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독립을 보게 되리라”…갈 길 먼 예우 [광복80주년]⑨
입력 2025.08.17 (09:05)
수정 2025.08.1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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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헤이그 특사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국제 사회에 호소한 보재 이상설. 민족 대표 33명 가운데 1명으로 독립운동을 주도한 의암 손병희. 민족 의식을 일깨우는 역사학자이자 교육·언론인으로 활약한 단재 신채호. 이들의 공통점은 충북에서 나고 자란 독립운동가라는 겁니다. 전국적으로 누구라도 익히 이름을 들어봤을, 이른바 '충북 출신 빅 3 애국지사'인데요. 저명한 독립운동가이니만큼 누구보다 그 공적에 합당한 예우를 받고 있을 거라 여겨지고는 합니다. 실제로 그럴까요?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 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후 제사도 지내지 말라." - 보재 이상설 선생 - |
■ '헤이그 특사' 이상설 선생… "국내외 독립운동 전념" 건국훈장 대통령장
임종을 지킨 동지들에게 이 같은 유언을 남긴 뒤, 48세를 일기로 순국한 이상설 선생.
이상설 선생은 1870년 12월 충북 진천군 덕산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로부터 30여 년 뒤, 일제강점기인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는데요.
당시 고종은 조국 독립 염원을 전 세계에 알리라며 이상설 선생을 비롯해 이준, 이위종 선생 등 3명을 헤이그 특사로 보냅니다.
'을사조약'의 무효 파기와 일제의 침략상을 낱낱이 드러내라는 명이었습니다.
비록 회의에 공식적으로 참석하진 못했지만, 헤이그 시내에 입성해 각국에 주권 침해에 관해 설명하면서 회의에 초대받지 못한 데 항의했다는 것만으로도 국제 정치 문제로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상설 선생은 이 밖에도 압록강과 두만강 넘어 간도 일대, 항일 근대 민족교육의 요람으로 꼽히는 서전서숙을 설립하고 해외 각지의 한인 단체를 모은 민족운동 단체인 국민회 탄생에 기여하는 등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에 힘쓴 공로로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습니다.

■ "이상설 선생, 2등급 서훈으로는 부족… 승격 필요"
이상설 선생 순국 108년 뒤인 현재 이상설 선생의 고향, 충북 진천에서는 서훈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합니다.
독립운동 서훈은 등급별로 대한민국장부터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건국포장, 대통령 표창까지 7가지로 나뉘는데요.
당시 헤이그 특사로 함께 다녀간 이준 선생은 부사 자격인데도 1등급인 대한민국장을 받았고, 정사인 이상설 선생은 그보다 낮은 대통령장을 받아 당위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입니다.
서훈을 승격한다고 해서 얻는 혜택은 없습니다.
다만 지역사회에서는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업적을 제대로 조명하기 위해서라도 서훈을 상향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이상설 선생 기념 사업회와 진천군이 주축이 돼 서훈 승격을 위한 범도민 서명 운동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올해 말까지 10만 명을 채워 정부에 전달하겠다는 목표입니다.
현재까지 3만여 명이 서명 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습니다.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도 지난달 13일, 상훈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서훈 승격 운동에 힘을 보탰습니다.
개정안은 공적심사위원회가 서훈 추천과 취소 외에도 변경하는 안을 심의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습니다.
현행법상 서훈 추천이나 취소, 확정 규정만 있고 변경은 없다 보니 승격 요구가 잇따라도 법적인 근거가 없어 마땅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데 대한 조치입니다.
■ 서훈 승격할 수 있을까?… '여운형, 유관순, 홍범도' 단 3명뿐
서훈이 승격한 사례는 드물게 있습니다.
여운형 선생(2008년), 유관순 열사(2019년), 홍범도 장군(2021년) 등 3명뿐인데요.
여운형 선생과 홍범도 장군은 정부가, 유관순 열사는 민간이 주도해 서훈이 상향됐습니다.
앞서 유관순 열사는 1962년 3등급 수준의 독립장을 받아 그동안 공적에 걸맞지 않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는데요.
같은 공적에 훈장을 또 주지 않는다는 규정에 발목이 잡히면서 그동안 추가 서훈이나 상향 등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국민 청원과 특별법 제정 움직임 등 국민적 열망이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당시 국가보훈처는 만장일치로 유관순 열사에 대해 추가 서훈하기로 심의 의결했습니다.
다만 피우진 당시 국가보훈처장은 "유관순 열사의 독립운동 공적은 이미 3등급으로 판정됐다"면서, "그 부분을 없애는 게 아니라 광복 이후의 행적을 가지고 추가로 서훈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독립 유공자 후손이 요청하면 서훈을 높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공적 심의를 통해 할 수 있다"는 답도 내놨습니다.

"나는 이 나라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간다. 그러나 너희들은 실망하지 말고 노력하여라. 일본인들의 도량으로는 도저히 우리나라를 오랫동안 먹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못 보아도 너희들은 보게 되리라. 신념을 잃지 말고 힘차고 줄기차게만 나가라." - 의암 손병희 선생 - |
■ 충북 유일 1등급 서훈받은 손병희 선생… "기념 사업은 부족"
충북에 1등급 서훈, 대한민국장을 받은 독립운동가도 있을까요?
충북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장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바로 민족 대표 33명에 포함되는 의암 손병희 선생입니다.
하지만 후손과 지역 역사학계는 손병희 선생을 기리는 사업이 그 위상에 걸맞지 않게 부족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충북 청주시 북이면에 있는 손병희 선생 기념관은 387.5㎡ 규모입니다.
충남 천안에 있는 유관순 열사 기념관의 10분의 1 수준인데요.
백범 김구 선생 기념관과 비교하면 부지 면적을 다 합쳐도 34% 정도에 그칩니다.
이 때문에 손병희 선생 계승 사업회와 보훈단체, 지역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대규모 기념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논의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 흔들리지 않고 국권 회복과 보국안민에 힘쓴 정신을 후대에 널리 알리기 위해선 범국민 모금 운동과 국비 확보 등으로 복합문화공간 형태의 체험형 기념관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강도(强盜) 일본이 우리의 국호를 없이 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조건을 다 박탈하여 온갖 만행을 거침없이 자행하는 강도 정치가 조선 민족 생존의 적임을 선언함과 동시에 혁명으로 우리의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을 살벌(殺伐)하는 것이 조선 민족의 정당한 수단이다." - 단재 신채호 선생- |
■ 충북 출신 대표 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 "기념관 민간 위탁해야"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에 참여하고 대한매일신보 주필 등으로 항일언론투쟁을 이어간 신채호 선생도 대표적인 충북 출신의 독립운동가인데요.
폭넓은 기념 사업 추진을 위해 신채호 선생 기념관을 민간 위탁하자는 요구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현재 충북 청주시 낭성면에 위치한 신채호 선생 기념관은 청주시 공무원 1명이 관리하고 있는데요.
인력 부족 등으로 역사 해설사는 기념관에 일주일에 4일만 있습니다.
기념 사업회 측은 추모식과 역사 퀴즈대회, 청소년 글짓기 대회, 유적 답사 위주의 기존 기념 사업 범위를 보다 넓히고 기념관 관리 인력도 늘리려면 기념 사업회가 위탁받아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박완희 청주시의원 주도로 지난해 12월, 청주시 독립운동 기념 사업 지원 조례가 제정되기도 했습니다.
조례는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보전하고 계승·발전시킬 수 있도록 기념 사업을 비영리 법인·단체 등에 위탁할 수 있도록 했는데요.
청주시는 신채호 선생 기념관 민간 위탁 여부에 대해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어, 기념 사업회는 관련 조례도 제정된 만큼 청주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원했고, 그걸 위해서 행동했고, 또 노력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독립만을 위해서 재산을, 미래를, 나아가 목숨까지 바치셨잖아요. 기념 사업을 해주시는 분들, 기억해 주시는 시민들이 계셔서 증조할아버지(신채호 선생)도 잊히지 않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 신정윤 (단재 신채호 선생 증손자)- |
일제의 총칼에도 굴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위해 가진 모든 것을 주저 없이 내놓고 목숨까지 바친 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기려야 할까요?
이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이어가는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연관 기사] 충북 대표 독립운동가 3인, “위상 걸맞은 예우 필요”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66145
촬영기자 박준규 / 그래픽 조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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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8-17 09: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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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헤이그 특사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국제 사회에 호소한 보재 이상설. 민족 대표 33명 가운데 1명으로 독립운동을 주도한 의암 손병희. 민족 의식을 일깨우는 역사학자이자 교육·언론인으로 활약한 단재 신채호. 이들의 공통점은 충북에서 나고 자란 독립운동가라는 겁니다. 전국적으로 누구라도 익히 이름을 들어봤을, 이른바 '충북 출신 빅 3 애국지사'인데요. 저명한 독립운동가이니만큼 누구보다 그 공적에 합당한 예우를 받고 있을 거라 여겨지고는 합니다. 실제로 그럴까요?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 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후 제사도 지내지 말라." - 보재 이상설 선생 - |
■ '헤이그 특사' 이상설 선생… "국내외 독립운동 전념" 건국훈장 대통령장
임종을 지킨 동지들에게 이 같은 유언을 남긴 뒤, 48세를 일기로 순국한 이상설 선생.
이상설 선생은 1870년 12월 충북 진천군 덕산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로부터 30여 년 뒤, 일제강점기인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는데요.
당시 고종은 조국 독립 염원을 전 세계에 알리라며 이상설 선생을 비롯해 이준, 이위종 선생 등 3명을 헤이그 특사로 보냅니다.
'을사조약'의 무효 파기와 일제의 침략상을 낱낱이 드러내라는 명이었습니다.
비록 회의에 공식적으로 참석하진 못했지만, 헤이그 시내에 입성해 각국에 주권 침해에 관해 설명하면서 회의에 초대받지 못한 데 항의했다는 것만으로도 국제 정치 문제로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상설 선생은 이 밖에도 압록강과 두만강 넘어 간도 일대, 항일 근대 민족교육의 요람으로 꼽히는 서전서숙을 설립하고 해외 각지의 한인 단체를 모은 민족운동 단체인 국민회 탄생에 기여하는 등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에 힘쓴 공로로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습니다.

■ "이상설 선생, 2등급 서훈으로는 부족… 승격 필요"
이상설 선생 순국 108년 뒤인 현재 이상설 선생의 고향, 충북 진천에서는 서훈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합니다.
독립운동 서훈은 등급별로 대한민국장부터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건국포장, 대통령 표창까지 7가지로 나뉘는데요.
당시 헤이그 특사로 함께 다녀간 이준 선생은 부사 자격인데도 1등급인 대한민국장을 받았고, 정사인 이상설 선생은 그보다 낮은 대통령장을 받아 당위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입니다.
서훈을 승격한다고 해서 얻는 혜택은 없습니다.
다만 지역사회에서는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업적을 제대로 조명하기 위해서라도 서훈을 상향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이상설 선생 기념 사업회와 진천군이 주축이 돼 서훈 승격을 위한 범도민 서명 운동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올해 말까지 10만 명을 채워 정부에 전달하겠다는 목표입니다.
현재까지 3만여 명이 서명 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습니다.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도 지난달 13일, 상훈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서훈 승격 운동에 힘을 보탰습니다.
개정안은 공적심사위원회가 서훈 추천과 취소 외에도 변경하는 안을 심의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습니다.
현행법상 서훈 추천이나 취소, 확정 규정만 있고 변경은 없다 보니 승격 요구가 잇따라도 법적인 근거가 없어 마땅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데 대한 조치입니다.
■ 서훈 승격할 수 있을까?… '여운형, 유관순, 홍범도' 단 3명뿐
서훈이 승격한 사례는 드물게 있습니다.
여운형 선생(2008년), 유관순 열사(2019년), 홍범도 장군(2021년) 등 3명뿐인데요.
여운형 선생과 홍범도 장군은 정부가, 유관순 열사는 민간이 주도해 서훈이 상향됐습니다.
앞서 유관순 열사는 1962년 3등급 수준의 독립장을 받아 그동안 공적에 걸맞지 않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는데요.
같은 공적에 훈장을 또 주지 않는다는 규정에 발목이 잡히면서 그동안 추가 서훈이나 상향 등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국민 청원과 특별법 제정 움직임 등 국민적 열망이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당시 국가보훈처는 만장일치로 유관순 열사에 대해 추가 서훈하기로 심의 의결했습니다.
다만 피우진 당시 국가보훈처장은 "유관순 열사의 독립운동 공적은 이미 3등급으로 판정됐다"면서, "그 부분을 없애는 게 아니라 광복 이후의 행적을 가지고 추가로 서훈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독립 유공자 후손이 요청하면 서훈을 높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공적 심의를 통해 할 수 있다"는 답도 내놨습니다.

"나는 이 나라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간다. 그러나 너희들은 실망하지 말고 노력하여라. 일본인들의 도량으로는 도저히 우리나라를 오랫동안 먹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못 보아도 너희들은 보게 되리라. 신념을 잃지 말고 힘차고 줄기차게만 나가라." - 의암 손병희 선생 - |
■ 충북 유일 1등급 서훈받은 손병희 선생… "기념 사업은 부족"
충북에 1등급 서훈, 대한민국장을 받은 독립운동가도 있을까요?
충북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장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바로 민족 대표 33명에 포함되는 의암 손병희 선생입니다.
하지만 후손과 지역 역사학계는 손병희 선생을 기리는 사업이 그 위상에 걸맞지 않게 부족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충북 청주시 북이면에 있는 손병희 선생 기념관은 387.5㎡ 규모입니다.
충남 천안에 있는 유관순 열사 기념관의 10분의 1 수준인데요.
백범 김구 선생 기념관과 비교하면 부지 면적을 다 합쳐도 34% 정도에 그칩니다.
이 때문에 손병희 선생 계승 사업회와 보훈단체, 지역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대규모 기념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논의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 흔들리지 않고 국권 회복과 보국안민에 힘쓴 정신을 후대에 널리 알리기 위해선 범국민 모금 운동과 국비 확보 등으로 복합문화공간 형태의 체험형 기념관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강도(强盜) 일본이 우리의 국호를 없이 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조건을 다 박탈하여 온갖 만행을 거침없이 자행하는 강도 정치가 조선 민족 생존의 적임을 선언함과 동시에 혁명으로 우리의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을 살벌(殺伐)하는 것이 조선 민족의 정당한 수단이다." - 단재 신채호 선생- |
■ 충북 출신 대표 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 "기념관 민간 위탁해야"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에 참여하고 대한매일신보 주필 등으로 항일언론투쟁을 이어간 신채호 선생도 대표적인 충북 출신의 독립운동가인데요.
폭넓은 기념 사업 추진을 위해 신채호 선생 기념관을 민간 위탁하자는 요구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현재 충북 청주시 낭성면에 위치한 신채호 선생 기념관은 청주시 공무원 1명이 관리하고 있는데요.
인력 부족 등으로 역사 해설사는 기념관에 일주일에 4일만 있습니다.
기념 사업회 측은 추모식과 역사 퀴즈대회, 청소년 글짓기 대회, 유적 답사 위주의 기존 기념 사업 범위를 보다 넓히고 기념관 관리 인력도 늘리려면 기념 사업회가 위탁받아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박완희 청주시의원 주도로 지난해 12월, 청주시 독립운동 기념 사업 지원 조례가 제정되기도 했습니다.
조례는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보전하고 계승·발전시킬 수 있도록 기념 사업을 비영리 법인·단체 등에 위탁할 수 있도록 했는데요.
청주시는 신채호 선생 기념관 민간 위탁 여부에 대해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어, 기념 사업회는 관련 조례도 제정된 만큼 청주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원했고, 그걸 위해서 행동했고, 또 노력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독립만을 위해서 재산을, 미래를, 나아가 목숨까지 바치셨잖아요. 기념 사업을 해주시는 분들, 기억해 주시는 시민들이 계셔서 증조할아버지(신채호 선생)도 잊히지 않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 신정윤 (단재 신채호 선생 증손자)- |
일제의 총칼에도 굴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위해 가진 모든 것을 주저 없이 내놓고 목숨까지 바친 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기려야 할까요?
이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이어가는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연관 기사] 충북 대표 독립운동가 3인, “위상 걸맞은 예우 필요”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66145
촬영기자 박준규 / 그래픽 조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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