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핵전쟁 비밀 벙커를 가다!

입력 2008.08.31 (08:57) 수정 2008.08.3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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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그루지야 사태를 계기로 냉전 체제의 부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만 냉전 체제가 인류에게 주는 가장 큰 공포는 바로 핵전쟁일 것입니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강대국들은 저마다 핵전쟁에 대비한 위기관리 체제를 갖춰놓았는데요.

미국의 경우, 정부는 물론 의회까지 통째로 옮길 수 있도록 대규모 지하 비밀 요새를 곳곳에 마련해 놓았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비밀의 공간은 아니지만 주요 시설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한 핵전쟁 벙커를 이현주 특파원이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헬기로 1시간여 거리. 수영장과 온천 시설은 물론 방만 700개가 넘는 최고급 휴양시설이 나옵니다.

면적은 서울 대공원의 3배. 3개 코스의 골프장은 미 프로 골프 대회가 열렸을 정도로 최고를 자랑합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과 미국 수뇌부들이 단골이었다는 이곳은 전형적인 고급 휴양지입니다.

그러나 이는 겉으로 드러난 얼굴일 뿐, 이 호텔의 지하에는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얼굴이 있습니다.

고압전류 주의라는 경고문을 붙인, 평범해 보이는 안전문 너머의 세계입니다. 육중한 무게로 열리는 거대한 강철문과 함께 지하요새가 입을 벌립니다.

이른바, 핵전쟁 비밀 벙커. 핵전쟁이 났을 때 미국 상하원이 고스란히 옮겨져 이른바, 핵전쟁 비상 의회가 될 곳입니다.

<인터뷰> 린다 워즈(벙커 안내 총책임자):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정부 견제기능은 있어야 한다는 거죠. 특히 위기상황에서는 나라가 혼돈에 빠질수 있으니까요. 독재체제로 갈지도 모르구요.”

이 지하 요새 건설은 49년 전인 1959년 시작됐습니다. 마침 이 호텔이 짓기 시작한 신관 건물 공사로 철저히 위장한 채 2년 반 동안 계속됐습니다.

지하 20미터에, 핵충격을 견디도록 벽두께는 무려 1.5미터 쏟아 부은 콘크리트만 5 만톤이 넘습니다.

상하 양원 의원 535명을 비롯해 보좌관, 그리고 필요할 경우 의원의 가족 등, 천100명까지 수용할 지하 도시형 요새가 완공된 겁니다.

핵전쟁이 나면 모든 의원들이 처음 통과하는 문이 바로 이 철문입니다. 두께 약 50cm 무게는 25톤 한마디로 거대한 쇠덩어리입니다. 주변 50km에 핵폭탄이 투하돼도 끄떡없다는 얘깁니다.

문을 통과한 의원들은 예외 없이 옷을 모두 벗은 채 문 앞에 설치된 이 샤워기로 방사능 제거를 해야 합니다.

<인터뷰> 로버트 콘테(역사학자): “바로 이곳을 지나 기다란 샤워 터널을 지나는 거죠. 낙진은 이 샤워기가 떨어내주는 거구요.”

샤워가 끝나면 입고 온 넥타이와 정장은 모두 소각되고, 의원이든 보좌관이든 이른바 벙커 생활복으로 똑같이 갈아입어야 합니다.

<인터뷰> 로버트 콘테(역사학자): “이 창살문을 열고 옷을 받는 거죠.” (무슨 옷입니까?) “푸른 군복요, 일반 육군복 말입니다.”

옷을 갈아입은 의원들과 보좌진들은 숙소로 향합니다. 그런데 의원용 시설로 보기에는 너무나 옹색합니다. 신병 훈련소의 시설과 다름없습니다.

<인터뷰> “네, 실제로 육군공병대가 설계했죠. 완전 군작전용으로요.”

60개의 이층침대가 배치된 숙소는 18 곳에 분산돼 있습니다. 그 가운데 2곳은 여성용, 의원과 보좌진간의 구분은 없습니다.

이 지하 요새는 핵전쟁 기간 비상 미의회가 외부 지원 없이 60일까지 버틸 수 있도록 식량을 저장해 뒀습니다.

대학 구내식당 규모의 식당은 물론 벙커의 철문부터 시작되는 130미터의 콘크리트 회랑 양 옆도 바로 이 같은 식량 저장고 역할을 합니다.

특히 16개 침상과 X레이 시설 등을 갖춘 병원 시설로 의원과 가족 보좌관 등 1100명을 이 기간 중 치료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치료에도 불구하고 질병이나, 특히, 방사능 후유증 등으로 의원들이 사망했을 경우에 대비해, 화장시설까지 갖췄습니다.

이 지하 요새 시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상하원의 본회의장. 두 회의장은 평시 호텔의 회의용 행사장으로 사용되다가 비상시에는 본회의장으로 전환한다는 개념으로 지어졌습니다.

<인터뷰> 린다 워즈(벙커 안내 총책임자): “비밀 유지의 가장 좋은 방법은 평범한 곳에 숨기는 거죠? 평소 거버너스홀이라는 이름으로 이 방을 회의에도 빌려주곤 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건 이 지하 요새가 완벽한 방송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겁니다. 핵전쟁으로 모든 통신이 끊어진 와중에도, 국가가 기능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든 알려, 민심을 안정시키겠다는 포석입니다.

<인터뷰> 린 스완(벙커 시설 대외협력국장): "의원들은 이 방에서 TV 등을 통해 국가가 기능하고 있음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겁니다."

실제로 라디오와 TV를 위한 완벽한 스튜디오와 주조정실에다 각종 방송장비가 갖춰졌습니다.

미 의회가 기능하고 있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스튜디오 배경도 이처럼 평상시 미 의회 건물로 했습니다.

특히, 계절에 맞춰 4 가지 배경까지 갖추는 등 핵전쟁이라는 초비상 시국의 민심까지 세심하게 고려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지하요새에서 이뤄진 방송은 바로 이 벙커 외부 땅속에 매설된 직경 75인치의 특수 송신 안테나로 외부에 전파됩니다.

핵전쟁에도 끄떡하지 않도록 철저한 위장과 보호장치가 돼 있습니다. 핵전쟁 때 미 의회가 고스란히 옮겨갈 이 지하 요새는 무려 30년간 철저히 관리되고 완벽한 준비 태세를 유지해 왔습니다.

문 하나를 열면, 다시 호화로운 최고급 호텔의 프론트와 로비. 이처럼 철저하게 지켜지던 비밀도 냉전 체제의 해체와 함께 지난 1992년 언론에 노출되면서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노출과 동시에 이 곳은 폐쇄돼, 기능을 다했지만 위기 상황을 대비한 미국의 계획은 변함이 없다는 설명입니다.

<인터뷰> 로버트 콘테(역사학자): "특히 911이후, 정부를 수습해 어떤 형태의 공격도 대비하도록 할, (비상 벙커의) 필요성이 더 커졌고 이건 결정적 요소라고 봅니다."

실제로 미국은 대통령과 군 수뇌부 의회 뿐 아니라, 미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와 사법 기관 등, 위기 상황 이후 국가 재건에 필요한 주요 기관을 옮겨놓은 지하 요새 시설과 계획이 이미 다 수립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역도 수도와 가까운 북 버지니아, 남 펜실베니아 지역에서부터 콜로라도까지 다양합니다. 핵전쟁이 났을 경우 대통령은 보잉 747을 개조한 특수군용기에서 군 지휘부와 전쟁을 지휘하며, 이같은 비행기는 4대로 그 중 하나는 언제나 대기 중이라는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비록 냉전이 끝나고 핵전쟁의 위험은 낮아졌어도 결코 강도가 떨어지지 않는 미국의 위기관리 체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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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핵전쟁 비밀 벙커를 가다!
    • 입력 2008-08-31 08:01:38
    • 수정2008-08-31 09:11:32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그루지야 사태를 계기로 냉전 체제의 부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만 냉전 체제가 인류에게 주는 가장 큰 공포는 바로 핵전쟁일 것입니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강대국들은 저마다 핵전쟁에 대비한 위기관리 체제를 갖춰놓았는데요. 미국의 경우, 정부는 물론 의회까지 통째로 옮길 수 있도록 대규모 지하 비밀 요새를 곳곳에 마련해 놓았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비밀의 공간은 아니지만 주요 시설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한 핵전쟁 벙커를 이현주 특파원이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헬기로 1시간여 거리. 수영장과 온천 시설은 물론 방만 700개가 넘는 최고급 휴양시설이 나옵니다. 면적은 서울 대공원의 3배. 3개 코스의 골프장은 미 프로 골프 대회가 열렸을 정도로 최고를 자랑합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과 미국 수뇌부들이 단골이었다는 이곳은 전형적인 고급 휴양지입니다. 그러나 이는 겉으로 드러난 얼굴일 뿐, 이 호텔의 지하에는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얼굴이 있습니다. 고압전류 주의라는 경고문을 붙인, 평범해 보이는 안전문 너머의 세계입니다. 육중한 무게로 열리는 거대한 강철문과 함께 지하요새가 입을 벌립니다. 이른바, 핵전쟁 비밀 벙커. 핵전쟁이 났을 때 미국 상하원이 고스란히 옮겨져 이른바, 핵전쟁 비상 의회가 될 곳입니다. <인터뷰> 린다 워즈(벙커 안내 총책임자):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정부 견제기능은 있어야 한다는 거죠. 특히 위기상황에서는 나라가 혼돈에 빠질수 있으니까요. 독재체제로 갈지도 모르구요.” 이 지하 요새 건설은 49년 전인 1959년 시작됐습니다. 마침 이 호텔이 짓기 시작한 신관 건물 공사로 철저히 위장한 채 2년 반 동안 계속됐습니다. 지하 20미터에, 핵충격을 견디도록 벽두께는 무려 1.5미터 쏟아 부은 콘크리트만 5 만톤이 넘습니다. 상하 양원 의원 535명을 비롯해 보좌관, 그리고 필요할 경우 의원의 가족 등, 천100명까지 수용할 지하 도시형 요새가 완공된 겁니다. 핵전쟁이 나면 모든 의원들이 처음 통과하는 문이 바로 이 철문입니다. 두께 약 50cm 무게는 25톤 한마디로 거대한 쇠덩어리입니다. 주변 50km에 핵폭탄이 투하돼도 끄떡없다는 얘깁니다. 문을 통과한 의원들은 예외 없이 옷을 모두 벗은 채 문 앞에 설치된 이 샤워기로 방사능 제거를 해야 합니다. <인터뷰> 로버트 콘테(역사학자): “바로 이곳을 지나 기다란 샤워 터널을 지나는 거죠. 낙진은 이 샤워기가 떨어내주는 거구요.” 샤워가 끝나면 입고 온 넥타이와 정장은 모두 소각되고, 의원이든 보좌관이든 이른바 벙커 생활복으로 똑같이 갈아입어야 합니다. <인터뷰> 로버트 콘테(역사학자): “이 창살문을 열고 옷을 받는 거죠.” (무슨 옷입니까?) “푸른 군복요, 일반 육군복 말입니다.” 옷을 갈아입은 의원들과 보좌진들은 숙소로 향합니다. 그런데 의원용 시설로 보기에는 너무나 옹색합니다. 신병 훈련소의 시설과 다름없습니다. <인터뷰> “네, 실제로 육군공병대가 설계했죠. 완전 군작전용으로요.” 60개의 이층침대가 배치된 숙소는 18 곳에 분산돼 있습니다. 그 가운데 2곳은 여성용, 의원과 보좌진간의 구분은 없습니다. 이 지하 요새는 핵전쟁 기간 비상 미의회가 외부 지원 없이 60일까지 버틸 수 있도록 식량을 저장해 뒀습니다. 대학 구내식당 규모의 식당은 물론 벙커의 철문부터 시작되는 130미터의 콘크리트 회랑 양 옆도 바로 이 같은 식량 저장고 역할을 합니다. 특히 16개 침상과 X레이 시설 등을 갖춘 병원 시설로 의원과 가족 보좌관 등 1100명을 이 기간 중 치료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치료에도 불구하고 질병이나, 특히, 방사능 후유증 등으로 의원들이 사망했을 경우에 대비해, 화장시설까지 갖췄습니다. 이 지하 요새 시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상하원의 본회의장. 두 회의장은 평시 호텔의 회의용 행사장으로 사용되다가 비상시에는 본회의장으로 전환한다는 개념으로 지어졌습니다. <인터뷰> 린다 워즈(벙커 안내 총책임자): “비밀 유지의 가장 좋은 방법은 평범한 곳에 숨기는 거죠? 평소 거버너스홀이라는 이름으로 이 방을 회의에도 빌려주곤 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건 이 지하 요새가 완벽한 방송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겁니다. 핵전쟁으로 모든 통신이 끊어진 와중에도, 국가가 기능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든 알려, 민심을 안정시키겠다는 포석입니다. <인터뷰> 린 스완(벙커 시설 대외협력국장): "의원들은 이 방에서 TV 등을 통해 국가가 기능하고 있음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겁니다." 실제로 라디오와 TV를 위한 완벽한 스튜디오와 주조정실에다 각종 방송장비가 갖춰졌습니다. 미 의회가 기능하고 있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스튜디오 배경도 이처럼 평상시 미 의회 건물로 했습니다. 특히, 계절에 맞춰 4 가지 배경까지 갖추는 등 핵전쟁이라는 초비상 시국의 민심까지 세심하게 고려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지하요새에서 이뤄진 방송은 바로 이 벙커 외부 땅속에 매설된 직경 75인치의 특수 송신 안테나로 외부에 전파됩니다. 핵전쟁에도 끄떡하지 않도록 철저한 위장과 보호장치가 돼 있습니다. 핵전쟁 때 미 의회가 고스란히 옮겨갈 이 지하 요새는 무려 30년간 철저히 관리되고 완벽한 준비 태세를 유지해 왔습니다. 문 하나를 열면, 다시 호화로운 최고급 호텔의 프론트와 로비. 이처럼 철저하게 지켜지던 비밀도 냉전 체제의 해체와 함께 지난 1992년 언론에 노출되면서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노출과 동시에 이 곳은 폐쇄돼, 기능을 다했지만 위기 상황을 대비한 미국의 계획은 변함이 없다는 설명입니다. <인터뷰> 로버트 콘테(역사학자): "특히 911이후, 정부를 수습해 어떤 형태의 공격도 대비하도록 할, (비상 벙커의) 필요성이 더 커졌고 이건 결정적 요소라고 봅니다." 실제로 미국은 대통령과 군 수뇌부 의회 뿐 아니라, 미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와 사법 기관 등, 위기 상황 이후 국가 재건에 필요한 주요 기관을 옮겨놓은 지하 요새 시설과 계획이 이미 다 수립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역도 수도와 가까운 북 버지니아, 남 펜실베니아 지역에서부터 콜로라도까지 다양합니다. 핵전쟁이 났을 경우 대통령은 보잉 747을 개조한 특수군용기에서 군 지휘부와 전쟁을 지휘하며, 이같은 비행기는 4대로 그 중 하나는 언제나 대기 중이라는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비록 냉전이 끝나고 핵전쟁의 위험은 낮아졌어도 결코 강도가 떨어지지 않는 미국의 위기관리 체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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