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현장] 벨기에, 언어 갈등으로 두 쪽 위기!

입력 2007.12.0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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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유럽의 중심으로 불리는 벨기에가 남과 북, 두 쪽으로 갈라질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프랑스어를 쓰는 남부, 완룬과 네덜란드어를 쓰는 북부, 플랑드르 간의 언어 갈등이 격화되면서 6개월 째 연방 정부가 구성되지 못하는 '무정부 상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1830년 벨기에 독립 때부터 잉태된 이런 언어 갈등에다, 최근에는 남북 간의 경제력 격차까지 심화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분리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김개형 순회 특파원이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벨기에 수도 브뤼셀의 도심 거리. 수많은 인파가 벨기에 국기를 앞세우고 가두 행진에 나섰습니다. 4차선 도로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도착한 곳은 브뤼셀의 개선문 격인 '생캉트네르' 공원. '하나된 벨기에' 벨기에의 통합을 촉구하는 축제가 열리는 곳입니다.

<인터뷰> 프랑스어권 주민 : "여기 모인 사람들은 벨기에인임을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된 정부가 없는 게 참 이상합니다."

<인터뷰> 네덜란드어권 주민 : "나의 조국 벨기에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는 가슴 속 깊이 벨기에인임에 자랑스럽습니다. 나는 네덜란드어를 쓰는 벨기에인 입니다."

축제에 참가한 사람은 3만 5천 여명. 대규모 군중이 참가해 통합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린 것은 벨기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축제 막바지에 벨기에 국가가 연주되면서 축제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인터뷰> 마리 클레르 우아르(축제 기획자) : "벨기에를 위해 통합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축제를 준비한 3개월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바라고 벨기에가 지켜지기를 원합니다."

브뤼셀 도심 주변의 주택가. 집집마다 창문 밖이나 발코니 쪽으로 벨기에 국기를 길게 늘어뜨려 놓았습니다. 요즘 수도 브뤼셀에서는 벨기에 국기를 내건 집이 부쩍 늘어나고 있습니다. 통합의 상징인 국기를 게양함으로써 벨기에 통합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통합 촉구 움직임이 이렇게 활발한 것은 분리 위기감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계 각국의 관광객으로 항상 붐비는 브뤼셀의 중앙역. 기차 출발과 도착시각을 알려주는 안내판은 프랑스와 네덜란드어, 2개 언어로 표시돼 있습니다.

<인터뷰> 얀(플랑드르 지역 주민) : "떼제베를 타고 왔는데 갠트로 갈려고 합니다. 네덜란드어권에 사는데 네덜란드어로 표시돼 있으니까 편리합니다."

또 관광 안내판과 버스 행선지 안내 등 모든 공공시설은 모두 2개 언어로 표기됩니다. 브뤼셀에서는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 2개 언어가 공식 언어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브뤼셀을 벗어나면 사정이 다릅니다. 북부 플랑드르는 네덜란드어, 남부 완룬은 프랑스어가 공식 언어입니다.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언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터뷰> 브뤼셀 시민 :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 이중 언어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중 언어의 문화적 배경이 문화를 풍요롭게 해줍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남과 북이 한 국가로 묶이게 된 것은 벨기에가 네덜란드에서 독립한 지난 1830년입니다. 북부 플랑드르의 주민 대다수는 네덜란드 말을 사용하지만 사회 지도층은 프랑스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프랑스어권인 남부 완론과 한 국가로 묶이게 된 것입니다.

독립 이후 180년 가까이 남과 북은 각각 자신들의 지역 언어 사용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해묵은 언어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브뤼셀에서 북쪽으로 30km 거리에 있는 '크라이넴' 구는 북부 플랑드르 네덜란드어 지역입니다. 랑뜨르망즈씨는 지난해 10월 구청장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지만 아직도 정식 구청장이 아닙니다. 선거 과정에서 프랑스어 사용자를 위해 프랑스어 안내문을 보냈다는 이유로 플랑드르 지방정부가 승인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랑뜨르망즈(구청장 권한대행) :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선거 홍보물을 프랑스어로 보냈는데 이걸 트집 잡아서 승인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1년 이상 계속되는 구청장 공백 사태를 곱게 보지 않습니다.

<인터뷰> 로니(크라이넴 주민) : "80% 이상이 프랑스어 사용자인데 법에 의해 네덜란드어를 써야한다는 건 정말 웃기는 정치입니다."

구청장 공백과 함께 이 지역의 언어 갈등을 잘 보여주는 것이 교통 표지판입니다. 이 표지판은 네덜란드와 프랑스어 두 개 언어로 표시돼 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어로 표시된 내용은 검은 페인트로 지워져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이런 언어 갈등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남과 북의 언어 갈등의 골은 지난 6월 총선 이후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연방정부 구성협상에서 네덜란드어권 정당이 더 많은 자치권을 줄 것을 요구하자 프랑스어권 정당들이 연방 정부 구성을 거부한 것입니다. 국왕까지 중재에 나섰지만 양측의 연방 정부 구성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6개월째 연방 정부가 없는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스윙게도우(네덜란드어권 루뱅 대학 정치학과 교수) : "지방선거를 앞두고 네덜란드어권 정당과 프랑스권 정당이 각 지역의 이익을 최대한 주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고 그래서 타협이 안 되고 있습니다."

벨기에 분리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것은 남과 북의 경제력 차이입니다. 석탄과 철강산업으로 한발 앞서나갔던 완룬이 지난 70년대 이후 뒤처진 반면 플랑드르는 물류와 석유화학을 바탕으로 벨기에 경제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플랑드르가 완룬을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 차이가 크게 벌어진 상황입니다.

<인터뷰> 프로니에(프랑스권 루뱅대학 정치학과 교수) : "세제와 사회보장 측면에서 어려운 형편에 있는 완론 지역의 부담을 플랑드르 지역이 떠안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 갈등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일부 정치인들은 벨기에가 두 지역으로 분리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드빠뚤 브뤼셀 시의원 : "모든 정치인들은 분리로 가는 것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분리로 간다고 말로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국가를 유지하고 싶어 하지만 국가는 아무 힘을 가지고 있지 않고 이는 곧 국가의 분열을 의미합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벨기에 국민들 사이에서도 남북 분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벨기에 통합을 촉구하는 움직임도 이에 못지않지만 해묵은 언어 갈등에서 비롯된 분리 위기는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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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촌 현장] 벨기에, 언어 갈등으로 두 쪽 위기!
    • 입력 2007-12-09 09:50:46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유럽의 중심으로 불리는 벨기에가 남과 북, 두 쪽으로 갈라질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프랑스어를 쓰는 남부, 완룬과 네덜란드어를 쓰는 북부, 플랑드르 간의 언어 갈등이 격화되면서 6개월 째 연방 정부가 구성되지 못하는 '무정부 상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1830년 벨기에 독립 때부터 잉태된 이런 언어 갈등에다, 최근에는 남북 간의 경제력 격차까지 심화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분리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김개형 순회 특파원이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벨기에 수도 브뤼셀의 도심 거리. 수많은 인파가 벨기에 국기를 앞세우고 가두 행진에 나섰습니다. 4차선 도로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도착한 곳은 브뤼셀의 개선문 격인 '생캉트네르' 공원. '하나된 벨기에' 벨기에의 통합을 촉구하는 축제가 열리는 곳입니다. <인터뷰> 프랑스어권 주민 : "여기 모인 사람들은 벨기에인임을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된 정부가 없는 게 참 이상합니다." <인터뷰> 네덜란드어권 주민 : "나의 조국 벨기에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는 가슴 속 깊이 벨기에인임에 자랑스럽습니다. 나는 네덜란드어를 쓰는 벨기에인 입니다." 축제에 참가한 사람은 3만 5천 여명. 대규모 군중이 참가해 통합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린 것은 벨기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축제 막바지에 벨기에 국가가 연주되면서 축제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인터뷰> 마리 클레르 우아르(축제 기획자) : "벨기에를 위해 통합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축제를 준비한 3개월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바라고 벨기에가 지켜지기를 원합니다." 브뤼셀 도심 주변의 주택가. 집집마다 창문 밖이나 발코니 쪽으로 벨기에 국기를 길게 늘어뜨려 놓았습니다. 요즘 수도 브뤼셀에서는 벨기에 국기를 내건 집이 부쩍 늘어나고 있습니다. 통합의 상징인 국기를 게양함으로써 벨기에 통합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통합 촉구 움직임이 이렇게 활발한 것은 분리 위기감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계 각국의 관광객으로 항상 붐비는 브뤼셀의 중앙역. 기차 출발과 도착시각을 알려주는 안내판은 프랑스와 네덜란드어, 2개 언어로 표시돼 있습니다. <인터뷰> 얀(플랑드르 지역 주민) : "떼제베를 타고 왔는데 갠트로 갈려고 합니다. 네덜란드어권에 사는데 네덜란드어로 표시돼 있으니까 편리합니다." 또 관광 안내판과 버스 행선지 안내 등 모든 공공시설은 모두 2개 언어로 표기됩니다. 브뤼셀에서는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 2개 언어가 공식 언어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브뤼셀을 벗어나면 사정이 다릅니다. 북부 플랑드르는 네덜란드어, 남부 완룬은 프랑스어가 공식 언어입니다.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언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터뷰> 브뤼셀 시민 :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 이중 언어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중 언어의 문화적 배경이 문화를 풍요롭게 해줍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남과 북이 한 국가로 묶이게 된 것은 벨기에가 네덜란드에서 독립한 지난 1830년입니다. 북부 플랑드르의 주민 대다수는 네덜란드 말을 사용하지만 사회 지도층은 프랑스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프랑스어권인 남부 완론과 한 국가로 묶이게 된 것입니다. 독립 이후 180년 가까이 남과 북은 각각 자신들의 지역 언어 사용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해묵은 언어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브뤼셀에서 북쪽으로 30km 거리에 있는 '크라이넴' 구는 북부 플랑드르 네덜란드어 지역입니다. 랑뜨르망즈씨는 지난해 10월 구청장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지만 아직도 정식 구청장이 아닙니다. 선거 과정에서 프랑스어 사용자를 위해 프랑스어 안내문을 보냈다는 이유로 플랑드르 지방정부가 승인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랑뜨르망즈(구청장 권한대행) :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선거 홍보물을 프랑스어로 보냈는데 이걸 트집 잡아서 승인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1년 이상 계속되는 구청장 공백 사태를 곱게 보지 않습니다. <인터뷰> 로니(크라이넴 주민) : "80% 이상이 프랑스어 사용자인데 법에 의해 네덜란드어를 써야한다는 건 정말 웃기는 정치입니다." 구청장 공백과 함께 이 지역의 언어 갈등을 잘 보여주는 것이 교통 표지판입니다. 이 표지판은 네덜란드와 프랑스어 두 개 언어로 표시돼 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어로 표시된 내용은 검은 페인트로 지워져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이런 언어 갈등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남과 북의 언어 갈등의 골은 지난 6월 총선 이후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연방정부 구성협상에서 네덜란드어권 정당이 더 많은 자치권을 줄 것을 요구하자 프랑스어권 정당들이 연방 정부 구성을 거부한 것입니다. 국왕까지 중재에 나섰지만 양측의 연방 정부 구성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6개월째 연방 정부가 없는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스윙게도우(네덜란드어권 루뱅 대학 정치학과 교수) : "지방선거를 앞두고 네덜란드어권 정당과 프랑스권 정당이 각 지역의 이익을 최대한 주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고 그래서 타협이 안 되고 있습니다." 벨기에 분리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것은 남과 북의 경제력 차이입니다. 석탄과 철강산업으로 한발 앞서나갔던 완룬이 지난 70년대 이후 뒤처진 반면 플랑드르는 물류와 석유화학을 바탕으로 벨기에 경제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플랑드르가 완룬을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 차이가 크게 벌어진 상황입니다. <인터뷰> 프로니에(프랑스권 루뱅대학 정치학과 교수) : "세제와 사회보장 측면에서 어려운 형편에 있는 완론 지역의 부담을 플랑드르 지역이 떠안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 갈등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일부 정치인들은 벨기에가 두 지역으로 분리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드빠뚤 브뤼셀 시의원 : "모든 정치인들은 분리로 가는 것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분리로 간다고 말로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국가를 유지하고 싶어 하지만 국가는 아무 힘을 가지고 있지 않고 이는 곧 국가의 분열을 의미합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벨기에 국민들 사이에서도 남북 분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벨기에 통합을 촉구하는 움직임도 이에 못지않지만 해묵은 언어 갈등에서 비롯된 분리 위기는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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