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애국지사 200명 ‘무국적’

입력 2008.03.01 (21:4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아는 독립 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이 지금도 국적이 없는 망명객 신분이라는 사실, 알고 계신지요?
신채호 선생 뿐이 아닙니다.
정부 수립 60년이 되도록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무국적자로 남아있는 현실, 박미영 기자가 심층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항일 독립 운동가인 단재 신채호 선생, 정부의 국적 관리 시스템을 통해 단재 선생의 국적을 검색해 봤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단재의 자료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인터뷰> 강대평(법무부 청주 출입국 관리소) : "뭔가라도 신청을 하셨으면은 화면에서 나타날 것으로 보이는데, 전혀, 아무런 신청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국적이 아닌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선생은 일본 국적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는 이유로, 생전에 일본식 호적법인 '조선 민사령'을 거부했습니다.

선생이 그토록 고대했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60년, 선생이 일제에 체포돼 중국에서 옥사한 지 72년이 지났지만 국적은 회복되지 않은 것입니다.

무국적자 단재 선생의 아픔은 후손들의 기록에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지난 91년 숨진 단재 선생의 아들 고 신수범씨의 호적, 국적 없는 단재 선생을 등재할 수 없어 정부가 뒤늦게 망인 신분으로 단재를 표기할 때까지, 호주란이 텅 비어있었습니다.

항일 운동을 하다 숨진 애국지사 가운데 단재와 같은 무국적자는 최고 2백 명에 이를 것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종의 밀사로 헤이그 회의에 참석했던 보재 이상설 선생,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노은 김규식 장군,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 등도 무국적잡니다.

항일 업적 기록물이 상대적으로 적은 나머지 애국지사와 그 후손들은 무국적 신분으로 국외를 떠돌거나 생활고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했습니다.

<인터뷰> 신홍식(단재기념사업회 사무총장) : "생활의 비참함이라는 것은 표현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이제라도 국적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법무부는 현행법상 숨진 사람에게는 국적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독립 운동가의 국적 회복을 담은 국적법 개정안은 2년 반 넘게 국회에 계류중입니다.

<인터뷰> 김원웅(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 : "항일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해방 전에 돌아가신 분들께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60년, 목숨을 바쳐 광복을 이뤄낸 순국선열들은, 여전히 국적 없는 망명객 신분으로 남아있습니다.

KBS 뉴스 박미영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심층취재] 애국지사 200명 ‘무국적’
    • 입력 2008-03-01 20:58:44
    뉴스 9
<앵커 멘트>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아는 독립 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이 지금도 국적이 없는 망명객 신분이라는 사실, 알고 계신지요? 신채호 선생 뿐이 아닙니다. 정부 수립 60년이 되도록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무국적자로 남아있는 현실, 박미영 기자가 심층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항일 독립 운동가인 단재 신채호 선생, 정부의 국적 관리 시스템을 통해 단재 선생의 국적을 검색해 봤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단재의 자료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인터뷰> 강대평(법무부 청주 출입국 관리소) : "뭔가라도 신청을 하셨으면은 화면에서 나타날 것으로 보이는데, 전혀, 아무런 신청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국적이 아닌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선생은 일본 국적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는 이유로, 생전에 일본식 호적법인 '조선 민사령'을 거부했습니다. 선생이 그토록 고대했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60년, 선생이 일제에 체포돼 중국에서 옥사한 지 72년이 지났지만 국적은 회복되지 않은 것입니다. 무국적자 단재 선생의 아픔은 후손들의 기록에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지난 91년 숨진 단재 선생의 아들 고 신수범씨의 호적, 국적 없는 단재 선생을 등재할 수 없어 정부가 뒤늦게 망인 신분으로 단재를 표기할 때까지, 호주란이 텅 비어있었습니다. 항일 운동을 하다 숨진 애국지사 가운데 단재와 같은 무국적자는 최고 2백 명에 이를 것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종의 밀사로 헤이그 회의에 참석했던 보재 이상설 선생,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노은 김규식 장군,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 등도 무국적잡니다. 항일 업적 기록물이 상대적으로 적은 나머지 애국지사와 그 후손들은 무국적 신분으로 국외를 떠돌거나 생활고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했습니다. <인터뷰> 신홍식(단재기념사업회 사무총장) : "생활의 비참함이라는 것은 표현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이제라도 국적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법무부는 현행법상 숨진 사람에게는 국적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독립 운동가의 국적 회복을 담은 국적법 개정안은 2년 반 넘게 국회에 계류중입니다. <인터뷰> 김원웅(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 : "항일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해방 전에 돌아가신 분들께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60년, 목숨을 바쳐 광복을 이뤄낸 순국선열들은, 여전히 국적 없는 망명객 신분으로 남아있습니다. KBS 뉴스 박미영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2024 파리 패럴림픽 배너 이미지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