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유공자 후손들…‘가난 대물림’

입력 2006.08.15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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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국가로부터 큰 혜택을 받으며 잘 살고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들의 생활은 평균 이하로 아주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이 그대로 사실이 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김정환 기자가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삶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광복절을 맞아 할아버지 묘소를 찾은 곽기수 씨,

곽 씨의 할아버지 곽재기 선생은 일제시대 고위관리 암살과 관공서 폭파 등 일제에 무력으로 저항했던 의열단의 일원이었습니다.

<인터뷰> 곽기수 : "외롭고 고독할 때 와서 하소연 하는거죠."

할아버지뿐 아니라 아버지도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에 곽 씨는 6살부터 감옥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인터뷰>곽기수 : "나를 볼모로 해서 기둥에 거꾸로 메달아놓고 회초리로 나를 때리는 거에요"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독립투사의 후손인 곽씨지만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한없이 슬퍼집니다.

수입이라곤 독립운동자 유족 기금에서 나오는 월 만 오천 원이 전부, 잠 잘 곳도 마땅치 않은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다보니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쳤습니다.

<인터뷰>곽기수 :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이 가난하고 무지 밖에 더 있습니까? 가진 것이 없으니까.. 자식들에게 연금이 이어지나?"

곰팡이와 습기로 가득찬 10평 정도의 지하 방, 독립군으로 활동했던 양승만 선생의 아들 양지홍 씨가 살고있는 곳입니다.

중국에서 살았던 양 씨는 지난 2001년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혜택을 누리며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녹취>양지홍 : "지금 아파도 어디가 아파도 내 의료보험증 가지고는 감기나 병원에서 볼 수 있고 아무것도 없어요."

독립유공자 유족회는 지난 달 1억 원의 기금을 모아 생활이 어려운 유족을 돕기로 하고 신청을 받았습니다.

신청자 526명 가운데 국민기초 생활 수급자 등 극빈층에 해당하는 사람은 120여 명으로 전체의 22%나 됐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은 가정을 돌볼 틈도 없어 후손들은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했기 때문입니다.

또 광복후에도 친일파가 득세하면서 유공자 후손들은 사회적, 경제적 약자로 전락했습니다.

<인터뷰>김삼열(독립유공자 유족회 회장) : "후손들은 일본으로부터 심한 탄압을 받았고 광복후에도 친일파가 정권을 잡아 힘든 생활이 계속됐습니다."

광복 61년, 하지만 독립투사에서 후손까지 이어지는 힘겨운 삶의 대물림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정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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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 유공자 후손들…‘가난 대물림’
    • 입력 2006-08-15 20:23:24
    뉴스타임
<앵커 멘트>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국가로부터 큰 혜택을 받으며 잘 살고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들의 생활은 평균 이하로 아주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이 그대로 사실이 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김정환 기자가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삶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광복절을 맞아 할아버지 묘소를 찾은 곽기수 씨, 곽 씨의 할아버지 곽재기 선생은 일제시대 고위관리 암살과 관공서 폭파 등 일제에 무력으로 저항했던 의열단의 일원이었습니다. <인터뷰> 곽기수 : "외롭고 고독할 때 와서 하소연 하는거죠." 할아버지뿐 아니라 아버지도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에 곽 씨는 6살부터 감옥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인터뷰>곽기수 : "나를 볼모로 해서 기둥에 거꾸로 메달아놓고 회초리로 나를 때리는 거에요"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독립투사의 후손인 곽씨지만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한없이 슬퍼집니다. 수입이라곤 독립운동자 유족 기금에서 나오는 월 만 오천 원이 전부, 잠 잘 곳도 마땅치 않은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다보니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쳤습니다. <인터뷰>곽기수 :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이 가난하고 무지 밖에 더 있습니까? 가진 것이 없으니까.. 자식들에게 연금이 이어지나?" 곰팡이와 습기로 가득찬 10평 정도의 지하 방, 독립군으로 활동했던 양승만 선생의 아들 양지홍 씨가 살고있는 곳입니다. 중국에서 살았던 양 씨는 지난 2001년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혜택을 누리며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녹취>양지홍 : "지금 아파도 어디가 아파도 내 의료보험증 가지고는 감기나 병원에서 볼 수 있고 아무것도 없어요." 독립유공자 유족회는 지난 달 1억 원의 기금을 모아 생활이 어려운 유족을 돕기로 하고 신청을 받았습니다. 신청자 526명 가운데 국민기초 생활 수급자 등 극빈층에 해당하는 사람은 120여 명으로 전체의 22%나 됐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은 가정을 돌볼 틈도 없어 후손들은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했기 때문입니다. 또 광복후에도 친일파가 득세하면서 유공자 후손들은 사회적, 경제적 약자로 전락했습니다. <인터뷰>김삼열(독립유공자 유족회 회장) : "후손들은 일본으로부터 심한 탄압을 받았고 광복후에도 친일파가 정권을 잡아 힘든 생활이 계속됐습니다." 광복 61년, 하지만 독립투사에서 후손까지 이어지는 힘겨운 삶의 대물림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정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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