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가족에게 흉기 휘두른 50대 가장

입력 2006.11.24 (09:08) 수정 2006.11.24 (20:1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구조조정이다 명예퇴직이다 해서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는 가장들 적지 않습니다. 요즘에는 이 때문에 가족들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도 직장을 그만둔 50대 가장이 가족과 말 다툼 끝에 흉기를 휘두른 사건이 있었는데요. 실직 가장과 가족들의 불화와 갈등을 취재했습니다.

홍희정 기자,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텐데요.

<리포트>

네. 직장을 떠난 가장들은, 그동안 다른 가족을 위해 고생해왔는데 경제력이 없어지니까 가족들이 무시한다며 불만이고, 또 다른 가족들은 무시하지도 않는데 괜히 화를 부린다며 불만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직장을 잃거나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다보면, 사실 평소엔 그대로 지나칠 문제도 서로에게 더 상처가 돼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도 하는데요, 자세한 내용 함께 보시죠.??

지난 20일 아침 한 아파트. 119 구급대원 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긴급히 올라갑니다. 잠시 후, 머리에 붕대를 감은 20대 남자가 함께 타는데요, 얼굴엔 피가 묻은채 머리를 감싸고 있는 청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인터뷰> 배경수 (광주 동부소방서 학운파출소): “(현장에 도착하니) 거실에 아들이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있었고, (안방에서) 아버지하고, 어머니하고 침대에서 어머니가 (남편을) 잡고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흉기를 모르게 가슴 속에 넣어서 아들이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흉기를 꺼내서 때렸다고 하더라고요.”

아들과 아내에게 흉기를 휘두른 57살 이 모씨. 하마터면 가족들의 목숨을 잃게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요, 도대체 왜, 이 씨는 식사시간부터 이런 짓을 저지른 걸까요?

<인터뷰> 이00 (피의자/음성변조) : “(아내와 아들이) 다정하게 앉아서 나는 밥상도 차려주지 않으면서,
나는 방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해요. (둘이만) 큰 방에 앉아서 밥을 먹으면서 오순도순 얘기하고 있는 것을 보니까 (속에서) 천불이 나더라고요.”

이 날의 동기는 사소한 것이었지만, 사실 이 씨는 마음에 쌓인 게 많았다고 합니다. 30년간 가장의 역할을 하려고 노력해왔다는 이 씨. 다른 지방까지 다니며 돈을 벌어왔지만,지난 2월,일을 그만둔 후부터는 가족들에게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인터뷰> 이00 (피의자/음성변조): “(가족이) 아파트 들어오는 현관을 잠궈버려서 (나를) 못 들어오게 한 경우도 있고, (내가) 지금까지 (타지방에서) 올라와서 밥상을 한 번 안 받아봤습니다. 그리고 내가 고향에 60년 만에 헤어졌던 형님을 만나러 갈 때도, 나보고 (아내가) ‘그런 인간을 뭐 하러 만나러 가냐’고 (하고요.)”

전에도 가족과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씨는 경제적 능력이 없어진 후, 다툼도 더 잦아졌다는데요, 부부싸움을 해도 자녀들마저 아내 편을 드는 것 같아 소외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인터뷰> 이00 (피의자/음성변조): “(아내가 잘못해서) 내가 아내를 밀치고, ‘그러지 말라’고 내가 밀치고 그러면 그것은 (자식들이) 나보고 (엄마를) 폭행했다고 그러고, 아들이 (나한테) 달려들면서... 내가 말로 표현을 못해요. 말로 표현을 못해. 자식은 (아내에게만) 동조를 하는 것이 정도를 넘어서 아버지를 아버지같이 안보고...”

하지만, 이 씨 가족들은 경찰조사에서 문제는 이 씨에게 있다고 주장했습니다.가족들은 이 씨가 전에도 가끔 손찌검을 하곤 했는데, 일을 그만둔 후엔 술을 마시는 날이 늘면서 가정불화도 심해졌다고 했다는데요, 사건당일도 이 씨는 술을 마셨습니다.

<인터뷰> 주용남 (경위/광주 동부경찰서): “가족들이 (이 씨를) 많이 타일렀어요. 이 분이 실직을 하고, 음주를 많이 하게 된 상태다보니까 (아들이) ‘아버지 차라리 음주를 하지 마시고 등산이나 여가를 즐기십시오’ (그렇게) 몇 번 권하고 그랬어요.”

가족들은 이 씨를 보듬으려고 애써 왔지만, 오히려 이 씨가 없는 말을 지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는데요,

<인터뷰> 주용남 (경위/광주 동부 경찰서): “(피의자가) ‘아들이 손지검을 했다 뺨을 때리고 그렇게 (해서) 흥분했다. 흥분해서 그랬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아들 입장에서는 때린 사실이 없고,(가족들) 조서도 받아보니까 때린 사실이 없다...”

이웃들 역시, 가족들이 이 씨를 따돌리거나 할 사람들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인터뷰>이웃주민: “전혀 사모님이 아저씨를 무시할 정도 그런 인격이 아니에요. 놀랐죠. 놀랐죠. (그 동안) 싸우거나 그런 것도 없었고, 아주 평온하니 잘 사는 가정이었어요.”

가족 간의 오해가 쌓인데다 우발적인 감정까지 겹치면서 하마터면 가장 소중한 가족의 목숨까지 앗아갈뻔 했던 사건. 이 씨와 가족들,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인지는 다른사람들이 쉽게 판단할 수 없을 겁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는 이씨와 가족들. 왜 이렇게 서로에 대한 원망만 쌓이게 된 걸까요?

<인터뷰> 이00 (피의자/음성변조): “세상에 이럴 수가 싶은 데, 나는 그렇습니다. 가정을 오로지 지켜야 된다는 일념으로 그냥그냥 숙이고, ‘그냥 내가 좀 지면된다, 그냥 내가 좀 지면된다’며 나는 그런 식으로 살았단 말입니다. 착잡합니다. (가족들이) 많이 원망스럽죠.”

특히 실직 등으로 경제력을 잃는 가장들이 늘면서, 불화가 커진 가정은 이 씨의 경우뿐이 아닙니다. 20년간 번듯한 회사원이었던 강 모씨. 하지만 그는 지금 56살의 나이에,공사장을 전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강00 (8년 전 실직/음성변조): “경기가 좋아야 (공사장) 일도 있는데, 일을 계속 준다고 해도 피곤해서 막노동은 계속 못하는 겁니다마는, 하루 가면 이튿날 쉬고, 하루 가면 하루 쉬고 그러니까 지금 번다고 해봤자 (한 달에) 60만원이나 70만원 벌어요.”

강 씨는 한창 일할 나이였던 마흔여덟, 외환위기 바람에 명예퇴직을 당했다는데요, 한때는 알뜰한 아내와 착한 아들을 둔,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었지만, 직장을 잃은 후 모든게 달라졌다고 합니다.

<인터뷰> 강00 (8년 전 실직/음성변조): “일정하게 한 20년 가까이 근무를 하면서 소득이 있다 보니까 가정도 단란했죠.(그런데) 소득이 멈춰버리니까 모든 것이 끝나더라고요. 모든 것이 끝나요.”

퇴직금을 합해 1억 5천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그마저도 동업자의 배신으로 망하고 말았다는데요, 이때문에 자신은 막노동일을, 전업주부였던 아내까지 환경미화원으로 나서야 하게 되면서, 가정불화가 잦아졌다고 합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무엇보다 가족들의 태도였다는데요,

<인터뷰> 강00 (8년 전 실직/음성변조): “육체노동보다 정신적으로 피곤한 것이 사람에게는 쓰라린 불행이더라고요. (아내는) '자기 말 들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자기 말 안 들어서 (퇴직금을) 다 없애먹고 이런 (고생을 한다)고...' (나한테) 미래가 없으니까 안 좋은 소리만 하고, 그것도 한 두 번이지, 계속적으로 아주 (괴로워요.) 남편을 어떻게 보면 짐으로 느껴요. 돈 버는 기계 그 역할을 해 주지 않으면 남편은 가치성이 없어져 버려요.”

한순간, 무능력한 가장이 되어버린 강씨. 이 때문에 극단적인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인터뷰> 강00 (8년전 실직/음성변조): “신문보도나 방송보도에 보면 ‘(가족이) 동반자살을 했네, 처자식을 죽여버렸네’ 이런 것을 보면, 옛날에는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러나' 했는데, (나도) 누구하나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싹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만 살 수도 없는 거고, 다 죽어버리는 것이 (낫겠다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자신도, 가족도 힘이 들다보니 서로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상처를 입기도 했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강 씨는 평생을 헛살았다는 상실감마저 느꼈다고 합니다.

<인터뷰> 강00 (8년전 실직/음성변조): “가정이란 것이 마음속의 보금자리처럼 느껴져야 하는데, 이제는 식구들 봐도 내 자신이 그냥 아무 느낌도 없이 심란하게 느껴져 버려요. 그 동안 억울한 세상만 산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재기를) 해 볼 수 있는 길도 없고, 참 기막힌 인생살이더라고요. 기막힌 인생살이예요.”

술 한 잔을 마시고 강 씨가 향한 곳은 근처 공원. 고단한 일을 마친 후라, 잠을 청하기도 부족한 시간이지만, 강 씨는 집에 가기를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집에 가는 것이 괴로워졌다는 강 씨는 이렇게 시간을 때우는게 습관이 됐다는데요 .

<인터뷰> 강900 (8년 전 실직/음성변조): “(일 끝나면) 여기와요.우선 마음이 (집보다) 더 안정이 되지. (아내의) 좋지 않은 소리, 사람 부딪히면 좋지 않은 소리가 나오지만 (여기서는) 좋지 않을 소리가 나올 일도 없고. 어떻게 보면 집보다 편하다고 볼 수 있지.”

이처럼 직장을 잃은 가장들은 상실감이 어느때보다 크기 때문에, 극복하기 위해선 본인과 가족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데요,

<인터뷰>신인용 (소장/광주남성의 전화): “(실직한 가장들은)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공황상태에 있습니다. 가정에서 아무래도 식구들이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있어서, 좀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떤 격려의 말 한마디라도 해 주는 게 (필요하고), 한 개인의 노력이라기보다는 부부간의 상호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거든요.”

실직과 같은 경제적 어려움은 가정의 큰 위기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서로에게 따뜻한 말한마디를 건네는 것, 그것도 가족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요.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뉴스 따라잡기] 가족에게 흉기 휘두른 50대 가장
    • 입력 2006-11-24 08:19:52
    • 수정2006-11-24 20:17:13
    아침뉴스타임
<앵커 멘트> 구조조정이다 명예퇴직이다 해서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는 가장들 적지 않습니다. 요즘에는 이 때문에 가족들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도 직장을 그만둔 50대 가장이 가족과 말 다툼 끝에 흉기를 휘두른 사건이 있었는데요. 실직 가장과 가족들의 불화와 갈등을 취재했습니다. 홍희정 기자,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텐데요. <리포트> 네. 직장을 떠난 가장들은, 그동안 다른 가족을 위해 고생해왔는데 경제력이 없어지니까 가족들이 무시한다며 불만이고, 또 다른 가족들은 무시하지도 않는데 괜히 화를 부린다며 불만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직장을 잃거나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다보면, 사실 평소엔 그대로 지나칠 문제도 서로에게 더 상처가 돼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도 하는데요, 자세한 내용 함께 보시죠.?? 지난 20일 아침 한 아파트. 119 구급대원 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긴급히 올라갑니다. 잠시 후, 머리에 붕대를 감은 20대 남자가 함께 타는데요, 얼굴엔 피가 묻은채 머리를 감싸고 있는 청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인터뷰> 배경수 (광주 동부소방서 학운파출소): “(현장에 도착하니) 거실에 아들이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있었고, (안방에서) 아버지하고, 어머니하고 침대에서 어머니가 (남편을) 잡고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흉기를 모르게 가슴 속에 넣어서 아들이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흉기를 꺼내서 때렸다고 하더라고요.” 아들과 아내에게 흉기를 휘두른 57살 이 모씨. 하마터면 가족들의 목숨을 잃게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요, 도대체 왜, 이 씨는 식사시간부터 이런 짓을 저지른 걸까요? <인터뷰> 이00 (피의자/음성변조) : “(아내와 아들이) 다정하게 앉아서 나는 밥상도 차려주지 않으면서, 나는 방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해요. (둘이만) 큰 방에 앉아서 밥을 먹으면서 오순도순 얘기하고 있는 것을 보니까 (속에서) 천불이 나더라고요.” 이 날의 동기는 사소한 것이었지만, 사실 이 씨는 마음에 쌓인 게 많았다고 합니다. 30년간 가장의 역할을 하려고 노력해왔다는 이 씨. 다른 지방까지 다니며 돈을 벌어왔지만,지난 2월,일을 그만둔 후부터는 가족들에게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인터뷰> 이00 (피의자/음성변조): “(가족이) 아파트 들어오는 현관을 잠궈버려서 (나를) 못 들어오게 한 경우도 있고, (내가) 지금까지 (타지방에서) 올라와서 밥상을 한 번 안 받아봤습니다. 그리고 내가 고향에 60년 만에 헤어졌던 형님을 만나러 갈 때도, 나보고 (아내가) ‘그런 인간을 뭐 하러 만나러 가냐’고 (하고요.)” 전에도 가족과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씨는 경제적 능력이 없어진 후, 다툼도 더 잦아졌다는데요, 부부싸움을 해도 자녀들마저 아내 편을 드는 것 같아 소외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인터뷰> 이00 (피의자/음성변조): “(아내가 잘못해서) 내가 아내를 밀치고, ‘그러지 말라’고 내가 밀치고 그러면 그것은 (자식들이) 나보고 (엄마를) 폭행했다고 그러고, 아들이 (나한테) 달려들면서... 내가 말로 표현을 못해요. 말로 표현을 못해. 자식은 (아내에게만) 동조를 하는 것이 정도를 넘어서 아버지를 아버지같이 안보고...” 하지만, 이 씨 가족들은 경찰조사에서 문제는 이 씨에게 있다고 주장했습니다.가족들은 이 씨가 전에도 가끔 손찌검을 하곤 했는데, 일을 그만둔 후엔 술을 마시는 날이 늘면서 가정불화도 심해졌다고 했다는데요, 사건당일도 이 씨는 술을 마셨습니다. <인터뷰> 주용남 (경위/광주 동부경찰서): “가족들이 (이 씨를) 많이 타일렀어요. 이 분이 실직을 하고, 음주를 많이 하게 된 상태다보니까 (아들이) ‘아버지 차라리 음주를 하지 마시고 등산이나 여가를 즐기십시오’ (그렇게) 몇 번 권하고 그랬어요.” 가족들은 이 씨를 보듬으려고 애써 왔지만, 오히려 이 씨가 없는 말을 지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는데요, <인터뷰> 주용남 (경위/광주 동부 경찰서): “(피의자가) ‘아들이 손지검을 했다 뺨을 때리고 그렇게 (해서) 흥분했다. 흥분해서 그랬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아들 입장에서는 때린 사실이 없고,(가족들) 조서도 받아보니까 때린 사실이 없다...” 이웃들 역시, 가족들이 이 씨를 따돌리거나 할 사람들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인터뷰>이웃주민: “전혀 사모님이 아저씨를 무시할 정도 그런 인격이 아니에요. 놀랐죠. 놀랐죠. (그 동안) 싸우거나 그런 것도 없었고, 아주 평온하니 잘 사는 가정이었어요.” 가족 간의 오해가 쌓인데다 우발적인 감정까지 겹치면서 하마터면 가장 소중한 가족의 목숨까지 앗아갈뻔 했던 사건. 이 씨와 가족들,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인지는 다른사람들이 쉽게 판단할 수 없을 겁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는 이씨와 가족들. 왜 이렇게 서로에 대한 원망만 쌓이게 된 걸까요? <인터뷰> 이00 (피의자/음성변조): “세상에 이럴 수가 싶은 데, 나는 그렇습니다. 가정을 오로지 지켜야 된다는 일념으로 그냥그냥 숙이고, ‘그냥 내가 좀 지면된다, 그냥 내가 좀 지면된다’며 나는 그런 식으로 살았단 말입니다. 착잡합니다. (가족들이) 많이 원망스럽죠.” 특히 실직 등으로 경제력을 잃는 가장들이 늘면서, 불화가 커진 가정은 이 씨의 경우뿐이 아닙니다. 20년간 번듯한 회사원이었던 강 모씨. 하지만 그는 지금 56살의 나이에,공사장을 전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강00 (8년 전 실직/음성변조): “경기가 좋아야 (공사장) 일도 있는데, 일을 계속 준다고 해도 피곤해서 막노동은 계속 못하는 겁니다마는, 하루 가면 이튿날 쉬고, 하루 가면 하루 쉬고 그러니까 지금 번다고 해봤자 (한 달에) 60만원이나 70만원 벌어요.” 강 씨는 한창 일할 나이였던 마흔여덟, 외환위기 바람에 명예퇴직을 당했다는데요, 한때는 알뜰한 아내와 착한 아들을 둔,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었지만, 직장을 잃은 후 모든게 달라졌다고 합니다. <인터뷰> 강00 (8년 전 실직/음성변조): “일정하게 한 20년 가까이 근무를 하면서 소득이 있다 보니까 가정도 단란했죠.(그런데) 소득이 멈춰버리니까 모든 것이 끝나더라고요. 모든 것이 끝나요.” 퇴직금을 합해 1억 5천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그마저도 동업자의 배신으로 망하고 말았다는데요, 이때문에 자신은 막노동일을, 전업주부였던 아내까지 환경미화원으로 나서야 하게 되면서, 가정불화가 잦아졌다고 합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무엇보다 가족들의 태도였다는데요, <인터뷰> 강00 (8년 전 실직/음성변조): “육체노동보다 정신적으로 피곤한 것이 사람에게는 쓰라린 불행이더라고요. (아내는) '자기 말 들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자기 말 안 들어서 (퇴직금을) 다 없애먹고 이런 (고생을 한다)고...' (나한테) 미래가 없으니까 안 좋은 소리만 하고, 그것도 한 두 번이지, 계속적으로 아주 (괴로워요.) 남편을 어떻게 보면 짐으로 느껴요. 돈 버는 기계 그 역할을 해 주지 않으면 남편은 가치성이 없어져 버려요.” 한순간, 무능력한 가장이 되어버린 강씨. 이 때문에 극단적인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인터뷰> 강00 (8년전 실직/음성변조): “신문보도나 방송보도에 보면 ‘(가족이) 동반자살을 했네, 처자식을 죽여버렸네’ 이런 것을 보면, 옛날에는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러나' 했는데, (나도) 누구하나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싹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만 살 수도 없는 거고, 다 죽어버리는 것이 (낫겠다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자신도, 가족도 힘이 들다보니 서로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상처를 입기도 했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강 씨는 평생을 헛살았다는 상실감마저 느꼈다고 합니다. <인터뷰> 강00 (8년전 실직/음성변조): “가정이란 것이 마음속의 보금자리처럼 느껴져야 하는데, 이제는 식구들 봐도 내 자신이 그냥 아무 느낌도 없이 심란하게 느껴져 버려요. 그 동안 억울한 세상만 산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재기를) 해 볼 수 있는 길도 없고, 참 기막힌 인생살이더라고요. 기막힌 인생살이예요.” 술 한 잔을 마시고 강 씨가 향한 곳은 근처 공원. 고단한 일을 마친 후라, 잠을 청하기도 부족한 시간이지만, 강 씨는 집에 가기를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집에 가는 것이 괴로워졌다는 강 씨는 이렇게 시간을 때우는게 습관이 됐다는데요 . <인터뷰> 강900 (8년 전 실직/음성변조): “(일 끝나면) 여기와요.우선 마음이 (집보다) 더 안정이 되지. (아내의) 좋지 않은 소리, 사람 부딪히면 좋지 않은 소리가 나오지만 (여기서는) 좋지 않을 소리가 나올 일도 없고. 어떻게 보면 집보다 편하다고 볼 수 있지.” 이처럼 직장을 잃은 가장들은 상실감이 어느때보다 크기 때문에, 극복하기 위해선 본인과 가족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데요, <인터뷰>신인용 (소장/광주남성의 전화): “(실직한 가장들은)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공황상태에 있습니다. 가정에서 아무래도 식구들이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있어서, 좀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떤 격려의 말 한마디라도 해 주는 게 (필요하고), 한 개인의 노력이라기보다는 부부간의 상호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거든요.” 실직과 같은 경제적 어려움은 가정의 큰 위기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서로에게 따뜻한 말한마디를 건네는 것, 그것도 가족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