20미터 가량 떨어진 일본군의 진지입니다.
콘크리트 일부가 떨어져나가고 내부에는 균열도 보이지만 80년 전 당시 모습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습니다.
서남해안 전쟁기지화의 증거인 일제 군사시설들.
80년 전 일본군 문서에 기록된 시설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KBS 뉴스 지종익입니다.
[리포트]
80년 전 일본군이 작성한 진도 가사도의 진지 배치도.
일제가 규석을 캐냈던 십자동굴 옆으로 경기관총과 중기관총 배치 장소, 지휘소 위치가 비교적 자세히 남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섬마을 주민들조차 자세한 진지의 위치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취재팀이 입수한 일본 육군 150사단의 진지 배치도는 백여장.
지도에는 전남 서남해안에 3백여개, 전북 고창 해안 등에도 백여개가 넘는 진지가 기록돼 있습니다.
진지 위치를 보면, 당시 일본군이 미군 상륙에 대비해 해안가에 집중적으로 방어용 진지를 구축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신주백/연세대 국학연구원 전문연구원 : "광주·전남 지방에 있는 동굴과 해안가 동굴들은 열이면 열은 그 용도입니다. 미군 상륙을 저지하기 위한 기지(입니다)."]
섬 주민들은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일제 군사시설이 곳곳에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박장율/목포 장좌도 76년 거주 : "훤해요 굴이. 위에는 시멘트 콘크리트 하고 공기통 그 위로 뚫어놓고... 앉혀놓고 사격한 자리. 거기는 이쪽 코스를 보고 사격한 자리죠."]
[천상용/목포 율도 주민 : "(용출도에) 나무하러 다니면서 보면 저 위에 굴이 두 개 있어요. 바닥을 깔았지. 거기서 자려고. 자게끔 해야 사격하지. 여기 아주 큰 도로거든요 목포로 들어가는..."]
취재진이 확인한 진지들은 150사단이 작성한 형태별 진지 표준 설계도와도 대부분 일치했습니다.
일본 군사시설은 강제동원으로 건설한 시설물이 많은 만큼 건설 배경과 그 과정에 대한 조사도 필요해 보입니다.
KBS 뉴스 이성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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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남해안 ‘미확인 日 군사시설’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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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8-11 19:43:44
- 수정2025-08-11 20:31:26

[기자]
올해는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독립을 되찾은지 8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일본 패전 직전인 1945년 초 일본군은 전남 서남해안에 광범위하게 진지를 구축했습니다.
취재진은 당시 전남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육군 150사단의 진지배치도 전체를 확보해 서남해안 군사시설 추적에 나섰는데요.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던 다수의 시설을 처음으로 발견했습니다.
일제가 서남해안을 전쟁기지화한 명확한 근거들입니다.
연합군이 상륙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주요경비지역으로 설정한 사실도 문서로 확인했습니다.
[와카쓰키 신지/전후사(戰後史) 회의 마쓰에 대표 : "150사단은 본토결전용으로 만든 사단입니다. 미군이 일본 본토에 침공해 오고, 그와 동시에 한국에도 군대를 보낼 것으로 예상한 겁니다."]
일제 해군항공기지가 있었던 광주도 다르지 않습니다.
광주 서구 일대에서 폭탄고와 연료고 시설에 이어 정체불명의 크고 작은 지하동굴이 속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취재 결과, 지금도 광주 도심에 대규모 군사시설이 그대로 묻혀 있을 가능성도 적지 않았습니다.
KBS광주와 목포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일제 군사시설의 존재와 배경을 추적하는 기획보도를 시작합니다.
취재 과정에서 다수의 시설을 찾아내 영상으로 기록했고, 여러 문서와 증언, 일본 현지 취재를 통해 그 실체에 근접했습니다.
오늘은 첫번째 순서로 서남해안 일대에서 찾아낸 일제 군사시설들 단독 보도합니다.
[리포트]
연륙교 공사가 한창인 전남 서남해안.
목포항으로 진입하는 지점에 작은 섬 용출도가 나타납니다.
갯바위 위쪽 수풀을 헤치며 나아가길 30분가량.
몸을 웅크리고 겨우 들어갈 만한 굴이 보입니다.
반대쪽에서 들어오는 불빛을 따라가길 잠시, 아치형 천장에 환기구가 뚫린 콘크리트 구조의 사격실이 나타납니다.
해안가가 내다보이는 총안 위로는 폭격에 대비한 듯 2미터는 되는 콘크리트가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기쿠치 미노루/(일본) 전쟁유적 보존 네트워크 공동대표 : "쇼와20년(1945년) 전후의 일이니까 이 정도의 재료를 사용한 건 상당히 강력한 진지를 구축했다는 거죠."]
일본군 진지배치도의 표기를 계속해서 따라가봤습니다.
반대쪽 해안 수풀 속에도 콘크리트 진지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 해안가 진지는 바다에서는 발견하기 쉽지 않지만 진지에서는 바다쪽이 훤히 내다보입니다.
진도 쉬미항에서 뱃길로 한 시간.
일본군 전투기를 만들기 위해 명반석을 채취한 광산이 있는 가사돕니다.
백 미터가량 이어진 동굴을 지나 인근 수풀을 뒤지자 원형으로 잘 다듬어진 공간이 나타납니다.
지휘소로 표기된 위치입니다.
[신웅주/건축역사학회 학술이사 : "수평으로 오다가 이 지점에서 딱 수직으로 떨어지잖아요. 여기다가 정을 때려서 한겹 한겹 떼내는 건 쉬운데 수직으로 깎아내는 건 상당히 어렵죠."]
곳곳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했던 구멍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기쿠치 미노루/(일본) 전쟁유적 보존 네트워크 공동대표 : "육군 이와하나 화약 제조소에서 만든 다이너마이트 입니다. 육군과 해군이 갈등이 심해서 상호 물자를 공유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바다쪽을 향하는 경사면에 진지들이 집중돼 있고, 콘크리트 환기 시설과 화약고도 발견했습니다.
둘레길에서 불과 20미터 가량 떨어진 일본군의 진지입니다.
콘크리트 일부가 떨어져나가고 내부에는 균열도 보이지만 80년 전 당시 모습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습니다.
서남해안 전쟁기지화의 증거인 일제 군사시설들.
80년 전 일본군 문서에 기록된 시설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KBS 뉴스 지종익입니다.
[리포트]
80년 전 일본군이 작성한 진도 가사도의 진지 배치도.
일제가 규석을 캐냈던 십자동굴 옆으로 경기관총과 중기관총 배치 장소, 지휘소 위치가 비교적 자세히 남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섬마을 주민들조차 자세한 진지의 위치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취재팀이 입수한 일본 육군 150사단의 진지 배치도는 백여장.
지도에는 전남 서남해안에 3백여개, 전북 고창 해안 등에도 백여개가 넘는 진지가 기록돼 있습니다.
진지 위치를 보면, 당시 일본군이 미군 상륙에 대비해 해안가에 집중적으로 방어용 진지를 구축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신주백/연세대 국학연구원 전문연구원 : "광주·전남 지방에 있는 동굴과 해안가 동굴들은 열이면 열은 그 용도입니다. 미군 상륙을 저지하기 위한 기지(입니다)."]
섬 주민들은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일제 군사시설이 곳곳에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박장율/목포 장좌도 76년 거주 : "훤해요 굴이. 위에는 시멘트 콘크리트 하고 공기통 그 위로 뚫어놓고... 앉혀놓고 사격한 자리. 거기는 이쪽 코스를 보고 사격한 자리죠."]
[천상용/목포 율도 주민 : "(용출도에) 나무하러 다니면서 보면 저 위에 굴이 두 개 있어요. 바닥을 깔았지. 거기서 자려고. 자게끔 해야 사격하지. 여기 아주 큰 도로거든요 목포로 들어가는..."]
취재진이 확인한 진지들은 150사단이 작성한 형태별 진지 표준 설계도와도 대부분 일치했습니다.
일본 군사시설은 강제동원으로 건설한 시설물이 많은 만큼 건설 배경과 그 과정에 대한 조사도 필요해 보입니다.
KBS 뉴스 이성각입니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독립을 되찾은지 8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일본 패전 직전인 1945년 초 일본군은 전남 서남해안에 광범위하게 진지를 구축했습니다.
취재진은 당시 전남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육군 150사단의 진지배치도 전체를 확보해 서남해안 군사시설 추적에 나섰는데요.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던 다수의 시설을 처음으로 발견했습니다.
일제가 서남해안을 전쟁기지화한 명확한 근거들입니다.
연합군이 상륙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주요경비지역으로 설정한 사실도 문서로 확인했습니다.
[와카쓰키 신지/전후사(戰後史) 회의 마쓰에 대표 : "150사단은 본토결전용으로 만든 사단입니다. 미군이 일본 본토에 침공해 오고, 그와 동시에 한국에도 군대를 보낼 것으로 예상한 겁니다."]
일제 해군항공기지가 있었던 광주도 다르지 않습니다.
광주 서구 일대에서 폭탄고와 연료고 시설에 이어 정체불명의 크고 작은 지하동굴이 속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취재 결과, 지금도 광주 도심에 대규모 군사시설이 그대로 묻혀 있을 가능성도 적지 않았습니다.
KBS광주와 목포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일제 군사시설의 존재와 배경을 추적하는 기획보도를 시작합니다.
취재 과정에서 다수의 시설을 찾아내 영상으로 기록했고, 여러 문서와 증언, 일본 현지 취재를 통해 그 실체에 근접했습니다.
오늘은 첫번째 순서로 서남해안 일대에서 찾아낸 일제 군사시설들 단독 보도합니다.
[리포트]
연륙교 공사가 한창인 전남 서남해안.
목포항으로 진입하는 지점에 작은 섬 용출도가 나타납니다.
갯바위 위쪽 수풀을 헤치며 나아가길 30분가량.
몸을 웅크리고 겨우 들어갈 만한 굴이 보입니다.
반대쪽에서 들어오는 불빛을 따라가길 잠시, 아치형 천장에 환기구가 뚫린 콘크리트 구조의 사격실이 나타납니다.
해안가가 내다보이는 총안 위로는 폭격에 대비한 듯 2미터는 되는 콘크리트가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기쿠치 미노루/(일본) 전쟁유적 보존 네트워크 공동대표 : "쇼와20년(1945년) 전후의 일이니까 이 정도의 재료를 사용한 건 상당히 강력한 진지를 구축했다는 거죠."]
일본군 진지배치도의 표기를 계속해서 따라가봤습니다.
반대쪽 해안 수풀 속에도 콘크리트 진지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 해안가 진지는 바다에서는 발견하기 쉽지 않지만 진지에서는 바다쪽이 훤히 내다보입니다.
진도 쉬미항에서 뱃길로 한 시간.
일본군 전투기를 만들기 위해 명반석을 채취한 광산이 있는 가사돕니다.
백 미터가량 이어진 동굴을 지나 인근 수풀을 뒤지자 원형으로 잘 다듬어진 공간이 나타납니다.
지휘소로 표기된 위치입니다.
[신웅주/건축역사학회 학술이사 : "수평으로 오다가 이 지점에서 딱 수직으로 떨어지잖아요. 여기다가 정을 때려서 한겹 한겹 떼내는 건 쉬운데 수직으로 깎아내는 건 상당히 어렵죠."]
곳곳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했던 구멍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기쿠치 미노루/(일본) 전쟁유적 보존 네트워크 공동대표 : "육군 이와하나 화약 제조소에서 만든 다이너마이트 입니다. 육군과 해군이 갈등이 심해서 상호 물자를 공유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바다쪽을 향하는 경사면에 진지들이 집중돼 있고, 콘크리트 환기 시설과 화약고도 발견했습니다.
둘레길에서 불과 20미터 가량 떨어진 일본군의 진지입니다.
콘크리트 일부가 떨어져나가고 내부에는 균열도 보이지만 80년 전 당시 모습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습니다.
서남해안 전쟁기지화의 증거인 일제 군사시설들.
80년 전 일본군 문서에 기록된 시설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KBS 뉴스 지종익입니다.
[리포트]
80년 전 일본군이 작성한 진도 가사도의 진지 배치도.
일제가 규석을 캐냈던 십자동굴 옆으로 경기관총과 중기관총 배치 장소, 지휘소 위치가 비교적 자세히 남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섬마을 주민들조차 자세한 진지의 위치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취재팀이 입수한 일본 육군 150사단의 진지 배치도는 백여장.
지도에는 전남 서남해안에 3백여개, 전북 고창 해안 등에도 백여개가 넘는 진지가 기록돼 있습니다.
진지 위치를 보면, 당시 일본군이 미군 상륙에 대비해 해안가에 집중적으로 방어용 진지를 구축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신주백/연세대 국학연구원 전문연구원 : "광주·전남 지방에 있는 동굴과 해안가 동굴들은 열이면 열은 그 용도입니다. 미군 상륙을 저지하기 위한 기지(입니다)."]
섬 주민들은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일제 군사시설이 곳곳에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박장율/목포 장좌도 76년 거주 : "훤해요 굴이. 위에는 시멘트 콘크리트 하고 공기통 그 위로 뚫어놓고... 앉혀놓고 사격한 자리. 거기는 이쪽 코스를 보고 사격한 자리죠."]
[천상용/목포 율도 주민 : "(용출도에) 나무하러 다니면서 보면 저 위에 굴이 두 개 있어요. 바닥을 깔았지. 거기서 자려고. 자게끔 해야 사격하지. 여기 아주 큰 도로거든요 목포로 들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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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종익 기자 jig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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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각 기자 dril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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