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 이산가족 상봉단에 예술인 많아
입력 2000.08.11 (21:00)
수정 2018.08.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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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번에 이산가족 상봉단으로 서울을 찾는 북측 실향민 가운데 문화 예술인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는 북한 최고의 서정시인으로 꼽혀온 오영재 씨도 있습니다만 오 씨의 사모곡 늙지 마시라가 한 서예전에 나와서 분단의 아픔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보도에 한상덕 기자입니다.
⊙기자: 북한 최고의 시인으로 불리는 오영재 씨가 가슴으로 쓴 사모곡 '늙지마시라'입니다.
전남 강진 출신인 오 씨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50년, 성전중학교 3학년에 다니던 중 의용군에 입대해 북으로 넘어갔습니다.
오 씨는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솟구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달랬습니다.
그러나 오 씨가 그렇게도 생전에 다시 만나고 싶어하던 어머니는 지난 95년 세상을 떠나 형제들만이 상봉할 수 있게 됐습니다.
형과 50년만의 해후를 앞둔 서울시립대 오형재 교수.
⊙오형재(교수/서울시립대학): 그렇게 그리워하던 어머니께서 5년 전 돌아가셨는데 너무 많이 슬프다.
그런 얘기가 제일 먼저 우선 하겠고...
⊙기자: 이 두 형제의 아픈 만남은 분단시대를 사는 이산가족 모두의 슬픔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KBS뉴스 한상덕입니다.
이 가운데는 북한 최고의 서정시인으로 꼽혀온 오영재 씨도 있습니다만 오 씨의 사모곡 늙지 마시라가 한 서예전에 나와서 분단의 아픔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보도에 한상덕 기자입니다.
⊙기자: 북한 최고의 시인으로 불리는 오영재 씨가 가슴으로 쓴 사모곡 '늙지마시라'입니다.
전남 강진 출신인 오 씨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50년, 성전중학교 3학년에 다니던 중 의용군에 입대해 북으로 넘어갔습니다.
오 씨는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솟구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달랬습니다.
그러나 오 씨가 그렇게도 생전에 다시 만나고 싶어하던 어머니는 지난 95년 세상을 떠나 형제들만이 상봉할 수 있게 됐습니다.
형과 50년만의 해후를 앞둔 서울시립대 오형재 교수.
⊙오형재(교수/서울시립대학): 그렇게 그리워하던 어머니께서 5년 전 돌아가셨는데 너무 많이 슬프다.
그런 얘기가 제일 먼저 우선 하겠고...
⊙기자: 이 두 형제의 아픈 만남은 분단시대를 사는 이산가족 모두의 슬픔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KBS뉴스 한상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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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측 이산가족 상봉단에 예술인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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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번에 이산가족 상봉단으로 서울을 찾는 북측 실향민 가운데 문화 예술인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는 북한 최고의 서정시인으로 꼽혀온 오영재 씨도 있습니다만 오 씨의 사모곡 늙지 마시라가 한 서예전에 나와서 분단의 아픔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보도에 한상덕 기자입니다.
⊙기자: 북한 최고의 시인으로 불리는 오영재 씨가 가슴으로 쓴 사모곡 '늙지마시라'입니다.
전남 강진 출신인 오 씨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50년, 성전중학교 3학년에 다니던 중 의용군에 입대해 북으로 넘어갔습니다.
오 씨는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솟구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달랬습니다.
그러나 오 씨가 그렇게도 생전에 다시 만나고 싶어하던 어머니는 지난 95년 세상을 떠나 형제들만이 상봉할 수 있게 됐습니다.
형과 50년만의 해후를 앞둔 서울시립대 오형재 교수.
⊙오형재(교수/서울시립대학): 그렇게 그리워하던 어머니께서 5년 전 돌아가셨는데 너무 많이 슬프다.
그런 얘기가 제일 먼저 우선 하겠고...
⊙기자: 이 두 형제의 아픈 만남은 분단시대를 사는 이산가족 모두의 슬픔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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