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일기·육성 최초 공개 ‘광주항공기지’ 생생히 담겨

입력 2025.08.15 (08:28) 수정 2025.08.15 (09:3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취재진은 광주 해군항공대에서 생활했던 이들의 일기와 육성도 확보했습니다.

당시 광주항공기지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생생한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지종익 기자의 단독보도입니다.

[리포트]

폭탄이 등장하는 사진 속 주인공은 해군항공대의 교관이었던 고바야시.

그는 일기 맨 뒤쪽에 붙인 사진 아래, 250킬로그램 훈련용 폭탄, 내부는 시멘트라고 썼습니다.

광주에 도착한 순간도 생생히 기록했습니다.

[이즈미 평화학습센터 가이드/일기 낭독 : "정면 아득히 광주기지가 계산대로 펼쳐진 건 기뻤다. 들었던 그대로의 비행장이다."]

상공을 돌며 광주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했고,

["광주시의 반대에 송정리라는 작은 마을이 있어서 그 상공도 통과했다. 빨간 벽돌 구조의 굴뚝이 보였다. 양조장인듯하다."]

함께 날아 온 비행기 46기와 함께 광주항공기지에 착륙했습니다.

["전부 46기가 착륙하고 내 비행기부터 순서대로 2열로 늘어서 프로펠러를 정지."]

취재팀은 일본인 연구자가 진행한 일제 광주항공대원의 인터뷰 육성도 확보했습니다.

["여수항으로 가서, 거기서 이번에는 철도로 광주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이즈미해군항공대에서 광주로 온 인원이 천명은 됐고, 조선인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즈미에서 광주로 간 건 수백 명 정도였습니까?) 그건 천 명은 넘었습니다. (조선인 병사는 어느 정도였습니까?) 절반 정도는 됐어요. 정비 담당은 전부 조선 병사가 했습니다."]

대원들은 광주에서 훈련을 한 뒤 일본 본토의 부대로 배치됐습니다.

["실시부대라는 명목이 되는데, 거기서 전투기로 가고싶은 대원, 함폭으로 가고 싶은 대원이 거기서 결정되고 그 전문 항공대에 배속됐어요."]

일본 패전 직전, 이들은 긴급 전보를 받고 광주에 배치돼 있던 일본 육군에 무기를 건네고 서둘러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인터뷰에는 광주항공기지에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증언도 담겼습니다.

["(역시 광주기지에도 그런 일본군 '위안부'가 어느 정도 있었습니까?) 그게 우익이 데리고 왔습니다. (일본의 우익?) 일본의 우익."]

인터뷰 당시의 나이는 92살.

취재진은 광주항공대에 배치됐던 일본인들을 수소문했지만 생존자를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KBS 뉴스 지종익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단독] 일기·육성 최초 공개 ‘광주항공기지’ 생생히 담겨
    • 입력 2025-08-15 08:28:07
    • 수정2025-08-15 09:34:00
    뉴스광장(광주)
[앵커]

취재진은 광주 해군항공대에서 생활했던 이들의 일기와 육성도 확보했습니다.

당시 광주항공기지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생생한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지종익 기자의 단독보도입니다.

[리포트]

폭탄이 등장하는 사진 속 주인공은 해군항공대의 교관이었던 고바야시.

그는 일기 맨 뒤쪽에 붙인 사진 아래, 250킬로그램 훈련용 폭탄, 내부는 시멘트라고 썼습니다.

광주에 도착한 순간도 생생히 기록했습니다.

[이즈미 평화학습센터 가이드/일기 낭독 : "정면 아득히 광주기지가 계산대로 펼쳐진 건 기뻤다. 들었던 그대로의 비행장이다."]

상공을 돌며 광주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했고,

["광주시의 반대에 송정리라는 작은 마을이 있어서 그 상공도 통과했다. 빨간 벽돌 구조의 굴뚝이 보였다. 양조장인듯하다."]

함께 날아 온 비행기 46기와 함께 광주항공기지에 착륙했습니다.

["전부 46기가 착륙하고 내 비행기부터 순서대로 2열로 늘어서 프로펠러를 정지."]

취재팀은 일본인 연구자가 진행한 일제 광주항공대원의 인터뷰 육성도 확보했습니다.

["여수항으로 가서, 거기서 이번에는 철도로 광주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이즈미해군항공대에서 광주로 온 인원이 천명은 됐고, 조선인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즈미에서 광주로 간 건 수백 명 정도였습니까?) 그건 천 명은 넘었습니다. (조선인 병사는 어느 정도였습니까?) 절반 정도는 됐어요. 정비 담당은 전부 조선 병사가 했습니다."]

대원들은 광주에서 훈련을 한 뒤 일본 본토의 부대로 배치됐습니다.

["실시부대라는 명목이 되는데, 거기서 전투기로 가고싶은 대원, 함폭으로 가고 싶은 대원이 거기서 결정되고 그 전문 항공대에 배속됐어요."]

일본 패전 직전, 이들은 긴급 전보를 받고 광주에 배치돼 있던 일본 육군에 무기를 건네고 서둘러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인터뷰에는 광주항공기지에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증언도 담겼습니다.

["(역시 광주기지에도 그런 일본군 '위안부'가 어느 정도 있었습니까?) 그게 우익이 데리고 왔습니다. (일본의 우익?) 일본의 우익."]

인터뷰 당시의 나이는 92살.

취재진은 광주항공대에 배치됐던 일본인들을 수소문했지만 생존자를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KBS 뉴스 지종익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광주-주요뉴스

더보기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